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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생명, 평화

탱크와 미사일에 맞선 짱돌

by 이윤기 2008.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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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눈물>은 수아드 아미리를 비롯한 9명의 팔레스타인 현지 작가들이 쓴 11편의 글을 모아 놓은 산문집이다.

이 책에 나오는 9명은 모두 낯선 이름의 작가들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을 기획한 팔레스타인의 시인 자카리아 무함마드 역시 처음 듣는 이름이다.


조 사코라는 미국 작가가 쓴 <팔레스타인>이라는 두껍고 무거운 흑백영화 같은 만화책을 읽어보기 전까지 팔레스타인은 한 번도 내 관심 영역에 들어오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을 읽고 난후 '팔레스타인'이라는 제목만보고 <팔레스타인의 눈물>을 꼭 읽어보고 싶은 마음을 누를 수 없었다.


조금씩 관심이 생겨나기 시작하자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동티모르나 이라크 그리고 북한만큼 많은 자주 팔레스타인을 이야기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참 많은 사람들이 예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팔레스타인에서 어떤 일어 벌어지고 있는지 정말 모른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팔레스타인의 눈물>은 문학적으로 성공을 거둔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해서 소개한 책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소개되었다. 이 책을 엮은이는 팔레스타인 시인 자카리아 무함마드와 우리나라 소설가 오수연이다.

오수연은 2003년 '민족문학작가회의'를 통해 이라크 전쟁취재 작가로 파견되어,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을 다녀왔으며, 그 때 자카리아 무함마드를 만난 인연이 발전되어 국내에 이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오수연과 자카리아 무함마드를 비롯한 한국과 팔레스타인의 예술가들 그리고 평화운동가들이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라는 모임을 만들어 문화적으로 두 나라를 잇는 일을 벌이고 있다고 하는데, <팔레스타인의 눈물>은 두 나라를 잇는 첫 번째 다리가 되는 책인 셈이다.

가물거리는 희망에 대한 집념으로 쓴 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20세기에 시작되어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지속되는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점령은 마치 1세기 전에 있었던 일본에 의한 조선 병탄을 현재화시켜서 보는 듯한 끔찍함을 지울 수 없다.

"우리가 흔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라고 알고 있는 사태는 분쟁이 아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막강 이스라엘 군대의 꾸준한 군사작전 대상은 고작해야 구식 총을 쏘는 민병대나 돌 던지는 소년들이며, 그보다는 그저 재수 없는 민간인들이다.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자기 집에 앉아 있다가, 또는 길바닥에서 난데없이 폭탄이나 총알을 맞는 보통사람들이다. 거기서 날마다 벌어지고 있는 일은 싸움이 아니라 학살이다."(옮긴이의 말 중에서)

1948년 5월 14일 영국과 미국, 소련의 인정을 받아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건설하고, 같은 해 주변 아랍국가들과 전쟁을 벌여, 이스라엘은 전 팔레스타인 지역의 78%를 장악하고, 전쟁동안 주변 아랍국가로 피난한 90만 명의 팔레스타인은 거주 아랍인들의 토지를 몰수하고 그들이 돌아올 수 없도록 만든다.

1950년에 만들어진 이른바 '부재자 재산법'은 피난한 아랍인들의 토지를 몰수하고, 동시에 주변아랍국가에 거주하였거나, 이유를 불문하고 본인의 거주지를 떠나있었던 모든 사람을 부재자로 분류하고 부재자의 재산을 점유자에게 귀속시킨다. 이후 이는 이스라엘 정부가 점유자 소유의 토지를 매입하는 근거가 된다.

1967년 6월 이스라엘이 일으킨 두 번째 중동전쟁을 통해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대상이 되는 동예루살렘, 서안, 가자 지역을 점령한다. 국제사법재판소에 의해 국제법상 불법 점령지로 규정된 이 땅은 전 팔레스타인 영토의 22%에 해당되며, 이때 또 다시 43만 4천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쫓겨나 요르단 등지로 이주한다. 그리고 이 때 피난가지 않은 100만 명 정도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 점령 하에서 생활하게 된다.

"갑자기 우리가 살아온 땅이 분할되었고 우리는 분할된 땅에 갇혔다. 갑자기 패배라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졌고 우리는 패배자가 되었다. 우리는 고국에 산과 들처럼 자연스럽게 존재해왔다. 그러나 그때부터 우리는 우리 자신을 패배자로, 고국을 '점령지역'이라고 불러야 했다. 우리는 땅과 우리의 지위를 한꺼번에 잃어버렸다."(본문 중에서)

<팔레스타인의 눈물>에서 만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이들 점령지에서 일어나는 웃지 못 할 황당한 일들과 이스라엘 당국에 의해 자행되는 고문과 살인, 파괴와 같은 끔찍한 이야기들 그리고 1948년 전쟁 당시에 팔레스타인을 떠나 있다가 1950년 사이에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그들이 어렵게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와서도 여전히 이방인으로 살아가야하는 아픔을 담아놓은 책이다.

