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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생태, 환경

바람 난 이 여자, 숲에서 놀다

by 이윤기 2012.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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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이자 숲 생태교육을 하는 풀꽃지기 이영득 선생이 쓴 새 책 <숲에서 놀다, 풀꽃지기 자연일기>(황소걸음 펴냄)가 나왔습니다.  
 
몇 해 전 이영득 선생에게 숲에서 즐겁게 노는 법을 배운 것이 인연이 되어 풀, 꽃, 나무와 친해보려고 하였지만, 다른 일에 한 눈을 파느라 그이처럼 숲에 푹빠져 행복하게 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다음 카페 '풀과 나무 친구들'을 꾸리며 풀꽃지기로 활동하는 그이는 천상 바람 난 여자입니다.

 

그이의 연인은 풀과 나무와 꽃과 벌레와 새들이 있는 숲입니다.

 
숲바람이 얼마나 심하게 들었는지 일주일에 한 번씩 숲으로 간 게 10년이 훨씬 넘었다고 합니다.

 

꽃동무들과 함께 숲으로 가는 날을 '꽃요일'이라 부르는데, 꽃요일 말고도 틈만나면 숲으로 달려간다고 합니다.
 
그이는 숲에 가면 가슴이 뛰고 마음이 설레며 자연의 품에 놀다오면 몸과 마음이 숲으로 채워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허전하면 숲으로 가고, 기분이 울적해도 숲으로 가며, 심지어 몸살이 나도 몸이 살려고 몸살이 났으니 숲으로 간다고 합니다.

 

숲에 가서 생명을 채워 오는 것이지요. 살아갈 힘을 일주일에 한 번은 자연에서 받아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부족하다 느낄 때면 언제든지 또 숲으로 달려간다고 합니다.

 

숲은 생명의 기운을 나눠주는 곳이지만 즐거움이 가득한 곳이기도 하답니다.


"숲에 가면 만나는 것마다 눈 맞추고, 배우고, 솔방울 던지기도 하고, 숨바꼭질도 한다. 처음엔 다 큰 어른들이라 노는 걸 어색해하기도 했지만, 이젠 아이처럼 흠뻑 빠져서 논다."
  
숲에서 놀고 배운 것이 나무 밑에 가랑잎 쌓이듯 쌓여 책으로 엮었더니 '자연일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뉘어 숲에 다녀온 이야기 쉰다섯 편이 일기로 엮여져 있습니다. 

 

숲에서 놀고 배운 이야기, 자연일기 책으로 엮어

 

그이의 사계절 일기는 봄꽃 매화로부터 시작합니다. 매화, 청매, 홍매, 설중매는 모두 매실나무 꽃인데, 설중매는 눈 속에 핀 매화를 이르고, 청매, 홍매는 꽃받침이 다르다고 합니다. 이름과 모양이 달라도 아름답고 향기가 고운 것은 모두 같습니다.
 
봄 숲하면 '봄나물' 이야기가 빠질 수 없지요. 그이의 일기는 봄나물 냉이초밥, 산나물, 들나물 하기, 뒷산으로 가는 봄소풍 떠나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냉이 캐서 끓이는 냉이국, 냉이 향이 입안에 감도는 냉이초밥도 좋지만 가장 부러운 것은 봄 들녘에서 뜯은 즉석 나물 무침입니다.
 
"달래, 민들레, 쑥, 이고들빼기, 멧미나리, 인동덩굴, 으름덩굴, 고광나무, 남산제비꽃, 혼삼덩굴, 생강나무 꽃… 생각보다 많이 들었다. 여기에 가져간 부추랑 봄동을 넣어서 무쳐 먹었다."
 
고작해야 김밥 싸들고 봄나들이 가는 사람들이 풀꽃지기의 봄나물 무침을 보면 얼마나 부러울까요? 이름도 생소한 것들을 물로만 씻어 무쳐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들나물, 산나물로 자연에서 차린 밥상

 

대형마트에 파는 새싹 비빔밥은 저리가라 하는 봄나물 비빔밥도 화려하고 부럽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2010년 3월 10일 들나물을 하러가서 들에서 뜯은 봄나물로 만든 비빔밥 재료만 해도 열 가지가 넘습니다.
 
"쑥, 냉이, 돌나물, 벌씀바귀, 벋음씀바귀, 고들빼기, 개망초, 환삼덩굴, 고마리, 가락지나물, 벼룩나물… 와, 벌써 열 가지가 넘네. 예쁜 봄나물에 매화 한 송이씩 얹었다. 여기에 된장 넣고 슥슥 비벼 먹는 맛이란!"
 
