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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효상 빈자의 미학이 담긴 노무현 대통령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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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빈자의 미학 이후 10년, 승효상 건축 비평서 <감각의 단면>

배형민이 쓴 <감각의 단면>은 건축가 승효상의 건축에 대한 비평서다. 지은이는 그가 비평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승효상의 제안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승효상이 10년 전에 출간한 책 <빈자의 미학> 증보판을 의논하던 차에 승효상의 제안을 받아들여 쓰게 된 책이라는 것이다.

승효상의 제안이란 다름 아닌 "<빈자의 미학>원문과 그 이후 10여 년 동안에 내가 작업한 건축에 대해 비평서를 만들면 어떻겠느냐?"였다.

승효상은 스스로 회고하고 반문하는 일보다, 아무리 험한 말을 듣더라도 배형민 교수와 같이 진정성으로 학문하는 이의 비평을 받고 싶어서 이 같은 제안을 하였다고 한다.

 
배형민이 쓴 <감각의 단면>은 스승 김수근과 더불어 걸출한 건축가로 평가받는 승효상이 10년 전에 쓴 책 <빈자의 미학>을 토대로 그의 건축 철학과 이후 10년 동안의 그의 건축을 비평의 대상으로 삼았다.

지은이는 김수근의 제자임을 강조하는 승효상의 건축 비평을 위하여 김수근과 승효상을 비교 비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배형민의 승효상 건축비평은 모두 초상, 침묵, 벽, 바닥, 평면, 유적이라는 6개의 큰 주제로 나뉘어서 이루어진다.

<빈자의 미학> 10년, 그리고 <감각의 단면>
  
첫 번째 장인 '초상'에서는 스승인 김수근과 승효상의 초상으로부터 시작하여, 걸출한 두 건축가가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승효상 건축미학의 토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두 번째 장인 침묵에서부터 유적까지는 <빈자의 미학>을 중심으로 한 승효상 건축에 대한 비평이다.
 
이 책은 몇 가지 점에서 특이하다. 첫째는 비평을 당하는 승효상이 지은이 배형민에게 자신이 쓴 10년 전의 책과 자신의 건축세계에 대한 비평을 요청하였다는 점이다.

둘째는, 건축 관련 전문서적을 출간하는 이들에게는 흔한 일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국내에서 씌어진 책이 영문과 함께 나란히 인쇄되어 책으로 엮어진 것은 처음 본다. 이 책은 처음부터 영어권 독자를 염두에 두고 씌어진 책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나 같은 이가 읽기에는 많이 벅차다. 한국을 대표하는 걸출한 건축가라고 평가받는 김수근과 승효상을 대상으로 하는 건축미학에 대한 접근과 평가는 생소하고 어려웠다.
 
그리고 승효상의 건축을 비평하기 위하여, 배형민이 동원한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여러 작가들의 미술, 조각, 서예와 같은 예술작품에 대한 분석 또한 새로운 것을 만나는 즐거움 못지않게 익숙하지 못함에 대한 어려움이 컸다.
 
무엇보다 더 버거웠던 것은 건축에 대한 아무런 사전지식도 없었기 때문에 책에 소개된 많은 낯선 외국 건축가들의 작품과 비평 당사자인 승효상의 작품에 대한 지은이 배형민 교수의 비평을 소화하기 어려웠다. 절반은 영어로 씌어진 같은 내용이라, 당연히 읽지 않고 넘어갔지만 자그마치 이 책은 557쪽이나 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읽는 동안 여러 번 책을 놓을 뻔 했다. 그러나 어려운 책을 읽는 동안에도 건축에 대한 건축가들의 철학과 고민을 만나는 기쁨 역시 적지 않았다. 건축에 대한 다른 생각을 배울 수 있는 기쁨 말이다.

불멸을 상징하는 건축물에 내재된 죽음
 
이를테면, 영원히 존재하고 싶은 열망을 담고 있으리라 여겨졌던 건축물들에 대한 건축가들의 생각에는 삶과 죽음 그리고 존재에 대한 고민이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건축은 삶의 긍정인 동시에 죽음의 징표이다. 수천 년 동안 서 있도록, 불멸을 상징하도록 지어놓은 건축은 사실은 죽음을 전제하고 세워져 있는 것이다. 건축의 폐허는 삶과 죽음의 주기적인 교차를 웅변하는 것이다. 문학의 신화적 기원과 마찬가지로 기념비적 건축도 죽음 미루는 장치이다." - 본문 중에서
 
구상에서 시작하여 설계, 시공, 변형, 노화 그리고 필연적인 소멸의 과정을 거치는 건물의 일생은 사람의 삶과는 전혀 다른 리듬에 따라 진행된다. 그러나 사람과 마찬가지로 건축물 역시 태어나는 순간부터, 결국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결국 사람도 건물도 죽음을 미룰 수는 있지만 죽지 않을 순 없다는 것이다.

건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승효상의 대답은 이렇다. "그 하나는 그 건축이 수행해야 하는 합목적성이며, 또 하나는 그 건축이 놓이는 땅에 대한 장소성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건축이 배경으로 하는 시대성이다." 건축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구체적인 삶에 근거를 둔다는 것이다.
 
