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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영화에서라도 속 시원하게 죽였으면?

강풀 원작의 화제의 영화 <26년>을 보았습니다. 오늘 아침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개봉 엿새 만에 100만 돌파를 예상하고 있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뒷맛은 여전히 개운치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그가'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영화에서 조차 그의 사과를 받아내지 못하였고, 그를 단죄하는데도 실패하였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고 극장 출구를 나올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바로 "영화에서라도 속 시원하게 죽여버렸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입니다. 그러나 만약 현실과 다르게 속 시원하게 확 죽여버리는 것으로 끝났다면 말도 안 된다는 비난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아니 어쩌면 원작자와 감독은 그를 단죄할 수 없는 답답한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음을 관객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말을 바꿀 수 없는 영화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6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자를 '각하'라고 부르는 사람들, 26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분을 지키는 경찰들, 아니 그분의 외출에 맞춰 교통신호를 바꿔야 하는 기막히고 답답한 현실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원작자와 감독의 의도가 광주학살로부터 26년이 지나도 학살의 원흉이 뻔뻔스럽게 고개를 빳빳히 쳐들고 살아가는 한심하고 답답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그 의도는 영화속에 성공적으로 반영되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주변 관객들 중에는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팝콘을 사들고 들어 온 관객들은 광주 학살의 황당하고 참혹한 죽음의 현장을 보여주는 영화의 도입부가 지나가는 동안 팝콘 통 속에 손을 넣지 못하더군요.

 

그리고 영화가 끝났을 때는 긴 한 숨을 내쉬면서 답답해 하였습니다. 엔팅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쉽게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며 안타까워 하는 관객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영화 26>년이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잊고 살았던 5.18 광주민중항쟁이라는 가슴 아픈 역사의 기억을 다시 깨워주었습니다. 1985년 대학생이 되어 1992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광주 항쟁은 가장 무거운 역사의 짐이었습다. 그자와 그자의 친구가 권좌에 있는 동안 끝없이 그들을 단죄하기 위한 투쟁을 벌였기 때문입니다.

 

'그자를 체포하기 위한 체포대' 대학생들이 연희동으로 진격할 때, 남쪽 바닷가 끝자락에 있는 작은 도시에서도 그 투쟁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시위와 집회를 하면서 함께 투쟁하는데 빠짐없이 참여하였습니다. 1985년 5월 흐릿한 비디오 화면으로 '광주항쟁'을 기록한 영상을 처음 본 뒤로 '광주'는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1985년 5월부터 셀수 없을 만큼 많은 집회에서 '학살자 처벌'을 외쳤고 그자와 그 일당을 처단하자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도저히 다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날을 최루가스를 마시면서 그자의 처벌을 외쳤고, 경찰의 곤봉과 백골단의 체포를 두려워하면서도 시위에 참가하였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현실에는 영화 <26년>에 등장하는 주인공들보다 더 안타깝게 '분신'으로, 죽음으로 항거한 열사들이 있었지요. 어쩌면 그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비하면 26년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훨씬 더 적극적인 단죄 방법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광주학살의 원흉들이 차례로 대통령이 되는 기가 막힌 현실을 참을 수 없어 죽음으로 항거하였던 열사들을 향하여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고 했던 시인이 최근 박근혜 지지를 선언하였지요. 참으로 기가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한국 현대사를 들여다보면 박정희 - 전두환 -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쿠데타와 학살 정권의 '세습'은 바로 1980년 5월 광주학살로부터 비롯되고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두환은 12.12쿠데타와 5.18 광주 학살을 통해 박정희 정권의 '상속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영화 한 편이 수 많은 삶의 기억들을 다시 소환해내고 분노와 울분을 다시 기억에 새기로록 만들었습니다. 1985년 어느 가을 날, 차가운 아침 안개가 가득한 금남로에 섰던 새내기 대학생의 기억을 불러내고, 마음 한 켠의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하는 떨리는 가슴으로 찾아 갔던 망월동 구 묘역에서 새겼던 분노를 떠올리게 됩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결국 박근혜로 상징되는 총체적 과거 세력과의 싸움이 분명합니다. 박근헤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전두환의 광주학살을 정당화시키는 역사의 역류가 될 것이 자명합니다. 영화 <26년>을 보고 극장문을 나서면서 '영화에서라도 속 시원하게 죽여버리지 못한 것이 안타깝고 답답하였다'면 우리에게 방법은 하나 뿐입니다.

 

다가오는 12월 19일 대통령 선거 M16을 개조한 저격용 소총을 들고 그들을 단죄할 수 없는 평범한 시민들이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무기인 '투표'를 통해 과거 세력을 심판하고, 그자와 그들을 역사의 무덤으로 돌려보내는 수 밖에 없습니다.

 

1974년생임에도 아픈 과거사에 대한 가슴저리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그자를 단죄하는 도발적인 상상력을 발휘한 작가 강풀님과 그의 원작을 영화로 새롭게 탄생시킨 조근혁 감독 그리고 이 영화 제작비를 후원한 1만 5천명의 후원자들에게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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