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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고종황제가 망명정부를 세웠더라면?

by 이윤기 2011.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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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가 박정희를 쏘지 않았다면? 아웅산 테러가 성공했다면? 박종철 죽음이 은폐되었다면?

사람들이 이런 가정을 해보는 이유는 박정희는 김재규에게 죽임을 당했고, 아웅산 테러는 실패하였으며, 박종철의 죽음이 알려져 세상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역사에 가정은 의미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미 일어난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만약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하고 아무리 가정해봐야 현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역사는 늘 승리한 자, 성공한 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과거를 둘러싼 투쟁은 현재까지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같은 것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막상 김재규가 박정희를 쏘지 않았다면 혹은 아웅산 테러가 성공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하는 가정을 통해 역사를 재해석해보면 매우 흥미로운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역사에는 수많은 갈림길이 있는데 우리가 선택한 그 길 옆에는 늘 다른 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라고 하는 가정이 의미 있는 것은 현재의 우리 삶도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길을 알면 헤맬 필요가 없다. 타락의 길을 꼭 가봐야 아는가... 지난 100년 동안 다른 길도 있었음을, 그래서 더 나은 미래가 가능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만약에 한국사>를 쓴 네 사람의 저자들은 우리가 살아 온 지난 100년을 성찰해서 앞으로 우리가 살아야 100년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다만 일반 사람들처럼 막연한 가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때 그 시점에서 다른 선택을 했을 때 어떻게 결과가 달라졌을 것인가를 매우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이 책은 <한겨레 21>에 연재되었던 기사를 묶은 책이지만 내용을 대폭 수정하고 보완하여 더 풍부한 책으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만약에 한국사>는 네 사람의 저자들이 모두 34개의 역사적 사건을 '만약에'라는 프리즘을 통해 살펴본 이야기들입니다.


아웅산 테러 만약 전두환이 죽었더라면?

한국근현대사에 큰 변화를 일으킨 역사적인 34개의 사건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만약에'는 바로 아웅산 폭발 사건이었습니다. 1983년 10월 9일 버마의 아웅산 묘지를 참배하려던 전두환이 5분 일찍 도착하여 테러가 성공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상상력은 이렇게 발휘될 겁니다.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지고 어쩌면 전쟁이 일어났을지도 모르지만 대신 통장 잔고가 29만 원 밖에 없다고 하면서 골프 투어를 다니는 꼴사나운 모습은 보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전두환은 광주학살의 원흉이니 그 때 죽었으면 천벌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두환에게 '5분의 기적'이 일어났고 그는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아웅산 테러 사건은 서석준 부총리를 비롯한 5명의 장관급이 목숨을 잃었고 청와대, 민정당, 언론사 등에 속한 민관 희생자가 21명이나 되었으며, 46명이 부상을 당하는 엄청난 참사였습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은 5분의 기적으로 목숨을 건졌고 귀국과 동시에 북한의 도발을 응징하겠다는 성명을 내고 전군에 비상경계령을 내리는 등 단호한 응징을 부르짖었습니다.

"우리도 암살단을 보내 김일성을 처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난무하였지만, 실제 대응은 무력보복을 하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으며 전두환의 대응은 예상보다 훨씬 온건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한국 정부의 온건한 대응 배경에는 미국의 태도가 가장 크게 작용하였다고 합니다. 미국은 전투준비 태세를 의미하는 데프콘3를 발령하는 등 겉으로는 상당한 수준의 군사적 대응조치를 하였지만, 속으로는 무력 대응자제를 주문하였다는 것입니다.

대신 전두환 정권은 1982년 장영자 사건, 미문화원 방화사건, 1983년 김영삼의 민주화요구 단식 투쟁과 같은 불리한 정치, 사회적 상황을 일거에 반전시키는 기회를 얻었다고 평가합니다. 또 북한 정권 역시 경제개혁 실패로 인한 혼란을 잠재우고 내부결속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김정일 후계구도를 정착시키는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아웅산 테러사건은 한반도를 둘러싼 한미일 안보체제와 북중소 안보협력이 더욱 강화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약 아웅산 테러가 성공하여 전두환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자 함규진은 대통령 사망은 '보복-응전-전면전'의 형태로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대통령까지 살해된 것과 각료들만 희생된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격앙된 분위기 속에서 일부 부대는 무력 행동에 나서고....이런 혼란 속에서 제 2의 6.25는 아니더라도 제 2의 12.12 쿠데타가 일어나 새로운 정권의 수립을 기도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남한 내부의 정변이 아니라 북한의 '공격'에 의한 남한의 혼란인 이상, 한반도가 통제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군이 치안유지를 명목으로 사실상의 군정을 실시하려 들었을지 모른다"

저자는 만약 아웅산 테러가 성공했다면 예측하기 어려운 혼란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평가합니다. 한편 북한이 처음부터 남한 대통령 테러라는 목표를 세우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으며 '실패'한 테러만으로도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과 같은 북한의 정치적 목표는 달성되었을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당시 분석은 북한이 남한 대통령을 암살하고 전격 남침하려 했다고 나왔지만 실제로 남침을 준비하는 듯한 무력 동원 움직임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죽는 테러가 일어났다면 한반도가 극심한 혼란에 빠졌겠지만 애초부터 대통령을 살해하겠다는 무모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입니다.

