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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10년 지난 스캐너, 멀쩡한데 그냥 버리라고?

by 이윤기 2012.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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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연휴 기간에 사무실에서 5년쯤 사용한 데스크탑 컴퓨터를 교체하였습니다. 최고 성능의 CPU가 장착된 컴퓨터를 새로 구입하였더니 윈도우7 운영체제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동안 대략 10년 정도 윈도우 XP를 사용하였는데, 이번에 컴퓨터를 교체하면서 새로운 운영체제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윈도우7을 좀 더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해 이것 저것 기본 세팅을 변경하고, 원래 사용하던 컴퓨터에서 필요한 데이터를 모두 옮기고 각종 주변장치를 설치하느라 꼬박 이틀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주변 장치 중에서 오래된 스캐너는 제조사 홈페이지를 아무리 찾아봐도 윈도우7에 맞는 드라이버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희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스캐너는 좀 오래된 제품이고 데이터를 처리하는 속도가 좀  느리기는 하지만 아직도 충분히 쓸만한 제품입니다. 10년 가까이 사용했지만 고장없이 잘 사용해왔던 제품입니다.

 

 

 

2001년 출시 제품...윈도우7은 지원 안한다

 

제조사 홈페이지에서 윈도우7을 지원하는 드라이버를 찾을 수 없어 결국 제조사 고객센터에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해보았습니다. 친절한 상담원으로부터 "죄송하다"는 답변과 함께 "윈도우7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기가막힌 대답을 들었습니다.

 

"수고 많습니다. 운영체제로 윈도우7이 포함된 신형 컴퓨터를 구입했는데요. 2200 스캐너는 윈도우7 설치 드라이버를 지원해주지 않나요?"

 

"예, 고객님 죄송합니다. 2200 스캐너 제품은 윈도우7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윈도우7을 지원하지 않는다구요. 그럼 멀쩡한 스캐너를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인가요? 멀쩡한 제품을 버려야 한단말입니까?"

 

"아니요 고객님, 윈도우7만 지원하지 않습니다. 윈도우 XP가 설치된 다른 컴퓨터에서 사용하시면 됩니다."

 

"아니 스캐너 때문에 윈도우XP가 설치된 낡은 컴퓨터를 따로 한 대 더 가지고 있어야 한단말입니까? 당연히 최신 운영체제에 맞는 드라이버를 제조사에서 지원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예, 고객님 죄송합니다. 2200 스캐너 제품은 2001년에 출시된 제품이라...워낙 출고된 지 오래된 제품이라 윈도우7은 지원하지 않습니다."

 

"참 어이없네요. 제조사에서 윈도우7에 맞는 드라이버를 지원하지 않으면 결국 스캐너를 폐기처분할 수 밖에 없네요. 아무튼 잘 알겠습니다."

 

여기까지가 상담원과의 대화내용입니다. 실제 대화는 조금 더 길었습니다. 제조사에서 멀쩡한 제품의 드라이버를 제공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부당함을 많이 이야기하였습니다.

 

콜센터 상담원에게 하소연 해봐야 달라질 것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멀쩡한 제품을 버려야한다는 것이 안타까워 거듭 문제를 지적하였습니다.

 

 

 

컴퓨터 주변기기들, 드라이버 지원없으면 고철덩어리

 

아날로그 시대의 제품들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따로 구분이 없었습니다. 얼리어답터가 아니라면 제품이 고장날 때까지 사용하고 고장나서 고칠 수가 없는 상황이면 새제품을 구입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의 제품들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따로따로 입니다. 특히 컴퓨터의 경우 운영체제가 바뀌면 각종 주변기기들도 새로운 운영체제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해야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에 문제가 된 스캐너처럼 제조사에서 새로운 운영체제에 맞는 드라이버를 지원해주지 않으면 멀쩡한 제품도 그냥 폐기처분해야 하는 기가막힌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사실, 저희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스캐너를 만드는 회사는 프린터와 스캐너 제품을 아주 잘 만드는 회사입니다. 주관적인 경험이기는 이 회사에서 만든 프린터와 스캐너는 잔고장없이 오랫 동안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드라이버 지원이 안 되어 폐기 처분 당할 위기에 처한 이 스캐너도 10년 가까이 사용하였지만 한 번도 고장도 없었습니다. 결국 하드웨어는 멀쩡한데 소프트웨어 지원이 안 되어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친환경 제품 개발도 좋지만...이미 만든 제품 수명 다할 때까지 쓰는 것이 더 친환경적

 

대기업들이 에코 마케팅, 그린 마케팅에 관심을 두면서 제품 포장을 재활용 가능한 소재로 바꾸고, 전력 소비를 줄이는 에너지 절약형 제품도 앞 다투어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애코 마케팅, 그린 마케팅에 매달리고 친환경 제품을 개발하는 기업들이 정작 자사에서 만든 오래된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운영체제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지원하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 가능한 소재를 사용하여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가급적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환경친화적인 방식입니다. 그럴려면 새로운 컴퓨터 운영체제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지원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또 우리나라의 경우 소비자피해보상규정에 컴퓨터를 비롯한 각종 전자제품의 경우 부품 보유 기간 등은 정해져 있지만, 새로운 운영체제에 맞는 소프트웨어(드라이버) 지원에 관해서는 규정 조차도 없습니다.

 

지속가능 발전과 지속가능한 소비를 지향한다면 제품의 수명이 다 할 때까지 제조회사에서 소프트웨어(드라이버)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