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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고르기

따뜻한 겨울, 눈 없는 스키장의 황량함

by 이윤기 2011.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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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딱 한 번씩 스키장을 갑니다. 팔자가 좋아서 매년 한 번씩 스키장에 가는 것은 아니구요.

대략 10여년 전부터 겨울마다 제가 일하는 단체 아이들과 스키 캠프를 다니고 있습니다.

눈 구경하기 힘든 남쪽 도시에 사는 아이들을 데리고 인공눈에서라도 실컷 놀아보는 경험을 하게 하려고 스키장을 갑니다.
 
좀 더 멀리 강원도 쪽으로 가면 진짜 눈에서 실컷 놀다올 수도 있겠지만, 거기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립니다.

시간과 비용을 모두 고려하여 매년 제가 사는 도시에서 2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는 수안보에 있는 스키장을 갑니다.



중부 지방이기는 하지만 운이 좋으면 진짜 눈을 실컷 맞으며 놀다 올 때도 있는데, 최근에는 진짜 눈을 제대로 맞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올 해도 중부와 강원 지방에 눈이 많이 온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기대를 하였는데, 강원도에는 폭설이 쏟아졌지만 아쉽게도 저희가 가는 스키장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사실 진짜 눈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스키장에 가는 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중부지방이지만, 겨울이 더 깊어진 후에 스키장을 가면 아이들이 진짜 눈을 실컷 구경하고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매년 12월 초순에 스키장을 갑니다. 그것도 스키장 개장 하루 전날을 골라서 갑니다. 왜 하필 스키장 개장 전날에 갈까요? 

거기엔 오랜 경험에서 체득한 이유가 있습니다. 스키장이 개장 된 후에 가면 사람이 많이 몰려 혼잡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유치원 또래 아이들이 어른들에 치여서 스키 강습도 제대로 못 받고 썰매도 마음껏 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개장 하루 전 날에 스키장을 갔었지요. 우리 아이들 빼고는 아무도 없는 텅빈 스키장에서 스키도 배우고 눈썰매도 타고 눈싸움도 하고 이틀 동안 신나고 재미나게 놀다 올 수 있었답니다.

개장 전에 스키장에 가는 또 다른 이유는 슬로프 이용을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많으면 아이들을 슬로프에 태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스키장 개장 전에 캠프를 가기 때문에 일반 스키어들이 없어 아이들 실력이 조금 모자라도 선생님들이 리프트를 태우고 올라가서 슬로프를 함께 내려오는 짜릿한(?) 체험도 시켜줄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듯 10년 가까이 스키를 탔지만 여전히 초보자용 슬로프를 떠날 수 없습니다. 햇수로는 10년이 되었지만 해마다 스키를 타는 날 수는 1박 2일이 전부이고 항상 초보자용 슬로프만 타다오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저희가 가는 수안보 스키장은 개장 당일에는 늘 초보자용 슬로프만 오픈합니다. 12월 중순이 지나서야 중, 상급자용 슬로프까지 완전 개장을 합니다. 그러니 늘 초보자용 슬로프 밖에는 경험할 수 없었지요.

저희가 가는 스키장은 해가 갈 수록 개장 날짜가 늦어지는 것 같습니다. 처음 아이들과 스키캠프를 갈 무렵에는 12월 초에 개장을 하였는데 지금은 개장이 일주일 쯤 늦춰졌습니다. 올해도 그랬구요.



사실 몇 년 전부터 그랬습니다만, 올 해는 스키장이 유난히 황량하였습니다. 아마 겨울이 점점 따뜻해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겨울이 되면 여전히 추운 날은 춥지만 추위가 늦게 시작되고 일찍 따뜻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듭니다.

눈이 없는 스키장 참 황량하더군요. 작년까지만 해도 스키장 입구부터 초보자용 슬로프까지는 인공눈이라도 뿌려져 있었는데, 올해는 그마저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스키장 입구와 진입로 곳곳에 흙바닥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구요. 중급자, 상급자용 슬로프는 모두 맨살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나무가 없는 산도 황량하지만, 눈 없는 스키장도 정말 황량하더군요. 마치 속살이 드러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언젠가는 아침 먹고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면 하루 종일 스키를 타고 내려온다는 알프스나 삿뽀르의 스키장을 가보고 싶은데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