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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조선 최고 문장가, 연암의 글쓰기 비법 공개 !

by 이윤기 2008.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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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에게서 글쓰기를 배우다>는  제목에 끌려 조선의 탁월한 문장가 연암에게는 어떤 특별한 비법이 있을까하는 마음으로 선택한 책이다.

글쓰기에 관한 실용서로 알고 선택한 이 책은 지은이들이 소개하는 대로 따르자면, '인문 실용서'다. 인문과 실용은 다르지만, 이 둘은 본래부터 대립적인 것이 아니지 않을까하는 것이 지은이들의 생각이며, 그래서 지은이들은 인문과 실용의 '사이'를 꿰뚫는 모험을 시도한 것이다. 적어도 기자가 보기에 이 모험은 성공적이었다.

이 책은 연암의 문장론을 다루는 본격 소설이면서 동시에 실용적인 글쓰기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실용서기도 하다. 책의 성격뿐만 아니라 지은이가 두 사람이라는 점도 특이하다. 

조선 후기 인물의 삶과 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이 시대에 소통되는 언어로 재현하는데 관심을 가진 설흔과 '말과 글, 이야기, 인간의 사고 과정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박현찬이 함께 쓴 소설이다.

소설은 연암의 아들 종채가 아버지 유고집을 엮기 위한 일이 좀처럼 진척되지 않아 고민하다가 이름 모를 선비가 전해준 '연암협일기'를 건네받아 읽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소설은 종채가 책을 읽는 현실과 연암이 살아 생전 제자를 가르치는 연암협일기 속을 넘나드는 구조다.

첫번째 가르침, 천천히 정밀하게 읽어라

연암협일기의 주인공은 제자인 지문이다. 독자들은 연암이 지문에게 문장을 가르치는 이야기를 쫓아가며 글쓰기를 배울 수 있다. 평생 제자를 두고 가르치지 않던 연암은 지문이 서너번 읽은 연암선집을 외워 변용하는 재주를 보고 말년에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게 된다. 연암이 지문에게 주는 첫 번째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우선 <논어>를 천천히 읽게. 할 수 있는 한 천천히 읽어야 하네. 그저 읽고 외우려 들지 말고 음미하고 생각하면서 읽게. 잘 아는 글자라고 해서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하네. 반드시 한 음 한 음을 바르게 읽게." (본문 중에서)

천천히 읽기,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정보를 받아들이는 수단으로 책을 읽는 이들은 대체로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읽는지에 관심이 머무르고 있다. 어떤 책도 천천히 읽어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천천히 읽으라는 것이 연암의 첫 가르침이다. 연암은 천천히 읽는 것을 문장을 익히는 기본이라 하였으니 기자는 기본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독서는 푹 젖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푹 젖어야 책과 내가 서로 어울려 하나가 된다."

한 달간 <논어>를 읽고 온 제자에게, 자신이 넉 달간 읽고 쓴 <논어문답록>을 내놓고 제자인 지문과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주는 첫 번째 가르침이다.

연암이 지문에게 문장을 가르치기 위하여 내 준 두 번째 과제는 적오(붉은 까마귀)를 주제로 하는 글쓰기이다. 며칠 동안 붉은 까마귀를 찾아 헤매던 지문은 마침내 연암이 주려던 가르침을 깨닫는다.

두 번째 가르침, '관찰하고 통찰하라'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는 거리를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리 저리 걸으며 까마귀를 본다는 것이 그 방법이었다…문제를 인식하고 나면 본질을 깨닫는 통찰의 순간이 오는 법. 네가 갑자기 깨달았다고 한 그 순간이니라. 통찰은 결코 저절로 오지 않는다. 반드시 넓게 보고 깊게 파헤치는 과정이 필요하다." (본문 중에서)

연암은 왜 하필 까마귀를 관찰하게 했는지를 묻는 제자에게 "문자로 된 것만이 책은 아니다"고 가르친다. 책만 본다면 삶의 지혜를 놓치기 십상이기 때문에 요약하고 깨달아야 하는 대상은 천지만물에 흩어져 있다고 가르친다.

세 번째 가르침을 위하여 연암은 지문을 유배살이 하는 박제가에게로 보낸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이름을 외울 때 박지원, 박제가를 나란히 외웠던 기억이 있는데, 소설 속에서 두 사람은 막역한 사이로 그려진다. 박제가를 찾아간 지문에게 연암이 낸 세 번째 과제는 '명문장가 한신'이다. 한신은 한나라를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웠던 무장이다. 지문이 세 번째 문제를 푸는 데는 박제가 문생인 여인 연수의 도움이 있었다.

