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SMALL
[서평] 권용우 에세이 <왜냐고 묻지 마세요>... 서른두살 철 안든 평범한 '게이' 이야기
게이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자신이 '게이'라고 엄마와 형제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에게 커밍아웃을 한 권용우가 던지는 질문입니다.
그는 책을 써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게이'라고 밝혀야 할 만큼 남다른 사명감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더군다나 성소수자 인권운동 같은 것을 하는 활동가도 아닙니다.
혼자서 아무 계획 없이 훌쩍 여행 떠나는 것을 좋아하고, 여전히 운명 같은 사랑이 있다고 믿는 나이 서른둘의 철 안든 평범한 게이인 그는 일반 사람들과 어울려 직장생활을 하다가 2009년 겨울 광주에 게이바를 차려 독립생활을 하고 있는 '그냥 동성애자'입니다.
우리사회의 다수자인 '일반'들의 흔한 관심은 '이반'이라고 부르는 게이의 삶이 도대체 우리와 어떻게 다를까 하는 것일 텐데요.
그런데 <왜냐고 묻지 마세요>(권용우 저, 해울 펴냄)는 거꾸로 성소수자들에게 이성애자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를 기록으로 담았습니다.
이 책을 통해 보는 게이 권용우의 삶은 특별하지만 평범합니다. 제 개인적 경험으로 보면 머리로나마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깨뜨린 것은 1997년 무렵으로 기억됩니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한 달 동안 진행된 제가 일하는 단체의 지도력 육성과정에 참여하였을 때, '친구사이'라는 남성동성애자 인권운동 단체를 처음 알게 됐습니다.
그 때는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 그리고 잘못된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심할 무렵입니다. 동성애=AIDS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시절입니다. 동기생 중 한 명이 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 단체인 '친구사이' 대표를 초청하여 특강을 듣자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기억이 분명치 않은 어떤 이유로 특강은 무산되었고, 처음 제안했던 동기생이 강의가 없는 주말에 이 단체 대표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소식지를 비롯한 단체에서 만든 여러 가지 자료를 잔뜩 들고 온 동기생은 '동성애'는 선택이 아니라 '정체성'이라는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긴 시간 동안 토론을 주고받은 끝에, 마음속 깊은 곳까지 그들의 삶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정체성'이라는 것을 그때부터 적어도 머리로는 이해하였습니다.
동성애는 '선택'이 아닌 개인이 타고나는 '정체성'
어떤 유명 배우가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밝혔을 때도, 또 다른 어떤 배우가 성전환했다는 사실을 밝혔을 때도 제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제 삶과 구체적으로 맞닥뜨린 일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유명 배우들 중에서 몇몇이 커밍아웃을 하였고, 몇 년 전에는 동성애를 다룬 <친구사이>라는 영화가 상영되었으며, 작년에는 동성애를 다룬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드라마 덕분에 더 큰 사회적 반향이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저자인 권용우의 제안 때문입니다. 오마이뉴스와 제 개인 블로그에 서평을 기사를 많이 쓴 탓에 가끔 자신들이 쓴 책을 보내주겠다는 저자와 출판사들이 있습니다. 저자인 권용우도 오마이뉴스와 제 블로그를 보고 '게이'인 자신의 삶을 기록한 책을 자비로 출판했는데, 한 번 읽어보면 좋겠다는 제안을 먼저 하였습니다.
