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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자전거로 지리산 정령치, 성삼재를 넘다

by 이윤기 2013.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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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곳 중에서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곳이 많지 않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자전거를 타고 지리산 정령치와 성삼재를 다녀왔습니다.

자전거 국토순례를 하면서 자전거 타기에 재미를 들인 후에 오래 전부터 지리산 성삼재에 한 번 가보려고 마음먹고 있었지만, 시간을 내는 것이 여의치 않아 혼자서 여러 번 마음속으로 날짜를 정했다가 취소하기를 거듭하였습니다.

최근에 <버킷 리스트>라는 책을 읽고 같은 제목의 영화를 보고나서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오십 살이 되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등의 리스트를 만들었는데, 그 중 하나를 지난 주말 마침 제 생일을 기념하여 실현하였습니다.

사실, 늘 이런 저런 일정에 쫓겨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마침 제가 일하는 단체에서 전국의 어린이들과 지리산 노고단 등반대회를 준비하느라 지난 토요일에 실무자들이 모여 함께 답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노고단 답사 일정을 가만히 따져보니 하루 전날 먼저 노고단 근처에 가서 자고 아침 일찍 출발하면 차를 타고 오는 답사팀과 시간을 맞춰 답사를 할 수 있겠더군요. 그래서 함께 답사를 가기로 했던 후배들에게 제 차와 자전거 캐리어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고 금요일에 퇴근하자마자 마산터미널에서 남원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운봉으로 갔습니다.

운봉 - 고기삼거리 - 정령치(1172미터) - 달궁삼거리 - 성삼재(1102미터) - 천은사 거쳐서 점심 식사 장소인 지리산온천지구까지 자전거를 타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아침 일찍 운봉의 민박집을 출발하여 성삼재에서 일행들과 만나 자전거를 세워 두고 노고단까지는 함께 걸어서(노고단은 자전거 통행 금지) 답사를 다녀온 뒤, 자전거를 타고 천은사를 거쳐서 지리산 온천지구에 있는 식당까지 이동한 후 자전거를 차에 싣고 마산으로 돌아왔지요.

설레는 마음으로 운봉까지 시외버스로 이동...3시간

금요일 오후 5시 10분, 마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남원까지 가는 시외버스로 운봉까지 이동하였습니다. 시외버스 화물칸에 자전거를 싣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있는데, 차는 왜 그리 느리게 가던지요. 마산에서 운봉까지  승용차로 곧장 이동하면 2시간이면 가능할 것 갔던데, 시외버스는 진주터미널에서 한 20분쯤 서 있다 승객을 가득태우고 출발하고, 원지, 산청, 함양 등의 터미널을 거쳐서 3시간 10분만에 운봉에 도착하더군요.

중간에 승객들은 계속 타고 내리고 운봉에서 내리는 사람은 저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자전거로 지리산 고개를 넘어보겠다고 달뜬 마음으로 출발했는데, 막상 캄캄한 시골 동네에 혼자서 내리니 좀 삭막하고 쓸쓸한 느낌이 들더군요. 운봉 민박집에서 하루 밤을 자고 아침 6시에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6시 40분에 출발하였습니다.

오전 11시에 답사하러 오는 일행들과 만나기로 하였는데, 지도로 살펴 본 성삼재 도착 예상 시간보다 1시간쯤 일찍  숙소를 출발하였습니다. 운봉에서 출발하면 성삼재에 오르기 전에 먼저 정령치를 넘어야 합니다. 운봉에서 정령치로 가는 길도 가파르지는 않지만 오르막 구간이여서 속도를 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워밍업이라 생각하며 천천히 패달링을 하였더니, 30분쯤 걸려 정령치 입구 '고기 삼거리'에 도착하였습니다.

5.7km를 달리는데 27분 평균속도 11km로 천천히 달렸는데, 이른 아침이라 도로에는 차도 많이 다니지 않았고 거리에 사람도 없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정령치에 오르는 동안에도 사람은 한 명도 만나지 못하였고, 차도 달궁쪽에서 넘어오는 승용차 한 대를 만난 것이 전부였습니다.

정령치...해발 1172미터 그동안 경험한 가장 힘든 오르막 길 

이날은 바람도 많이 불고 봄 날씨 답지 않게 추웠지만 정령치 입구에 들어서자 금새 땀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리산에는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아 햇빛이 잘 들지않는 그늘진 곳에는 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정확히 경사도를 비교해보지는 못하였지만 몸으로 느끼기에 그동안 자전거를 타고 올라갔던 신불삱 간월재나 일본 아소산에 비하여 정령치 올라가는 길이 좀 더 경사가 심한듯 하였습니다. 물론 거리도 더 길었구요. 정령치 입구에서 정령치까지는 약 6.2km 인데, 대략 해발 600미터에서 해발 1172미터까지 570여미터를 올라가야 하는 길이었습니다.

