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쌍둥이는 서로 운명도 닮았을까?

by 이윤기 2009. 6. 21.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728x90

[서평] 황선미가 쓴 <나온의 숨어있는 방>



나온의 숨어있는 방? 그야말로 알 수 없는 제목이다. 책 제목만 보고는 도저히 고를 수 없는 책이다.

만약 글쓴이가 <마당을 나온 암닭>, <나쁜 어린이표>로 깊은 인상을 준 황선미가 아니었다면 나 역시 이 책을 고르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나 출판사 입장에서도 베스트셀러 작가 황선미가 쓴 책이 아니었다면 이런 알 수 없는 제목을 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온의 숨어있는 방> 참 생뚱맞은 제목이다.

재미는 있지만, 의미는 없는 책을 선택하는데 익숙하지 않은데다가 늘 우리 곁에서 벌어지는, 혹은 실제 있을 법한 생생한 이야기를 써온 황선미씨가 쓴 판타지 소설이라는 것 때문에 기대를 가지고 만났다.

책을 읽는 동안 깊이 감동하기보다는 마치 안갯속을 걷는 듯한 긴장감을 떨칠 수 없었다. 그리고 긴장감과 이야기 결말에 대한 궁금함 때문에 자꾸 다음 쪽으로 넘기다가 쉬지 않고 단숨에 읽어 버렸다.

'나온'은 황선미가 쓴 신작 동화 <나온의 숨어있는 방>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여자아이의 이름이다. '나온'은 '즐거운'이라는 뜻의 옛말이라고 한다. 이름부터가 평범하지 않은 아이 나온은 남다른 점이 많다.

어렸을 적부터 '천식'을 앓아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을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5학년 답지 않게 생각과 고민이 많은 아이이고,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꿈도 자주 꾼다. 더군다나 '나온'은 자신이 꾼 꿈을 기록하는 '나의 왼손'이라는 비밀일기장을 가진 아이이기도 하다.

'나온'의 특별함은 어려서 세상을 떠난 '라온'이라는 쌍둥이 남동생을 두었다는 점에서 절정에 달할 뿐만 아니라 이야기구조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나온과 라온 이름에 얽힌 비밀

물론 나온을 둘러싸고 있는 가족과 가정환경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기도 한다. 교사인 아버지와 맞벌이를 하는 엄마, 그리고 남동생과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가족관계다. 여느 아이들처럼 피아노가 배우기 싫기도 하고, 피아노 대신에 바이올린을 배우라고 윽박지르는 엄마와 갈등을 일으킨다.

나온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재개발을 앞두고 있고, 이웃이 대부분 이사를 했지만, 나온이네는 엄마가 바라는 집으로 이사를 하기에 돈이 부족하다. 엄마는 교외에 있는 '넝쿨집'을 팔아서 새 아파트를 장만하려고 하고 있지만, 아빠는 엄마 몰래 넝쿨집으로 이사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고 싶은 엄마는 부족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당숙모에게 상속받은 넝쿨집을 팔려고 한다. 하지만 집을 사겠다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나기까지 한다.

아빠는 아이들을 위해 추억이 얽혀있고, 흙냄새가 나는 옛집으로 들어가 살자고 하지만, 엄마의 거센 반대 때문에 내 놓고 자기주장을 펼치지 못한다. 엄마의 과민하다 싶은 반응을 보면, 넝쿨집이 무언가 특별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현실과 상상이 만나는 독특한 이야기 구조로 되어 있지만,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엄마, 아빠의 모습은 황선미의 이전 작품들처럼 흔히 만날 수 있는 친숙한 사람들이다. 아주 어린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엄마의 가슴에 맺힌 한, 먼저 떠나보낸 자식에 대한 그리움보다 아직 살아남은 아이를 지키려는 마음이 더 뜨겁게 전해온다. 천식을 앓는, 아픈 아이를 둔 엄마가 가진 긴장과 조바심 역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엄마들의 모습이다.

무언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가족과 함께 의논하기보다는 혼자서 묵묵히 처리해나가는 나온이 아빠의 모습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가장의 모습이다. 엄마 몰래 넝쿨집이 있는 근처로 직장인 학교도 옮기고, 주말마다 넝쿨집에 가서 차근차근 집수리를 해나가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아빠모습을 엿볼 수 있다.