세 번째 가르침, '원칙을 따르되 적절하게 변통하라. 의중을 정확히 전달하라'

"옛 글의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것은 좋으나 너무 새것만 추구한 나머지 가끔 황당한 길로 가는 경향이 있으니 조심하라. 현실에 대응하여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지만 바른 기준이 있어야 한다." (본문 중에서)

"옳거니 글을 아무리 잘 썼다 해도 그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글을 쓸 때는 내 생각을 다른 이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하네."(본문 중에서)

이것은 연암의 충고를 무시하다 마침내 유배를 살게 된 박제가의 가르침이다. 이어지는 네 번째 가르침을 위한 문제는 박제가가 낸다. 연암에게 돌아가는 지문에게 박제가가 낸 문제는 '이는 살에서 생기는가, 옷에서 생기는가'다.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네 번째 가르침, '관점과 관점 사이를 꿰뚫는 사이의 통합적 관점을 만들라'

"무릇 이는 살이 없으면 생길 수 없고, 옷이 없으면 붙어 있지 못하는 법이니, 이란 놈은 땀내가 푹푹 찌는 살과 풀기가 물씬한 옷, 이 둘을 떠나 있는 것도 아니고, 꼭 이 둘에 붙어 있는 것도 아니거늘, 바로 살과 옷 사이에서 생긴다고 해야겠지."(본문 중에서)

연암은 사이의 묘는 역지사지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양쪽을 고려하되 반드시 새롭고 유용한 시각을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 항상 자신의 사유틀을 깨고 나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함을 분명히 말한다.

연암의 다섯 번째 가르침은 무엇일까? 지문은 연암이 한양으로 가고 난 후 기약 없이 스승을 기다리다 약속을 어기고 과거시험에 응시한다. 이때 과장에 들어가 답을 쓴 후 제출하지 않은 지문의 답안을 통해 다섯 번째 가르침이 이어진다.

다섯 번째 가르침, '글쓰기는 곧 병법이다.'

"병법을 하는 자는 버릴 만한 병졸이 없고, 글을 잘 짓는 자는 가릴 만한 글자가 없다. 말이 간단하더라도 요령만 잡으면 되고, 토막말이라도 핵심을 놓치지 않으면 험한 성이라도 정복할 수 있는 법이지. 그러므로 글쓰기는 곧 병법이니라."(본문 중에서)

지문은 글쓰기를 병법에 비유하여 쓴 향시 답안을 놓고 연암이 질문하고, 지문이 대답하는 방식으로 글쓰기를 위한 실전 수칙 11가지를 독자들에게 일러준다.

연암은 지문의 글이 기술적으로는 완벽하지만 자신이 보기에는 아직도 멀었다며 다그친다. 자신이 도대체 무엇이 부족한가를 다그쳐 묻는 제자에게 연암은 "사마천이 <사기>를 쓸 때 그 심정이 어떠했는지 생각해 보라"는 마지막 문제를 낸다.

그러나, 연암과 지문의 사제관계는 마지막 문제를 풀기 전에 파국을 맞이한다. 출세를 보장하겠다는 세도가 김조순의 제안을 받은 지문은 마침내 연암을 떠나고 만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문은 연암을 모함에 빠뜨리려고 하던 김중현을 만나고 나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게 된다.

마지막 여섯 번째 가르침, '사마천의 분발심을 잊지 마라'

"어린아이들이 나비 잡는 모습을 보면 사마천의 마음을 간파해낼 수 있다. 앞다리를 반쯤 꿇고, 뒷다리는 비스듬히 발꿈치를 들고서 두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만들어 다가가는데, 잡을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나비는 그만 날아가 버린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기에 어이없이 웃다가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성을 내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할 때의 마음이다."(본문 중에서)

마침내 연암의 마지막 가르침을 깨달은 지문은 글쓰기란 모름지기 사마천이 <사기>를 쓰는 마음으로, 지극한 초심으로 세상에 자신의 뜻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한다.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글의 힘을 믿는 것입니다. 왜 글을 쓰게 되었는지 잊지 않고 모든 기쁨과 분노와 슬픔을 글에 쏟아 붓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 없이 쓴 글은 모두 헛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없다면 한순간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되지요."(본문 중에서)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를 쓴 설흔과 박현찬은 탁월한 글쓰기 이론가이자 최고의 문장가였던 연암의 글쓰기 이론을 소설의 힘을 빌려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소설의 힘은 컸다.


실제로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를 펼쳐 읽으면 긴장과 흡입으로 이어지는 그 소설적 재미에 푹 빠져서 좀체 책에서 책을 놓기 어렵다. 글쓰기 실용서에서 만나는 딱딱함에 발목을 잡히는 일이 결코 없다. 불과 한 주전 8월 ‘염천’에 더위를 잊고 밤을 새워 읽는 재미에 푹 빠졌었던 책이다. 재치 있고 기발한 이야기 전개를 따라 가다보면, 어느 새 무릎을 치면서 연암의 가르침을 익히게 된다. 시원해진 가을밤에 연암의 가르침을 받아 보시라.


   < 조선 최고의 문장가 연암의 글쓰기 비법>

  1. 정밀하게 독서하라
  2. 관찰하고 통찰하라
  3. 원칙을 따르되 적절하게 변통하여 뜻을 전달하라.
  4. ‘사이’의 통합된 관점을 만들어라.
  5. 11가지 실전 수칙을 실천하라.
   1) 명확한 주제의식을 가져라.
    2) 제목의 의도를 파악해서 써라.
    3) 사례를 적절히 인용하라.
    4) 일관된 논리를 유지하라.
    5) 운율과 표현으로 흥미를 배가하라.
    6) 인과 관계를 유의하라.
    7) 참신한 비유를 사용하라.
    8) 반전의 묘미를 살려라.
    9) 시작과 마무리를 잘 하라.
   10) 함축의 묘미를 살려라.
   11) 반드시 여운을 남겨라.
  6. 분발심을 잊지 마라.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설흔, 박현찬 지음 - 예담 / 293쪽, 11,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