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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어른 출입금지 구역, 꼰대들에게 전쟁선포 !

by 이윤기 2011.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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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니혼 대학 전공투의 투쟁과 도쿄대 야스다 강당 투쟁이 일어난지 16년이 지난 1984년 7월 20일 한꺼번에 사라진 중학생 21명이 FM 미니 방송을 통해 해방구를 선포합니다.

이 발칙한 아이들은 FM 미니 방송을 통해 일본의 전설적인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의 테마곡 '불꽃의 파이터'를 틀어놓고 니혼대학 전공투의 시를 낭송합니다. 16년 전 전공투의 야스다 강당 점거 투쟁을 흉내내는 중딩 21명은 어른들 몰래 자신들의 해방구를 구축합니다.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하였기 때문에 폐허가 된 빈 공장이지만 아이들은 쌀, 건빵, 통조림 같은 식료품뿐만 아니라 주전자, 냄비, 접시, 휴대용 가스레인지 등 취사도구에 이르기까지 투쟁에 필요한 물품을 빠뜨리지 않고 준비합니다.

아이들은 씻고, 먹고, 잠자고 생활하는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합니다. 소화전으로 샤워기를 만들어내고 FM 미니 방송을 통해 해방구 방송을 내보내며, 한 밤중에는 별자리를 보며 한가롭고 자유로운 시간을 보냅니다.

아이들은 마치 캠핑을 하는 것처럼 식사당번을 정하고 체력단련을 할 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침탈에 대비하느라 매일매일 아주 바쁜 시간을 보냅니다. 어른들의 잔소리가 없는 곳에서 아이들이 모든 일을 요령껏 스스로 다 해냅니다.

해방구답게 아이들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모두 모여 함께 의논하고 그 결과에 따라 행동방향을 결정합니다. 세가와 할아버지를 해방구의 식구로 맞이한 것도 아이들이 모두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후에 함께 어른들과 맞서 싸우는 동지로 받아들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데쓰로의 동생 도시로와 맹견을 받아들일 때도 마찬가지였답니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불편한 잠자리와 샤워시설도 없으며 좋아하는 TV도 볼 수 없는 폐허가 된 빈 공장이지만 학교도 숙제도 학원도 입시 걱정도 내려놓고 지낼 수 있으니 아이들에겐 해방구가 분명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어른들의 꼭두각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겠다고 선언합니다.

“여기는 어른 출입 금지 구역입니다. 우리를 눈물겹게 사랑하시는 꼰대 선생님과 부모님에게 전쟁을 선포합니다!”

저항 에너지가 넘치는 중학생들 해방구를 만들다

작가는 여러 대목에서 권력에 저항을 에너지를 잃어버리고 세상일에 무관심한 일본의 젊은 세대에 대하여 비판적인 표현을 합니다. 야스다 강당이 함락될 당시 전공투 멤버였던 '도루' 부모의 대화도 바로 그런 대목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요즘 대학생들을 봐. 이제 권력에 저항할 에너지 따위는 털끝만큼도 없어. 고등학생은 또 어때? 고등학교는 대학의 예비학교로 전락하고 있잖아. 중학생도 3학년이 되면 교사가 시키는 대로해. 소란을 피우는 건 몇몇 불량한 행동을 하는 아이들뿐이야. 그런데 이런 애들은 또 비행이라는 딱지를 붙여 격리해버려." (본문 중에서)

그렇습니다. 도루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젊은이들을 무기력하게 만든 것은 모두 어른들입니다. 학교, 학원, 성적, 입시를 핑계로 아이들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바로 어른들입니다. 

병든 닭처럼 사는 것이 싫다고 해방구를 선포한 당돌한 중학생 녀석들이 기특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은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일 것입니다. 아이들을 설득하러 찾아온 교장, 교감, 생활지도 주임은 모두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고 맙니다. 아이들은 강압적인 방식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교장에 대항하여 아이들을 공부벌레로 만들려는 부모들을 향해 해방구를 선포한 것입니다.

"중학교에 들어온 지 네 달이 지났어요. 규칙과 명령은 진짜 지긋지긋하다고요. 그래서 아무한테도 명령받지 않는 장소를 만든 거예요. 그게 바로 해방구라고요." (본문 중에서)

세상에 아이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례는 많이 있습니다. <어린이 공화국 벤포스타>의 사례도 있고, <15소년 표류기> 소설 속에도 등장합니다. <우리들의 7일 전쟁>에 나오는 중학생 녀석들도 정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암호문이 담긴 편지를 받아내어 해방구에 들어오지 못하고 유괴당한 '나오키'를 구해냅니다. 아이들의 놀라운 추리력과 상상력이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 감쪽같이 유괴범을 생포합니다.

규칙과 명령? 왜 어른들 마음대로 하나요?

