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과 세상/책과 세상 - 생명, 평화

주교는 연장자순, 목사와 집사는 제비뽑기

by 이윤기 2010. 9. 17.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서평] 임세근이 쓴 <단순하고 소박한 삶 아미쉬로부터 배운다>

전화와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마차를 타고 다니며, 옛날 방식대로 밭을 갈면서 농사를 천직으로 아는 땅의 사람들, 단순함과 검소함을 추구하여 집안이나 외모를 꾸미지 않으며 수수한 디자인의 옷을 집에서 만들어 입습니다. 세금은 내지만 혜택은 받지 않고, 제도교육을 거부하는 등 그들만의 삶과 문화를 이어갑니다.

어떤 사람들에 대한 설명일까요? 지구상에 이런 사람들이 과연 남아있기나 할까요? 네, 바로 아미쉬공동체 사람들을 설명하는 말들입니다. 임세근이 쓴 <단순하고 소박한 삶 아미쉬로부터 배운다>는 주로 펜실바니아 지역에서 살아가는 아미쉬공동체 사람들의 삶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아미쉬 공동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여 년 전 대학 시절에 본 해리슨 포드 주연의 ‘위트니스’라는 영화를 통해서입니다. 영화 ‘위트니스’는 엄마와 함께 여행에 나선 아미쉬 소년이 역 구내 화장실에서 살인사건 현장을 목격 목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세상에는 참 특별한 방식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비폭력 무저항을 몸소 실천하고, 과거의 방식을 고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미쉬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면, 대부분 이 영화에서 본 것 이상으로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아미쉬는 누구인가?

느리고 불편하게 그러나 행복한 사람들

두 번째로 아미쉬라고 하는 특별한 신앙공동체를 만난 것은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입니다.

김두식 교수가 쓴 <평화의 얼굴>을 읽으면서 종교적 신념에 따라 군 징집과 병역, 집총을 거부하는 ‘재세례파’ 기독교인들에 관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재세례파를 설명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은데, 종교개혁당시 츠빙글리와 개혁노선 보다 더 강력한 개혁을 요구한 ‘스위스의 형제들’을 비롯한 개혁자중의 개혁자 그룹을 말합니다.

이들은 군 징집을 거부하고, 성인이 된 후 이성적 판단아래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세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에 ‘재세례파’라고 불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들은 정부 관리와 가톨릭은 물론 여타 개신교파들로부터도 혹독한 박해를 당하였습니다.

훗날 재세례파는 네덜란드 출신 사제 메노 시몬스에 의해 ‘메노나이트’로 통합되었으며, 이 중에서 아미쉬는 메노나이트 중에서도 ‘엄격한 교리준수와 신앙생활’을 강조하는 제이콤 암만이라는 지도자를 따르는 사람들로 분리되었다고 합니다.

아미쉬와 메노나이트는 종교적 뿌리를 같이 하는 사람들로 펜실베이니아에서는 아미쉬와 메노나이트 교도들을 쉽게 만날 수 있으며, 아미쉬는 메노나이트의 가장 보수적인 ‘사촌’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비폭력 무저항과 평화주의에 대한 관심 때문에 <단순하고 소박한 삶 아미쉬로부터 배운다>를 반가운 마음으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이들은 어떤 명분의 전쟁도 반대하며, 군복부를 거부하는 성경적 삶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아미쉬 공동체엔 예배당이 없다

엄청난 종교적 박해를 통해 신대륙 펜실베이니아를 중심으로 정착한 아미쉬, 그런데 원시기독교의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아미쉬 마을에는 교회가 없다고 합니다.

