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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생명, 평화

"샬람, 샬람, 앗살라 말라이쿰"

by 이윤기 2008.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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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신이 쓴 <평화는 나의 여행>

"샬람, 샬람, 앗살라 말라이쿰",
말뜻을 몰라도 아름답게 들리는 이 말은 "평화를 평화를 부디 당신에게 평화를"이라는 이라크 말 입니다. 세상에는 평화를 위해 목숨 거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세상에는 전쟁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이상하게 평화를 위해서 일한다면 그 위험한 일을 왜 하냐고 해요. 참 이상하죠? 전쟁을 위해 죽는 것 보다는 평화를 위해 살다가 평화를 위해 죽는 게 더 멋지지 않나요?"(본문 중에서)

<평화는 나의 여행>을 쓴 임영신이 이라크에서 만난 '평화여행자 친구 중 한 명인 이탈리아 아가씨 '시모나'의 이야기 입니다. 평화를 위해 일 하는 것은 전쟁을 위해서 일하는 것만큼 위험하지만, 힘겨운 곳에 있는 사람들이 사람을 깊이 사랑해주는 매력 때문에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맞서 반대운동을 조직하였던 '이라크반전평화팀'을 기억하나요? <평화는 나의 여행>을 쓴 임영신은 2003년 한국이라크반전평화팀의 일원으로 이라크에서 평화의 증인이 되고자 나섰던 이 입니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인 임영신은 2003년 미국의 침공을 받은 이라크를 시작으로 지난 4년 동안 40여 차례에 걸쳐 20개국을 넘나들며 평화를 배우고 평화를 전하는 '평화여행자'가 되었습니다.

이 책은 지은이 임영신이 한국이라크반전평화팀의 일원으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 보름 전부터 침공직전까지 그가 직접 본 이라크의 모습과 이라크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에 관한 기록입니다. 이후 임영신이 바그다드가 함락된 직후 다시 이라크로 달려가 부시의 종전선언이 이루어진 2003년 5월 1일까지 이라크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과 만난 사람들에 대하여 적은 기록이 이 책의 1부 입니다.

이라크에서 임영신은 전쟁을 앞둔 '수아드'를 비롯한 이라크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녀가 2003년 만난 이라크사람들은 아직 미국의 침공이 전이지만, 이미 1991년 걸프전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전쟁과 다름없는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1991년 걸프전 이후 경제봉쇄로 여성들은 영양결핍과 빈혈에 시달리고 이라크 아이들의 25%가 2.5kg 미만의 저체중아로 태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들도 달마다 5~6천 명씩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수십만 명의 아이들이 간단한 약이 없어 죽어갔고, 걸프전 폭격의 결과로 암과 백혈병, 기형으로 무거운 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본문 중에서)

유니세프의 보고서에 따르면 걸프전 이후 12년 간 매달 5천 명의 이라크 아이들이 부족한 의료장비와 의약품이 없어서 죽어갔다고 합니다. 돈이 없어서 죽어간 것이 아니라 미국의 경제제재로 의료 장비를 구할 수 없어서, 백신 같은 꼭 필요한 약을 구하지 못해 아이들이 죽었다고 합니다.

이라크 사람 '수아드'는 전쟁은 두렵지 않다고 합니다. 전쟁은 두려워한다고 오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랍니다. 그녀가 전쟁보다도 더 아픈 것은 아이들에게 전쟁의 아픔을 고스란히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전쟁에 빼앗겨야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녀가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전쟁이 끝나고 올 보이지 않는 죽음들"이라고 합니다.

폭탄이 쏟아진다 해도 차를 마시며...

전쟁은 두려워한다고 안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임영신이 모술에서 만난 부부는 전쟁보다 강한 일상을 보여줍니다.

"1991년 걸프전 때도 그랬어요. 전투기가 저 강 위로 날아가는 걸 보면서, 여기 이 강가에서 이렇게 차를 마셨어요. 다시 전쟁이 온다 해도, 폭탄이 쏟아진다 해도 이 강가에 와서 물을 끓이고 차를 마실 거예요. 전쟁이 우리의 일상을 바꾸어 놓을 수 없다는 걸 그들이 볼 수 있도록. 우리가 전쟁보다 강한 일상을 가졌다는 걸 볼 수 있도록."(본문 중에서)

그들이 전쟁을 앞두고 일상처럼 살아야하는 또 다른 이유는 떠날 곳이 없기 때문이다. 도시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 바로 광야로 나가야 한다. 사람들은 떠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떠날 곳이 없으며 결국 고향에서, 이라크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폭탄이 쏟아진다 해도 차를 마시며, 전쟁을 일상처럼 여기고 사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의 두 배에 이르는 면적을 가진 이라크, 그러나 사람이 살수 있는 땅은 티그리스 강 주변으로 형성된 도시 밖에 없습니다. 우리처럼 도시의 폭격을 피해 시골로 피난을 간다는 일은 그들에게 물과 숲과 집을 버리고 사막을 향해 나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본문 중에서)

