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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당신의 휴대전화가 전쟁과 폭력의 원인?

by 이윤기 2009.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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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바바 치나츠가 쓴 <평화를 심다>


<평화를 심다>를 쓴 바바 치나츠는 일본출신 분쟁지역 전문 저널리스트입니다. 일본에서 NGO 활동가, NHK 기자, 마이니치 신문 기자를 거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평화학을 공부하였다고 합니다. 2001년 영국 브래드퍼드대학 대학원 평화연구학부에서 분쟁해결학 석사학위를 받았다고 합니다.


대부분 분쟁지역 취재는 전쟁이라는 참혹한 죽음 현장을 생생하게 담는 것이지만, 바바 치나츠의 취재는 분쟁 지역에서 자유와 평화 인간의 존엄을 위해서 행동하는 사람들이 희망을 일구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평화를 위하여 세계적으로 공로를 인정 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치가나 국제기관 수장 같은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바바 치나츠가 만난 사람들은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평범한 시민들입니다.

그가 전해주는 평화이야기 과정에도 유명한 정치인들이 등장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보다 돋보입니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이야기

이 책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지역에서 평화를 일구는 '평화의 오아시스마을' 사례를 포함하여 콩고, 스리랑카, 이라크, 발칸지역, 북아일랜드 등 분쟁 지역 사례 그리고 영국에서 종교간 평화를 추구하는 리즈신앙 포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식민지 지배를 받던 많은 약소국가들이 독립을 하던 바로 그 무렵에 시작되었습니다. 분쟁이라기보다는 미국과 영국의 지원을 받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국가를 건설하는 일방적인 점령이었습니다. 이후 옛 팔레스타인 영토의 2/3가 이스라엘 영토에 속하게 되었고, 팔레스타인 지역 사람들은 오랜 분쟁을 겪은 후에 팔레스타인자치정부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2006년 말 기준으로 약 141만 여명에 이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유대국가에서 이스라엘 국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요르단 강 서안과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인, 난민이 되어 각지에 흩어진 팔레스타인인들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기구하고 힘든 운명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인인 주민들은 이스라엘의 국민이면서도 외출이나 거주 이동이 제한되는 등 엄격한 통제를 받아야 했다. 거주 지구는 군의 지배를 받았고, 집회를 열거나 신문이나 서적을 발행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군정부의 허가 없이는 마을에서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고, 친척이 있는 마을이나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자신의 소유지를 찾아가는 것조차 허가를 받아야만 했다." (본문 중에서)


이스라엘 점령 뒤에도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스라엘 국민'이 되어야 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일제치하 조선인들처럼 2등 국민으로 유대인나라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숙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이스라엘학교를 다니면서 팔레스타인의 역사적 권리를 부정하고 유대인의 이스라엘 건국을 정당화하는 왜곡된 교육을 받으며 자라납니다. '평화의 오아시스마을' 대표를 맡고 있는 '리제크' 역시 바로 그런 팔레스타인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의 공존 연습

평화의 오아시스마을은 예루살렘과 텔아비브의 중간쯤에 있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 57세대가 공존과 공영을 꿈꾸며 생활하는 공동체마을입니다. 아랍어로는 와하트 알 살람, 히브리어로는 네베 샬롬, 영어로 옮기면 Oasis of Peace 즉 평화의 오아시스입니다.

1970년대 초 가톨릭 사제인 브루노 후사르 신부가 수도회 땅을 빌려 설립한 이 마을은 두 민족 사람들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공동생활을 꾸려가는 이스라엘 유일의 자치마을이라고 합니다. 평화를 믿는 유대인과 아랍인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마을입니다.

평화와 공생이라는 이상은 숭고하였지만, 현실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팔레스타인인들의 대표이고, 인티파다는 정당한 권리투쟁이라는 주장이 유대인들의 이해를 얻는 것은 주민투표와 같은 과정으로 결정할 수 없는 복잡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함께 사는 것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오랜 분쟁으로 깊게 파인 마음의 골이 있습니다. 우리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과 국제사회의 정책으로 인해 고통받아왔기 때문입니다." (본문 중에서)

공존과 공생을 추구하는 마을이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생각이 충돌하여 민족간 긴장을 느끼는 일도 여전히 남아있다고 합니다. 평화의 마을이라고 해서 유토피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피를 흘리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공존의 가능성을 확인하려는 노력이라고 합니다.

오아시스 마을은 이스라엘에서 유일하게 다문화, 다언어 학교가 운영되는 곳이며, 같은 숫자의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치며 다른 두 민족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교육한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두 민족간의 공생을 경험한 아이들이 자라서 앞으로 이 땅에 싸움이 없는,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토대가 되리라는 희망을 키운다고 합니다.

오아시스마을은 여전히 유대인과 아랍인들 모두에게 비난받는 일이 드물지 않다고 합니다. 지나치게 순진한 발상이다, 실체 없는 망상에 불과하다 같은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하고 신문에 비판적인 기사가 실리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유토피아와 같은 모습을 상상하는 외부의 기대 또한 적지 않은 부담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마을지도자인 리제크는 오아시스마을 사람들이 이웃과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평화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삶을 통해 평화로 이르는 공생의 길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 모두 평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중요한 진리를 삶을 통해 느끼고 깨닫고 익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콩고, 피에 젖은 휴대전화의 진실

바바 치나츠의 두 번째 취재기 '한 표에 거는 희망'은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1960년 벨기에로부터 독립하였는데, 1965년부터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모부투에 의한 독재체제가 30여년 이어진 후에도 '아프리카 세계대전'이라 불리는 심각한 분쟁이 최근까지 계속되었던 나라입니다.