“교회가 없으니 십자가를 높이 올린 뾰족한 종탑이 있을리 없고, 벽이나 천장, 창문 곳곳을 장식한 성화가 있을 리 없다.......신학교에서 전문 교육을 받은 성직자가 없고 위엄을 갖춘 설교연단도 볼 수 없다. 오르간과 성가대도 없고, 화음에 맞추어 부르는 찬송가도 들리지 않는다. 헌금을 하지 않고 성경공부를 위한 별도의 모임도 없다. 전도를 하지 않고 선교활동도 지원하지 않기에 그들의 공동체에는 전도사도 없고 선교사도 없다.” (본문 중에서)

오늘날 한국 기독교와 비교해보면 어느 쪽이 더 초대교회의 모습에 가까운 모습인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기독교인의 자세로 ‘순종’과 ‘겸손’ 그리고 ‘간소함’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의 실천을 그들 공동체의 덕목으로 삼고 있다”고 합니다.

아미쉬에게 순종은 하느님 말슴과 예수의 가르침에 조건없이 따르는 것을 의미하며, 이런 이유 때문에 그들은 그 어떤 공격을 받더라도 폭력을 휘두르거나 무력에 의존하지 않으며 보복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미쉬 사람들에게 교회란 예배를 보기 위해 지은 건물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따르는 신자들의 공동체 모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미쉬 사람들은 십자가나 성화로 장식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부르는 찬송가에는 악보가 없다고 합니다.

“악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교도들이 찬송가를 기억하고, 400여 년간 전승되어오고 있음은 매우 놀랄만한 일이다. 그들은 교구별로 음악적 재능이 있는 교도 몇 명을 선정하여 각 찬송가의 곡조를 익히게 한 뒤, 찬송가를 부르는 모임에서 리더가 되어 찬송가를 이끌게 한다.” (본문 중에서)



주교는 연장자순, 목사와 집사는 제비뽑기로 선출

아미쉬 공동체의 전형적인 교구의 경우 한 명의 주교, 두세 명의 목사, 그리고 한 명의 집사를 둔다고 합니다. 아미쉬 예배에서는 두세 명의 목사가 돌아가며 설교를 담당하며, 집사는 성경을 낭독하고 세례, 성찬, 세족 등 예배에 필요한 준비를 담당합니다.

“목사와 집사는 교회 모임에서 교도들로부터 추천을 받은 자 중에서 제비뽑기로 선출하며, 기혼자로서 모범적인 가정을 이루고 있는 교도들을 목사나 집사의 후보로 추천한다.” (본문 중에서)

세 명 이상의 교도들에게 추천 받은 사람들 중에서 제비뽑기로 정하는데, 이는 “목사의 최종선책은 하느님이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즉, 아미쉬 사람들이 목사를 선발하는 것은 운에 따르는 당첨의 의미가 아니라 하느님의 부름을 받는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이렇게 선발된 목사와 집사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한 종신토로 교회 운영에 헌신하며, 그 어떤 대가나 보수도 주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밭을 갈거나 가구를 만드는 등 원래의 생업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교역자로서의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전 세계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세상에 전화와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마차를 타고 다니며, 옛날 방식대로 밭을 갈면서 농사를 천직으로 아는 이런 삶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미쉬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성인이 되어 아미쉬로 살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들은 일상생활을 통해 아미쉬 교도로서 살의 가치와 율법을 보여주고 깨우칠 뿐 평생 아미쉬로 살아가는 선택은 전적으로 본인의 의사에 맡긴다고 합니다.

실제로 아미쉬 사람들은 성인세례를 받는 나이에 이르면 ‘공동체 바깥 세상을 직접 체험하는 기회’를 갖는다고 합니다. 이 기간에 아미쉬 젊은이들은 바깥 세상으로 나가 속세의 삶을 직접 경험해보고 자신의 삶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공동체의 교리나 율법, 관습 등 자신들을 옭아매던 그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어디든 갈 수 있고, 또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아미쉬 교도들에게 일생을 통해 단 한 차례 주어지는 합법적인 탈선의 기회이자 자신의 듯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유일한 외도를 허락받은 기간이기도 하다.” (본문 중에서)

이런 통과의례를 럼스프린가라고 부르며 여기에는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기간’ 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합니다. 럼스프린가를 마치고 공동체에 남는 아미쉬 젊은이의 비율은 90%에 이르며, 10%정도만이 공동체 바깥세상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이는 근본적인 분위기의 공동체에서 생활하다가 풍요와 쾌락의 현장을 경험한 많은 젊은이들이 자유로운 공동체 바깥의 삶을 선택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는 결과입니다. 오히려 이 시기의 경험이 공동체를 더욱 소중하게 깨닫는 계기가 된다고 합니다.

