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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엄마 일 나가고 집에 놀던 6살 쌍둥이 화재로 중태...

by 이윤기 2010.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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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년 동안 세상은 정말 더 살기 좋아졌을까요? 

국민소득이 높아져서 OECD 국가가 되어서 G20 정상회담에 참가하는 나라가 되어서, 올림픽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정말 이 나라가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된 것일까요?

저는 세상이 결국은 다수의 사람들이 더 잘 사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더디고 느리지만 결국은 조금씩 더 좋아지고 있다고 말입니다. 이런 저의 믿음을 흔들어 놓는 안타까운 화재사고가 지난주 마산에서 일어났습니다.



남편과 이혼 한 후 혼자서 여섯 살 쌍둥이 형제를 키우던 20대 여성 가장이 돈벌이를 하느라 밤에 식당 일을 나간 사이에 쌍둥이 아들 두 명이 화재사고로 중태에 빠졌다고 합니다.

지난 20일 오후 9시 10분께 마산시 합성동 주택가 단칸방에서 화재사고가 일어나 10평도 채 안되는 집에서 놀고 있던 쌍둥이 형제가 불길에 휩싸인 것 입니다.


불이 나자 출동한 소방관이 10여분 간격으로 두 아이를 모두 구조하였지만, 아이들은 이미 연기를 잔뜩 마셔서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바로 인근에서 식당 일을 하던 엄마가  화재 소식을 듣고서 앞치마를 두른 채 달려왔지만, 아이들은 눈을 감은 채 깨어나지 못하고 있답니다. 

30분 전에도 잘 놀고 있다고 하였는데...

엄마는 사고 30분 전에도 아들과 전화 통화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때만 해도 "엄마, 잘 놀고 있어요"라고 대답하였는데, 불과 30분 후에 화마에 휩싸여 의식을 잃고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남편과 이혼한 후 혼자서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는 아침부터 밤 10시까지 식당 일을 하면서, 밥 때가 되면 집에 들러서 아이 밥을 먹이고 20~30분마다 집에 전화해 잘 있는지 확인을 해왔다고 합니다.  20대 초반 아이들이 돌 때부터 식당일을 시작했고, 지난해부터는 일부러 집 근처에 식당 일자리를 구했다고 합니다.

신문기사를 보면 젊은 엄마는 "아이들이 걱정돼서, 그렇게 자주 전화하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합니다.  유독 가스를 많이 마신 아이들은 뇌와 폐에 손상을 크게 입어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지난해 초 이혼을 아이들 엄마는 남편으로부터 양육비도 받지 못한 채 쌍둥이를 키우며 열심히 살아보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고 합니다. 쌍둥이 엄마는 식당 일을 나간 사이에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가장 많이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20년 전, 정태춘이 부른 노래 '우리들의 죽음'이 또 다시...

이 뉴스를 듣는 순간, 20년 전 맞벌이 부부가 단칸방에 아이들만 남겨두고 일을 나가며 방문을 밖에서 잠궈 화재로 세상을 떠난 영철이와 혜영이의 죽음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다섯 살 혜영이와 세살 영철이의 죽음에 많은 사람들이 마음 아파하였습니다.

가수 정태춘은 1990년에 사전 심의를 거부하고 발표한 '아 대한민국' 카셋트 음반에 혜영이와 영철이의 안타까운 화재 사고를 '우리들의 죽음'이라는 노래로 담았습니다.  우리들의 죽음은 두 어린 영혼의 안타깝고 처참한 죽음 뿐만 아니라 삶의 터전을 농촌에서 밀려나와 지하 단칸방을 전전하는 우리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고발하는 정말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IMF를 거쳐온 지난 20년,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그리고 참여정부가 들어섰고,  국민소득은 점점 늘어나고 덩달아 부자들에게는 물질적 풍요 역시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좀 처럼 '축복'이 내려지지 않는 더 각박하고 더 삭막한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 우리들의 죽음 ***

