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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소설, 재미로만 읽는 책이 아니더라

by 이윤기 2010.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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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나쓰메 소세키 소설전집 <런던소식>, <회상>

일본문학의 출발점이라고 하는 나쓰메 소세키를 소개해 준 사람은 강상중 교수입니다. 지난 봄 강상중 교수가 쓴 <고민하는 힘>을 읽으면서, 유명한 일본작가 나쓰메 소세키를 알게 되었지요.

강상중 교수는 <고민하는 힘>에서 시대를 꿰뚫어보는 지식인으로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를 여러 차례 인용합니다.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가 백 년 전에 쓴 것을 다시 읽어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막스 베버 역시 충분히 잘 알지 못하지만 낯설지 않은 이름이지만, 일본의 국민작가라고 하는 유명한 나쓰메 소세키는 강상중 교수의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강상중 교수에게 ‘고민의 힘’을 배운 후 나쓰메 소세키라는 이름을 마음에 새겨두었는데, 마침 올 여름 신간목록에서 나쓰메 소세키 소설전집을 발견하고는 주저 없이 선택하였습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 ‘일본의 셰익스피어’라고 추앙받는 작가라고 합니다. 그는 2000년 6월에 실시한 지난 1000년을 이끌었던 각 분야의 사람을 뽑는 인기투표에서 문학 분야에서 1등을 차지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가이자 지식인 이라고 합니다. 1986년부터 2004년 11월 새로운 천 엔 지폐가 나올 때까지 일본의 천 엔 지폐에 나쓰메 소세키의 초상이 새겨져 있었답니다.




일본의 국민 작가, 나쓰메 소세키

신간 목록에서 나쓰메 소세키 소설전집을 발견하고 작은 망설임도 없이 이번 여름에 꼭 읽어야 할 책으로 그의 소설집을 골랐지만, 막상 소세키의 작품을 읽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읽은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권 <런던소식>은 몽십야, 문조, 영일 소품, 런던 소식을 비롯한 여20여 편의 단편을 모은 책입니다. 제 2권 <회상>은 회상, 취미의 유전, 이백십 일, 만한 이곳저곳 등 4작품을 모은 책입니다.

아쉽게도 제가 이번에 읽은 <런던 소식>과 <회상>에는 강상중 교수가 <고민하는 힘>에서 주로 인용한 작품들은 대부분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강상중 교수는 <고민하는 힘>에서 도련님, 마음, 그후 길 위의 생, 문, 몽십야 등을 주로 인용하였는데, 이번 전집 두 권에 나오는 작품은 ‘몽십야’ 뿐이더군요.

<런던 소식>과 <회상>에 포함된 작품은 한국에서 초역인 작품이 반수 이상이었다고 하더군요. 이 책을 옮긴 노재명은 “소세키의 문장은 일본의 어떤 소설가보다도 난해한 문체”라고 하였더군요.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말로 번역된 소세키의 작품 역시 ‘난해’하였기 때문에 읽고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아니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고 읽는데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제가 재미있게 읽었던 한국 소설가들의 작품에 비하여 참 많이 난해하였습니다. 책의 두께로만 보면 보통 소설을 읽는 것처럼 읽었다면 한 권을 읽는데, 하루 혹은 길어도 이틀이면 충분합니다. 대부분 소설책은 그런 속도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쓰메 소세키의 <런던 소식>과 <회상>을 그런 속도로 읽을 수 없더군요. <런던소식>과 <회상>을 읽는데 꼬박 2주일이 걸렸습니다.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는 다른 책과 섞어 읽기는 하였지만 소설 책 치고는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소설 2권 읽는데 꼬박 2주, 만만한 책 아니다

막상 읽어보니 짧은 단편을 모아 놓은 <런던 소식>이 훨씬 더 난해하더군요. 짧은 글이 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단편이어서 더 집중하고 몰입하기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중편 4편을 모아 놓은 <회상>이 읽기에 조금 나은 편이었습니다.

처음엔 100년 이라는 시공의 차이가 주는 생소함 때문인 줄 알았습니다만 읽을수록 그것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쓰메 소세키를 처음 읽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쓰메 소세키를 처음 읽는 독자들이라면 <런던 소식>이나 <회상>을 읽기 전에, 각 권의 말미에 있는 ‘작가 읽기’를 먼저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런던 소식> 말미에는 시인이자 한양대 교수인 고운기가 쓴 ‘나쓰메 소세키에 관한 단상 몇 가지’라는 글이 실려 있고, <회상>에는 문학평론가 이봉일이 쓴 ‘나쓰메 소세키, 일본 근대문학의 창조적 정신을 찾아서’라는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학작품을 읽을 때 평론가의 글을 먼저 읽으면 ‘선입견’을 갖게 될 위험이 있어 권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나쓰메 소세키를 처음 읽는 독자들이 맞닥뜨리게 될 ‘난해함’을 극복하는 데는 전문가의 ‘길잡이 글’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취미의 유전’에 나오는 러일 전쟁에 대한 은유적 묘사는 쉽게 이해하고 알아차릴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도살, 굶주린 개, 미친 신, 죽음의 살육전 같은 수식어가 만연하는 제국주의와 일본 천황 그리고 러시아 차르에 대한 은유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지요.

소설을 다 읽고 강상중 교수가 쓴 <고민하는 힘>을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지성’에 관한 고민을 담은 7장에 ‘몽십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강상중 교수는 몽십야 중에서 ‘제 7화’를 짧게 요약한 후에 “이 이야기는 뭐가 뭔지도 모르는 채로 시대의 흐름에 휘말리는 것이 싫다고 해서 구시대에 매달리는 것은 더 바보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하였더군요.

이 대목을 읽고 <런던 소식> 맨 앞에 나오는 단편 ‘몽십야’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과연 그런 해석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울러 ‘아울러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책을 읽고 2주 동안 고전하였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몽십야를 제외한 몇 편은 예외이지만 <런던 소식>에 실린 단편 대부분은 마치 ‘일기’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만, 그 일기가 소소한 일상을 적은 기록이 아니라 깊은 고민을 담은 무거운 중압감으로 다가옵니다.

그래도 가장 읽기 쉬운 글이 전집 2권 <회상>에 포함된 기행문처럼 쓴 <만한 이곳저곳>이었습니다. 만약 나쓰메 소세키를 읽는다면, 이미 오래전에 번역되어 널리 알려진 <도련님>, <마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같은 작품을 먼저 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전집 <런던 소식>과 <회상>은 그냥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아닙니다. 서양 근대문명과 만나는 동아시아 역사와 사회 그리고 그 사회를 살아가는 실존적 군상들의 삶과 내면의 풍경을 담아낸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 ‘일본의 셰익스피어’, ‘일본의 국민작가’라는 찬사만 믿고 달려들었다가는 낭패를 볼지도 모릅니다. 격동의 근대기를 살아간 작가의 실존적 고민이 깊이 담긴 ‘난해함’에 맞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읽어야 하는 소설입니다.



런던 소식 - 10점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하늘연못
회상 - 10점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하늘연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