엄마는 넝쿨집에 사는 동안 먼저 떠나보낸 '라온'에 대한 안타까운 기억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집에 들어가 살게 되면 천식을 앓으며 힘겹게 키우고 있는 쌍둥이인 '나온'마저 잃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더 크다. 이것이 엄마가 넝쿨집을 팔아 없애려고 하는 진짜 이유다.

"당신은 몰라요. 내가 라온이 꿈을 한두 번 꾼 게 아니야. 내가 두려웠던 게 뭔지 알아요? 라온이가 꿈에 보일 때마다 나온이가 아팠어. 아니면 여기 와 있거나. 나온이 마른 것 좀 봐요. 난 라온이가 나온이를 꼭 데려갈 것만 같았어." (본문 중에서)

엄마 몰래 아빠와 함께 넝쿨집에 다녀온 '나온'은 천식이 더 심해져서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게 되고 넝쿨집에 대한 엄마의 불안과 반감은 더욱 커지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나온은 넝쿨집에 처음 다녀온 후에 점점 더 그 집에 끌려 들어가게 된다. 나온은 꿈속에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그애'를 만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쌍둥이 동생 '라온'이었다. 꿈은 라온이 나온을 넝쿨집으로 부르는 신호였던 것이다.

환상세계와 현실세계를 넘나드는 이야기 구조

넝쿨집과 라온은 늘 나온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어디서 나는 향기인지 알 수 없지만 은은한 꽃향기를 맡게 되고 나온은 열쇠가 없지만 넝쿨집은 나온이 찾아오면 항상 저절로 문을 열어 맞이한다. 나온은 넝쿨 집에 갈 때마다 동화 속 주인공 같은 이들을 만나는데, 스르르 사라지는 '라온'과 갈색 눈의 토끼와 초롱꽃과 같은 것들이다.

넝쿨집에는 사람들이 모르는 비밀의 방이 있었는데, 나온은 아빠가 화장실 변기를 바꾸던 날 우연히 숨어있는 먼지투성이의 다락방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비밀의 방이 있는데, 엄마와 아빠는 라온의 태가 들어있는 항아리를 발견하여 태우게 된다. 나온과 라온에 얽힌 비밀이 밝혀지는 날, 나온과 라온은 각각 그들이 속한 시간으로 돌아간다.

"아가. 무엇이든 자신이 속한 시간에 살아야 한단다. 라온과 내가 속한 시간, 네가 속한 시간은 달라. 넌 살아 있는 영혼이고, 우린 아니지. 그런데 네가 여기 있구나. 그래서 내가 찾아내기 어려웠던 게야. 넌 지금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다. 그래서 위험해. 자기 시간 속에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냐. 떠돌이나 마찬가지란다. 라온과 나는 곧 우리만의 시간을 따라갈 거야. 네가 속해야 할 시간으로 가렴. 내가 도와주마." (본문 중에서)

나온에게는 할머니가 되는 당숙모가 돌아가실 때, 석 삼 년이 될 때까지 조심하라던 당부 때문에 엄마는 12살이 될 때까지 각별히 조심하며 나온을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자전거타기도 못하게 하고, 친구들과 마음껏 놀지도 못하게 한 것은 단지 나온이 천식을 앓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등을 맞대고 있던 아이들, 나온과 라온이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감으로써 이야기를 결말에 이른다.

현실세계와 환상세계를 넘나드는 이야기 구조 때문에 전작과 진지한 주제로부터 우러나는 깊은 감동과 여운을 느끼지는 못하였지만, 새로운 이야기 주제와 형식을 창조해 내려는 작가의 노력에 감탄하게 된다.

사전에서 찾아낸 '나온'이라는 단어 하나로 머릿속에 집을 세우고, 나온과 라온이라는 다르게 생겼지만 같은 의미가 있는 낱말로부터 평범한 나온의 삶과 신비한 라온의 삶을 그려내는 작가의 탁월한 능력이 놀랍기만 하다.

나온의 숨어 있는 방 - 10점
황선미 지음, 김윤주 그림/창비(창작과비평사)


 

728x90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