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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교육, 대안교육

칭찬은 교사도 춤추게 한다.

by 이윤기 2009.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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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교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부처님 오신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그 다음엔 스승의 날로 이어지는 5월입니다. 그 중 스승의 날은, 어린 시절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준 고마운 스승을 떠올리거나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날 이기도 하지만, 아이를 둔 부모들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오는 날이기도 합니다.

특히, 올 해 처음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낸 학부모 들 사이에서는 노골적으로 촌지를 요구하는 선생님들이 있다는 불만과 스승의 날을 어떻게 넘길지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 또한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학부모들은 어떤 선생님이 담임이 될까 하는 기대와 걱정이 아이들 못지 않습니다. 어떤 담임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아이들의 1년 생활뿐만 아니라 학부모의 1년 살이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스승의 날이 들어 있는 5월은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이래, 저래 학부모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때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많은 교사들이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돌보고 있지만,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되는 사건 사고를 통해 만나는 교사들은 어이없는 일을 저지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난주에도 교생실습 나온 학생들을 성추행한 교사 이야기가 뉴스에 보도되었더군요.

일반적으로 학부모들이 교사라는 직업군을 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교실이 아무나 함부로 넘을 수 없는 높은 문턱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학부모는 물론이고 동료 교사, 심지어 학교장도 담임교사가 맡고 있는 교실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기 때문에 학교와 교사들의 생활을 잘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문지현, 박점숙 선생님이 쓴 <교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는 새내기 교사의 2년간 학교 생활과 교직 경력 30년 된 교사의 교단일기를 발췌하여 엮은 책입니다. 문지현 선생님 일기는 기간제 교사로부터 시작하여 2년간의 '불타는 의욕'이 담긴 교직생활이 솔직하게 기록되어 있고, 박점숙 선생님 일기에는 30년 경력 교사의 내공이 베어나오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매일 매일 출근이 즐거운 행복한 교사.

"기간제 교사를 마치고 방학이 시작된 지 이틀이 지났다. 보고 싶다. 전에 키우던 강아지를 멀리 보냈을 때처럼 아이들이 보고 싶다. 예전에 이런 말을 들으면 다 거짓부렁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지금 그렇다."

"입 꼬리가 이렇게 무거운지 지난 4개월 동안 모르고 지냈다. 학교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저절로 올라가곤 했던 입꼬리가 어찌 이토록 무거운지. "아침에 자명종이 울리면 피로에 절어 비비적거리다가도 아이들 얼굴이 떠올라 눈이 번쩍 뜨이곤 했다. '오늘은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그녀의 일기를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학교에 출근하는 것이 즐거운 교사와 만나는 아이들은 매일 매일 학교에 가는 것이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대부분 아이들은 학교가는 날 보다는 놀토와 일요일을 기다립니다. 물론 가장 기다리는 것은 방학이구요.

어디 아이들만 그럴까요? 선생님들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지현 선생님은 학교에 가는 일, 아이들과 만나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라고 합니다. 교사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라면, 그 교사와 함께 하루를 지내는 아이들도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

수학여행 가는 날은 아이들보다 더 신이나고, 눈이 펑펑 내린 다음 날 아이들과 눈싸움을 하는 문선생님 모습을 보면 아마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허리까지 올라오는 커다란 눈사람도 두 개나 만들고 땀이 뻘뻘 나게 뛰어다녔다. 교실에 돌아와서는 젖은 양말을 의자에 걸어 두었다. 젖은 바지는 별 수 없이 입고 있어야 했지만 그것도 좋다. 오늘 아이들이 일기장에 쓴 것처럼 눈이 또 많이 왔으면 좋겠다."

영하4도, 눈이 소복이 쌓인 운동자에서 아이들과 섞여 질펀그리는 운동장에서 쌍쌍축구를 하는 선생님은 영락없이 철없는 개구장이 모습입니다. 월드컵보다 재미있다며 심판을 보다 선수가 되었다 종횡무진 하는 선생님, 5대 1로 뒤진 경기를 5대 5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며 축구에 몰입하는 선생님은 스스로 행복하여,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선생님입니다.

이걸 어떻게 가르치지?, 나도 못하는데

세상을 살다보면 선생님이 아니어도 누구나 이런 경험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초짜 교사는 자기도 할 줄 모르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자신도 잘 불줄 모르는 단소를 가르치는 장면이나 시범을 보여줄 수 없는 '철봉 거꾸로 오르기' 체육 수행평가 이야기는 마음을 훈훈하게 합니다.

