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전거여행③] 값싸고 친절한 여행 박물관, 아소유스호스텔(http://www.aso-yh.ecnet.jp/)
지난 11월 1 ~5일까지 4박 5일간 일본 큐슈 지역으로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앞서 두 번의 포스팅을 통해 오후 내내 자전거 둘러 메고 전철만 타고 다닌 사연과 아소산 자전거 투어 이야기를 전해드렸는데요.
일본 도착 첫 날 묵었던 숙소 아소유스호스텔에 관하여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첫날 후쿠오카항에 내려서 하카다역으로 이동한 후 전철을 세 번이나 갈아타고 아소역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8시 30분, 근처 편의점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소유스호스텔에 도착한 시간은 9시 30분쯤 되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아소산 분화구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1.5km쯤 오르막 길을 올라가자 길 건너편(일본은 좌측통행이라)으로 나즈막한 2층 건물이 나타났습니다. 일본어와 함께 영어로 ASO YOUTH HOSTEL 이라고 씌어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오전에는 부산에서 후쿠오카까지 배를 타고 오면서 배멀리에 시달리고, 오후 내내 자전거를 메고 전철을 타고다니느라 피곤한 몸을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지만, 아소유스호스텔에 도착했을 때 첫 인상은 '서글픔'이었습니다.
바람이 슁슁 통하는 낡고 오래된 벽, 삐그덕 거리는 복도와 낡은 이층 침대, 침대 위에 수북한 이불과 요를 보는 순간 오늘 밤 추위에 떨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확 들었습니다. 마침 일본에 도착한 첫 날 한국과 일본에 기온이 많이 내려갔습니다.
일기예보에 다음날 아침 기온이 1도까지 내려간다는 예보가 있었고, 전첡에서 내렸을 때 기온이 확 내려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스호스텔이 있는 위치가 해발 500m가 넘는 곳이었기 때문에 후쿠오카보다 기온이 훨씬 낮을 수 밖에 없었구요.
한 밤 중에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고, 어쨌든 하룻 밤을 묵어야 한다는 현실은 조금도 바뀔 수 없었습니다. 침대 시트 한 장씩을 받아서 컴컴한 복도를 따라 4인 1실인 숙소로 들어갔습니다. 낡은 2층 침대와 바람이 숭숭 통하는 창문이 한 없이 서글펐지만 다행이 온천물이 나오는 목욕탕이 있다고 하더군요.
만사 제쳐놓고 우선 피곤한 몸을 따뜻한 물로 씻고 싶어 목욕탕으로 갔습니다. 오래된 여인숙 같은 곳에 있을 법한 조그만 목욕탕이었는데, 뜨거운 온천물이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낡은 목욕탕이지만 뜨거운 온천물이 가득하였고 하루 종일 피곤에 치친 몸을 푸는데 최고였습니다.
이마에 땀이 베이도록 온천물에 충분히 몸을 담그고 나오니 어슬어슬하던 몸 속으로 찾아들던 추위도 싹 사라지고 몸이 개운해졌습니다. 동료들과 다음날 일정을 확인하기 위한 회의를 하기 위하여 밤 11시쯤 식당에 모였는데, 이 낡은 유스호스텔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유스호스텔을 운영하는 할머니는 자그마치 여든 두살이나 되셨다고 하더군요. 남편과 함께 평생 이곳에서 유스호스텔을 운영하였고, 작년에 남편과 사별한 후에는 혼자서 유스호스텔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가이드 역할을 하는 동료에 따르면 이 유스호스텔은 아소시에서 만든 공공 시설인데 워낙 낡은 시설이라 할머니가 아니면 더 이상 운영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계속 운영한다고 하더군요. 아마 일본에서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숙소 중 한 곳일거라고 하였습니다.
인터넷으로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성인은 1박에 2450엔, 청소년은 1830엔이더군요. 저희가 일본에서 4박은 한 숙소 중에서 가장 저렴한 숙소였습니다.
일본에서 첫 날 밤을 보내는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다음 날 아소산(1520m)라이딩에 대한 계획을 의논하느라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와 전 요코하마 YMCA 사무총장에게 선물로 받은 소주를 나눠먹으며 밤 12시까지 시끌벅적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할머니는 낡은 식당에서 뒤풀이 하는 우리 일행들을 위하여 온풍기도 틀어주고 녹차 마시는 법, 전자레인지 사용법 등을 친절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아소유스호스텔은 식사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음식을 준비해오면 요리를 할 수 있는 시설은 모두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일행도 둘째 날, 아침 일찍 아소산 라이딩을 떠나기 위하여 컵라면, 햇반, 김치, 참치 등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준비를 해왔습니다. 각자 2~3끼 분량의 음식과 팩소주 등을 준비해왔는데,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자전거 타는 것이 부담스러우 둘째 날 아침과 점심에 모두 먹으치우고 배낭 무게를 줄이자는데 쉽게 합의가 되었습니다.
