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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영(無)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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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안도다다오가 쓴 <안도다다오의 도시방황> 1965 - 1992

안도다다오는 일본 오사카 출신의 유명한 건축가입니다. 그는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하여 세계적인 건축가가 된 보기 드문 사람입니다. <안도다다오의 도시방황>은 1965년부터 1992년까지 안도다다오의 여행 기억을 기록으로 묶은 책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10대 후반에서 오늘까지 '여행'을 통해 건축을 배우고 고민하고 만들어온 내 여행의 기억을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엮은 글"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일상을 벗어나 상이한 풍경, 상이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과 그 문화와 접촉하는 것.......일상의 시간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미지의 장소에 홀몸으로 다다랐을 때 인간은 스스로와 대화를 나누고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것들에 눈길을 던지게 된다."

그는 구체적인 장소의 이동뿐만 아니라 사색의 여행에서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색의 여행을 통해서도 마음이 격렬하게 흔들리고 사고를 자유롭게 해방 시킬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는 여행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건축가로서 자신이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10대 후반에 시작한 그의 장소 이동 여행은 유럽에서 시작되어 안도다다오의 여행은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세게 곳곳으로 이어집니다. 이 책에는 여행에 대한 그의 간절함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복서로 데뷔하여 프로테스트에 합격하여 방콕으로 해외원정을 다녀옵니다. 그가 권투를 시작한 것은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에 초빙을 받아 해외로 나가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65년에 내가 처음으로 유럽에 가고자 했을 당시 건축을 배운다는 말은 서양 건축을 배운다는 뜻"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파리를 동경하기 시작한 것은 23살이던 1965년부터였다고 합니다.

파리를 동경한 것은 르 코르뷔지에라는 건축가의 영향을 받은 때문이며 자신과 마찬가지로 건축과 관련한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그에게 더 끌렸는지도 모릅니다.

1964년 일본은 처음으로 일반 여행자의 해외여행을 허용하였는데, 1965년 4월말 일본 여행을 떠났다고 합니다.  1달러가 60엔 이었던 시절로 유럽까지의 비행 삯이 약 7만 엔이었답니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60만 엔 정도의 현금을 지니고 요코하마에서 배를 타고 나훗카로 건너간 후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모스크바를 지나, 북구에서 파리로 들어가는 코스를 밟았다. 파리에 도착한 건 분명 9월 말이었다."

세상에 오사카에서 파리까지 무려 5개월이 걸렸습니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두세 시간 기차를 타고 르 코르뷔지에의 건물을 보러 갔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그는 처음으로 건축에 생명을 불어넣은 강렬한 빛을 체험하였다고 합니다.

1965년, 오사카에서 파리까지 4개월이 걸렸다

바로셀로나로 이어진 여행에서 그는 안토니오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만납니다. 그는 이곳에서 중앙에 맞선 카탈루냐의 역사, 지중해 특유의 색채, 거대한 자연 등 카탈루냐 지방의 독특한 풍토 위해 만들어진 가우디의 건축을 만나게 됩니다.

"한 지역의 풍토는 인간의 체내에서 피처럼 흘러 세포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면서 기억을 이어나간다. 가우디의 작업물을 보면 풍토야말로 창조성이 잠재해 있는 곳임을 새삼 깨닫는다."

건축이 상품화 되면 인간은 풍토와 멀어지고 인간정신의 붕괴와 직결된다는 것이 안도다다오의 생각입니다.

그는 유럽여행에서 일본으로 돌아올 때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오는 화객선 이용하였다고 합니다. 마르세이유에서 출발하는 화객선은 상아 해안 - 희망봉 - 마다가스카르 - 봄베이 -  실론 - 싱가포르 - 홍콩 - 고베 - 요코하마에 이르는 경로였다고 합니다. 8만 엔을 내고 75일쯤 걸리는 여행이었다고 합니다. 

봄페이에 도착하였을 때는 여비가 떨어져 손목시계, 카메라, 볼펜 등 팔 만한 물건을 모두 팔아 인도를 여행하였다고 합니다. 봄베이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사막마을 아마다바드를 다녀왔다고 하는데, 이때의 체험이 20년 간 숙성, 발효되어 자신의 나카노시마 프로젝트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젊은 시절 안도다다오는 일을 하고 받은 돈 대부분을 여행에 썼다고 합니다. 설령 통장에 한 푼도 남지 않더라도 내 안에 뭔가 남으면 그만이라는 마음이었다고 합니다. 27살이던 1968년에는 메켈란젤로의 작품을 제작 연대에 따라 찾아다니는 여행을 떠납니다.

그는 미켈란 첼로의 창작과정을 따라 로마와 피렌체를 몇 차례나 오갔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보면 바보스러운 여정입니다만, 시대의 흐름을 체현 해보고 싶다는 바람과 사회적 정황의 변화에 따른 작가의 심적 변화를 헤아려 보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안도다다오는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말을 인용하여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영감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내게는 친구가 많다. 플라톤도 네로 황제도 모두 친구다 어떤 역사적 인물일지라도 대화를 자꾸 하다보면 친구가 된다."

