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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바람이 부는 그 곳에 그 분이 오셨더군요.

by 이윤기 2009.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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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조직화된 시민이 되는 '노란 손수건 퍼포먼스'


노무현 대통령 마지막 가시는 날, 참 바쁜 하루를 살았습니다. 아침 일찍 봉하마을을 다녀왔고, 오후에는 제가 일하는 단체 회원들과 부산대학교에서 열린 '다시 바람이 분다' 추모 공연장을 다녀왔습니다.

6시 30분쯤 부산대학교에 도착하였습니다. 정문을 가로막고 있는 차벽은 여전하더군요. 어차피 공연은 계획대로 진행되는데, 왜 차벽이 막혀있는지 잘 모르지만, 아무튼 공연이 끝날 때까지 차벽이 막혀있더군요. 공연이 열릴 예정인 '넉넉한 터' 아래에서 풍물패 길놀이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7시가 조금 넘어 공연이 무대 앞 첫 줄 노란의자에 밀짚 모자를 쓴  그 분을 모시고 공연을 시작하였습니다. 1부는 부산지역 문화 예술인들의 순서였습니다. 다른 공연도 다 인상적이었지만, 부산 사람이 아닌지라 야구장에서나 듣는 '부산갈매기'를 장엄하게 부르면 그렇게 멋있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부산 지역 출연진 공연이 끝나고 2부 공연이 시작되면서 사회자도 바뀌더군요. 오한숙희씨가 2부 사회를 맡았습니다. '다시 바람이 분다' 공연은 기본적으로 엄숙하고 숙연한 그런 축~쳐진 추모행사가 아니었습니다. 49일이 지난 그 분의 죽음을 더 이상 슬퍼하지만 말고 이젠 희망을 이야기하자는, 희망을 노래하자는 공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노찾사, 우리나라, 권진원 같은 팀이 소위 386세대의 정서에 맞는 노래를 불렀다면, 뒤이어 나온 아프리카, 윈디시티, 신해철과 넥스트 같은 팀들은 훨씬 더 젊은 세대의 정서에 어울리는 듯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나이드신 분들도 "모두 일어나서 신나게 놀아보자"는 '락밴드'의 지시(?)에 따라 함께 어울리려고 많이 애를 쓰시더군요.

한 팀이 보통 3곡 정도를 노래하고 연주하였는데, 끝내 한 팀 공연이 모두 끝날 때까지 버티지 못하고 자리에 앉는 분들도 있었지만, 어쨌던 젊은이들과 어울려 껑충껑충 뛰면서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노란 부채를 열심히 흔들더군요.

저 역시 젊은 시절에 하루 종일 오른팔을 치켜들며 구호를 외치고 민중가요를 불렀던 경험이 많지만, 락밴드의 열정을 따라하기는 쉽지 않더군요. 젊은 시절 민중가요 보다 훨씬 빠른 비트의 락음악에 맞춰 팔을 흔드는 것이 훨씬 더 힘든 일이었습니다.


사회를 맡은 오한숙희씨의 탁월한 말솜씨가 빛나는 공연이었습니다. "다시 바람이 분다, 서울에서 바람이 불었고, 부산에서 다시 바람이 불면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맞바람이 일어나는 거다." 참 멋진 표현이지요. 서울과 부산에서 부는 맞바람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이 바람을 전하게 될 것이 분명해보였습니다.


저는 무대 뒷편 중간쯤에 앉아 있었습니다. 제 바로 옆에는 나팔 같은 것이 붙어 있는 큰 상자가 있었고 산소통처럼 생긴 가스통도 함께 있었습니다. 공연을 위한 '특수효과' 장비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 신해철과 넥스트 공연이 끝날 때까지 준비만 하고 사용을 안 하더군요. 도대체 저 장비는 언제 사용하는지 궁금했었는데, 마지막 노래가 나올 때 이 기계가 관객들을 모두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더군요.

제가 보기에 '다시 바람이 분다'의 하이라이트는 다함께 '사랑으로'를 부르면서 만들어 낸 '노란손수건 퍼포먼스'였습니다. 공연장에 입장할 때, 하나씩 나눠주는 노란손수건이 그냥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더군요. 미국 공연을 중단하고, 부산 '다시 바람이 분다' 공연을 위해 한국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미국으로 가야한다는 신해철과 넥스트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이 '앵콜', '앵콜'을 외칠 때, 사회자가 무대로 나왔습니다. 

