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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칼럼

'고자'질 부추겨 세금 축내는 감시공화국

by 이윤기 2010.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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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교육청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4월까지 학원 신고포상금제도로 1909건의 접수를 받아 이중 190건에 대하여 8100만원의 국민세금을 신고포상금으로 지급하였다고 합니다.

오늘은 신고포상금제도와 '고자'들이나 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으로 알려진 고자질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고자질이라는 말에는 여러 어원이 있지만 널리 알려진 것 중 하나는 왕을 가까이서 보좌하는 환관들이 미주알고주알 임금에게 일러바치던 행동을 고자질이라고 하였답니다.

이런 어원 때문에 친구의 잘못이나 자신의 피해를 교사나 부모에게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일이 고자질로 잘못 알려지기도 하였습니다.

또래 집단속에서 일어난 일을 교사에게 일러바치는 일을 모두 ‘고자질’이라고 하다 보니 심지어 학교폭력이나 집단 따돌림과 같은 심각한 문제들을 교사나 부모에게 알리는 일도 ‘고자질’ 취급을 당하기 일쑤입니다.



사실, 공익을 위하여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부당하고 잘못된 일에 대하여 신고하고 고발하는 것은 결코 ‘고자질’로 폄하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것은 사회와 공동체의 기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민주시민의 중요한 덕목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남의 잘못을 고발하거나 신고하는 것은 무조건 ‘고자질’ 취급하는 잘못된 문화 때문에 공직이나 기업의 내부비리 고발자에 대한 보호가 매우 취약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조직전체를 위태롭게 하는 배신자 취급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공익을 위한 내부비리 고발도 '고자질' 취급 당해
 

이런 일은 법이나 제도가 잘못된 탓도 있지만, 고자질에 대한 잘못된 사회문화적 인식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교사와 부모들은 억울하고 부당함을 호소하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좀 더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여야 할 뿐 아니라, 너무 쉽게 고자질로 단정 짓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이 당하는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호소하는 목소리 혹은 사회의 공익을 위하여 부당한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고자질’ 취급을 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문화 때문에 우리 사회는 개인이 적접적인 손해나 피해를 입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고발정신, 신고정신을 발휘하는 일이 매우 드물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고자질’에도 엄청난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남의 잘못이나 허물을 들춰내는 것을 일삼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학원을 감시하는 학파라치, 비상구를 감시하는 비파라치, 불법선거를 감시하는 선파라치가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전문 파파라치 중에는 연간 수입이 1억원이 넘는다는 사람도 있고,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신고포상금을 노리는 파파라치를 전문으로 양성하는 학원도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우연히 알게 된 잘못을 신고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신고포상금을 노리고 남의 잘못을 전문적으로 감시하는 사람들입니다. 최근 경남에서 시작된 비상구를 감시하는 비파라치의 경우 10여명의 전문 신고꾼이 400여건을 무더기로 신고하였다고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하여 남의 잘못을 전문적으로 캐고 다니는 이런 일은 그야말로 ‘고자질’로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행정 업무의 성과를 쉽게 달성하기 위하여 국민들이 고자질에 앞장서도록 만드는 정책 역시 ‘고자질’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고포상금제를 운영하는 교통법규, 선거법, 쓰레기투기, 성매매 감시, 비상구 감시 등의 일들은 관련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을 포상금제도를 이용하여 시민이 서로 고자질을 하도록 떠넘기고 있다고 보아야합니다.

이런 일들은 신고포상금이 없어도 사회와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꼭 이루어져야 하는 일들입니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하여 남의 잘못을 직업적으로 캐고 다니는 일과 정부가 국민에게 이런 일을 하도록 돈을 주며 부추기는 짓은 진짜 ‘고자질’이 분명 하다고 생각합니다.

30여년 전 반공교육을 받던 초등학교 시절에 북한에는 5호 담당제라는 것이 있어 빈틈없이 주민들을 당국이 감시하고 주민들이 서로 감시한다고 배웠던 적이 있습니다.

요즘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망원렌즈를 비롯한 첨단 장비로 무장한 전문감시꾼들에게 감시당하는 감시공화국에서 살고 있는 셈입니다.

아이들에게는 '고자질'은 나쁘다고 가르치면서 정작 어른들은 돈을 미끼로 서로 감시하고 고발하는 나라가 행복한 나라가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KBS창원라디오 생방송 경남 6월 8일 방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