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읽기 - 정치

이탈리아 정치, 어릿광대의 승리를 기원하며

by 이윤기 2013. 3. 5.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총선에서 신랄한 정치 풍자와 대중운동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던 코미디언 출신 베페 그릴로가 돌풍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베페 그릴로가 이끄는 '오성운동'은 2009년에 정치권에 등장하였는데, 최근 치뤄진 선거에서 25%에 가까운 득표를 얻어 상, 하원에서 제 3정당으로 급부상 하였다고 합니다.

 

중도 좌파와 중도 우파의 여러 정당이 연합해 의석을 나눠가졌기 때문에 오성 운동은 단일 정당으로는 최대 의석을 확보하였다고 합니다. 오성운동은 ‘물·환경·교통·관계·성장’을 뜻하며 사회의 새로운 개혁을 주창하는 정치운동이라고 합니다.

 

<관련 포스팅>

2012/04/04 - [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 휴대폰 통화 때 전자파 계란도 익힌다?

2012/04/02 - [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 나는꼼수다, MBC에 출연하면 시청률은?

 

스스로 ‘진실을 말하는 광대’라고 부르는 그릴로는 정치풍자로 유명한 코미디언 출신입니다. 그가 쓴 책은 <진실을 말하는 광대>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도 출간되었습니다. 980년대 이탈리아 TV쇼 ‘판타스티코’에서 베티노 크락시 당시 총리의 부패를 신랄하게 비난하면서 주목받았으나, 이 때문에 TV 출연이 금지 되었습니다.

 

이 일로 베페 그릴로는 방송에서 퇴출당하였습니다만, 크락시 총리는 베페 그릴로가 방송에서 퇴출당한 지 불과 6년 만에 이탈리아 정재계인사 3000명이 연루된 부정부패 사건으로 해외로 도주하였다가 결국 튀니지에서 사망합니다.

 

1993년 정권에 의해 또 다시 방송출연을 금지당한 베페 그릴로는 그때부터 아예 방송 복귀를 스스로 거부하고 매년 100회가 넘는 국내외 공연을 통해서 대중과 직접 만났습니다. 관객과 직접 만나는 베페 그릴로의 공연은 신드롬이라고 부를 만한 인기를 누리지만 정작 이탈리아 언론들은 모두 외면해버렸다고 합니다.

 

한편 1987년 방송에서 쫓겨났던 코미디언 베페 그릴로가 6년 만인 1993년 국영방송 '라이(RAI)'에 잠시 출연하였는데, 무려 1600만 명이 시청하는 경이적인 시청률 기록을 세웠다고 합니다.

 

 

코미디언 → 블로거, 사회운동가 → 유력 정치인

 

이탈리아 언론보다는 호주를 비롯한 다른 나라 언론들이 그의 정치적 행보에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국내에서도 MBC 국제시사프로그램 <W>에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어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젊지 않은 나이지만 블로거로서, 사회운동가로서 더 적극적으로 활동의 폭을 넓혀왔습니다. 200만 명의 시민이 참여한 부패추방운동인 V데이 운동(Vaffa-day)과 물, 환경, 교통, 관계, 성장을 주제로 하는 '파이브스타 운동' 대중 운동을 이끌었다고 합니다.

 

이번 총선 승리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들이지요. 최근에도 인터넷에서 정치권에 대한 독설을 멈추지 않았으며 베를루스코니를 ‘사이코 난쟁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릴로는 이번 선거에서 "무료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모든 초등학생에게 태블릿PC를 제공하겠다거나 근로시간을 주 20시간으로 단축하겠다"는 등 획기적인 공약을 내걸고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총선 결과 하원에서는 중도좌파연합이 과반을 차지하였고, 상원에서는 베를루스쿠니 전 총리의 자유국민당이 1당이 되었지만 단독 과반을 차지한 정당이 없어 그릴로가 이끄는  '오성운동'은  정부구성의 선택권을 쥐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전해진 외신을 보면 그릴로는 연정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고, 이탈리아는 안정된 정부를 출범시키기 어려운 상태가 지속될 것이라고 합니다. 가까스로 소수 연정이 출범해도 1년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전망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가 뜻하는대로 '재총선'이 이루어질지 주목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의회를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로 바꾸는 의회 개혁"이 그의 목표라고 하는 것이 참 신선합니다. 한국에서 2000년 총선 연대운동을 하면서 '낙천 낙선 운동'을 했던 것 보다 훨씬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고, 훨씬 더 위협적인 물갈이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베페 붐'을 일으킨 그릴로는 블로그를 통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실제로 오성운동 후보들은 정치 경험이 없거나 아주 적은 청년들이 대부분이며 평균 연령은 42세로 이탈리아 정당들 가운데 가장 낮았다고 합니다.

 

급진적이고 비현실적인 공약에 국민들이 열광하는 이유

 

선거 운동 과정에서 이른바 전문가(?)와 미디어로부터 오성운동이 내건 공약이 급진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그런 평가가 무색할 만큼 기성 정치에 환멸의 느낀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냈습니다. 예컨대 그의 주장을 직접 들어보면 그의 공약이 급진적이거나 비현실적이지 않습니다.

 

"휴대전화든지 기존의 유선전화든지 전화 사용료는 모두 무료화되어야 한다. 또 통신사에서 멋대로 지정한 전화요금 역시 반드시 제대로 된 가격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실제 이탈리아의 전화 통화료는 무척이나 비싸다."

 

그는 자동차의 속도를 줄이자는 획기적인 주장도 내놓았습니다. 그는 도로가 늘어나는 것 만큼 사람들의 무덤도 늘어나고 있다며 생각의 대전환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한 해에 약 7000명의 사람이 이탈리아의 도로 위에서 목숨을 잃는다. 하루로 치면 대략 20명, 정말 충격적인 숫자다. 더군다나 다치거나 영구적인 불구가 되는 사람은 한 해에 약 7만 명에 달한다. (줄임) 최근 30년간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의 숫자는 대략 20만 명에 달한다."

 

그런데도 자동차 회사들은 점점 더 빠른 속도의 자동차를 사라고 '광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속도위반이 가장 큰 사고원인이지만 빠른 속도의 자동차 광고를 규제하거나 제조과정에서 자동차 속도를 제한하는 조치는 취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자동차에 의한 경제적인 죽음은 전쟁에서의 죽음보다 가치가 없지만, 자동차 때문에 발생하는죽음은 전쟁터에서지뢰를 밟고 죽는 것 보다 훨씬 그 숫자가 많다는 것입니다. 시속 220km로 질주하는 뛰어난 성능의 자동차 광고가 끝날 때마다 영안실에는 젊은 시신이 늘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자동차 속도를 3km만 줄여도 매년 교통사고로 죽어가는 5000~6000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고, 감속으로 얻게 되는 경제적 효과는 자그마치 200억 유로나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시내 주행속도가 30km에서 50km로 증가하면 교통사고 사망은 8배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자동차의 속도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 우리는 왜 못해봤을까요? 왜 과속에 의한 교통사고의 책임은 전적으로 운전자에게만 있다고 생각하였을까요? 베페 그릴로는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많은 것은 분명히 정부의 책임이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실제로 베페 그릴로의 주장을 귀담아 들어보면 소위 정치 전문가와 주류 미디어들이 급진적이고 비현실적인 공약이라고 폄훼하는 공약이 정말로 실현되기만 한다면 유권자들의 삶은 훨씬 좋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베페 그릴로가 이탈리아의 정치를 확 바꾸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