신해철씨가 앵콜을 부를테니 함께 마지막 노래를 부를 준비를 하자고 하더군요. 사회자가 제안한 노란손수건 퍼포먼스는 이랬습니다.

"여러분이 들고 있는 노란 부채에 뭐라고 씌어있지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 분께서는 조직된 힘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 하셨습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아까 입장할 때 받은 노란손수건을 모두 꺼내서 옆 사람이 가진 손수건과 모두 연결하겠습니다. 우리 스스로를 조직하여 하나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바람이 멈추면, 우리 스스로 바람이 되자 !

옆 사람과 그 옆 사람, 그날 저녁 처음 만나 사람들과 손수건을 연결하였습니다. 한 줄로 길게 이어진 노란손수건, 그 분을 상징하는 노란 손수건,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노란손수건을 음악에 따라 좌우로 흔들었습니다. 그 분의 애창곡이었다는 '사랑으로'을 함께 불렀습니다.


바로 그때, 3시간 동안 대기하고 있던 가스통과 기계가 노란 종이꽃가루를 내뿜기 시작하였습니다. 순식간에 그 넓은 부산대학교 '넉넉한 터' 위로 노란 꽃가루가 수천, 수만마리 나비가 비상하듯이 날아올랐습니다. 하늘 높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노란 종이꽃 가루를 타고 그 분이 오신 듯 하였습니다. 가슴 벅찬 마음으로 한 목소리로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마침 낮에 봉하마을 안장식 마지막 순서에 함평에서 가져 온 나비를 날려보내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그 분의 영혼이 자유롭게 높이 높이 훨훨 날아갔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작은 비석 위에서 나비를 날려보냈습니다. 마치 그 나비가 수천, 수만마리 나비가 되어 부산대학교 '넉넉한 터'에 날아 오른 듯한 그런 환상적인 느낌 푹 빠졌습니다. 

아니, 그 뿐만 아닙니다. 그날 '다시 바람이 분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노랑 나비 한 마리가 관객들 사이로 훨훨날아다녔습니다. 저는 옆자리에 앉은 후배에게 낮에 '봉하마을'에서 나비를 날려보낸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아마 권진원씨가 노래를 부를즈음이었을 겁니다. 노랑나비 한 마리가 제가 앉아있는 자리를 지나 스텐드 쪽으로 훨훨 날아가는 것을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봉하마을에서 부산대학교까지 낮에 보았던 그 나비가 날아왔을리 없지만, 그 분을 추모하는 공연장 밤 하늘을 낮게 날아다니는 노랑 나비 한 마리가 더 반가웠던 것은 사실입니다. 


공연에 푹 젖어 감동하고 있는 동안 어느새 3시간이 넘게 지나갔더군요. 공연이 끝났을 때는 11시가 다 되었습니다. 쓰레기 처리 때문에 장소 사용을 불허한다는 부산대학교측의 염려를 불식시키기 위하여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 의자를 접고, 그 많은 노란 종이 꽃가루를 모두 줏었습니다. 

늦은 시간에 마산까지 와야 하는 부담 때문에 끝마무리까지 함께하지는 못하였지만, 나중에 다른 블로그가 촬영한 동영상을 보니 부산대학교 '넉넉한 터'에는 종이 한장, 담배 꽁초 하나 없이 깨끗이 청소가 되어있더군요. 작은 사례이기는 하지만,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시 바람이 분다' 부산 공연에 출연해주신 분들,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수고해주신, 그리고 부산대학교 학생 여러분 모두 모두 정말 고맙습니다. 공연 제목 그 대로 그 분이 돌아가시고 다시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렇지만,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이 바람이 시간이 지나면 또 멈출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람이 멈추어도 우리는 좌절하지 맙시다.

바람이 한 점 없는 날에도 바람개비는 돌아갑니다. 우리가 스스로 바람이 되어 달리면 바람개비는 바람이 없어도 돌아갑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 바람이 됩시다. 우리가 바람이 되어, 다시 바람을 일으키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