식탁에서 싹트는 공동체 문화

저자는 아미쉬 가정에서 가장 소중한 살림살이는 ‘식탁’이라고 합니다. 아미쉬 가정에서는 식사를 하지 않을 때에도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집안의 중심공간이라고 합니다. 그들에게 가족은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아미쉬 사람들은 부부간에, 또는 부모와 자녀가 긴 시간 떨어져 있는 것은 아미쉬의 전통적 삶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들은 하루 세 끼의 식사를 온 가족이 모여 함께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본문 중에서)

이들에게 식탁은 기도 공간 일 뿐 아니라 독서와 대화 그리고 친교의 공간이라고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도 가족이 다 같이 모여서 식사하는 일이 드물다고 하소연하는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과연 누가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 총기 사고로 희생된 다섯 명의 아미쉬 소녀를 추모하는 퀼트 작품

상식과 상상을 뛰어넘는 무저항 평화주의

아미쉬 사람들의 집에는 담이나 울타리가 없고 대문도 없다. 문을 걸어 잠그지도 않으며 외부인의 침입을 막기 위한 어떤 장치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좀도둑은 말할 것도 없고 생명을 위협하는 강도가 들어와도 전혀 반격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랭커스터의 남쪽 지역인 풀턴 타운십에서 24살의 아미쉬 젊은이 스티브 스톨츠프스가 동료와 함께 마차를 타고 일터로 가던 중 각목을 든 청년 두 명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2달러의 현금과 마차 안에 있는 몇 가지 금품을 빼앗겼다.” (본문 중에서)

“이스트 드루모어 타운십에서 마차에 가족을 태우고 이웃 마을로 가던 데이비드 카프만씨가 동일범들에게 강도를 당했다. 카프만 씨는 부인과 함께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를 가족과 이웃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웃 마을로 가던 중이었으며, 카프만씨는 가지고 있던 현금 200달러를 강도들에게 건네주어야 했다.” (본문 중에서)

아미쉬 공동체와 아미쉬 가정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드물지 않게 계속되고 있지만, 이들은 무저항 평화주의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미쉬의 경전이라고 할 수 있는 <순교자의 거울>에는 무저항 평화주의 원칙을 지키다가 순교한 수많은 순교자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김두식 교수가 쓴 <평화의 얼굴>에도 소개된 제세례파 교도 더크 월렘스의 일화는 이 책에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자신을 쫓는 보안관이 얼음 속으로 빠지는 것을 본 더크 월렘스가 도주를 멈추고 보안관을 구했으나 바로 그 보안관에게 체포되어 ‘화형’에 처해졌던 실화입니다.

다섯 명의 소녀를 죽음으로 내몬 참혹한 총격 사건

그런데, 2006년 10월 펜실베니아 주 랭커스터 카운티의 니켈마인즈에 있는 아미쉬 학교에서는 훨씬 더 참혹한 순교 사건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총격사건의 범인은 아미쉬학교 여학생 10명을 인질로 잡아 총격을 가하여 5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나머지 다섯 명도 중상을 입은 사건입니다.