<팔레스타인의 눈물>을 펼치면 처음 만나는 이야기는 작가이며 건축학자인 수아드 아미리가 쓴 '개 같은 인생'이라는 글이다. 예루살렘 여권을 가진 개 '누라' 보다 못한 자신의 인생을 통해 이스라엘 점령 하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신분증명서에 의해서 겪고 있는 차별과 시민권이 어떻게 유린당하고 있는지를 담담하게 풀어놓고 있다.

사람보다 나은 예루살렘 여권을 가진 개

'심문'은 이스라엘 저항군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 받은 소설가 아이샤 오디가 이스라엘 당국에 체포된 자신이 심문 받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쓴 글이다. 갖은 구타와 고문, 동지들에 대한 회유와 협박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과정에서 동지를 배신하지 않고 저항하는 저항군 투사가 겪게 되는 심리적인 갈등과 나약함에 무너질 것 같은 위태로운 마음이 섬세하게 그리고 현실처럼 드러나 있다.

일제 감옥에서 민주화운동 기간에 국가정보기관에 있었던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진 구타, 고문, 회유, 협박과 너무도 흡사하여 더 마음이 아팠다.

시인인 주하이르 아부 샤이브가 쓴 '집을 지키는 선인장을 남겨두고'에는 팔레스타인이 누구 땅 인지를 알려주는 대목이 나온다. 마치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다투는 두 여인을 재판한 '솔로몬 왕'의 재판과 같은 이야기이다.

"길에서 아무 이스라엘인이나 잡고 물어보라. 당신은 언제부터 여기 있었느냐고. 그러면 질문을 받은 사람은 자기가, 또는 그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팔레스타인에 도착한 정확한 날짜를 댈 것이다. 그러나 같은 질문에 팔레스타인인은 아무 대답도 못할 것이다. 그는 언제나 여기 있었으므로."(본문 중에서)

주하이르 아부 샤이브는 이스라엘의 가혹한 점령정책과 안보정책은 결국 이스라엘이 여전히 팔레스타인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실증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스라엘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고국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인들은 우리에게는 거짓말을 해도 자신에게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그들은 아직 자기 고국을 찾지 못했음을 아주 잘 안다. 이것이 그들이 정말로 걱정하는 비밀이며, 그들이 안보를 영원히 추구하는 이유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여기 고국과 함께 있다는 것을 안다."(본문 중에서)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부터 팔레스타인인들의 눈물과 그 눈물 속에 담긴 희망도 동시에 시작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그들을 상징하는 오래된 모든 것들과 그들의 기억 속에 있는 추억들과 내면에 있는 다른 것들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여전히 이 땅의 주인이다.

팔레스타인, 눈물 속에 담긴 희망

2000년에 일어난 제 2차 '인티파다' 이후에 이스라엘은 '인티파다'를 막는다는 구실로 2002년부터 서안 지역에 총 길이 800km, 높이 8km의 콘크리트 분리장벽을 건설하기 시작한다.

사회학자 자밀 힐랄이 쓴 '점령지에 밀어닥친 폭풍우'는 바로 얼마 전 2002년 4월에 일어난 이스라엘의 점령지 침탈에 관한 상세한 기록이다. 일기 형식으로 씌어진 이 기록은 이스라엘이 '라말라'를 침공해 통행금지와 가택수색을 빌미로 행한 도둑질, 그리고 점령지에 대한 이야기다.

경찰과 보안군 건물 시설파괴 뿐만 아니라 정부의 각 부처 시청을 비롯한 공공기관에서 약탈과 도둑질 그리고 전기와 수도, 전화, 도로와 같은 도시기반 시설을 파괴했다고 한다. 아울러 비정부기구와 공공단체마저도 철저히 약탈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침탈은 도시뿐만 아니라 난민촌에서도 조직적으로 이루어진다.

"이스라엘군이 난민촌을 조직적으로 파괴하고 있으며 소총으로 저항한 투사 수십 명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즉결 처분 했다고 한다. 지금 난민촌에는 식량과 물, 의약품이 고갈되었다. 현재 난민촌에는 불도저 열일곱 대가 집들을 모두 무너뜨리고 있어, 아이들이 부모를 찾아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 불도저들은 죽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묻으려고 큰 구덩이를 팠다는데, 아수라장을 깨끗이 청소 한 다음에 외부에 보여줄 작정인 것 같다. 난민촌에 들어가려는 UNRWA, 적신월사, 제닌 의료종사자들은 지금껏 접근도 못하고 있다."(본문 중에서)

동전의 양면 같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평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땅에 평화가 찾아올 수 있을까? 좌파적인 이스라엘 일간 신문 <하아레츠>에 실린 기사가 제시하는 해법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도시와 농촌을 포위했을지 몰라도 그 자신 역시 포위당했다. 이 전쟁은 전 세계에 충격파를 던져 유대인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결론은 자명하다. 자신의 목을 조르는 압박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이스라엘은 반드시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철수해야한다."(본문 중에서)

처절한 파괴를 딛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내 놓은 <그날 이후>라는 성명서처럼 이스라엘이 1967년 6월 4일 이전의 국경 밖으로 철수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이 그들의 땅과 물, 하늘, 국경에 대하여 완전한 주권을 행사하고,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함으로써 그들이 결국은 '함께 평화'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스라엘의 평화와 팔레스타인의 평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