"집은 집답게, 학교는 학교답게, 교회는 교회답게 서 있을 때 그 건축이 담는 삶은 보다 윤리적이 될 수 있으며, 이는 결국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본문 중에서

건축가로서 승효상의 토지에 대한 생각 역시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부분이다.
 
"토지는 그 규모에 관계없이 우리 인간의 삶 이전에 태어나 있었으며, 그 이후로 영겁의 세월을 지내어 와 있다. 토지의 위치가 어느 곳에 있든 이 토지는 고유하며, 그 고유성으로 인해 그 가치는 그것의 중요도에서 비교 평가절하 되어 질 수 없다."
 
'땅에 대한 참 다른 생각'이다. 영겁의 세월을 지내온 땅을 개인의 삶으로는 겨우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들이 마구잡이로 파헤치려고 하는 것은 오만 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의 개발 가치만을 가지고 쓸모없는 땅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일 수 있는지 일깨워준다. 세계시장을 향해 진출하였던 대규모 건설회사 CEO출신으로 '대운하'를 만들겠다는 대통령 후보는 과연 땅에 대하여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을까?
 
승효상은 건축가로서 지켜야할 토지에 대한 신성한 의무가 있으며, "그것은 토지에 담겨진 흔적을 발견하고, 관계를 규명할 뿐만 아니라 그 속에 새로운 질서를 창조함으로써 토지에 생명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주장하는 대운하는 과연 새로운 생명을 갖게 하는 작업일까 새겨볼 일이다.
 
개발독재 시대, 국적도 정체성도 없는 도시와 건축
 
건축가 승효상은 "우리가 물려받은 아름다운 금수강산과 그것을 철저히 유린하는 지금의 집짓기를 계속하는 이 시대의 저열한 정신"의 원천을 다음과 같이 진단하고 있다.
 
"60년대 들어서 우리 강토에 휘몰아친 '잘 살아보세'라는 편향된 가치 추구가, 왜 잘 살아야 되는지에 대한 분별력 없는 구호가, 우리의 파행적 정치 모습 - 군사독재로 이어지면서 우리는 너도나도 졸부의 꿈을 이루려 염치도 버리고 정서도 버리고 문화도 버리고, 오늘날 국적도 정체성도 없는 도시와 건축을 만들었다." - 본문 중에서
 
"이것은 우리 시대의 위기이며 우리의 미래에 대한 위협이다."

승효상은 이러한 개발독재 시대의 건축문화를 일컬어 우리 시대의 위기일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위협이라고 진단하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 한 사람은 60년대 들어서 '잘 살아보세'라는 편향된 가치를 업고 성장한 건설회사의 회장을 지냈고, 다른 한 사람은 염치도 버리고 정서도 버리고 문화도 버리고 국적도 정체성도 없는 도시와 건축을 만든 지도자의 정치 철학을 잇는 그 지도자의 딸이다.

배형민이 쓴 책 <감각의 단면>에서 가장 많이 인용하고 비평하는 책 <빈자의 미학>에서는 '빈자의 미학'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선, 가짐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 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하다." - 본문 중에서
 
빈자의 미학을 염두에 두면, 건물은 주변대지와의 관계를 고려하여야 하며, 그 속에 사는 방법을 생각하여야 한다. 다양한 삶의 형태와 모습이 채워져야 하며, 도시와 건축은 서로 열려있어야 한다. 영역의 담을 허는 것, 남겨진 공간을 도시에 내어주는 것, 그 속으로 도시의 길을 연장시키는 것 등이 '빈자의 미학'을 담는 구체적 모습이라는 것이다.
 
편리함만을 좇는 현대인들에게 승효상의 문제제기는 저리게 다가선다.
 
"살갗을 접촉하기보다는 기계를 접촉하기를 원하고, 직접 보기보다는 스크린을 두고 보기를 원하고 직접 듣기보다는 구멍을 통해 듣기를 원하는 그러한 '편안한' 모습에서 삶은 왜 자꾸 왜소해지고 자폐적이 되어 가는가." - 본문 중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좇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삶이 자꾸 왜소해지는지, 우리 삶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성찰해 볼 대목이다.

건축이란 남는 공간이 없도록 빽빽하게 채워 넣는 과정이라고 믿었었는데, 딱히 이름 없는 '무용의 공간'이 '빈자의 미학'을 완성한다는 승효상의 생각에 여러 모로 공감을 갖게 된다. 그러한 공간이 많을수록, 건축의 생명이 길어지고 다양한 삶을 담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봉하마을 노무현 대통령의 무덤을 만든 사람이 바로 건축가 승효상이다. 이런 승효상의 건축 철학을 담아 낸 것이 봉하마을에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무덤이 아닐까 싶다. <빈자의 미학>과 <감각의 단면>에 담긴 건축 철학을 단 번에 알아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배형민이 쓴 <감각의 단면>은 건축에 대한 상당한 식견이 없으면 읽어내기 어려운 책임에 분명하지만, 그를 통해 승효상의 건축 <빈자의 미학>을 만나는 재미는 쏠쏠하다. 건축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는 나의 서평으로 걸출한 건축가와 그를 비평한 걸출한 비평가의 책이 독자들에게 잘못 소개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감각의 단면 - 10점
배형민 지음/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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