그뿐이 아니지요.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어린 석은 유괴범을 위하여 나오키 아버지를 협박하여 1700만 엔을 받아낸 후 유괴범이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어처구니없다는 것은 어른의 눈으로 보면 그렇다는 것이고 아이들에게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정당한 대 어른 투쟁의 일부입니다.

폭죽 공장을 하는 쓰요시네 창고에서 가져 온 폭죽으로 해방구 불꽃놀이를 하며 축제를 벌입니다. 해결사를 자처하며 억지로 해방구 안으로 들어오겠다는 교장과 선생들을 공장으로 초대하여 미로에서 온갖 해괴한 일을 경험하게 만듭니다. 기발하고 재미있는 요절복통 같은 미로를 만들어 교장선생님과 생활주임 그리고 학교 수업보다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담임선생의 혼쭐을 빼놓습니다.

현실에서 소설 속 교장이나, 생활주임, 담임을 둔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즐거워할지 눈앞에 선합니다. 실제로 중학교 2학년인 저희 아들은 이 책을 손에 들자 정말 한 시도 쉬지 않고 책을 읽더군요.

평소 책읽기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가 이렇게 집중해서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고 흥미롭게 읽은 책은 <남쪽으로 튀어>이후 이 책이 처음입니다. 작가가 모험을 꿈꾸는 소년들의 마음을 아주 잘 표현해냈기 때문이겠지요.

책을 읽는 동안 어린 시절 제가 읽던 책을 떠 올렸습니다. 해방구를 선포한 것은 아니지만 15명의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의 초등학교들이 한 척의 배를 타고 표류하는 <15소년 표류기>입니다.

모험을 꿈꾸는 소년 시절에 이 책을 아마 100번도 더 읽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7일 전쟁>도 그런 느낌을 주는 책입니다만, 십대 소년들의 모험심만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십대들에게 강요되는 시대적 문제의식을 제대로 보여주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젊은 시절 아이들이 해방구로 삼은 폐허가 된 공장의 노동자였던 세가와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하수구로 연결된 비밀통로를 통해 신출귀몰하는 활약은 어른이 읽어도 너무 통쾌합니다. 도청기와 FM 방송을 연결하여 추악한 어른들의 비밀을 모두 폭로해버리고, 아이들은 유유히 사라집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꼭두각시가 아니다

그들만의 새로운 나라를 만들지는 못하였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을 향하여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 "우리를 마음대로 하려고 하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하고 후퇴합니다. 도쿄대 전공투의 마지막 방송을 흉내낸 해방구 방송을 남기고 아이들을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자취를 감춰버립니다.

경찰이 해방구를 진압하는 상황을 현장에서 생중계하던 방송국 아나운서는 "아이들이 계속 없어지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하는 질문을 시청자들에게 던집니다.

"부모치고 아이들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준답시고 불행하게 만드는 크나큰 잘못을 저리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본문 중에서)

"우리는 아이들 착한 아이로 만들려고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착한 아이란 대체 어떤 아이들일까요? 그것은 어른의 꼭두각시죠. 다시 말해, 어른이 되었을 때 사회에 순응하는 구성원이 되도록 훈련시키는 게 교육이죠." (본문 중에서)

"이건 어른들 쪽에서 생각해낸 발상입니다.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단 한 번이라도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본 적이 있습니까? 아이는 어른의 노예가 아닙니다." (본문 중에서)

아이들이 감쪽같이 사라진 해방구 현장에서 방송국 리포터와 인터뷰하는 부모가 주고 받는 대화입니다. 아마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요?

일본에서 전공투의 야스다 대학 투쟁은 전설적인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386세대를 이야기 하듯이 일본에서 '전공투 세대'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시대를 향해 치열하게 저항하는 삶을 살았던 '전공투 세대'의 부모들에게 지금 자신의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고 있는 지, 자기들 모습을 거울에 한 번 비춰보라고 아이들의 외침에 귀 기울려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이른바 386세대의 부모들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고 있냐고 말입니다. 또 광우병 쇠고기를 반대하며 촛불을 들었던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책 읽기 싫어하는 아이들도 사라잡는 책

일본에서 1500만부를 판매한 '우리들'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우리들의 7일 전쟁>은 일본에서 출간된 지 27년이나 지났다고 합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번역된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원작에 대한 흥미와 감동 때문에 영화를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일본에서는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 <우리들의 7일간의 전쟁 1, 2>가 영화로 만들어져 블루리본 상을 수상하는 등 많은 인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정말 확신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책을 싫어하는 아이들이라도 이 책은 단숨에 끝까지 읽어버릴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마치 만화책이나 영화를 보는 듯한 빠른 이야기 전개와 긴장감으로 책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이 책 주인공 또래 아이들에게 꼭 권해보시기 바랍니다.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들의 7일 전쟁 - 10점
소다 오사무 지음, 고향옥 옮김/양철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