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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우유, 두달까지 먹을 수 있다

by 이윤기 2022.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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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KBS1 라디오 <시사경남>에서 매주 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방송 내용과 조금 다른 초고이기는 하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2021. 8.2 방송분)

 

 

2023년부터 식품 등에 지금 표기되어 있는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 표시제가 도입됩니다. 지난 7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등 개정안을 통과시켰는데요. 가장 핵심 내용은 식품의 유통기한 표시를 내년까지만 하고, 2023년부터는 소비기한을 표시하도록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새로 만들어진 소비기한 표시제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오늘은 청취자 여러분께 질문부터 먼저 드려보겠습니다. 유통기한 5일이 지났지만 포장을 뜯지 않은 채 냉장고에 보관된 우유가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대부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설문조사를 했더니 응답자의 56.4%가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은 먹지 않고 버린다고 답하였답니다. 

 

절반 넘는 분들이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은 버려야 한다고 답했으니 유통기한으로부터 5일이나 지난 우유라면 당연히 버려야한다고 생각하시겠지요. 하지만 유통기한에서 5일 지난 우유라고 먹을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냉장 식품의 보관 온도를 잘 지켜서 보관한 우유라면 최장 50일까지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유통기한 지난 식품 폐기, 연간 6000억원

이처럼 식품의 유통과정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회수하고 폐기하는 규모가 연간 6000억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아울러 가정에서 유통기간이 지났다고 폐기처분하는 규모가 연간 8조 1400억원으로 매년 9조가까이가 음식 쓰레기로 인해 낭비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기후변화 위기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데,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버리는 것은 환경에도 아주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따르면 ‘2018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26%는 식품 생산 때문에 발생하였으며, 온실가스 배출량의 6%는 음식 쓰레기로 인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음식 쓰레기를 줄이면 온실가스 배출량 6%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현행 식품 유통기한이 식품을 먹을 수 있는 기한을 말하는 소비기한에 비해 지나치게 짧다는 것입니다. 소비기한은 유통기한이 지났지만 먹어도 건가상 이상이 없다고 판단되는 최종기한을 말하는데, 유통기한 표시는 판매자 중심이고, 소비기한 표시는 소비자 중심 표시제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식품은 유통기한이 지나도 소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통기한이 끝날 때 혹은 끝나기 전에 구입해서 상당기간 동안 냉장고에 보관하면서 먹을 수 있도록 유통기한을 미리 짧게 정해두었기 때문입니다.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의 차이가 얼마나 심하게 되어 있는지, 소비자들이 잘 아는 식품 몇 가지만 소비기한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유통기한 경과 식품의 섭취 적정성 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우유의 경우 유통기한으로 표시하면 10일이지만 소비기한으로 표시하면 60일 ▲액상커피는 유통기한 77일에서 소비기한 107일 ▲치즈는 유통기한 6개월에서 유통기한 경과 후 최대 70일 ▲식빵은 유통기한 3일에서 소비기한 23일 ▲냉동만두는 유통기한 9개월에서 유통기한 경과 후 최대 25일 등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다른 연구에서는 유통기한이 5개월인 라면의 소비기한은 8개월, 심지어 유통기한이 2년으로 되어 있는 식용유는 보관 수칙만 지키면 5년까지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소비기한에 비해 지나치게 짧은 유통기간...

 

앞서 인용했던 유통기한이 지나면 먹지 않는다고 응답했던 설문조사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조사에 참여한 소비자들은 식품을 구입할 때 78%가 구매당일과 근접한 제조일자 제품을 선택하고, 응답자의 51.6%는 유통기간 임박제품은 구매하지 않으며, 84.3%는 유통기한이 길게 남은 제품을 고른다고 응답하였습니다. 

 

결국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은 소비자들이 외면하기 때문에 회수 폐기된다는 것이지요. 사실 이렇게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을 폐기처분하게 되면 사업자만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폐기처분 된 식품원가는 소비자들이 구입하는 제품에 모두 반영되기 때문에 사업자와 소비자 그리고 넓게 보면 온 국민이 함께 손해는 보는 셈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그냥 폐기하는 것이 자원낭비다라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약 20여년전에 푸드뱅크 사업이 시작되었고,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들을 푸드뱅크를 통해 어려운 이웃과 나누자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식품의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부족했던 탓에 몇 년 전에는 국회의원들까지 나서서 푸드뱅크가 어려운 이웃들에게 유통기한이 임박하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차별하는 것처럼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논란 끝에 2005년부터는 푸드뱅크에도 유통기한이 7일 이상 남은 제품만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멀쩡한 식품들이 또 다시 버려지게 된 것이지요. 

 

 

유통기한 표시제....35년...이제 소비기한 표시제로 바뀐다

식품에 유통기한이 표시된 것은 1985년부터입니다. 유통기한 표시제도가 도입된 지 35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식품 제조기술과 냉장 유통 체계 그리고 가정에서의 보관환경 등이 모두 눈부시게 발전하였기 때문에 이제는 유통기한 표시제도를 더 이상 고집할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소비기한 표시제로 바뀌는 경우 어떤 효과가 있을지 예측한 연구결과도 있는데요. 식품안전정보원에 따르면 ‘가정 내에 소비기한으로 변경 시 가공식품 폐기 감소(1.51%)로 연간 8,860억 원, 식품 산업체 제품의 반품·폐기 감소(0.04%)로 연간 260억 원의 사회적 편익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하였습니다. 또 ‘음식물 쓰레기 처리비용도 연간 165억 원 감소 할 것이라고 예상하였습니다. 

사실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은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에서는 이미 2018년부터 유통기한 표시가 소비자 오인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며 식품 표시 규정에서 삭제했습니다. 아울러 소비자 혼란방지, 식량 폐기감소를 위해 소비기한 표시제 사용을 국제적으로 권고하였고, EU, 일본, 호주, 캐나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앞장서서 소비기한 표시제를 도입하였습니다. 지난 5월 31일 ‘2021 P4G 서울 녹색 미래정상회의’에서도 탄소중립 정책 중하나로  ‘소비기한 표시제’를 도입하기로 각국 정상들이 모여서 결의하였답니다. 

소비자단체들은 오래 전부터 쓰레기를 줄이고 자원낭비를 막기 위해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을 주장해 왔는데, 이제야 국회가 법을 개정하고 2023년부터 시행하게 된 것입니다. 이 제도를 즉시 시행하지 않고 유예기간을 둔 것은 갑작스런 제도 변화로 인한 소비자들의 혼란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아울러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을 가장 반대해온 유가공업계의 고충을 반영하여 우유, 치즈 등의 경우 최장 8년까지 시행을 유예하도록 하였습니다. 2026년 FTA 협정에 따른 관세 철폐로 국내 유가공업계가 겪을 어려움과 유통과정의 변질사고 발생 우려가 높은 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다른 식품들의 표시제가 모두 소비기한으로 바뀌는데 유제품만 오랫 동안  유통기한을 표시하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또 다른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유예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노력이 추가로 진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다소 늦은감이 있지만, 유통기한 폐지와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은 환영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식품 업계는 제품 폐기를 줄일 수 있고, 국제사회의 표준과 일치되면 수출경쟁력도 높아 질 수 있으며, 무엇보다 탄소 배출을 줄이고 기후온난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할 수 있게 된 것은  아주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1년 6개월 앞으로 다가 온 소비기한 표시제 시행을 앞두고 유통기한 표시에 익숙한 소비자들의 혼란을 줄일 수 있도록 하는 충분한 홍보와 새로운 제도 도입을 번거롭고 불편하게 생각하는 소비자들에게 이 취지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소비자 교육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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