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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우크라이나 전쟁과 식량 위기

by 이윤기 2023.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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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KBS1 라디오 <라이브 경남>에서 매주 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방송 내용과 조금 다른 초고이기는 하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2022. 6. 13 방송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을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4개월째로 접어든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우리 국민들의 삶에도 크게 영향을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폭등하고 있는 밀가루 가격을 비롯한 여러가지 식료품 가격 인상과 식량 안보에 관하여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빵이나 면을 좋아하시나요? 자타가 공인하는 빵과 면 애호가인 저는 다이어트를 위해 글루텐 섭취를 줄이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있습니다. 최근 밀가루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빵 가격도 오르고, 많은 제과점들이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거의 밥만큼 즐겨먹는 라면이나 칼국수, 냉면 등도 가격이 줄줄이 오르고 있습니다. 최근 분식점을 가보면 메뉴판 가격표에 테이프를 붙이고 가격을 고쳐놓은 곳들이 많은데, 대부분 재료비 인상 때문에 음식값을 올린 곳들입니다. 

흔히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들 하고, 고기를 먹어도 공기밥이나 볶음밥을 먹어줘야 한다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만, 해방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생활이 급격하게 서구화 되면서 밀가루 역시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식재료입니다. 실제로 전국의 주요 도시마다 성심당, 이성당 하는 식으로 그 도시를 대표하는 빵집들이 관광 명소가 되어가고 있고, 또 새로운 유명 빵집들이 속속 맛집으로 소개되고 소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쌀 다음으로 많이 소비하는 것이 바로 밀인데, 우리나라의 밀 자급률은 0.8%밖에 되지 않습니다. 99.2%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방송을 들으시는 분들 중에는 한살림이나 아이쿱 같은 생협 조합원들도 계실테고, 나는 우리밀로 만든 라면, 국수, 빵만 먹는다고 하는 분들도 계실텐데요. 하지만 그 비율이 고작 0.8%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동네 마트 매대에서는 식용유가 사라지고 창고형 할인마트에서도 1인당 1~2개만 구입할 수 있을 만큼 공급이 부족합니다. 공급이 부족하니 가격도 폭등하고 있습니다. 음식점에서 사용하는 18L들이 식용수 한 통은 3월까지만해도 3만원대에서 판매되었는데, 5월 중순에는 6만원대까지 인상되었습니다. 

 

밀가루, 식용유 가격 폭등

최근 밀가루 가격과 식용유 가격이 급등한 데는 몇 가지 원인이 있는데요. 먼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입니다.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라고 부르는 일이 많은데, 정확하게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전쟁을 선포하고 쳐들어 갔으니 ‘우크라이나 침공'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지난 2월 러시아의 침략을 받아 4개월째 러시아의 파상공세에 맞서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사람들이 소비하는 밀가루의 29%를 공급하는 최대의 밀 생산국 중 하나입니다. 이 전쟁이 길어지면서 세계 밀가루 시장에 공급부족이 빚어지게 된 것입니다. 

식용유 가격이 폭등하는 것도 바로 전쟁이 직접 원인인데요. 세계 최대의 해바라기씨유 수출국인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터지면서, 세계 식용유 시장의 수급 균형이 깨져버린 것입니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해바라기씨유 수출량 42.6%를 공급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근의 밀가루 값 인상이나 식용유 품귀 현상이 모두 이 전쟁으로 인해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은 아닙니다. 

사실, 전쟁이전부터 세계 곡물 시장에서 밀가루 가격은 이미 오르고 있었습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세계적으로 해상운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도 있었습니다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기후위기로 인한 곡물 생산량 감소입니다. 

2020년부터 시작된 극심한 가뭄으로 주요 식량 수출국인 미국과 러시아, 유럽의 곡물 생산량이 감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에서 농산물을 대거 수입해 오는데, 중국에서도 기후변화로 인한 큰 홍수로 양쯔강 유역이 범람하여 많은 농작물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들이 겹치면서 세계 곡물 시장에서 식량 가격은 폭등하고 있고, 그 여파가 빠르게 우리 동네 식당과 빵집 그리고 우리집 식탁까지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4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3월 소비자물가는 4.1% 급등해 10년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3월 물가 상승요인을 쪼개보면 수입 곡물가격과 연관성이 큰 외식 물가와 가공식품 물가가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지난 3월 물가 상승분 34%가 외식물가와 가공식품 가격 상승 때문에 발생했다고 합니다. 특히 외식 물가는 1년 새 6.6% 급등하여 1998년 4월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고 합니다. 

 

식량 생산 감소, 식량 안보 걱정해야

문제는 가격만 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곡물 생산량이 줄어들기 시작하자 수출을 중단하거나 제한하는 나라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고 이제는 식량 안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세계 3위 밀 생산국인 인도가 밀 수출을 제한하기 시작하였고, 밀을 수출하던 프랑스, 중국, 미국에서도 기후변화로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수출제한을 저울질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난 4월 농림축산식품부 발표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20.2%이며, 식량 자급률은 45.8%라고 합니다. 혹시 젊은 분들중에 우리나라는 원래부터 스마트폰과 자동차를 팔아서 밀과 콩을 수입해서 먹은 줄 아는 분들이 있을까봐 말씀드리는데, 1970년대 곡물 자급률은 80.5%였고, 1980년 곡물 자급률은 56%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쌀 다음으로 많이 소비하는 곡물이 밀과 콩인데, 지금 마트에서 가장 가격이 많이 오르고 있는 것이 바로 밀과 콩을 원재료로 하고 있는 가공식품들입니다. 

가끔 언론보도에서 쌀이 남아돈다라는 뉴스를 보게 되는데, 이 또한 착시현상입니다. 쌀이 남아도는 것은 쌀 만큼은 국내 소비량보다 많이 생산하는 것이 맞지만, 밀 소비가 늘어나면서 쌀소비가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수입하는 밀 334만톤을 쌀로 모두 대체하려면(단순 계산을 해도) 남아도는 쌀 27만톤으로는 무려 300만톤 이상이나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한때는 스마트폰과 자동차를 팔아서 농산물을 사다 먹으면 된다는 분들도 많았습니다만,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위기가 반복되면서 이젠 정부에서도 국산 밀과 콩을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만 더디기만 합니다. 

예컨대 농림축산식품부는 2020년에 34억원에 불과하였던 국산밀 생산 지원예산을 올해 238억원으로 늘였고, 국산 콩 생산 지원예산은 895억에서 1672억원으로 두 배 가량 늘였다고 합니다. 정부는 이런 노력을 통해 2020년 자급률 0.8%(1만7천톤)인 밀은 2025년까지 자급률 5%(12만톤)까지 끌어 올릴 계획이며, 콩의 경우 2020년 30.4%인 자급률을 2025년 33%로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발표만 믿고 안 심할 수 없는 것이 정부가 자유무역을 더욱 확대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도 추진 중인데,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CPTPP 가입 시 15년간 연평균 최대 4400억원의 농업생산이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우리나라 농수산식품공사가 내놓은 대책은 ‘곡물 비축기지’를 세우는 것인데, 이게 창고를 크게 짓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식량 자급률이 우리보다 2배 가량 높은데도 불구하고, 식량 자급률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경지면적 확대 목표를 세우고 근본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 정부는 남의 나라에서 사다가 창고에 쌓은 것이 근본 대책이 아니라 농업생산을 늘이는 것이 근본 대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보다 더 위험한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위기가 목전에 닥쳤다는 기후과학자들의 경고에 비하면 우리 정부의 대응은 느리기 짝이 없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