우리나라에는 아랍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들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이 있습니다. 저도 어렸을 적에 이라크와 아랍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많은 아랍 사람들이 조국을 버리고 도망을 갈 때,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전쟁 중인 조국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저는 훨씬 자라서 어른이 되고나서야 그런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군의 폭격이 시작되고 나서 "일주일 간 요르단을 통해 5천여 명의 이라크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폭격 속의 조국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지난 월요일에는 무려 백 대의 차가 이라크를 향해 떠났다"고 합니다. 그들은 비겁하지도 겁쟁이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사랑하는 가족들을 향해 폭격속의 가족들을 향해 돌아간 것 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임영신은 "바그다드가 함락되고 구호단체들이 요르단에 머물며 전쟁이 끝나지 않은 이라크에 들어오지 않아, 총에 맞고 파편에 맞은 사람들로 가득한 병원에는 마취제가 없어 그냥 팔과 다리를 잘라내는 수술을 하고 전기도, 수도도, 소독장비나 수술 장비도 없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풀지도 못하고 현관에 두었던 여행 가방을 챙겨들고 곧바로 다시 이라크로 향합니다.

요르단을 통해 이라크 국경을 넘자 그녀를 맞이해 주는 것은 환히 웃던 이라크 사람들이 아니라 승자의 인사를 건네는 미군 탱크와 검문검색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병원으로 실려 오는 시체와 잘린 다리를 가방에 들고 들어서는 사람을, 총에 맞아 온몸이 피범벅이 된 채 들어서는 소녀를, 머리가 깨져 뇌가 흘러나오는 참혹한 모습"과 마주하게 됩니다.

평화를 위해 일하려면 죽음을 볼 수 있어야

그리고 또 참혹한 죽음의 현장에서 그들을 돕고 있는 의사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독자들은 미군이 점령한 바그다드에서 임영신을 통해 국제구호단체 조차도 접근하지 않는 전쟁 한 가운데서 사람들을 돕는 전쟁의사 '자크'를 만나게 됩니다.

"평화를 위해 일하려면 죽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죽음을, 죽어가는 자를 볼 수 있는 곳에 서 있어야 살릴 수도 있는 거니까요"(본문 중에서)

그는 1967년 베트남 전쟁부터 지난 37년간 한 해도 그치지 않고 해마다 분쟁지역을 찾아다닌 '전쟁 의사'입니다. 그의 오른손엔 검지가 없습니다. 전쟁터에서 수술을 하다가 총에 맞아 손가락을 잘라냈다고 합니다. 그는 늘 전쟁의 한 가운데 서있는 의사였던 것입니다.

모두 3부로 씌어진 <평화는 나의 여행> 2부는 미군이 이라크를 점령한 후 일본에서 출항하는 '평화를 여행하는 배' 피스보트를 타고 떠난 여정에 관한 기록입니다. 베트남, 인도, 스리랑카, 에리트레아, 터키로 이어지는 한 달여간의 피스보트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피스보트 프로그램, 반전 평화행동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일본 평화운동가들이 만든 피스보트는 한 해에 세 바퀴씩 지구를 일주하고 남한과 북한을 다녀오는 평화여행이자 평화운동입니다. 수백 명의 승객과 게스트 자원봉사들 등이 함께 여행하며 평화와 전쟁의 이면을 보여주는 분쟁지역 방문, 시위, 토론, 세미나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평화는 결국 나의 선택

독자들은 임영신을 통해 올리버 스톤의 영화 <하늘과 땅>의 원작자인 베트남 여성 랠리 헤이슬립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평화는 이렇습니다.

"전쟁을 위해 일한다면 전쟁이 여러분의 미래가 될 것입니다."
"평화를 위해 일한다면 평화가 여러분의 미래가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나는 평화를 원한다고, 그러나 그들이 평화를 위한 선택과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전쟁과 죽임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제 3부는 레바논, 스위스, 프랑스, 독일, 필리핀으로 떠난 평화여행 이야기입니다. 분쟁지역, 폭탄이 퍼붓는 곳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그리고 공동체에서 자신의 내면에서 깊은 성찰을 통해 평화를 찾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이야기 입니다. 평화를 위한 거래 '공정무역'은 삶의 현장에서 매일 매일 평화를 위한 선택을 하는 거라고 알려줍니다.

<평화는 나의 여행>을 통해 임영신은 '평화로 가는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평화가 바로 길'이라고 거듭 이야기 합니다. 책을 시작하는 첫 페이지에 실린, 그녀에게 '삶으로 말씀으로 평화를 가르쳐 주신' 신영복 선생님이 쓴 "평화로 가는 길은 없습니다. 평화가 곧 길입니다"라고 씌어진 붓글씨 인쇄본은 독자들에게 주는 덤 입니다.

<평화는 나의 여행>을 읽는 동안 그녀를 통해, 평화를 위해 목숨 거는 이탈리아 아가씨 시모나, 37년간 전쟁의 한 가운데를 지킨 전쟁의사 자크, 해군제독출신의 평화운동가 인도의 람다스, 베트남의 랠리 헤이슬립, 일본인 노나카씨와 같은 세계 곳곳에서 일 하는 평화운동가들과 만나는 기쁨을 누일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책의 끝머리에는 이 땅에 사는 젊은이들에게 평화를 경험하는 '평화여행'을 권면하는 임영신의 바람이 담긴 '평화여행 길라잡이'가 실려 있습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아이들에게 평화를 가르치고, 평화를 원한다면 아이들과 평화를 노래해야 합니다. 평화를 위한 선택과 행동은 결국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평화는 나의 여행/ 임영신지음 - 소나무/ 292쪽, 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