둘째 날 아침, 식사 준비를 하면서 간밤에 흐릿한 조명 때문에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식당 내부를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전 세계에서 찾아 온 여행자들의 흔적이 가득한 아소 유스호스텔의 40년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낡은 유스호스텔이라 찾아오는 여행객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한 때는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젊은들로 넘쳐나는 명소였다고 합니다. 식당 한 켠에는 오래된 피아노와 기타 같은 악기들, 손 때 묻은 코펠과 낡은 군용 반합에 이르기까지 세계인들의 흔적이 가득하였습니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피아노와 기타를 연주하면서 함께 모여서 즐기던 모습이 저절로 상상히 되더군요. 저희 일행도 이른 시간에 도착하였다면 기타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하면서 흥겨운 뒤풀이 시간을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주방에는 낡았지만 아직도 잘 작동되는 토스트기, 전자레인지, 커피포트, 보온병 등 손때 묻은 취사도구들이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세계 여러나라에서 온 다양한 커피와 차, 홍차들이 찬장에 쌓여있었습니다.
세계 여러나라의 관광자료, 지도, 책과 사진들, 그리고 각 나라에서 온 크고 작은 여행 기념품들이 벽면을 따라 가득하게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낡은 오디오와 세계 여러나라에서 온 음반들도 잔득 쌓여 있더군요. 모두 세계 여러나라에서 이곳을 찾아왔던 여행객들의 흔적이었습니다.
40년 동안 아소유스호스텔 운영해 온 여든 두 살의 할머니는 아소산 기슭에서 세계의 젊은이들과 만나며 평생을 살아오셨더군요.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여행자들만이 세계와 만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할머니를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아래 사진속의 빨간 점퍼를 입은 분이 유스호스텔 할머니입니다)
40년 전통의 여행박물관 같은 유스호스텔
여자 숙소에 전기 콘센트를 찾을 수 없다고 하여 2층에도 잠깐 올라갔었는데, 커다란 천체 망원경이 놓여있었습니다. 이곳 유스호스텔에서 별을 관측하는 행사도 해왔던 것 같더군요. 천체 망원경과 함께 별 관측 행사 팜플렛이 놓여있었습니다.
어쩌면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취미생활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들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모두 보이스카웃, 걸스카웃 활동을 하셨고 산악협회 회원으로 활동하셨다고 합니다. 아소유스호스텔 구석구석을 러보면 살아있는 여행박물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0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간직된 이곳, 마치 외갓집을 찾아간 느낌이라고 할까요.
할머니는 40년 동안 아소유스호스텔을 지키면서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여행객들과 만남을 통해 세계와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세계인으로 살아오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이드 역할을 맡은 동료를 통해 할머니의 사연을 들으면서 인터뷰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습니다만, 일정을 맞춰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기회를 만들지 못하였습니다.
둘째 날 아침을 먹고 아소산 라이딩을 떠날 준비를 하면서 할머니에게 아소산을 다녀올 때까지 배낭을 좀 맡아달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할머니는 흔쾌히 식당에 배낭을 모아놓고 다녀오라고 허락을 해주었습니다.
만약 할머니가 배낭을 보관해주지 않았다면 저희 일행은 모두 무거운 배낭을 메고 아소산을 올라가야했는데, 할머니께서 흔쾌히 부탁을 들어준 것입니다. 원래 아소유스호스텔은 퇴실 시간이 오전 10시입니다.
일본 여행 경험이 많지 않지만 대체로 일본에서는 예약, 약속, 정해진 규칙을 바꾸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소유스호스텔에 배낭을 맡기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부탁을 하였는데, 의외로 흔쾌히 허락을 받은 것입니다.
할머니께서는 점심 때쯤 되어서 병원을 다녀오셔야 한다면서 저희 더러 12시까지 내려오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막상 라이딩을 해보니 계획대로 되지 않아 맨 선두에 내려온 동료들이 12시 조금 넘어 유스호스텔에 도착하였습니다.
할머니는 이미 병원으로 가셨고 유스호스텔은 문을 열어 두셨더군요. 먼저 도착한 동료들이 배낭과 짐을 모두 유스호스텔 마당에 꺼내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희 일행은 남은 컵라면과 햇반, 김치, 참치 등을 몽땅 꺼내 점심을 해결하였습니다. 유스호스텔을 운영하시는 할머니 덕분에 무거운 배낭을 맡겨 놓고 아소산 라이딩도 다녀오고 둘째 날, 아침과 점심을 한국에서 가져온 음식들로 떼우고 식비도 아낀 셈입니다.
이 할머니의 가장 큰 고민은 건강문제도 아니고 돈 문제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유스호스텔 시설이 낡아 찾아오는 여행객이 줄어드는 것이 가장 큰 안타까움이라고 하였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최근에 아소역 바로 근처에 새로 게스트하우스가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깨끗한 시설로 새로 지은 데다가 이 게스트 하우스는 안 주인이 한국 사람이라 한국인 여행객은 한국어로 소통이 가능한 이 게스트하우스로 모두 몰려가버렸다더군요.
솔직히 저도 한국어로 소통이 가능하고, 전화 예약도 가능한 새로 생긴 게스트 하우스가 매력적이긴 합니다만, 전세계에서 아소산을 찾아왔던 여행객들의 흔적이 가득한 아소유스호스텔 역시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할머니와의 의사소통은 단어를 조합하는 일본어와 눈치와 몸짓으로도 어렵지 않게 가능합니다. 아소산 기슭의 낡은 유스호스텔에서 세계와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해보고 싶은 분들에게 '아소유스호스텔'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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