이런 제안을 받는 경우 대부분 거절합니다. 책을 보내주는 대신에 '리뷰' 기사를 써 달라는 '거래조건'이 부담스럽고 싫기 때문입니다. 일주일 넘게 망설이다가 권용우가 쓴 <왜냐고 묻지 마세요>를 읽어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는 꼭 리뷰를 써 달라는 조건을 달지도 않았고, 유명인도 아닌 성적소수자인 저자가 자비 출판으로 찍은 흔치 않은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기대만큼 굉장히 흥미진진한 책이거나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만한 책은 아닙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의미 있는 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기장을 펼쳐보는 것처럼 아주 진솔한 젊은 게이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흥미진진하진 않지만 '게이'의 진솔한 삶 담은 이야기
그들이 사는 삶의 특별함을 엿볼 수 있는 내용도 있지만, '그들도 그냥 우리처럼 이렇게 사는구나'하는 평범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 더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은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과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부모와 가족에게 밝히는 일일 텐데 저자 권용우 역시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내가 언제부터 게이였을 것 같아요? 올해부터? 작년부터? 대학생 때? 고등학생 때? 아니야! 저 때부터라고요! 모르겠어요? 처음부터 엄마가 이런 모습으로 날 낳은 거예요."
"어떤 미친 사람이 이 힘든 길을 선택해요. 난들 이렇게 되고 싶어서 됐냐구요? 이건 선택이 아니에요. 그냥 삶이라고요. 엄마! 바꾸라고만 하지 마세요. 평생을 숨기고 독신주의자인 양 살아도 되는데 왜 내가 굳이 엄마한테 사실을 말했는지 그 진심을 헤아려 주세요."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해보입니다. 세상에는 남들과 다르게 사는, 혹은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자식들을 둔 부모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자식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부모만큼 어려운 경우도 흔치 않을 것입니다.
권용우의 엄마는 아들의 커밍아웃 이후 1년이 넘도록 마치 그런 일이 없었던 사람처럼, 그날 일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것처럼 지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1년도 더 세월이 흐른 후에 식탁에 놓인 맛있는 반찬을 어떻게 만든 거냐고 묻는 아들에게 '마음'을 열어 보입니다.
"장가도 안 갈 놈이 이런 거 정도는 혼자 만들 줄 알아야 해. 이제부터 하나씩 배워봐. 가르쳐줄게."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아들을 받아들이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였던 것 같습니다. 현실에서는 저자인 권용우보다 더 힘든 삶을 살아야 하는 동성애자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들의 삶에는 역시 특별한 아픔이 있습니다.
"인생에 둘도 없는 아군인 배우자와 목숨도 내놓을 수 있는 아이들 대신 우리는 길거리에서 손목 한 번 잡을 수 없는 애인과 종로와 이태원에서만 유효한 몇몇 친구들과 함께 외로움을 이겨내야 하지 않는가."
아주 특별한 삶, 그렇지만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삶'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게이인 그의 삶은 지극히 평범합니다. 그의 연애 이야기도 남자인 그가 자신과 성정체성이 일치하는 '이반' 애인을 만난다는 사실만 빼고 보면, 일반들의 연애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1:1번개를 했는데 정말 마음에 드는 그를 만났습니다. 기분 좋은 시간은 금방 지나가고 아쉬운 마음으로 헤어지면서 다음 만남을 약속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꾹 참고 다음날까지 먼저 그의 연락이 오길 기다렸습니다."
"정말 호감 가는 남자가 나타났다면 우리는 열 일 제쳐두고 그 사람의 연락에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나요? 어제 만난 그 남자에게 하루 종일 연락이 없었나요? 연락을 몇 번 시도해봤지만 좀처럼 연결이 어렵던가요? 그는 다음과 같은 무언의 표현을 당신에게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내 스타일이 아닙니다. 더 이상 날 귀찮게 하지 말아주세요."
어떤가요? 그가 게이라는 선입견을 내려놓고 읽어보면 평범한 젊은이들의 연애 이야기와 별로 다르지 않지요?
