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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조선에도 개그콘서트가 있었다는데...

by 이윤기 2010.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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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안대회가 쓴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오지 않는 조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조선시대에는 오늘날 인기 텔레비전 프로그램 ‘스타킹’ 같은 곳에 나올만한 재미있고 기발한 사람들은 없었을까요?

교과서와 위인전기에 나오는 조선시대 위인과 명사들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평범한 백성들 중에서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요즘 스타킹 나올만한 사람들)에 관한 기록은 별로 남아있지 않은 모양입니다.

여기저기 흩어진 기록들을 모아 조선 후기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각계 스타, 남다른 삶을 살았던 인물들을 추적하여 엮은 흥미진진한 책이 나왔습니다. 바로 안대회 교수가 쓴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입니다.

조선 후기에 활약하였던 가수, 구기연예인, 재담꾼, 책 읽어주는 사람, 광대, 유랑 연예인, 사회사업가, 노처녀 떡장수, 비구니, 무인, 기녀, 노비 시인, 서당 선생, 강도, 도둑, 조방꾼, 점쟁이 등 도회지 공간에서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꾼들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들입니다.


맨입으로 오케스트라 연주를 한 구기 전문인 박뱁새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입소문과 기록매체를 통해 오늘날까지 그 삶의 흔적이 살아남은 전통 시대의 명물들입니다. 저자 거리에서 맨입 하나만 가지고 오케스트라 연주를 해낸 사람이 있으니 바로 구기 전문인 박뱁새입니다.

구기란 입으로 연출하는 기예인데,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목소리 혹은 갖가지 짐승소리를 흉내 내는 기예를 말합니다. 맨입으로 온갖 소리를 다 내는 원맨쇼를 펼치던 백남봉이나 남보원 쯤 되는 사람이었거나, 요즘 성대모사로 유명한 배칠수씨 같은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구기’는 조선왕조 전 기간 동안 연행되었고 후기에 들어와서는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널리 공연이 이루어졌으며 중국에서도 성행하였다고 합니다. 다음은 구기 공연을 기록한 글입니다. 탁자, 의자, 부채, 나무토막만 가지고 병풍 뒤에서 공연하는 장면입니다.

“멀리 깊숙한 골목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아낙이 놀라깨어 하품을 하고는 사내를 흔들어 방사를 요구했습니다. 사내는 잠결에 중얼거리면서 처음에는 시큰둥합니다. 아낙이 계속 흔들어 깨우고 두 사람의 소리가 점차 뒤섞이더니 침상이 삐걱거립니다. 이윽고 아이가 깨어 크게 울자 사내가 아낙에게 아이를 달래라고 합니다.”

아낙이 손으로 아이를 토닥이는 소리, 아이 달래는 소리, 아이가 칭얼거리는 소리, 오줌 누는 소리, 꾸짖는 소리 온갖 소리가 다 한 사람의 입에서 공연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라디오 방송국의 음향 효과를 한 사람이 모두 해낸 것과 같습니다.

“별안간 한 사람이 ‘불이야’라고 크게 외치자 사내가 일어나 크게 외치고, 아낙도 일어나 크게 외치고, 두 아이가 일제히 울어댑니다. 갑자기 수백 수천 명이 크게 외치며, 수백 수천 아이가 울며, 수백, 수천 마리 개가 짖어냅니다. 그 사이에 집을 끌어당겨 무너뜨리는 소리, 불이 터지는 소리, 휭휭 바람 소리가 수백, 수천 함께 일어납니다. 또 수백, 수천의 살려달라는 소리, 집이 흔들리는 소리, 물건 빼앗는 소리, 물뿌리는 소리가 섞여 나옵니다.”

절묘한 구기 솜씨를 가진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이런 인물 중에서도 탁월한 이가 바로 박뱁새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 새와 사람의 소리를 단순 모사하는 수준을 넘어 코와 입으로 복잡한 소리들의 화음을 연주하였다고 합니다.

“뱁새는 구기를 잘해서 입으로는 생황과 퉁소를 불고, 코로는 거문고와 비파 음악을 연주한다. 동시에 함께 연주하되 소리가 즐비하고 화음을 잘 이루므로 세상에서 최고로 빼어난 음악대라고 평한다.”

