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과 세상/책과 세상 - 생명, 평화

마음먹은대로 살기, 진실로 사랑하기

by 이윤기 2008. 11. 1.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한스 크루파가 쓴 <영원과 하루>

사람마다 책을 선택하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다.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멋진 광고카피 같은 제목만 보고 책을 골랐다가 실패하는 경험이 쌓일수록 결국 책은 주로 글쓴이가 누구인가? 그리고 어느 출판사에서 나온 책인가? 하는 기준으로 선택하게 된다.

<영원과 하루>를 읽기 전까지 한스 크루파는 낯선 작가였다. 그렇지만, 아주 최근에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한 법정스님의 잠언집을 읽은 여운이 마음과 기억에 남아 출판사 이름만 보고 고른 책이다.


한스 크루파는 헤르만 헤세 이후 최고의 독일 작가로 평가받는다고 하지만, 독일문학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낯선 작가다. 그렇지만 <영원과 하루> 이전에도 이미 한스 크루파의 <아만다와 마법의 책> <마음의 여행자> 같은 책이 번역 되어있다고 한다.

비록 소설의 형식을 빌려왔지만 한스 크루파가 쓴 <영원과 하루>역시 마치 명상문이나 잠언집을 읽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책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 번 류시화씨가 쓴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지구별 여행자>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과 같은 책과 그가 번역한 틱낫한 오쇼라즈니쉬 류의 명상적인 글들과 인디언의 영혼 혹은 <오래된 미래>류의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며, 작품으로 만난 작가 류시화와 <영원과 하루>의 주인공 '마누엘'과 그리고 책을 쓴 한스 크루파의 이미지가 내안에서 자꾸만 겹쳐졌다.

이 책을 내기 전에 여러 편의 시, 동화, 단편소설, 잠언집 등을 발표했던 한스 크루파가 쓴 장편소설 <영원과 하루>는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서정적이고 명상적인 문체로 씌어졌다. 소설 속 인물들 간에 이루어지는 대화형식을 활용하여 혹은 소설 속 인물들의 고민과 성찰하는 모습 통해 진정한 삶과 행복, 사랑에 대한 작가의 메시지를 전해오고 있다.

옮긴이의 말을 보면 이전의 작품들에 비하여 자전적 요소가 강하다고 하였는데, 독자들 역시 자전적이라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만한 대목이 많이 있다. 일인칭 화자로 등장하는 '마누엘'은 어느 날 갑자기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완전하게 태어나기 전에 죽는다는 에릭프롬이 말한 비극을 겪지 않기 위해 그는 떠돌이 악사로서 방랑생활을 시작한다.

책을 쓴 한스 크루파 역시 2년간 몸담았던 교사직을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만두고 작가의 길로 접어드는 점에서 '마누엘'과 닮았다. 아울러 가족과 친구의 만류를 뿌리 친 것뿐만 아니라 작품 속에 드러나는 많은 장면들이 '마누엘'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을 갖기에 충분하다.

한스 크루파는 글쓰기 말고도 수준급의 기타리스트이고, 직접 작곡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아마추어사진작가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 '마누엘'은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나와 거리의 악사가 되는 것 역시 독자들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자전적요소라 할 수 있겠다.

주인공 '마누엘'은 여러 여자와의 짧은 만남 후에 '프라우케'라는 여대생과 첫 눈에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에 빠졌다가 개인주의적 성향과 출세욕이 강한 프라우케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갈등하다 그녀의 옛 애인이 갑작스럽게 출현하자 헤어지게 된다. 프라우케와 이별 후 사랑의 아픔을 겪는 마누엘은 조에라는 한 마리 나비와 같은 여자를 만나며 그녀를 통해 마침내 생애를 영원에 이르는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된다는 줄거리이다.

마누엘이 프라우케와 함께 사는 동안 만난 아래층에 사는 '얀'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의 책장을 살펴보는 장면에서 책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책은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지만, 세상에 완벽한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완벽한 책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책을 모든 일의 척도로 삼는 사람을 그리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끊임없이 곱씹고, 빨대로 먹듯이 그 생각에만 매달려 있는 사람은 결코 자기 나름대로의 정신과 영혼을 발전시키지 못한다."(본문 중에서)

한스 크루파는 책을 통해 지식과 정보만을 쫓아다니는 이들에게 성찰과 직관의 힘이 중요하다고 깨우쳐준다. 그는 책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지만 "책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게 되면 방향 감각을 잃게 되고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다"고 한다. 결국 "책으로부터 영감과 도움을 받고 격려를 받아도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에 대한 마누엘 생각 또한 인상적이다. 얀이 마누엘이 처음 만난 날 나눈 대화다. 얀이 마누엘의 기타를 보며 질문을 한다.

"어떤 음악을 하십니까?
"거리에서 유행하는 팝송을 연주합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아는 음악을 듣고 싶어 하거든요."
"그걸로 먹고 살 수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내 방식대로는 가능합니다. 자유란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의 다른 말일 뿐이니까요."(본문 중에서)


사실 마누엘의 말처럼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은 자유롭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대게 사람들은 무엇인가 지켜야 할 것이 많은 만큼 부자유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행복에 대한 마누엘의 생각은 독자인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그는 이렇게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그렇게 편하게 살 수 있느냐하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지옥에서도 행복할 수 있고 천국에서도 우울증에 걸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에게 달려 있는 거지요. 당신의 마음에 말입니다."(본문 중에서)

성찰적 삶, 마음을 다스리며 사는 삶이 익숙하지 않는 나 같은 독자들은 여전히 사람의 행복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것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대는 이견이 없다. 마누엘이 생각하는 행복은 이렇다.

"나는 나름대로의 목표를 가지고 산다. 그것은 될 수 있으면 행복하게 지내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기적이면서 또한 이타적인 생각이다. 왜냐하면 타인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내가 행복해야 하고,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타인을 행복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진리란 그렇듯 종종 진부한 것이다."(본문 중에서)

행복에 대한 나의 생각 역시 비슷하다. 그것은 될 수 있으면 오늘을 행복하게 지내자는 것이다. 내일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오늘을 불행하게 사는 우를 범하지 말자는 것이다. 하루하루 오늘을 행복하게 살면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내일을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오늘을 희생하는 사람들은 평생 하루도 행복한 날을 살지 못한다.

그렇지만, 오늘을 행복하게 살자는 것이 내일은 생각하지 말고 오늘에 모든 것을 걸자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에 충실한 삶을 살자는 것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기회를 거의 잃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일의 행복을 위하여 오늘을 저당 잡히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일 행복하기 위해 오늘을 희생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그렇다.

부와 권력, 쾌락, 돈과 물질주의 이런 것들이 오늘을 불행하게 살게 하는 요소 들이다. 사람들은 내일 이런 것들을 더 많이 얻기 위하여 오늘의 행복을 저당 잡히며 사는 일이 허다하다. 이런 것들은 대게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덜 중요한 가치들이다.

마누엘은 단 하루를 살아도 진정한 사랑을 하며 살아야 하고 백년을 산다고 하여도 참으로 사는 날은 진실로 사랑했던 날 뿐이라고 우리에게 일러준다. 한스 크루파는 주인공 마누엘을 통해 "진실한 사랑이라는 바이러스를 사람들에게 감염시키기"위하여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하며 살고 있는가? 과연 우리는 오늘을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 하고 자문해 볼 일이다.

<영원과 하루> 한스 크루파, 서경홍 옮김 - 조화로운 삶/ 325쪽, 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