"대학시절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어려웠던 단소, 나는 아이들이 한 학기 동안 단소 한 곡은 소화할 수 있게 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막상 저질러 놓고 보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단소를 잘 불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지현 선생님은 아예 아이들에게 단소를 잘 불지 못하기 때문에 잘 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노라고 솔직히 털어놓습니다. 그림을 그려가며 어떻게 단소를 불어야 소리가 잘 나는지를 가르쳐주는 방법을 택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연습할 수 있도록 넉넉한 시간을 주는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모둠을 마다 단소를 잘 부는 아이들을 단소 선생님으로 정하여 연습이 필요한 학생을 가르치게 하고, 단소 선생님을 맡은 아이에게 보너스 점수를 주는 방법으로 아이들이 단소를 익히게 하였다고 합니다.

"체육 수행평가로 지정된 '철봉 거꾸로 오르기' 때문에 한숨만 나온다. '이걸 어떻게 가르치지? 나도 못하는데.' 네가 철봉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매달리기뿐이다. 그래서 일단 지도서를 꼼꼼히 읽어 보고, 인터넷에서 순서와 방법을 찾아보았다."

시낼 수업시간에 그림을 보여주며 순서와 방법을 설명하고, 학급 홈페이지에는 사진과 방법을 따로 올려두는 노력을 하였지만, 설명만으로 할 줄 아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수업은 운동장에서 새로 시작됩니다. 가장 가벼운 아이부터 한 명씩, 교사와 친구들이 서로 밀어서 넘을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마침내 대부분 아이들이 '철봉 거꾸로 오르기'를 익힐 수 있게 됩니다. 초짜 선생님은 '자신이 할 줄 몰라도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깨우치게 됩니다. 

30년 경력 교사의 내공이 묻어나는 일기

<교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의 공동 저자인 박점숙 선생님은 30년 경력의 베테랑 선생님입니다. 물론 30년 세월이 흐른다고 하여 모두가 베테랑 교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박선생님 일기에서는 새내기 교사 뿐만 아니라 경력교사들도 배울 만한 기법과 구체적인 적용 방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저는 가계부 쓰는 선생님 이야기, 멸치를 상으로 주는 이야기, 그리고 젓가락 데이 이야기에 가장 꽂혔습니다.

"용돈 기입장을 나눠 주고난 뒤 쓰면 좋은 점과 쓰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선생님 가계부 쓰세요?' 평소 말이 없고 행동도 굼뜬 건웅이가 앞으로 나오더니 작은 소리로 물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응, 왜?'하고야 말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돌아가는 아이를 보며 선생님은 고민합니다. 다시 불러 사실은 가계부를 쓰지 않는다고 고백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말입니다. 아이의 질문에 거짓말을 한 선생님은 마음이 몹시 불편합니다.

내가 가계부를 쓰지 않는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왜 쓰지 않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이런 고민을 하다가 마침내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바로 다음과 같은 결론입니다.

"건웅이를 다시 불러 고백을 못할 바에야 거짓말하고 불편해하느니 차라리 이참에 가계부를 쓰는 게 낫겠다"

일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결론을 내리니 마음이 후련했다. 그리고 "아, 선생 노릇하기 참 힘들다." 선생 노릇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곰곰히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대로 사는 것, 그것이 선생 노릇이라는 것이지요? 우리 학교에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대로 사는 선생님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칭찬 스티커를 주는 대신에 멸치를 상으로 주는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어느날 선생님께 칭찬을 들으며 상으로 받으러 나온 아이들에게 주어진 상은 사탕이 아니라 멸치입니다. 멸치를 상으로 주겠다는 선생님 말씀에 아이들은 자지러지는데, 선생님은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이 멸치 한 마리를 통째로 입에 넣고 먹어보이며 아이들 더러 따라하게 합니다.

다행히, 아이들은 생각보다 먹을 만 하다는 소감을 말하고...칭찬 스티커 대신에 칭찬 멸치가 자리잡게 됩니다. 멸치로 칭찬 스티커를 대신하고, 멸치에 대한 집중 탐구 과제를 해오면서 아이들은 멸치를 대하는 생각이 바뀌게 됩니다.

"난 멸치를 싫어 한다. 왜냐하면 멸치 먹는 느낌이 징그럽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멸치 먹는 모습을 징그러워하긴 했지만 집에서 한 번 먹어 보니 맛있고 고소하였다."

