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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도시 재개발과 경성전기 사택 보존

by 이윤기 2022.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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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KBS1 라디오 <시사경남>에서 매주 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방송 내용과 조금 다른 초고이기는 하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2021. 7. 19 방송분)

지난 7월 14일, 제가 일하는 마산YMCA에서는 창원시 근대건조물 제 10호, 경성전기 사택의 가치를 짚어보는 시민논단을 개최하였습니다.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40여명의 시민들이 관심있게 참여한 이날 토론회 내용을 중심으로 창원시의 근대문화유산 보존 정책과 경성전기 사택의 가치를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우선 어떤 건축물이나 시설물을 근대건조물이라고 하는지부터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근대건조물이란 19세기 개항기부터 건립된지 50년이 지난 역사적, 건축사적, 산업사적 혹은 예술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이나 각종 시설물을 말하는데, 창원시의 경우에는 근대건조물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보존 가치가 있는 경우에만 지정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창원시에는 모두 91개소의 근대 건조물이 남아 있습니다. 의창구 6개, 마산합포구 42개, 마산회원구 3개, 진해구에 40개가 남아 있는데, 대부분 마산합포구와 진해구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보존가치가 높은 것으로 인정되어 창원시 근대건축물로 지정된 곳은 모두 10군데입니다. 제 1호는 진해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 동상, 제 2호는 진해에 있는 백범 김구 선생 친필 시비, 제 3호는 진해 탑, 제 4호는 진해 흑백다방, 제 5호는 여좌천 제방입니다. 그리고 제 9호인 진해만요새사령부까지 10군데 중 6개가 진해에 소재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4개는 마산합포구에 있는데, 제 6호는 313의거기념탑, 제 7호는 산호 공원에 있는 마산충혼탑, 제 8호는 월남동 절충식 가옥, 제 10호는 한일와사 전기회사 관사입니다. 

 

보존가치 높은 근대건조물 10군데 중 1곳

오늘 제가 말씀 드리려고 하는 제 10호 건조물이 지금까지 1939년에 지었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고 명칭도 ‘한일와사 전기회사’ 관사로 알려져 있는 건물입니다. 마산YMCA 토론회에서는 건축년도가 1939년이라고 하는 것과 회사의 명칭이 한일와사가 아니라는 매우 설득력 있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건축물의 건축연도가 1939년으로 알려진 것은 건축물대장에 1939년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고, 이른 근거로 약 20년 전 연구논문이 발표된 후 1939년으로 알려져 있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사실이 아닐 것이라는 추론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날 발제자로 참가한 허정도 경상남도 총괄건축가는 건축물 대장이 건축 당시에 작성된 것이 아니라 해방되고도 한 참 후에 작성되었기 때문에 신빙성이 낮고, 일제 강점기 건축물 대부분의 건축연도가 비슷한 시기로 적혀 있는 것을 보면 해방 이후 기록 정리과정에서 생긴 오류일 가능성 매우 높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아울러 실제 건축연도는 건축물 대장보다 10년 정도 빠른 1927~1928년 무렵일 것이라고 추정하였습니다. 첫 번째 근거로 등기부등본상에 집 터를 매입한 시기가 1927년 6월 3일 이기 때문에 땅을 사고 1~2년 안에 건물을 지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이날 토론회에는 이 주장을 뒷 받침 할 만한 간접 증거가 처음 공개되었는데, 바로 이 건물에 지금도 남아 있는 초벌 도배지로 사용했던 신문의 날짜입니다. 당시 발간되던 조선조일이라는 신문이 초벌도배지로 사용되었는데, 1928년 10월 28일자 신문이었습니다. 예컨대 종이가 지금보더 훨씬 귀하던 시절이었는데 1928년에 발행된 신문을 10년 동안이나 보관했다가 1939년에 초벌 도배지로 사용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것이지요. 

