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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6.25 72주년 종전과 평화로...

by 이윤기 2023.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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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KBS1 라디오 <라이브 경남>에서 매주 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방송 내용과 조금 다른 초고이기는 하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2022. 6. 27 방송분)

지난 토요일이 6월 25일이었는데요. 많은 분들이 평범한 주말을 보내셨겠습니다만, 바로 6.25전쟁 72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6.25전쟁을 기억하는 여러 단체에서 다양한 기념행사가 개최되었는데요. 오늘은 제가 속해 있는 한국YMCA에서 개최한 6.25전쟁 72주년 화해와 치유, 종전과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지리산 평화순례와 평화대회 소식과 함께 6.25 전쟁 72주년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저희지역에서도 참전 용사를 비롯한 여러 단체에서 기념행사가 열렸을텐에요. 저는 올해 열 번째를 맞이하는 지리산 평화순례와 평화대회에 다녀왔습니다. 이 행사는 지난 9년 동안 호남, 제주지역 11개가 YMCA가 매년 6.25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진행해 왔었는데요. 올해는 영남지역을 대표하여 마산YMCA가 참여하면서 조금 궁색하기는 하지만, 영·남호남 지역 12개 YMCA가 함께 하는 평화순례, 평화대회가 되었습니다. 오전 11시 지리산 성삼재에 모인 영호남 지역 12개 지역 YMCA회원 200여명이 약 1시간 동안 함께 걷는 평화순례 하면서 노고단 정상에 도착하여 평화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지리산 하면, 제주도에 있는 한라산을 제외하고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 정도로 기억하실테고, 산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지리산 천왕봉 등반이나 종주 경험을 가진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계실테고, 한반도 남단에서 그나마 생태 환경이 가장 잘 보존되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라고 기억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 현대사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후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현대사의 아픔과 고통이 고스란히 담긴 가슴 아픈 역사적 장소라고 기억할 것입니다. 호남지역 YMCA 회원들이 지난 10여 년 간 매년 6월 25일에 지리산을 함께 걷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도회를 개최해 온 것도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은 1950년 6월 25일 시작된 한국전쟁이 언제 끝났다고 생각하시는가요? 이날 평화대회와 평화기도회에 참가한 회원 한 분이 바로 이런 질문을 참가자들에게 던졌습니다. 저는 속으로 6.25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을 맺을 때 사실상 끝났지만, 아직 종전협정을 맺지 않았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여전히 전쟁 중이라고 할 수 있지!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질문을 던졌던 그 회원은 “넓은 의미에서 보면 종전협정과 평화협정이 맺어지지 않았으니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지만, 좁은 의미의 6.25전쟁도 1953년 7월 21일에 끝난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지리산에서 마지막 빨치산이 1962년에 체포되었으니 비로소 그때 전쟁이 끝났다고 볼 수 있고, 최소한 지리산에서 토벌대와 빨치산의 전투가 1954년까지 지속되었고, 1954년 4월 전남총사령부가 붕괴할 때까지 전쟁은 계속되었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저는 머리를 쿵 한 대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렇죠. 이어서 그는 “바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 지리산이 6.25전쟁의 마지막 전쟁터였다는 것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유엔군사령부와 조선인민군사령부가 휴전선에서 전쟁을 중단하였지만, 지리산에서의 전쟁은 1년 후에야 끝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의 의미는 지리산을 중심에 두고 수많은 동족 간의 죽고 죽임의 상처가 아직도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으며, 화해하지도 못하였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빨치산 문제는 여전히 ‘계륵’과 같습니다. 한쪽에서는 ‘공비’라고 기억하고 있고 또 다른 쪽에서는 ‘인민유격대’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병주 선생이 쓴 [지리산]이나 조정래 선생이 쓴 [태백산맥]을 보면, 지리산에서 빨치산 활동이 시작된 것은 일제 강점기부터 입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빨치산 활동이 시작된 것은 미군정기인 1946년에 발생한 대구폭동이 유혈사태로 이어지면서 남조선 로동당이 폭력노선으로 전환되었고, 이 때 좌파인사들이 지리산으로 들어가 유격대 활동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지리산에서 유격대 활동이 본격화 된 것은 여수 순천 사건 이후 군 정규부대에서 전환한 유격대가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였고, 6.25전쟁 이후에도 1년 가까이 전투가 지속되었습니다. 바로 이런 유격대 활동의 의미를 강조하는 역사학자들은 빨치산 활동이 제주 4.3사건과 여수, 순천 사건을 한국전쟁과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하고, 토벌대와의 전투 과정을 한국전쟁의 전초전이자 전후전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6.25전쟁을 통해 엄청난 민간인 희생이 일어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제주 4.3항쟁과 여수 순천 사건을 통해서도 엄청난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하였다는 것입니다. 6.25전쟁 기간 동안 양측을 합하여 약 250만명이 사망하였다고 하고, 남북한 산업시설과 공공시설 그리고 교통시설의 80%가 파괴되었으며, 정부 시설의 4분의 3이 파괴되거나 손상되었으며, 가옥의 절반이 파괴되거나 손상되었다고 합니다. 

모든 전쟁이 다 마찬가지입니다만, 6.25전쟁은 전투에 참가한 군인들만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닙니다. 전쟁으로 약 20만명의 전쟁 미망인이 발생하였고, 10만 명이 넘는 전쟁고아가 생겨났으며, 1천만 명이 넘는 이산 가족을 만들었습니다. 이산가족 문제를 생각해보면 전쟁 발발 72년이 지난 지금도 전쟁의 상흔이 지속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6.25 전쟁 전인 1947년에 발생한 4.3 제주항쟁으로 발생한 희생자는 2019년 발족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및 희생자명예회복위위원회가 결정한 공식 희생자를 1만 4500여명입니다만, 실제 민간인 희생자 수도 2만 5000~3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같은 해 일어 난 여수사건으로 또 다시 2500여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좌익활동을 했기 때문에 희생되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실제 그동안에 이루어진 진상규명 결과를 보면, 직접 좌익활동에 가담하지 않은 훨씬 더 많은 민간인들이 좌익이라는 누명을 쓰고 희생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는 4.3 사건이 발생하고 53년이 지난 2000년에야 시작되었고, 4.3 사건으로 촉발된 여순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는 사건 발발 74년이 지난 2022년 1월 21일에야 출범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6.25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평화순례와 평화대회에 참가한 YMCA 회원들의 생각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평화대회에 참가한 YMCA 회원들은 남과 북의 종전과 화해와 치유를 통해 평화를 실현해나가자는 주장을 하게 된 것입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을 맺고 전쟁이 중단되었으니 저절로 전쟁이 끝난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근대 이후 일어난 모든 전쟁은 모두 당사국들의 협정을 통해서 끝났습니다. 

예컨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연합국과 오스만 제국은 파리강화 회담과 베르사유조약을 통해 전쟁을 종결하였습니다.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여러나라가 참전했던 제2차 세계대전은 종전 이후 샌프란시스코 강화평화조약으로 종결 되었으며, 미국과 베트남 전쟁은 1973년 파리평화조약으로 최종 종결되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6.25전쟁은 종전선언과 평화조약이 맺어지지 않은 유일한 전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YMCA 회원들은 과거 아픈 역사에 대해서는 화해와 치유를 염원하고, 6.25전쟁의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협정을 통해 통일 한국으로 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모아 6.25전쟁 72주년 평화선언문을 채택하고, 모든 YMCA회원들이 피스메이커가 되어 평화정착을 위해 함께 활동해 나갈 것을 다짐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