그는, 구기 공연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전문 예능인이었다고 합니다. 박뱁새 외에도 기록으로 남아있는 ‘구기 연예인’이 여럿있고, 구한말가지 유행하여 황제의 외국인 손님을 위한 공연도 하였답니다. 천문학자 퍼시펄 로웰의 기행문에 그 기록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귀신 같은 풍자의 달인 재담꾼 김중진

안대회가 쓴 책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은 조수삼이 쓴 <추재기이>라는 책에 등장하는 유명인물 70여 명 중에서 가려 뽑은 인물들의 사연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안대회 교수가 소개한 여러 인물들 중에 재치만점, 풍자의 달인이었던 재담꾼 김중진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익살을 섞어가며 재치 있게 말하는, 재미있는 이야기인 재담은 고담, 덕담, 신소리 등으로 불렸는데, 역시 전문 직업인이 하는 공연 예술로까지 발전하였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개그콘서트'에서 비슷한 장면을 볼 수 있겠지요.

“재담꾼은 전문적으로 재담을 구연하는 직업인을 말한다. 그들은 청중들의 허리가 부러지도록 웃음을 선사하고 그들에게 금전을 받았다.”

김중진의 경우 ‘추재기이’에 이런 소개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말재간이 매우 뛰어나서 마치 귀신이 도와주듯 민첩했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포복절도할 만큼 익살 넘치는 우스개 이야기를 잘했고, 이야기는 단순한 우스개에 머물지 않고 주제가 선명하며 풍자적 의미가 담겨 있다”

그는 단순히 사람을 웃기는 수준을 넘어서서 세태와 인정을 곡진하게 풍자하였으며, 흥미만을 추구하지 않은 수준 높은 재담의 미학을 추구한 거장이었다고 합니다.

안대회 교수가 쓴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의 탁월함은 단순히 <추재기이>에 나오는 인물들을 소개하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그는, 동시대에 기록된 다른 저작들을 샅샅이 검토하여 인물들의 생생한 활약상을 그려내었습니다.

예컨대, 각기 다른 책에서 ‘이야깃주머니 김옹’, ‘오물음’, ‘외무릅’, ‘김중진’으로 표현되었지만 동일인이라는 것을 밝혀내고 각각의 기록을 병렬하여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해줍니다.

책읽어 주는 낭독의 달인, 전기수

이 책에서 흥미를 끄는 또 한명의 인물은 ‘책읽어주는 전기수’입니다. 인기 만점인 낭독의 달인이었다고 합니다. 작년에 지인이 아내에게 책 읽어 주는 이야기를 책으로 냈는데 조선시대에는 그 비슷한 일을 저자거리에서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겁니다.

당시만 해도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었고, 책을 사거나 빌려보는 것도 여간 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책값이 비싸기도 하였고, 책을 사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안대회 교수에 의해 조선을 사로잡은 ‘꾼’으로 뽑힌 직업적 낭독자는 청개천을 따라 장소를 옮겨가며 매일 직업적으로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노인은 전기소설을 잘 읽었기 때문에 몰려들어 구경하는 사람들이 노인 주변을 빙 둘러 에워쌌다. 소설을 읽어가다 몹시 들을 만한, 가장 긴장되고 중요한 대목에 이르면 노인은 갑자기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 사람들이 다음 대목을 듣고 싶어서 앞다투어 돈을 던지면서 ‘이게 바로 돈을 긁어내는 방법이야 !’라고 했다.”

책을 읽어주는 것을 전문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적지 않게 남아있고, 가가호호 다니며 이야기 품을 팔던 이들도 여럿있었다고 합니다. 가락을 얹어 구수하게 소설을 구연하는 기능을 지녀 충남 지정문화재 제39호로 지정 받은 정규헌씨가 바로 그런 전기수의 후예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안대회 교수는 이 외에도 ‘당대를 쥐락펴락한 만능 엔터테이너’ 광대 달문, 깡깡이 소리로 세상만사를 그내 낸 유랑 예인들을 비롯한 흥미로운 인물들을 흔적을 되살려내었습니다.