이 책에는 그가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일의 목록에 있는 '애인과 커플룩 입기'를 시도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구의 한 놀이동산에서 남자 둘이 커플티를 입고 다니는 '이벤트'입니다. 참 많은 사람들의 눈총을 받았지만, 연애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그들도 원하였다는 점에서는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안타까워하는 그 마음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밤새 춤추고 술 마시고 늦게까지 찜질방에 있다가 주말 밤 늦게 서야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텔레비전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누군가 (인터넷에) 올린 당신 생전의 사진 몇 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나이 서른에 소리 내어 펑펑 울었습니다….나중에 꼭 다른 사람들처럼 봉하마을도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나도 피켓 같은 거 들고 서 있으면 동네 할아버지 같은 당신하고 사진 한 번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내일도 난 언제나처럼 아침 7시에 잠을 깨서 씻고 가방을 싸고 회사에 가기 위해 지하철에 오르겠지요. 그렇게 이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거짓말처럼 다시 잘도 굴러가겠지요. 안녕, 노무현. 나의 유일한 대통령은 당신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나이 서른둘에, 게이로 살아가는 젊은 청춘의 삶은 평범해 보이지만 여전히 평범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세상은 소수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폭력적입니다. 세상의 편견과 차갑고 가혹한 장벽들이 무수히 많이 남아있습니다.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싶은 외침... '우린 늘 있어왔습니다'
책에는 그가 세상을 향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일반'들을 향해 외치고 싶은 아우성들도 담겨 있습니다.
"동성애를 호의적으로 보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당신의 선택입니다만, 게이들은 당신에게 '더럽다', '혐오스럽다' 등의 이유 없는 비난을 들어야 할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당신이 잊고 있지만 변하지 않는 중요한 사실은 게이가…갑자기 나타난 괴생명체가 아닌, 여러분의 형제이자 친구라는 점입니다."
"자신과 성적취향이 다른 누군가를 일상에서 마주치는 일은 충분히 당황스러울 수 있고, 때로는 불쾌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 인정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동의와 상관없이 게이는 전부터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듯 항상 일정한 비율로 우리 주변을 채우고 있습니다."
그는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권리를 보편적으로 인정하고 그런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자신처럼 당당하게 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세상살이에는 많은 아픔이 있지만 세상이 그래도 아름다웠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동성애자에게도 이성애자에게도 치열하게 살 만한 가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게이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자신이 '게이'라고 엄마와 형제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에게 커밍아웃을 한 권용우가 던지는 질문입니다.
그는 책을 써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게이'라고 밝혀야 할 만큼 남다른 사명감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더군다나 성소수자 인권운동 같은 것을 하는 활동가도 아닙니다.
혼자서 아무 계획 없이 훌쩍 여행 떠나는 것을 좋아하고, 여전히 운명 같은 사랑이 있다고 믿는 나이 서른둘의 철 안든 평범한 게이인 그는 일반 사람들과 어울려 직장생활을 하다가 2009년 겨울 광주에 게이바를 차려 독립생활을 하고 있는 '그냥 동성애자'입니다.
우리사회의 다수자인 '일반'들의 흔한 관심은 '이반'이라고 부르는 게이의 삶이 도대체 우리와 어떻게 다를까 하는 것일 텐데요.
그런데 <왜냐고 묻지 마세요>(권용우 저, 해울 펴냄)는 거꾸로 성소수자들에게 이성애자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를 기록으로 담았습니다.
이 책을 통해 보는 게이 권용우의 삶은 특별하지만 평범합니다. 제 개인적 경험으로 보면 머리로나마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깨뜨린 것은 1997년 무렵으로 기억됩니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한 달 동안 진행된 제가 일하는 단체의 지도력 육성과정에 참여하였을 때, '친구사이'라는 남성동성애자 인권운동 단체를 처음 알게 됐습니다.
그 때는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 그리고 잘못된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심할 무렵입니다. 동성애=AIDS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시절입니다. 동기생 중 한 명이 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 단체인 '친구사이' 대표를 초청하여 특강을 듣자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기억이 분명치 않은 어떤 이유로 특강은 무산되었고, 처음 제안했던 동기생이 강의가 없는 주말에 이 단체 대표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소식지를 비롯한 단체에서 만든 여러 가지 자료를 잔뜩 들고 온 동기생은 '동성애'는 선택이 아니라 '정체성'이라는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긴 시간 동안 토론을 주고받은 끝에, 마음속 깊은 곳까지 그들의 삶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정체성'이라는 것을 그때부터 적어도 머리로는 이해하였습니다.