밥과 된장만 챙겨서 들로 나가면 온갖 나물로 비빔밥을 해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히 자연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지요. 그뿐 아니라 봄나들이에는 보온병에 따뜻한 물만 담아 나가면 어디서든지 꽃차도 마실 수 있다고 합니다. 생강나무꽃차, 으름덩굴 잎차, 인동덩굴 잎차를 마시고 나서 '봄을 실컷 먹었다'고 일기에 썼더군요.
 
"한 잎 한 잎 나물도 하고, 볕을 쬐기도 했다. 새소리도 듣고 결 보드라운 바람도 마셨다. 숲에서 입으로 먹는 것보다 눈으로 먹고, 코로 마시고, 귀로 먹는 게 많다. 온몸이 맑은 걸 먹는다."

그러나 정작 숲에서는 입으로 먹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온 몸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두라고 합니다.

 

 

 

 숲은 놀이가 넘쳐나는 곳
 
그이의 자연일기를 보면 숲에는 먹을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온갖 놀이감이 가득합니다. 꽃반지, 꽃목걸이, 분꽃 귀걸이는 기본이고 좀작살나무 귀걸이는 보석이 부럽지 않습니다. 때죽나무 꽃으로 꽃반지를 만들고, 오죽(대나무)으로는 포크를 만들고, 산수유 열매로는 꽈리를 만듭니다.

 
층층나무, 백목련, 산사나무, 이팝나무 이파리로는 온갖 동물을 만들어 동물농장을 꾸미고, 그늘사초로 만든 풀각시는 인형극 공연을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소나무 씨는 금새 잠자리가 되고, 개밀 줄기를 요리조리 돌려 여치집을 만들어냅니다.

 
여름 강아지풀로는 강아지를 만들고, 겨울이 되어 씨앗을 떨어뜨린 강아지풀로는 이쑤시개를 만듭니다. 강아지풀 줄기를 비스듬히 잘라 소금물에 담궈 말린 이쑤시개를 써 봤더니 과연 나무를 깍아 만든 이쑤시개보다 훨씬 개운하더군요. 강아지풀 이쑤시개는 사료에 섞여도 그만, 거름이 되어도 그만이니 음식찌꺼기와 함께 버려도 탈이 없어 썩 좋은 재료입니다.

  
자연일기를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수 없이 많지만 그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소개해 봅니다. 어느 날 일기에 보면 편백 숲을 다녀온 뒤 편백 열매로 베개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는데, 편백 열매를 쪄서 베개를 만든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봄날 꽃(화)전을 부칠 때는 찹쌀가루와 멥쌀가루를 반씩 섞으면 붙지 않고 찰기도 적당하다는 것도, 꽃전은 꽃을 살찍 익히는 게 포인트라는 것도 자연일기에서 배웠습니다. 근심걱정이 없어진다는 '무환자나무' 열매로 염주를 만든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노란 껍질은 비누처럼 쓸 수 있다는 것도 마냥 신기하였습니다.

 
쉰다섯 편의 자연일기를 읽다가 예쁜 것, 아름다운 것, 고운 것, 재미난 것, 즐거운 것만 찾아다니는 줄 알았던 풀꽃지기의 무모한 집중력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어느 여름날 대나무숲속으로 '망태버섯'을 관찰하러 갔더군요.
 
"망태버섯 자라는 속도는 균류와 식물을 통틀어 가장 빠르다는 기록이 있다. 균사 덩어리에서 버섯자루와 망사가 조직을 늘여 압축 상태로 있다가 균사 덩어리가 터지면서 겹쳐진 주름이 펴지고 낙하산처럼 부풀어 자란단다."
 
곁에서 보고 있으면 버섯이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일 만큼 빠르게 자란다는 것입니다. 자연일기 한켠에는 그날 모기에 물린 사진이 있는데, 마치 두드러기가 난 것처럼 어깨 죽지에만 모기에 물린 자국이 백 개쯤 돼 보이더군요.
 
그래도 자연일기에는 즐겁고 재미난 일이 더 많았습니다. 쪽물 들인 날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영화를 찍느냐는 소리를 들을 만큼 야단법석을 피우며 놀고, 백가지가 넘는 자연을 모아 백초효소도 담그는 풀꽃지기와 꽃동무들은 영락없이 자연을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자연일기를 보고 있자니 풀꽃지기와 그이의 꽃동무들 사는 모습이 참 부럽습니다. 10년이 훌쩍 넘도록 숲을 찾아다닌 풀꽃지기는 지금도 숲에 갈 때 마다 가슴이 뛴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러 가는 길이니 가슴이 뛰겠지요.
  
아름다움을 느끼면 소유하고 싶어지지만 그 마음이 예쁘게 자라면 온전하게 지켜주고 아껴주고 싶어진다고 합니다. 몸과 마음으로 자연이 깃드는 경험을 얻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영득 선생이 쓴 <숲에서 놀다, 풀꽃지기 자연일기>를 권합니다.


 

숲에서 놀다 - 10점
이영득 지음/황소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