맞벌이 영세 서민 부부가 방문을 잠그고 일을 나간 사이,
지하셋방에서 불이나 방 안에서 놀던 어린 자녀들이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질식해 숨졌다.
불이 났을 때 아버지 권씨는 경기도 부천의 직장으로
어머니 이씨는 합정동으로 파출부 일을 나가 있었으며,
아이들이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방문을 밖에서 자물쇠로 잠그고,
바깥 현관문도 잠가 둔 상태였다.
연락을 받은 이씨가 달려와 문을 열였을 때,
다섯살 혜영앙은 방 바닥에 엎드린 채,
세살 영철군은 옷더미 속에 코를 묻은 채 숨져 잇었다.
두 어린이가 숨진 방은 3평 크기로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와
비키니 옷장 등 가구류가 타다만 성냥과 함께 불에 그을려 있었다.
이들 부부는 충남 계룡면 금대2리에서 논 900평에 농사를 짓다가
가난에 못이겨 지난 88년 서울로 올라왔으며,
지난해 10월 현재의 지하방을 전세 4백만원에 얻어 살아왔다.
어머니 이씨는 경찰에서 "평소 파출부로 나가면서 부엌에는 부엌칼과
연탄불이 있어 위험스럽고 밖으로 나가면 길을 잃거나 유괴라도
당할 것 같아 방문을 채울 수 밖에 없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평소 이씨는 아이들이 먹을 점심상과 요강을 준비해 놓고
나가 일해 왔다고 말했다.
이들이 사는 주택에는 모두 6개의 지하방이 있으며,
각각 독립 구조로 돼 있다.

젊은 아버지는 새벽에 일 나가고
어머니도 돈 벌러 파출부 나가고
지하실 단칸방에 어린 우리 둘이서
아침 햇살 드는 높은 창문 아래 앉아
방문은 밖으로 자물쇠 잠겨있고 윗목에는 싸늘한 밥상과 요강이
엄마, 아빠가 돌아올 밤까지 우린 심심해도 할게 없었네
낮엔 테레비도 안 하고 우린 켤줄도 몰라
밤에 보는 테레비도 남의 나라 세상
엄마, 아빠는 한 번도 안 나와 우리 집도 우리 동네도 안 나와
조그만 창문의 햇볕도 스러지고 우린 종일 누워 천정만 바라보다
잠이 들다 깨다 꿈인지도 모르게 또 성냥불 장난을 했었어

배가 고프기도 전에 밥은 다 먹어치우고
오줌이 안 마려운데도 요강으로
우린 그런 것 밖엔 또 할 게 없었네 동생은 아직 말을 잘 못하니까
후미진 계단엔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고 도둑이라도 강도라도 말야
옆방에는 누가 사는지도 몰라 어쩌면 거긴 낭떠러인지도 몰라

성냥불은 그만 내 옷에 옮겨 붙고 내 눈썹, 내 머리카락도 태우고
여기저기 옮겨 붙고 휠 휠 타올라 우리 놀란 가슴 두 눈에도 휠~휠~
(엄마, 아빠! 우리가 그렇게 놀랐을 때
엄마, 아빠가 우리와 함께 거기 있었다면...)
방문은 꼭 꼭 잠겨서 안 열리고 하얀 연기는 방 안에 꽉 차고
우린 서로 부퉁켜 안고 눈물만 흘렸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우린 그렇게 죽었어
그 때 엄마 아빠가 거기 함께 있었다면..
아니, 엄마만이라도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 우리가 방 안의 연기와 불길 속에서 부둥켜 안고 떨기전에
엄마, 아빠가 보고싶어 방문을 세차게 두드리기 전에
손톱에서 피가 나게 방 바닥을 긁어대기 전에
그러다가 동생이 먼저 숨이 막혀 어푸러지기 전에
그 때 엄마, 아빠가 거기에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야, 우리가 어느 날 도망치듯 빠져나온 시골의 고향 마을에서도
우리 네 식구 단란하게 살아 갈 수만 있었다면..
아니, 여기가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내리는 그런 나라였다면...
아니, 여기가 엄마, 아빠도 주인인 그런 세상이었다면..
엄마, 아빠! 너무 슬퍼하지마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냐
여기, 불에 그을린 옷자락의 작은 몸둥이, 몸둥이를 두고 떠나지만
엄마, 아빠! 우린 이제 천사가 되어 하늘 나라로 가는 거야
그런데 그 천사들은 이렇게 슬픈 세상에는 다시 내려 올 수가 없어
언젠가 우린 다시 하늘나라에서 만나겠지
엄마, 아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운 가장 예쁜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이제,

안녕..

안녕..


이혼한 엄마가 일나간 사이 화재를 당한 여섯 살 쌍둥이 형제의 화재사고 소식을 들으며, 20년 전 그 안타까운 죽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쌍둥이 형제가 무사히 엄마곁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빌어봅니다. 더 이상 이런 안타까운 사고가 없는 그런 나라를 소망합니다.


마산시는 화재로 중태에 빠진 쌍둥이 가정에 긴급 의료비 600만 원을 지원하고,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 의료비와 생계비 등을 포함해 최대 1700여만 원까지 지원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2006년부터 시행된 긴급복지지원법에 따라 의료비, 긴급 생계비를 지원하고, 주거지원비도 별도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