 

 

1927-28년도 건축물로 추정하는 것이 신빙성 있어

또 다른 발제자인 신삼호 창원시 공공건축가도 1930년 이전이라는 건축적 추론을 내놨는데, 바로 이집의 배관과 설비 시설을 보면, 1930년 5월에 봉암수원지와 추산정수장이 완공되어 마산에 수돗물이 보급되기 이전에 지어졌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1930년 5월 이전에 집을 먼저 짓고 나중에 수도를 인입하였기 때문에 각종 배관이 모두 노출되어 있으며, 특히 화장실 세면대는 간이 급수 시설과 배수통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배관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확실한 증거는 나중에 천정 안쪽에 있는 상량문을 확인해야 하겠지만, 허정도, 신삼호 두 분의 추정이 맞다면, 이 건물은 건축 당시 한일와사 전기회사 관사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경성전기 주식회사 사택으로 지어졌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한일와사전기주식회사는 1915년에 이미 회사명을 경성전기주식회사로 바꾸었고, 마산에 있는 전기회사는 ‘경성전기주식회사 마산지점’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동안 한일와서 관사로 불려지던 이 건물은 관공서부속 건물이 아니기 때문에 관사가 아니라 사택이고, 회사 명칭은 1915년부터 경성전기주식회사였으니, 경성전기주식회사 마산지점장 사택이 정확하다는 것입니다. 

이 집의 건축적 가치는 이미 2005년에 문화재청이 경남지역의 24개 근대문화유산 등록 예고 목록에 포함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문화재청의 기록을 보면 “관사 주택 설계집단의 인맥과 기술의 흐름을 잘 보여주며, 여러 차례 개보수가 이루어졌음에도 건물의 평면 상태나 외관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주거사적, 건축적, 근대사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되었습니다. 

당시 문화재청이 등록예고한 경남의 24개 근대문화유산 중에 이 건물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 하는데, 이 집만 제외 된 것은 당시 건물주가 등록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문화재청 등록 문화재로 손색 없는, 경성전기 사택

허정도 건축가는 단순검소한 디자인과 일식주택의 특징인 다다미, 후스마, 토코노마, 오시이레, 부쓰단 등이 모두 그대로 남아 있고, 스위치, 욕실, 창호, 화장실 등이 원형을 보존하고 있으며, 건축 당시 심어진 조경수들도 집과 잘 어울린다고 평가하였습니다. 

이날, 발제와 토론자로 참여한 유장근 경남대 명예교수와 이혜련 창원시의원을 비롯한 네 사람 모두 한 목소리로 기왕에 창원시 근대건조물로 지정되었고, 문화재청에서도 이미 2005년에 그 가치를 인정 받았으니 창원시의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시민의 공유자산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지난해 지역사회의 관심이 모아졌던 마산 산호동 지하련 주택처럼, 이 전기회사 사택도 재개발 사업구역에 포함되어 있어서 창원시가 재개발 과정에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안하는 방식으로 시민의 공유자산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원시의 경우 지난 2011년 많은 시민들과 지역언론이 나서서 보존 방안 마련을 주장했던 삼광청주 공장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2019년에는 진해에 있던 이애순 가옥도 철거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재개발 재건축을 추진하면서도 문화재를 잘 보전한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서울시는 2011년 은평 뉴타운 아파트단지를 개발하면서 부지 내에 있던 세종대왕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을 위해 지은 신당 건물을 당초 아파트 외부로 이전하려던 방침을 변경하여 현지 보전하는 방식으로 개발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대구에도 2002년 무렵 원도심재개발로 철거 될 뻔 했던 시인 이상화 고택이 40만명의 시민이 참여하는 서명운동을 통해 원형 보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서울시의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사례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서울 인사동에 지하 8층, 지상 26총의 센트로폴리스라는 건물 공사를 하던 중 지하에 파묻힌 108개동 건물 터, 골목길 등 유구와 함께 1000여 점 넘는 생활유물이 나타나고, 청동화로, 거울 등 옛 유물부터 일제강점기 담배가게 간판 등 시기를 아우르는 문화층이 발견되면서 사업이 전면 중단되었습니다 

.서울시는 '용적률 인센티브'라는 당근을 시행자 측에 제시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문제를 풀어 나갔는데요, 먼저 대단위로 발굴된 도로·골목·집터는 원위치에 보존하고 건물 지하 1층을 '공평도시유적전시관'으로 가꿔 옛 집터를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동시에 지하 공간 활용이 일부 불가능해진 시행자 측에는 손실을 고려한 뒤 용적률 200%를 더 부여해 기존 계획인 22층보다 4층이나 더 높은 26층으로 지을 수 있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미 벤치마킹 할 만한 사례가 이미 많이 있기 때문에 창원시의 강한 의지만 있다면, 재개발 지역에 포함되어 있는 지하련 주택이나 경성전기 사택을 보존하여 시민의 공공자산으로 만드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