아프리카 대륙 중부에 위치한 콩고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광물 자원 국가입니다. 콜탄을 비롯하여 구리, 코발트, 다이아몬드, 금 등 희소 광물이 대량으로 묻혀있는 나라라고 합니다. 가난한 국민들을 풍족하게 해줄 수 있는 지하자원이지만, 이권을 둘러싼 죽음의 분쟁이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휴대전화, 노트북, 컴퓨터 등 첨단 전자제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희소자원 콜탄을 둘러싼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광물자원이 풍부한 지역일수록 분쟁은 더욱 치열하다고 합니다. 반정부 무장 집단과 친정부 민병대에 의한 습격과 약탈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1998년부터 현재까지 내전으로 인한 사망자는 약 300~4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콩고의 국내 경제와 기간 시설은 완전히 붕괴되었고, 유럽 NGO 등의 보고에 따르면 전쟁 때문에 생긴 질병 등으로 지금도 하루 평균 1000 ~ 1500명이 사망하고 있다. 그 절반은 어린이들이다." (본문 중에서)

결국 이른바 선진국 사람들이 신상품 휴대전화를 바꿀 때마다 아프리카 콩고의 내전을 조금씩 부추기는 꼴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바바 치나츠는 이러한 현실을 '피에 젖은 휴대전화의 진실'이라고 말 합니다.

다행히 2002년 평화협정에 기초하여 2006년 7월에 콩고에서 처음으로 대통령선거와 의회선거가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서 치러졌다고 합니다. 2500만명의 유권자를 등록하는 일, 정글 깊이 흩어진 마을에 선거 포스터나 투표용지를 배부하는 일도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선거를 왜 하는지를 알리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합니다.

총알 대신 투표용지로 평화와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사람들이 콩고에도 있다고 합니다. 바로 콩고국제연합협회에서 일하는 '시사 와 눔베'를 비롯한 활동가들입니다. 이 단체는 국민투표에 관한 주민들의 이해를 높이고 투표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많은 프로그램을 추진하였다고 합니다.

1995년과 1996년에 시사 와 눔베는 일당독재철폐와 인권문제에 관한 연설을 하는 등 민주화를 요구하는 운동을 벌여 두 번에 걸쳐서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석방 뒤에는 정부군과 반정부군의 충돌이 격화되어 밀림 속으로 몸을 숨겨야 했고 정부군에 의해 아버지가 살해되는 아픔을 겪었다고 합니다.

총알대신 투표용지로 평화와 민주주의를....

6년만의 망명생활을 거쳐 콩고로 돌아온 눔베는 2005년 신헌법 제정, 2006년 대통령 선거와 의회 선거를 평화적으로 치르는 일에 온갖 노력을 쏟아 부었다고 합니다.

국가재건과 분쟁예방을 위해서는 교육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여성, 청년,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시민교육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분쟁 중 성적 피해를 입은 여성에 대한 지원과 소년병에 대한 사회복귀를 돕는 활동에도 주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바바 치나츠는 <평화를 심다>를 통해 콩고에서 내전으로 가족을 잃은 슬픔을 안고 여전히 조국의 재건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시사 와 눔베'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이 책에서는 스리랑카 내전에서 정부와 게릴라 사이의 조정을 맡은 솔헤임 노르웨이 국제개발부장관 인터뷰, 이라크에서 인도적 지원활동에 힘쓰다 무장 세력에게 살해당한 영국인 여성 마거릿, 코소보 내전 기간에 강제수용소를 경험한 후 평화활동을 하는 케말 페르바니치, 북아일랜드 분쟁지역에서 활동하는 트로이 신부, 그리고 2005년 런던 테러 이후 종교간, 문화간 교류를 통해 평화로운 사회를 이루려는 리즈 신앙 포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의 삶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이런 평화활동을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바 치나츠는 자신의 동티모르 취재 경험을 통해 이 책을 쓴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동티모르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지배가 계속되던 1997년에 동티모르를 다녀왔다고 합니다.

당시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고 바바 치나츠의 동티모르 취재를 도왔던 신부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당신이 동티모르에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멀리 일본에서 누군가 조금이라도 동티모르에 대해 생각해주는 바로 그 마음이 필요합니다." (본문 중에서)

우리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군사독재정권의 고문과 살인 그리고 학살을 나라 밖의 누군가에게라도 알리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한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평화를 염원하는 누군가가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고 위로해주리라고 믿었던 것이지요.

이 책은 우리가 고통 받고 있는 그들에게 기적을 가져다 줄 수는 없지만,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고 위로해주자고 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평화를 위해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을 누군가는 꼭 기억해주자고 하는 작은 바람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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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심다 - 10점
바바 치나츠 지음, 이상술 옮김/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