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KBS1 라디오 <라이브 경남>에서 매주 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방송 내용과 조금 다른 초고이기는 하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2024. 4. 29 방송분) |
지난 15일 창원에 본사를 두고 있는 한 대기업 행사장에 전직 창원시장이자 국회의원 당선인과 현직 창원시장이 나란히 참석하였는데, 현직 창원시장에 대한 의전 홀대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며칠 후에 지역 언론들이 ‘현직 창원시장에 대한 의전 홀대가 있었다는 보도를 크게 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공직자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이나 민간 단체가 의전 때문에 겪는 어려움 그리고 의전 간소화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의전 홀대 논란의 발단이 되었던 지난 15일 모 대기업 행사에는 방위사업청장, 공군 군수사령관, 해군 군수사령관, 국방과학연구소장 등 군 관계자와 홍남표 창원 특례시장, 김명주 경남도 경제부지사, 허성무 성산구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주요 내빈으로 참석한 행사입니다. 일부 언론들이 ’의전 결례‘라고 보도한 것을 정리 해보면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행사 퍼포먼스를 위해 내빈들의 자리 배치를 하는데, 허성무 당선자 자리를 홍남표 창원시장 보다 중앙에 배치하였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내빈 소개를 할 때 홍남표 시장보다 허성무 시장을 먼저 소개하였다는 것이며, 세 번째는 축사를 할 때 홍남표 시장보다 허성무 시장이 먼저 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의전 홀대로 표정이 어두웠던 홍남표 시장은 행사에 끝까지 참석하지 않고, 중간에 자리를 떴다고 보도하였습니다.
이후 홍 시장에 대한 의전홀대 논란을 수습하기 위해 행사를 주최했던 대기업 대표가 창원시청으로 홍남표 시장을 직접 찾아가 사과를 했다는 것이고, 모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의전을 잘 살피지 못해 죄송하게 되었다. 직원들이 판단을 잘못했다. 모두 제 불찰이다고 머리를 숙였다”고 합니다.
이런 사과를 받은 홍 시장은 “향후 재발방지를 당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민단체 활동가로 일하는 제가 보기에 의전홀대보다 더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있는데, 지역 언론이 이 문제를 지나치게 크고 자세하게 보도하여 전·현직 시장 간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기사 내용에는 익명의 창원시 공무원이 “100만명을 대표하는 창원시장에 대한 의전이 홀대 수준이 아니고 의전 참사 수준이다”면서 성토했다는 인용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민단체 활동가인 저는 이런 언론보도가 오히려 홍남표 시장을 더 난처하게 하는 보도라고 생각됩니다. 시민들 중에는 익명의 공무원처럼 100만 시민을 대표하는 창원시장이 홀대받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생각이 다른 시민들은 설령 의전 홀대를 받았다고 해서 행사 중간에 자리를 떠나는 것이 오히려 지나치다고 되려 홍 시장을 비난하는 분들도 많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그 일로 대기업 대표가 창원시청을 직접 찾아가서 머리를 숙이며 사과까지 했다는 것을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보도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기업 대표가 창원시장 찾아가 사과
이런 보도는 SNS를 통한 논란과 공방으로 더욱 확산 되었습니다. 한쪽에서는 “홍시장이 홀대 받았다”는 주장이 반복되었고, 다른 쪽에서는 “시장보다 국회의원의 의전 서열이 높다”는 등의 주장이 나와 불필요한 논란이 확산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른지와 상관없이 이런 논란을 바라보는 시민은 의전을 두고 벌이는 논란 자체가 꼴볼견입니다. 왜냐하면 민주화가 되고 시민의식이 성장하면서 다수의 시민들은 행사장에서 이뤄지는 과도한 의전을 가장 못마땅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권위주의 시대에는 관공서 행사는 말할 것도 없고, 단체장이나 국회의원이 참석하는 민간 행사에도 주요 내빈을 소개하거나 그들이 차례차례 나와서 인사말을 하는데, 행사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는 일이 허다하였습니다. 정작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이나 그 단체 회원들은 지루한 인사말을 들으면서 박수만 치다가 행사가 끝나는 경우도 많았지요.
하지만 요즘은 의전을 간소화하는 행사가 확실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루한 내빈 소개를 영상자료나 PPT 화면으로 대신하는 경우도 많고, 또 내빈 소개에 앞서서 시민들이나 행사 참석자들을 먼저 소개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참석자를 배려하여 행사를 정시에 시작하고, 좌석 배치를 시민과 동일하게 하며, 자율 좌석제를 운영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또 테이프 커팅이나 제막식에 내빈이 아니 일반 시민 대표를 참여시킨다거나 단체 사진을 촬영하는 경우에도 참석자들을 앞쪽으로 불러내지 않고 의자에 앉은 채로 사진을 찍는 것도 확실히 시민이나 참석자들을 배려하는 달라진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방자치 이후 민선 단체장들이 앞장서서 의전 변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권위적이고 주최자 중심의 행사에서 시민과 참여자 중심으로 바꾸고 있으며, 시민의 눈높이에 맞추고 자연스럽게 행사를 진행하기 위한 노력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공직사회에는 “의전은 잘 해야 본전이다”혹은 “의전이야말로 모든 행사의 처음이자 끝”이라는 말이 널리 회자 되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단체에서는 작년 4월부터 연말까지 창원시와 창원시의회와 협업하여 일을 했던 적이 있는데요.
시민들은 의전 챙기는 공직자 싫어해
8개월 간 이 업무를 담당했던 저희 실무자가 가장 힘들어 했던 일은 본래의 민관협력 사업이 아니라 수차례의 행사 때마다 시청 담당자와 의회 담당자 간의 의전논란을 지켜보고 조정하는 일이었습니다. 통상 시청에서 하는 행사는 시장을 먼저 소개하고 인사말도 먼저 하지만, 시의회 본회의장에서 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의장이나 부의장, 상임위원장을 먼저 소개해야 한다는 의회 공무원의 주장과 통상 관례대로 시장, 부시장, 국장을 먼저 소개해야 한다고 하는 시청 공무원의 주장이 크게 충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양쪽 공무원들의 의전 서열 다툼 때문에 정작 중요한 행사 협의가 제대로 되지 않아 힘들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만약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중앙부처 장관이 참석하는 기념행사를 민간이 함께 준비하는 경우에는 의전으로 인한 고충이 가장 큽니다. 대통령의 경우 ‘경호’ 문제가 있으니 예외로 치더라도 고위직이 참여하는 행사일수록 의전에 더 많은 에너지를 뺏기는 일을 많은 분들이 경험하셨을 겁니다.
저 역시 앞서 말씀드린 대기업 의전 홀대 논란 기사를 보는 순간 제가 의전 때문에 고충을 겪었던 여러 기억들이 되살아 나더군요. 저는 창원시장 의전홀대 논란 언론보도 때문에 그 대기업 직원들이 겪었을 고충에 훨씬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습니다. 100만 시민의 대표가 홀대받았다고 인터뷰하신 공무원께 꼭 해 드리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시민의식이 성장할수록 지역주민들은 의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직자를 결코 좋은 지도자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