목표는 천천히 가더라도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정령치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잡고 출발하였습니다. 날씨가 쌀쌀한 덕분에 땀을 많이 흘리지 않고 자전거를 탈 수 있었습니다. 저단 기어로 패달링을 하다가 경사가 좀 덜하다 싶으면 기어를 높여보았지만, 금새 다시 가파를 오르막이 나타나 기어를 낮출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기록을 확인해보니 정령치를 오르는 동안 평균속도가 5.4km 밖에 안 되었더군요. 정말 천천히 올라갔었더군요. 고개마루를 앞두고 경사가 심해지는 구간에서는 결국 기어를 최저단으로 바꾸어 올라갔습니다만, 무리하게 기어를 바꾸다가 체인이 끊어지는 불상사가 생겼습니다.

정령치를 정상을 150여미터 남겨두고 체인이 끊어져서 더 이상 패달링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할 수 없이 자전거를 끌고 정령치 휴게소까지 이동하였습니다. 아침 8시 30분,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이 출근도 하지 않은 시간이라 휴게소 문은 꼭꼭 닫혀있고 사람은 흔적도 없었습니다.

정령치 꼭대기는 산 아래 보다 바람이 더 많이 불더군요. 어차피 체인은 끊어졌고 주변 경치를 둘러보면서 마음을 가라 앉히고 체인 수리를 시작하였습니다. 화장실 근처 바람이 덜 부는 양지 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체인을 살펴보았습니다. 체인이 끊어지고 휘어졌더군요. 

■ 자동차로 갈 수 있는 주요 고개

대관령 832m/ 미시령 862m/ 한계령 1004m/  성삼재 1102m/ 정령치 1172m/ 만항재 1330m(함백산)

무리한 패달링?  자전거 체인이 끊어지는 불상사...

공구가 제대로 없으니 휘어진 체인 마디를 펴서 다시 연결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작업이더군요. 무려 1시간 가까이 쭈그리고 앉아서 인내심을 발휘한 끝에 체인을 다시 연결하였습니다. 체인이 끊어지면서 많이 휘어져 다시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쨌든 내리막길은 갈 수 있겠다 싶어 성삼재를 항하여 내리막길을 내려갔습니다.

내리막길은 바람 때문에 춥기도 하고, 끊어진 체인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 조심조심 내려갔습니다. 여유롭게 주변 경치를 둘러볼 수도 없었고, 급경사 길이라 조금만 마음을 놓아도 자전거에 속도가 붙어서 정말 바짝 신경을 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달궁삼거리까지 6.1km는 내리막길이라 체인이 힘을 받을 일이 없어 무사히 내려왔습니다만, 성삼재로 오르는 오르막 구간으로 바뀐 후에는 채 1km도 못가서 다시 채인이 끊어졌습니다. 이번에 끊어지면서 볼트처럼 생긴 못도 어디론가 날라가 버려 도저히 다시 이을 수가 없더군요.

결국 끊어진 부분에서 체인 두 마디를 잘라내고 임시로 다시 연결하였습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짧아진 체인으로 자전거를 탈 수 없으면 차를 가지고 오는 후배들이 올 때까지 길에 서서 기다릴 작정을 하였지요. 그런데 다행히 두 마디를 잘라내고 연결하였지만 별 문제없이 패달링이 되었습니다.(자전거에 무리가 갔는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다시 성삼재를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해발 1172미터 정령치에서 해발 720미터의 달궁삼거리로 내려왔다가 다시 1100여미터의 성삼재로 올라가는 두 번째 오르막이 시작되었습니다. 표지판에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이라고 씌어있었지만 온 신경이 끊어졌던 체인에 집중되어 주변 경관을 둘러 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성삼재에 오르다

다행히 달궁삼거리에서 성삼재로 오르는 길은 '정령치' 고개를 오르는 길 만큼 경사가 심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단 기어로 천천히 올라갔지만 정령치를 오를 때보다는 2~3km 빠른 속도로 오를 수 있었습니다. 오전 10시 40분 드디어 성삼재에 올라갔습니다.

아침 6시 40분 운봉 민박집을 출발하여 4시간 만에 정령치를 거여서 성삼재까지 도착하였습니다. 중간에 체인이 끊어져서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면, 3시간 정도면 도착 할 수 있었던 거리였지요. 오랫 동안 꿈꾸던 일을 해낸 기쁨으로 뿌득하였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동료들과 만나서 노고단까지 답사를 다녀와서 이번엔 구례쪽으로 내리막길을 내려갔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리산온천까지 쫓아오면 시간이 많이 걸릴거라면 걱정하였지만, 노고단 길을 내려갈 때는 자동차도 속도를 낼 수 없어 자전거나 차나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성삼재를 출발하여 지리산 온천 근처에 있는 식당까지는 21km였는데 대부분 내리막길과 평지였기 때문에 성삼재에서 함께 출발한 자동차들과 비슷하게 식당까지 도착하였습니다. 한국에서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곳 중에서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곳이 많지 않은데 지리산 정령치와 성삼재를 넘는 생일 기념 라이딩을 무사히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