동성애는 '선택'이 아닌 개인이 타고나는 '정체성'
어떤 유명 배우가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밝혔을 때도, 또 다른 어떤 배우가 성전환했다는 사실을 밝혔을 때도 제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제 삶과 구체적으로 맞닥뜨린 일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유명 배우들 중에서 몇몇이 커밍아웃을 하였고, 몇 년 전에는 동성애를 다룬 <친구사이>라는 영화가 상영되었으며, 작년에는 동성애를 다룬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드라마 덕분에 더 큰 사회적 반향이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저자인 권용우의 제안 때문입니다. 오마이뉴스와 제 개인 블로그에 서평을 기사를 많이 쓴 탓에 가끔 자신들이 쓴 책을 보내주겠다는 저자와 출판사들이 있습니다. 저자인 권용우도 오마이뉴스와 제 블로그를 보고 '게이'인 자신의 삶을 기록한 책을 자비로 출판했는데, 한 번 읽어보면 좋겠다는 제안을 먼저 하였습니다.
이런 제안을 받는 경우 대부분 거절합니다. 책을 보내주는 대신에 '리뷰' 기사를 써 달라는 '거래조건'이 부담스럽고 싫기 때문입니다. 일주일 넘게 망설이다가 권용우가 쓴 <왜냐고 묻지 마세요>를 읽어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는 꼭 리뷰를 써 달라는 조건을 달지도 않았고, 유명인도 아닌 성적소수자인 저자가 자비 출판으로 찍은 흔치 않은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기대만큼 굉장히 흥미진진한 책이거나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만한 책은 아닙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의미 있는 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기장을 펼쳐보는 것처럼 아주 진솔한 젊은 게이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흥미진진하진 않지만 '게이'의 진솔한 삶 담은 이야기
그들이 사는 삶의 특별함을 엿볼 수 있는 내용도 있지만, '그들도 그냥 우리처럼 이렇게 사는구나'하는 평범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 더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은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과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부모와 가족에게 밝히는 일일 텐데 저자 권용우 역시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내가 언제부터 게이였을 것 같아요? 올해부터? 작년부터? 대학생 때? 고등학생 때? 아니야! 저 때부터라고요! 모르겠어요? 처음부터 엄마가 이런 모습으로 날 낳은 거예요."
"어떤 미친 사람이 이 힘든 길을 선택해요. 난들 이렇게 되고 싶어서 됐냐구요? 이건 선택이 아니에요. 그냥 삶이라고요. 엄마! 바꾸라고만 하지 마세요. 평생을 숨기고 독신주의자인 양 살아도 되는데 왜 내가 굳이 엄마한테 사실을 말했는지 그 진심을 헤아려 주세요."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해보입니다. 세상에는 남들과 다르게 사는, 혹은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자식들을 둔 부모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자식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부모만큼 어려운 경우도 흔치 않을 것입니다.
권용우의 엄마는 아들의 커밍아웃 이후 1년이 넘도록 마치 그런 일이 없었던 사람처럼, 그날 일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것처럼 지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1년도 더 세월이 흐른 후에 식탁에 놓인 맛있는 반찬을 어떻게 만든 거냐고 묻는 아들에게 '마음'을 열어 보입니다.
"장가도 안 갈 놈이 이런 거 정도는 혼자 만들 줄 알아야 해. 이제부터 하나씩 배워봐. 가르쳐줄게."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아들을 받아들이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였던 것 같습니다. 현실에서는 저자인 권용우보다 더 힘든 삶을 살아야 하는 동성애자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들의 삶에는 역시 특별한 아픔이 있습니다.
