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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979년 도덕 숙제, 3.15의거탑 비문을 적어오세요?

by 이윤기 2010.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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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50주년, 특집 드라마 '누나의 3월', 4월 18일(일) 밤 10시 45분 방송 !

오늘밤 10시 45분 방송되는 '누나의 3월'을 소개하는 글을 블로그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여러 번 소개하였습니다. 처음 쓴 글은 3월 26일 마산MBC 전파를 타고 경남 일원에 방송된 '누나의 3월'을 소개하는 글이었구요. 두 번째 글은 '누나의 3월'이 마산MBC를 통해 방송된 후 '리뷰'기사를 오마이뉴스와 제 개인 블로그에 중복하여 게재한 글 입니다.

2010/03/26 - [세상읽기] - 마산MBC, 누나의 3월 꼭 보세요.
2010/04/16 - [세상읽기] - 이승만 독재정권 무너뜨린 1960년 마산
오마이뉴스 2010/04/07-1960년 마산, 그곳엔 '누나'와 악질 손현주가 있었다.

제가 오마이뉴스에 쓴 기사에 어제 블로그에 소개한 흑백사진이 담긴 댓글이 달렸습니다. 유목민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시는 오마이뉴스 회원이 3.15당시 마산시 평화동에 살고 있었다고 밝히는 댓글과 오래된 흑백사진을 올려준 것입니다.

2010/04/17 - [세상읽기] - 1960년3월15일 난 마산시 평화동 4-2번지에 살았다





낡은 흑백 사진을 보면서 제 기억속의 3.15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대학 입학 후에 이른바 운동권 선배들에 이끌려 한국현대사를 공부하면서 3.15부정 선거와 마산시민들의 항거 김주열 열사의 죽음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1979년 3월 15일....그리고 도덕 숙제 !

그런데,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 보다 훨씬 앞선 중학교 시절, 엄혹한 유신독재의 끝자락이었던 1979년 3월에 3.15에 대한 짧은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유신 독재정권이 뭔지 모르든 중학교 1학년 철부지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그 일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정말 몰랐습니다.

까까머리 중학생이 된 후 3월의 어느 도덕 수업 시간, 어쩌면 첫 번째 수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도덕 선생님께서는 마산 서성동에 가면 3.15탑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희들에게 3.15탑에 가서 '비문'에 새겨진 글씨를 베껴오라는 숙제를 내주셨습니다. 

"마산 서성동에 가면 3.15의거 탑이 있다. 거기 가서 비문에 쓰인 글씨를 베껴와라 ! 거기에 아주 중요한 글이 있다. 이건 성적과는 아무 관계가 없지만  분명히 숙제다."

이 숙제를 해오는데 1주일, 어쩌면 2주일의 시간을 주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선생님이 성적에 포함되지 않는 숙제를 마감하는 날까지 이 숙제를 해온 친구는 저희 반에 딱 1명이었습니다. 친구들 중에 약삭빠른 몇몇은 그 친구가 해온 숙제를 베꼈습니다.

그러나, 도덕 선생님께서 철둑 옆에 있는 3.15탑에 가서 직접 비문을 공책에 베껴 쓰온 사람만 손을 들라고 했을 때, 딱 1명의 친구만 손을 들었습니다. 아마, 요즘처럼 수행평가가 있었다면, 저희반 친구들 모두 그 숙제를 해왔을지도 모릅니다.

초등학교 시절, 오동동, 산호동 일대에서만 살았던 저는 서성동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오동동에서 상남동을 거쳐서 북마산에 있는 회원동까지 가본 것도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입니다. 한 번도 가 본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는 3.15의거탑에 가서 비문을 적어오는 숙제는 저에게 너무 힘든 숙제였습니다. 아무튼 저도 숙제를 해가지 않았습니다.

숙제를 해오지 않은 저희들에게 선생님은 1960년 3.15일에 마산에서 선배들이 '민주주의'라는 것을 위해 싸우다가 죽음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신 것 같습니다. 지금 그 날 수업에서 들었던 이야기는 생각나지 않습니다만, 선생님은 그 친구가 3.15탑에서 뻬껴쓰온 비문을 큰 소리로 읽어주셨습니다.

저마다 뜨거운 가슴으로 민주의 깃발을 올리던 그날 1960년 3월 15일!
더러는 독재의 총알에 꽃 이슬 되고 더러는 불구의 몸이 되었으나 우리들은
다하여 싸웠고 또한 싸워서 이겼다!
보라 우리 모두 손잡고 외치던 의거의 거리에 우뚝 솟은 마산의 얼을.
이 고장 3월에 빛발친 자유와 민권의 존엄이 여기 영글었도다.



뜻 모를 비문, 알 수 없는 비장한 느낌

뜻 모를 글을 읽어주었으나 그 '비장한' 글 귀 때문에 반 친구들은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1979년 그 시절은 누구도 공개적으로 3.15를 기념하는 추모행사같은 것을 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훗날, 대학생이 되어 1985년 가을에 총학생회가 부활되고 1986년 봄에 총학생회에서 주최한 3.15기념 행사가 학내에서 열렸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엄혹한 시절에 위험한(?)숙제를 내준 선생님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해 10월에 10.18 시위를 제 눈으로 직접 목격하였습니다.

얼마 후 영원히 대통령을 하는 줄 알았던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습니다. 그 무렵 제가 사는 동네 골목 어귀에도 대검을 착검한 총을 들고 지키는 군인들이 있었습니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보니, 철모르는 까까머리 1학년 중학교 시절, 엄혹했던 유신 독재의 그 시절에 3.15의거탑에 쓰인 비문을 적어오라는 숙제를 내 주신 선생님, 그리고 그 글을 소리내어 읽어주시던 도덕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선생님이 어린 저희들에게 그런 '난감한'(?) 숙제를 내 주신 이유는 훨씬 더 나이를 먹어서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