박정희가 그날 김재규에게 죽지 않았다면?

한편, 북한에 의한 전두환 테러시도는 실패로 끝났지만, 남한 정보부장의 박정희 살해는 실패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는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만약에'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약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살해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거듭나거나 그의 딸인 박근혜가 유력한 차기 대통령으로 부상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기록적인 물가폭등과 세금인상, 부동산 투기가 서민의 불만을 샀다면 유신정권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중화학공업의 침체는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끼쳤다. 1978년 제 10대 총선에서 여당인 공화당이 참패한 사실은 당시 민심 이반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라고 말했다."

이미 박정희는 1978년 총선을 통해 유권자들로부터 심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심각한 물가인상과 빈부격차, 한국전쟁 이후 최악의 마이너스 경제 성장, 막대한 외채 부담 등으로 정치, 경제적으로 정권이 파산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결국 김재규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박정희의 말로가 순탄할 수 없었던 것이 객관적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저자는 10월 26일 김재규의 박정희 살해로 오늘날 박정희의 망령이 부활하는 계기가 되기는 하였지만, 당시 상황을 놓고 보면 더 큰 파국을 막는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합니다. 이 책이 더욱 흥미로운 것은 오래된 과거 역사를 다루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대원외고가 생기지 않았다면' 같은 주제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사건들입니다. 일제고사, 고교입시 부활, 고교평준화 폐지와 같은 정책들을 두고 보수와 진보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남북교류와 관련이 있는 '금강산 관광이 5년 먼저 시작됐다면', '대북 쌀 지원을 하지 않았다면', '북한이 신의주를 홍콩처럼 개방했다면' 같은 주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의 대북 봉쇄 정책이 한계에 다다른 지금 평화와 통일을 향한 남북관계를 새롭게 모색하려면 눈여겨보아야 할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김일성 조문 슬기롭게 대처했다면' 같은 주제는 반복될 가능성이 있는 사건입니다. 김일성 조문 정국이 남북관계를 벼랑으로 후퇴시켰다면 언젠가 닥칠 김정일 조문 정국은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와 같은 역사적 고민을 던져주기도 합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사실들이지만 매우 흥미로운 새로운 사실들과 만나게 되는 것도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묘미입니다. 저자는 전태일, 김주열, 박종철, 이한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처럼 시대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역사를 바꾸는 죽음으로 '고종 황제'의 죽음을 꼽습니다.

고종황제가 중국에 망명정부를 세웠다면?

1919년 1월 21일 68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 고종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독살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널리 퍼진 독살설에 따르면 총독부의 지령을 받은 이완용과 윤덕영이 어주도감 한상학, 어의 안상호 등에게 식혜에 독을 넣어 고종을 살해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종의 암살 배경은 더욱 놀랍습니다. 무기력하고 무능한 마지막 왕이라고 여겼던 고종이 사실은 독립운동을 후원하는 등 투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종이 을사늑약 이래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비밀 후원해 왔을 뿐 아니라 해외망명을 추진했다는 사실이 암살의 이유로 유력하다...1910년 한일합병 뒤 국내에서의 투쟁에 한계를 느낀 나머지, 중국에 망명해 있던 이회영, 이시영 등과 은밀히 연락해 중국으로 탈출할 계획을 추진했음이 여러 자료에서 확인된다."

고종이 중국으로 망명하여 병합무효를 선언하였다면 일제로서는 훗날의 상해임시정부와는 비할 수 없는 골칫거리가 되었을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암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 만한 이유가 된다는 것이지요. 불세출의 업적을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조선 최후의 군주로서 순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충성의 대상이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이나 지식인들의 경우도 고종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고종의 죽음과 독살설에 격앙된 민심을 도화선으로 대대적인 반일 독립운동을 일으킨 것이 바로 고종의 장례식을 이틀 앞두고 일어난 3.1운동 입니다. 고종의 죽음이 없었다면 1919년 3.1운동은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고종은 정신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초기 독립운동의 지주 역할도 하고 있었다. 1895년 을미의병, 1905년 을사의병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한 최익현, 이인영, 민종식, 신돌석, 정환직, 허위 등은 대부분 고종의 밀지를 받거나 재정적 후원을 받으며 의병 활동을 벌였다. 1920년대까지 국내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치고 직간접적으로 고종과 맥이 닿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실제로 고종의 막대한 비자금이 독립 투쟁 자금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만약 대한제국의 주권자였던 고종이 직접 망명정부를 수립하였다면 새로운 국제관계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요. 국제 사회에서 정통성을 인정받는 임시정부가 되었다면 해방정국의 상황이 크게 달라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이지만, '만약에' 라는 프리즘에 비추면 더 풍부하고 흥미롭게 역사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숙명이 아니라 매순간 다양한 선택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만약에 한국사>는 과거에 가보지 않은 길을 살펴보면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길잡이 책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