나무 파는 양반과 시 쓰는 노비

조선 후기에 들어오면 상공업이 발달하고 몰락한 양반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는 교과서에도 등장합니다. 양반 체면에 허드렛일을 할 수 없어 굶어죽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구걸에 나선 양반도 있었다고 하니 나무를 팔며 생계를 유지하던 양반은 형편이 나은 축에 속합니다. 그 중 조수삼이 시로 남긴 양반 나무꾼의 모습을 소개해보면 이렇습니다.

눈보라 거세게 치는
한양의 번화한 거리마다
골목 위아래를 다니며
‘내 나무’하고 외친다

바보 같은 회계 태수 마누라는
틀림없이 비웃겠지만
“송나라 판본 경서 품 안에 가득하다.”

본래 양반이었던 이 시대 걸인 중에는 시를 지어주고 돈을 받는 이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돈을 주고 양반을 사는 이야기는 교과서도 있었지만, 몰락한 양반의 궁핍한 살림살이를  자세히 들여다 본 것은 처음입니다.

이 책에는 몰락한 양반과 대비되는 특별한 인물인 ‘노비 시인 정초부’가 등장합니다. 앞서 소개한 양반은 고서를 품고 나무를 팔러 다녔는데, 천민 나무꾼은 시인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합니다.

명문가 여씨 집의 종이었던 정초부는 주인이 독서하는 소리를 듣고 모두 외워버린 천재였다고 합니다. 주인의 배려로 글을 읽기 시작하자 특출한 재능을 발휘하였는데, 과거시험에 필요한 과시를 잘 지어 주인집 자제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동호의 봄 물결은
쪽빛보다 푸르러
또렷하게 보이는 건
두세 마리 해오라기 !

노 젓는 소리에
새들은 날아가고
노을 아래 산 빛만이
강물 아래 가득하다.

정초부가 남긴 시입니다. 훗날 시로 일가견을 이룬 그는 노비 신분임에도 당대의 명사로 대접 받았고, 꽤 많은 작품을 남겼다고 합니다. 18세기를 대표하는 시인들 작품을 뽑은 <병세집>에는 이름난 사대부들과 나란히 그의 시 열한 수가 실려 있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노비 출신으로 한양에서 스타 강사가 되었던 서당 선생 정학수 그리고 명품과 신상에 미친 서화골동품 애호가들에 관한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아울러 구체적으로 소개하지 못한 이 책 2부에는 김만덕을 비롯한 시대의 벽을 넘었던 당찬 조선 여인들의 삶이 소개되어 있고, 4부에서는 의적, 협객, 조방꾼, 점쟁이와 같은 독특한 인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흥미진진한 이들의 삶을 모두 엿보려면 안대회 교수가 쓴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을 직접 읽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교과서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다루지 않은 날것 그대로인 흥미로운 사람들의 삶을 감칠맛나게 소개한 책입니다.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 - 10점
안대회 지음/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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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 친구세라 2010.10.16 10:26

    와 리뷰 정말 잘 쓰시네요. 덕분에
    좋은책 알고 잘 보고 갑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답글

    • 이윤기 2010.10.17 15:34 신고

      친구세라님 격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참 흥미있는 책인데...오늘은 블로그 방문자가 적어서 많은 분들에게 소개해드리지 못했네요.

  • 용팔 2010.10.17 03:49

    거리를 지나가다가 언뜩 잠시 들른 책방에서 책하나 골라 간단한 내용 소개를 읽는듯한 착각을 하게 하네요.. 잘 보았습니다.

    노을 아래 산 빛만이 강물 아래 가득하다.....
    답글

    • 이윤기 2010.10.17 15:36 신고

      용팔님 오랜만이네요. 너무 멋진 표현으로 격려해주셔서 힘이 납니다. 한국은 여름끝자락이 오래갑니다. 아직 기온이 별로 내려가지 않아 가을느낌이 별로 안난답니다.

      "노을 아래 산 빛만이 강물 아래 가득하다"는 표현에 깊은 가을 분위기가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