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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홍범도 장군이 빨갱이면 너희는 친일파다

by 이윤기 2024.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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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KBS1 라디오 <라이브 경남>에서 매주 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방송 내용과 조금 다른 초고이기는 하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2023. 10. 30 방송분)

 

제가 일하는 마산YMCA에서는 지난 26일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를 모시고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의 일대기를 듣는 강연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오늘은 이동순 교수 강연 내용을 중심으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홍범도 장군 논쟁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지난 2018년 3월 1일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홍범도, 지청천, 이범석, 김좌진 장군과 이회영 선생 등 5명의 독립전쟁 영웅 흉상이 건립되었습니다. 그런데 6년째 접어든 올해 8월 25일 육군사관학교가 뜬금없이 교내 충무관 앞에 있는 독립군 및 광복군 영웅 흉상을 철거해 독립기념관 수장고로 이전하는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히면서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이 시작되었는데요. 이후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공동청사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의 흉상도 덩달아 철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논란이 시작된 후 국민들의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육군사관학교와 국방부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만 육사 밖으로 이전하고, 지청천, 이범석, 김좌진 장군과 이회영 선생 동상은 육사 교정 내 적절한 장소로 이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육군사관학교와 국방부 그리고 정부 입장을 옹호하는 일부 전문가들이 홍범도 장군에게 소련공산당에 가입한 빨갱이라는 주장과 이른바 자유시 참변의 주모자라는 덫을 씌워 육사 교정 밖으로 이전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저희가 40년 넘게 홍범도 장군을 연구해온 이동순 시인을 초청하여 강연회를 개최하게 된 것도 바로 빨갱이 논란과 자유시 참변의 진상을 제대로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민족의 장군 홍범도> 저자 이동순 교수 초청 강연

 

이동순 명예교수는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입니다. 1982년부터 민족 영웅 홍범도 장군을 테마로 장편 서사시를 쓰기 시작하였는데요. 2003년까지 21년에 걸쳐 민족 서사시 <홍범도> 5부작 10권을 발간하였으며, 홍범도 장군 평전 <민족의 장군 홍범도>를 집필한 권위있는 작가이자 연구자입니다. 이동순 교수는 의용단 활동으로 투옥되어 고문 끝에 순국하신 독립투사 이명균 선생의 손자이기도 합니다. 

먼저, 소련공산당 가입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홍범도 장군이 1927년에 소련공산당에 가입한 것은 사실이다. 홍장군이 소련공산당에 가입한 것은 소련으로부터 독립운동에 필요한 지원을 받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공산당 가입과 활동을 해방 이후 특히 한국전쟁 이후의 시각보면 안된다. 해방전까지 소련은 반제국주의 전쟁에 미국과 같은 편인 연합국이었고, 일본이 적국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예컨대 홍범도 장군뿐만 아니라 마산 출신 김명시 장군이나 밀양 출신 의열단 김원봉 단장 같은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들은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중국이나 소련공산당의 지원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해방 이후 좌우대립과 일제 치하 독립운동은 다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한편, 홍범도 장군 논란으로 세간이 많이 알려지기 시작한 자유시 참변에 대해서도 그 진상을 상세히 공개하였습니다. 이동순 시인에 따르면, 자유시 참변이 일어나게 된 것은 봉오동전투와 청산리 전투에 패배한 일본군의 대토벌 작전을 피해 연해주 지역으로 도피한 시기에 일어난 독립군 간의 무장충돌이었다고 합니다. 

 

독립운동가를 빨갱이로 낙인 찍는 자들은 친일파

 

일본군의 대토벌 작전을 피해 3000명 가량의 독립군들이 아무르강 건너 스보보드니시로 도피하였는데, 스보보드니가 우리말로 ‘자유’이고 그래서 자유시 참변이라고 부른다고 하였습니다. 자유시 참변은 스보보드니시로 도피한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두 패로 갈라져 동족상쟁을 일으킨 사건인데, 스보보드니시 시민들과 당국의 무기반납 요구에 대하여 최진동, 김좌진, 이범석 등의 상해파와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이르쿠츠크파가 의견이 달랐다고 합니다. 

남의 나라인 소련 영토에 들어왔으니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일단 무기를 반납하자는 쪽과 끝까지 무기를 반납하지 않겠다는 주장이 맞섰는데, 소련 당국은 우리 독립군에게 “남의 나라에서 무기를 들고 다니면 안된다”고 주장하였고, 끝내 무기 반납을 반대하는 독립군 공격하여 27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700여명을 체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이동순 교수에 따르면, 사건 당시 홍범도 장군은 스보보드니시를 떠나 다른 도시로 가 있었고, 소련 당국과 이르쿠츠크파 내부의 과격파들이 가담한 사건이라고 합니다. 

 

오히려 홍범도 장군은 소련 당국이 체포된 700여 명에 대한 재판을 진행할 때, 독립군을 대표하여 재판관으로 참여하여 670여 명을 석방시키고, 남은 30여명도 레닌에게 구명을 요청하여 모두 석방될 수 있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자유시 참변의 주모자가 홍범도 장군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억지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이동순 시인은 홍범도 장군의 흉상만 학교 밖으로 이전하는 것은 홍장군의 출신과 유족이 없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실제로 육사 교정에 있던 독립운동가 다섯 분의 흉상을 모두 외부로 옮기겠다고 했던 국방부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찬 전 국정원장을 비롯한 유족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나자 홍범도 장군 흉상만 외부로 옮기는 결정을 하였습니다. 

이동순 시인에 따르면, 홍범도 장군의 아버지는 머슴살이를 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출산 과정에서 돌아가셨고 아홉 살 때는 아버지마저 잃고 고아로 살았습니다. 홍범도 장군에게는 아들이 두 명 있었는데 큰아들 홍양순은 아버지 부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죽었고, 둘째 아들은 결핵 환자을 앓다가 죽었으며 아내는 일본군 부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혀를 깨물어서 자결하였다고 합니다. 

 

가족이 없었고 출신 성분이 비천하였기 때문에 실제 청산리 전투 당시 16개 독립군 지휘관들이 모여 회의를 할 때도 홍범도 장군이 왕따를 당했다는 이야기도 하시더군요. 이동순 시인은 홍범도 장군만 유독 표적으로 삼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동순 시인의 강연을 들으면서 안중근, 윤봉길 의사를 테러리스트라 부르고,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지사들의 활동을 폄훼할 뿐만 아니라 일본의 식민지 근대화 정책으로 우리나라의 경제부흥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뉴라이트 친일 사관을 극복하려면, 국민들이 우리 역사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였습니다. 이동순 시인의 강연은 마산YMCA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 보기 하실 수 있습니다. 꼭 한 번 보시기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