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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교육, 대안교육

비싼 교재 대신 아이들 말 좀 귀담아 들어주세요.

by 이윤기 2011.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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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하이타니 겐지로의 <유치원 일기>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되신 일본 최고의 아동문학가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이 새로운 교육을 꿈꾸는 선생님들과 함께 일본 고베에 ‘태양의 아이 유치원’을 만들었습니다.

<하이타니 겐지로의 유치원 일기>는 태양의 아이 유치원을 설립하는 과정과 그후 2년을 보내는 동안 설립 동인들과 교사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일어난 일을 기록한 일기입니다.

태양의 아이 유치원을 설립한 사람들은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을 포함하여 어린이 문학을 전공하는 작가들이자 학교 교육의 틀을 벗어난 교사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분들입니다.

“29년의 베테랑 유치원 선생님인 도조 요시코, <1학년 1반 선생님 있잖아요>의 저자이자 초등학교 교사인 가시마 가즈오, 역시 초등학교 교사이며 <태양의 바우기>를 쓴 시시모토 신이치, 화가 츠보야 레이코를 말한다.”

츠보야 레이코는 하이타니 선생님의 대표작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에 나오는 고다니 선생님의 실제 모델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분들이 모여 아이들이 행복한 유치원을 직접 만들어 보겠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태양의 아이 유치원’을 설립하였다고 합니다.

태양의 아이 유치원이 설립 인가를 받았을 때, 0세에서 6세까지의 원아 120명과 15명의 선생님 일할 수 있는 규모였다고 합니다. 다음에 소개하는 글은 태양의 아이 유치원에서 교사를 선발하기 위한 광고 문구입니다.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예술가로서의 어린이, 깊은 인간애를 체득한 생활인으로서의 어린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이 소중한 생명들이 표현하는 기쁨과 슬픔을 공유함으로서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인간 집단을 창조한다.” (본문 중에서)

어린이를 중심으로 인간적인 공동체를 만들고 대등하고 자유로우며 낙천적인 놀이터를 만들 교사를 찾는다는 광고입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민들레’와 같은 대안교육 잡지에서 이와 비슷한 내용의 교사 구인 광고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어린이를 중심으로 하는 자유로우며 낙천적인 놀이터

공동육아 어린이집이나 대안학교 중에 어린이를 중심에 두는 교육을 지향하는 곳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태양의 아이 유치원’과 같은 어린이의 행복한 삶을 중심에 두는 교육을 하는 곳은 우리 주변에 그리 흔치 않습니다.

태양의 아이 유치원은 1983년에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국가와 지방 자치단체의 보조금과 차입금을 제외한 설립기금은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의 베스트셀러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와 <태양의 아이>인세로 충당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태양의 아이 유치원은 독자들이 지어 주었다”고 이야기 하였답니다.

<유치원 일기>에 묘사된 ‘태양의 아이 유치원’ 모습은 이렇습니다.

“유치원의 건물 벽은 거친 콘크리트 그대로였다. 현관에서 숙 튀어나온 덩굴시렁의 포도나무는 그대로 난간이 되고 울타리가 되었다. 놀이기구는 복합 놀이기구로, 모두 직접 만들었다. 이것도 아주 훌륭한 교육기자재이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이것저것 마음대로 붙였다 뗐다 할 수도 있고 여러모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본문 중에서)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은 분홍색 페인트를 칠하고 스누피 그림을 그려 넣은 후에 프라스틱 놀이기구를 설치한 흔해 빠진 유치원 건물을 일컬어 ‘아이들을 얕잡아 본 건물’이라고 합니다. 창조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건물이라는 것이지요.

“유치원은 아이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어른들이 멋대로 생각한 디자인을 들이밀 것이 아니라 되도록 자연에 가까운 재료를 아이들에게 주어야 한다. 그 재료를 다루거나 표현하는 것은 아이들이어야 한다. 또 그랬을 때 아이들의 창조성이 자랄 수 있다.” (본문 중에서)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유치원 건물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작품을 창작하듯이 고뇌하고 희열을 느끼며 건물을 지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유치원 건물만은 아닙니다.

유치원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은 급식

벌써 20년 전에 시작한 유치원인데, 유치원에서 이루어지는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로 급식을 꼽고 있습니다.

“필수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는 지혜, 영양소를 파괴하지 않고 조리하는 지혜, 식품첨가물로부터 건강을 지키는 지혜, 몸에 해로운 가공식품을 골라내는 지혜 등 일일이 꼽자면 끝이 없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음식 하나하나가 생명체라는 점을 가르치기 위해서라도 급식은 중요한 교육 실천 과제라고 생각한다.” (분문 중에서)

이런 점에서 보면, 최근 우리나라 교육현장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무상급식만으로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너무나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먹거리는 생명이다. 생명이 없는 먹거리는 하나도 없다. 그 생명을 먹는다고 실감하고 인식할 때, 인간은 겸허해지고 사치를 죄로 여기는 원점에 서게 된다.”