"인생에 둘도 없는 아군인 배우자와 목숨도 내놓을 수 있는 아이들 대신 우리는 길거리에서 손목 한 번 잡을 수 없는 애인과 종로와 이태원에서만 유효한 몇몇 친구들과 함께 외로움을 이겨내야 하지 않는가."
아주 특별한 삶, 그렇지만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삶'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게이인 그의 삶은 지극히 평범합니다. 그의 연애 이야기도 남자인 그가 자신과 성정체성이 일치하는 '이반' 애인을 만난다는 사실만 빼고 보면, 일반들의 연애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1:1번개를 했는데 정말 마음에 드는 그를 만났습니다. 기분 좋은 시간은 금방 지나가고 아쉬운 마음으로 헤어지면서 다음 만남을 약속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꾹 참고 다음날까지 먼저 그의 연락이 오길 기다렸습니다."
"정말 호감 가는 남자가 나타났다면 우리는 열 일 제쳐두고 그 사람의 연락에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나요? 어제 만난 그 남자에게 하루 종일 연락이 없었나요? 연락을 몇 번 시도해봤지만 좀처럼 연결이 어렵던가요? 그는 다음과 같은 무언의 표현을 당신에게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내 스타일이 아닙니다. 더 이상 날 귀찮게 하지 말아주세요."
어떤가요? 그가 게이라는 선입견을 내려놓고 읽어보면 평범한 젊은이들의 연애 이야기와 별로 다르지 않지요?
이 책에는 그가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일의 목록에 있는 '애인과 커플룩 입기'를 시도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구의 한 놀이동산에서 남자 둘이 커플티를 입고 다니는 '이벤트'입니다. 참 많은 사람들의 눈총을 받았지만, 연애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그들도 원하였다는 점에서는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안타까워하는 그 마음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밤새 춤추고 술 마시고 늦게까지 찜질방에 있다가 주말 밤 늦게 서야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텔레비전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누군가 (인터넷에) 올린 당신 생전의 사진 몇 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나이 서른에 소리 내어 펑펑 울었습니다….나중에 꼭 다른 사람들처럼 봉하마을도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나도 피켓 같은 거 들고 서 있으면 동네 할아버지 같은 당신하고 사진 한 번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내일도 난 언제나처럼 아침 7시에 잠을 깨서 씻고 가방을 싸고 회사에 가기 위해 지하철에 오르겠지요. 그렇게 이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거짓말처럼 다시 잘도 굴러가겠지요. 안녕, 노무현. 나의 유일한 대통령은 당신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나이 서른둘에, 게이로 살아가는 젊은 청춘의 삶은 평범해 보이지만 여전히 평범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세상은 소수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폭력적입니다. 세상의 편견과 차갑고 가혹한 장벽들이 무수히 많이 남아있습니다.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싶은 외침... '우린 늘 있어왔습니다'
책에는 그가 세상을 향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일반'들을 향해 외치고 싶은 아우성들도 담겨 있습니다.
"동성애를 호의적으로 보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당신의 선택입니다만, 게이들은 당신에게 '더럽다', '혐오스럽다' 등의 이유 없는 비난을 들어야 할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당신이 잊고 있지만 변하지 않는 중요한 사실은 게이가…갑자기 나타난 괴생명체가 아닌, 여러분의 형제이자 친구라는 점입니다."
"자신과 성적취향이 다른 누군가를 일상에서 마주치는 일은 충분히 당황스러울 수 있고, 때로는 불쾌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 인정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동의와 상관없이 게이는 전부터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듯 항상 일정한 비율로 우리 주변을 채우고 있습니다."
그는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권리를 보편적으로 인정하고 그런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자신처럼 당당하게 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세상살이에는 많은 아픔이 있지만 세상이 그래도 아름다웠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동성애자에게도 이성애자에게도 치열하게 살 만한 가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