“아미쉬 공동체는 놀라울 정도로 평온을 유지하며 기도로 아픔을 달래고 있으며, 유족을 비롯한 아미쉬 사람들이 범인의 가족을 찾아가 용서의 뜻을 전했다.” (본문 중에서)

“‘나를 먼저 쏘세요’, 13살 난 마리안 피셔가 범인에게 호소하자 곧이어, 그 다음엔 ‘나를 쏘세요’ 하고 11 살배기 동생 바비 피셔가 뒤따랐다.” (본문 중에서)

사건 당시 미국 언론들이 이렇게 보도하였다고 합니다. 아미쉬 사람들에게는 ‘비록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남들을 해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종교적 신념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린 동생들을 구하기 위하여 앞 다투어 자신의 목숨을 던진 아미쉬 소녀들은 성경이 가르침과 공동체에서의 일깨움을 바탕으로 ‘무저항 평화주의’를 실천한 것입니다. 아울러 그 부모와 가족들 역시 놀라울 정도로 평온을 유지하며 기도로 아픔을 달래고 범인과 그 가족을 용서하였다는 것입니다.

"답지하는 성금을 가장을 잃은 범인의 유가족에게 먼저 할애해달라는 간청과 범인의 미망인과 어린 세 유자녀를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하며 위로의 시간을 가진 아미쉬 사람들의 자비"

상식의 눈으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상황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아미쉬 사람들의 행동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요? 저자는 그 답은 그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낭송하는 마태복음 6장 9~13절이라고 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고.......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과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이 주기도문을 똑같이 외우며 믿음을 수행하는 다른 기독교인들과 달리 아미쉬 사람들에게는 '믿음은 곧 실천'이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아미쉬 역사에는 ‘무저항 평화주의’를 실천에 옮긴 사례가 많이 남아있지만, 니켈마인즈 아미쉬 학교 총격사건은 미국인들이 아미쉬를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남편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 이혼 절대금지(이혼은 공동체에서 추방되는 사유) 등 납득하기 어려운 모습들이 적지 않지만, 아미쉬의 ‘무저항 평화주의’ 실천은 그들 신앙에 대한 깊은 신뢰과 존경의 마음을 갖게 합니다.

▲ 저자 임세근이 운영하는 블로그


전화가 공동체의 유대와 결집을 헤친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휴대전화와 스마트 폰을 이용하며 인터넷과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SNS 서비스를 통해 실시간 그리고 온-라인으로 연결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미쉬 사람들은 여전히 전기, 자동차 전화를 멀리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기의 사용을 금지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가전제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TV, 라디오, 컴퓨터는 여전히 대표적이 금기품목이라고 합니다. 전기, 자동차, 전화를 그리고 TV를 비롯한 가전제품을 금지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 공동체 바깥세상과 차단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합니다.

“아미쉬 사람들의 관점에서 볼 때 ‘과학의 발전’이 곧 ‘보다 좋은 삶의 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전기와 자동차, 그리고 전화가 공동체와 바깥세상을 손쉽게 넘나들고 빠르게 연결하는 수단이자 연결고리라고 생각한다.” (본문 중에서)

특히, 전화는 공동체사람들 간의 직접적인 만남의 기회를 빼앗아 끈끈한 유대와 결집을 해친다고 합니다. 휴대전화나 인터넷, 스마트폰으로 먼 곳에 있는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지내면서 막상 가까이 있는 친구나 동료와의 만남에는 집중하지 못하는 현상을 간파하고 있었던 셈이지요.

‘옛것만 고집하고, 문명의 이기를 멀리하는 답답한 사람들’ 이라는 아미쉬 사람들에 대하여 가졌던 잘못된 편견을 깨우쳐주는 대목입니다.

임세근이 쓴 이 책은 번역서가 아닌 우리말로 아미쉬를 소개한 최초의 책이라고 합니다. 펜실베이니아 주 랭커스터에 아미쉬 사람들과 이웃하여 살아 온 10년 동안 아미쉬의 역사와 전통을 연구하고 각별한 애정으로 아미쉬 사람들과 교제하며 지낸 경험을 토대로 쓴 책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무저항 평화주의를 실천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적 삶은 오늘날 문명인임을 자처하는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는 ‘거울’로 삼을만한 책입니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 - 10점
임세근 지음/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