"냠냠 멸치는 짭짭하면서도 맛있고 군침이 돈다. 하지만 처음으로 멸치 머리까지 먹어 보니 느낌이 너무 안 좋았다. 하지만 눈 감고 먹어 보니 맛이 끝내 주었다. 칭찬에 멸치까지 함께 맛보니 너무 좋았다. 더 열심히 해서 열 개까지 도전해야지. 너무 끝내 준다니까"

이 책에 소개된 아이들 일기입니다. 아이들이 싫어하는 음식도 '상'이 되면 아이들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볶은콩을 상으로 주거나 시금치를 상으로 줄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무튼 아이들이 싫어하는 것이 상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이 참 놀라웠습니다.

빼빼로 데이를 젓가락 데이로

박점숙 선생님 일기 중에 마지막으로 젓가락 데이 이야기를 소개해드릴까요? 짐작하시겠지만 젓가락 데이는 이른바 빼빼로 데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빼빼로 데이는 그냥 넘길 수 없어 어제 빼빼로 데이에 대한 유래와 문제점을 조사해 보라고 했다. 그리고 11월 11일은 젓가락을 닮은 날이라 젓가락으로 콩 집기 대회를 할 것이니 연습을 해 오도록 했다. 바른 쇠 젓가락의 사용이 우리 민족의 두뇌를 발달시켜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었다는 얘기도 함께 들려주면서"

물론, 아이들은 이것만으로 빼빼로 사오는 것으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숙제를 해 오면서 과자 회사의 상술에 넘어가지 말자, 돈을 낭비하지 말자고 적어놓고도 결국 빼빼로를 사지 않게다는 결심 대신에 친구들과 나누어 먹으며 우정을 지키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단 번에 아이들의 행동을 변화시키지는 못 하였지만, 빼빼로 데이에 젓가락을 들고 콩 집기 대회를 하는 아이들 모습은 인상적입니다.  과자 회사의 상술 뿐만 아니라 과자 속에 포함된 각종 첨가물의 위험을 알아 갈 수 있는 수업으로 활용할 수 있겠더군요. 아울러 빼빼로 데이 대신에 젓가락 데이로 바꾸어 부르는 것도 참 좋은 대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0년 경력 박점숙 선생님의 일기 중에서 특히 '나의 교육활동 실패기'는 더욱 가슴을 찡하게 합니다. 아이 하나를 남겨두고 체험학습 떠난 이야기, 교재 연구를 하지 않아 수업에 실패한 이야기, 학부모를 외판원으로 오해한 이야기, CD 플레이어 오작동으로 행사를 망친 이야기, 한 아이에게만 상을 몰아 준 이야기들입니다.

이 밖에도 <교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에는 아이들에게 배우는 교사의 모습이 여러 장면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배우고,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교사의 모습 말 입니다.

선생님도 칭찬 받고 싶어 한다.

한편, 이 책 말미에는 두 교사의 일기를 통해 학교 현장의 모습과 교사의 성장과정을 분석한 박남기 교수의 글이 있습니다. 이 글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칭찬 받고 싶어 한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우리 교사들을 칭찬할 것을 주문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교사도 칭찬을 먹고 자라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칭찬, 동료 교사의 칭찬, 학교장의 칭찬, 그리고 학부모의 칭찬이 교사에게 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음을 교단 일기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에는 칭찬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학부모의 칭찬, 동료교사의 칭찬에 얼굴 붉히면서도 자신감을 얻어가는 교사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늘 잘하는 아이들도 칭찬 받고 싶어 한다는 구절은 늘 잘 하는 교사도 칭찬 받고 싶어한다는 이야기와 닿아있는지도 모릅니다.

박남기 교수는 부모 교육을 할 때마다 이렇게 이야기 한다는군요.

"지난 한 달을 돌이켜 보아 담임선생님께 감사하다는 편지 글이나 칭찬하는 전화 통화를 한 번이라도 한 적이 있다면 전혀 걱정하실 것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그 칭찬 에너지를 받아 즐겁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적이 없었다면 지금쯤 에너지가 고갈되어 힘들어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교육학자인 그는 선생님들에게도 우리 사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당부를 잊지 않습니다. 월급이 적고 업무가 과중하지만,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결코 급여가 적은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교사에 대한 사회적 존경과 학생들의 존경도 다른 나라에 뒤처지지 않는다고 말 입니다.

책을 읽는 동안 문제 투성이인 학교를 너무 이상적으로 그려 놓은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교사들이 있다는 것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진정한 교사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생각하고 반성하고 성찰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성장하는 것임을 알려줍니다. 동료 교사들에게, 그리고 학부모들에게 가르침의 깊이을 더해 주는 따뜻한 교육 에세이입니다.  


교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 10점
박남기.박점숙.문지현 지음/우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