급식을 통해 아이들에게 음식이 생명체라는 것을 가르칠 수 있는 그런 교육은 언제나 가능할까요? 급식을 통해 인간이 겸허해지고 사치를 죄로 여기는 원점에 서게 되는 그런 교육이 가능할까요?

<유치원 일기>에 나와 있는 태양의 아이 유치원 교사 연수 기록 중에 눈에 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그림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대목인데요. 바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현재 당신이 가지고 있는 미의식을 모조리 버리지 않으면 아이들의 표현을 이해할 수 없다.”

어른의 눈으로, 교사의 눈으로 아이들을 재단하지 말라는 경구로 들립니다. 아이들의 그림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생각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아울러 유치원 교사가 가져야 할 ‘덕목’ 중의 하나는 기다림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이들에게 화를 내기 전에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들이 마음을 열어줄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려야 한다. 나는 젊은 선생님들이 ‘기다림’이라는 호흡을 배웠으면 하고 늘 생각한다. ‘기다림’이 몸에 배지 않으면 아무래도 아이들에게 명령하거나 아이들을 억누르게 되기 때문이다.” (분문 중에서)

일주일 내내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이가 울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아이를 보면서 선생님은 ‘기다림’이라는 호흡을 배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주일 내내 울음을 그치지 않은 아이에게서 기다림을 배운 것처럼 교사들은 많은 것을 아이들에게서 배웁니다.

유치원 교사가 갖추어야 할 덕목, 기다림

<유치원 일기>에는 태양의 아이 유치원에서 일하는 선생님들이 쓴 글이 자주 그리고 많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아이들을 통해서 배우고 깨달음을 얻은 이야기들입니다.

“나는 아이들 덕분에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다름 아닌 아이들한테서 배우고 있습니다.” (본문 중에서)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배우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믿는 마음이 반드시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교사로서 그리고 작가로서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이 아이들을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의 표현을 소중히 여기고 거기에서 배우려고 노력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유치원 일기>에서도 아이들의 말과 표현에 주목하는 사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다음은 비가 오는 날 한 아이가 달팽이를 보고 한 말이라고 합니다.

“달팽이는 좋겠다. 비를 좋아하니까 금방 이사할 수 있잖아”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은 “이것은 달팽이의 형태와 생태를 훌륭하게 이미지화한 말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뛰어난 시인과 아이들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유치원 일기>에는 도조 원장선생님이 유치원에 입학 한 훙 잘 적응하지 못해서 내내 울기만 하던 데쓰라는 아이가 두 달 동안 한 말을 모두 기록해놓은 사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만 소개해 보겠습니다.

“왜 밖에 나가면 안 돼? 밖은 안 위험해, 데쓰 혼자 놀 수 있어”

“데쓰, 주사를 보니까 팔이 아파서 병에 걸렸어”

“왜 주사를 놓는 거야 병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왜 오늘은 주사를 놓는거야? 다들 울잖아”

“아기는 왜 이빨이 없어? 치과에 가야되겠다.”

이런 표현들입니다. 이런 표현은 데쓰라는 아이만 하는 것이 아니며 태양의아이 유치원 아이들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의 많은 아이들이 이런 기발하고 재미있는 말들을 쏟아냅니다.

문제는 이런 말을 키워주는 어른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입에서 감탄스러운 말이 나올 때, 아이들의 말에 놀라고 그것을 키워주려는 어른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본문 중에서)

아이들에게 있어 말은 영혼이다, 아이들 말에 주목하라

태양의 아이 유치원에도 아이들의 말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은 없지만, 선생님들이 아이들과의 대화를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긴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말에서 탄생한 보물들이 바로 시가 된다는 것입니다.

냄새는
어떻게 몸에 들어올까?
(3세, 쓰야마 데쓰)

오는 비는
위에서 밑에까지
붙어 있다.

(2세, 사이토 다쿠)

있잖아,
코끼리 코딱지는
어디에 있어?

(3세, 노보리 신야)

하나님 나라에
눈이 있어요?
비도 있어요?
바람도 있어요?
해님도 보이는 거예요?

(6세, 호리 마사미)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교육이란 아이들의 말을 소중히 여기는 교육이라고 강조합니다. 아이들은 진지한 삶을 영위하는 가운데 말을 획득하고, 말을 획득함으로써 더 훌륭한 인간으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있어 말은 영혼이라 합니다. 여전히 우리나라 유아교육은 어려서부터 아이들의 말을 틀어막는 대신 혼자서 책을 읽도록 글자를 일찍 가르치는데 치중하고 있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는 교육인데도 말입니다.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은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를 비롯한 여러 작품을 통해서 ‘아이들에게서 배운다’는 이야기를 강조 하였습니다. 여러 작품을 읽어보았지만, <유치원 일기>야 말로 어른들이,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배운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 사례들을 충분히 담아놓은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이들과 만나는 세상 모든 선생님들과 아이를 낳고 기르는 부모님들, 자유로운 교육,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을 바라는 어른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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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타니 겐지로의 유치원 일기 - 10점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양철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