그는 여행의 성공과 실패는 이런 가공의 대화가 얼마나 가능하냐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결코 말하지 않는 존재와의 커뮤니케이션은 현실의 대화를 뛰어넘는 깊이가 있으며 그것은 결국 자신과의 대화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여행을 통해 현실을 뛰어넘는 대화를 나누고 영감을 얻는다

20년 도 전에 시작된 미켈란첼로와의 대화를 꿈꾸며 시작한 여행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가공의 대화는 끝없이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의 여행은 '공간 여행'일 뿐만 아니라 사색여행이기도 합니다.

특히 사람들이 제 멋대로 후진국이라고 부르는 아시아 여행은 깊고 넓은 사색 여행입니다. 그는 아시아를 후진국이라고 부르는 것을 탐탁치않게 여깁니다. 베트남 최후의 왕조 응우옌 왕조의 왕궁에서 넋을 잃을 만큼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하고, 북경의 자금성에서 압도적인 대칭을 통해 자연의 위협에 대치하는 인간의 생활을 떠 올립니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90년 초반 베트남에서 자연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활기찬 '생명력'을 발견합니다. 경제적으로 가난하지만 삶은 더 풍요로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안도다다오의 도시방황>을 통해 보는 건축가 안도다다오는 건축은 물론이고 음악, 미술, 문학을 비롯한 다방면의 지식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깊은 사유와 통찰의 경지에 올라있습니다.

장인의 손놀림이 머리를 앞선다는 해석은 관찰과 사유와 통찰의 경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펜 하나로만 복잡한 당초무늬를 그려내는 건축가의 작업 광경을 그는 신의 손길에 비유합니다.

"무언가가 만들어진다 함은 장인들의 손놀림에서 똑똑히 봤듯이 머리보다 손이 먼저 자연스레 움직인다는 사실을 몸으로 직접 배웠다. 그렇기에 마졸리카 하우스의 요염하기까지 한 꽃무늬가 바로 그런 장인의 예술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봤고 그만큼 훌륭하다고 느꼈다."

경지에 이른 장인들은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손이 생각을 앞서간다는 것입니다. 그림에 있어서 '아르누보'라고 하는 흐름은 바로 머리가 아닌 장인의 손길이 만든 작품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는 것입니다.


건축은 영(無)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깊은 사유와 통찰을 보여주는 한 대목을 더 소개해 보겠습니다. 그는 건축은 영에서 출발하여 아무 것도 없는 곳에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 이면에는 역사와 전통, 또는 시대성과 지역성이라는 다양한 요소가 복잡하게 얽히면 펼쳐진다. 그런 면면들을 물리적으로는 볼 수가 없다. 그러나 건축의 이면에서 펼쳐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런 심층부야말로 건축의 생명,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는 시각적으로 보이는 부분이 없어도 건축은 건축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내쫓고 뉴타운을 만드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리라 생각됩니다.

건축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그의 주장은 오늘날 재건축, 재개발 혹은 도시재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꼭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무 것도 없는 빈 땅에도 시대성과 지역성, 역사와 전통이 얽혀있는데,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사람이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곳이야 오죽 하겠습니까?

<안도다다오의 도시방황>은 무수한 여행의 경험을 담은 책입니다. 여행에 대하여 글을 쓰는 것은 과거의 여행 궤적을 더듬으며 그 여정에서 오간 대화를 다시 불러일으키면서 자신을 재확인하는 작업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런 작업을 거듭하면서 튀어나오는 상념이 사유의 심도를 깊게 해주고 본질에 가까워지게 한다고 평가합니다.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그의 여행이야기는 건축가로서의 깊은 사유를 보여주기에 충분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행은 인간을 만든다. 생각해보면 내 인생 또한 여행이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채 건축을 지향하였기 때문에 긴장과 불안 속에서 낯선 땅을 헤매는 여정과 같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활로를 찾아 시련을 극복하며 여행을 이어왔다는 것입니다.

독특한 표지와 본문 디자인 그리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담은 사진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녹녹치 않은 책값이 부담스럽지만 안도다다오라고 하는 유명 건축가의 작품에 담긴 의미와 본질을 탐구하는 사색여행을 엿보는 즐거움을 누려볼만 합니다. 
 
 

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 - 10점
안도 다다오 지음, 이기웅 옮김/오픈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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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0 Comment 2
  1. Mrs.Darcy 2011.08.19 09:57 address edit & del reply

    나이가 들어가면서 건축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져 책을 몇 권 사 보았는데, 이 책도 보아야겠네요~ ㅎ 안도 다다오씨 책도 서점에서 몇 권 보긴 했지만 포장지가 씌어져있어서 패스하고 말았는데 이윤기님의 서평을 읽으니 매우 구미가 당기네요~ ㅎ

    • 이윤기 2011.08.22 14:55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저도 안도다다오라는 이름만 많이 듣다가 이책 아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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