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읽기 - 정치

코 파기부터 지진 대비까지...세상의 별난 책들

by 이윤기 2013. 9. 26.
728x90

[서평] 윤성근이 쓴 <침대 밑의 책>

 

책상 위나 책꽂이 혹은 가방 속이 아니라 침대 밑에 있는 책은 어떤 책일까요? 남들 앞에 떳떳하게 내놓고 읽기 머쓱한 <플레이보이> 같은 성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일까요? 아니면 뭔가 은밀한 개인적인 비밀이 적힌 책일까요?

 

윤성근이 쓴 <침대 밑의 책>은 그런 책이 아니네요. '잠들기 직전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흥미진진한 책, 아주 재미있는 책이 바로 침대 밑의 책이라고 합니다. 저자가 살아온 삶을 보면 그가 남다른 이력을 가진 독서가라는 것은 금세 알 수 있습니다.

 

"맞벌이하시는 부모님과 TV가 없던 환경, 여기에 내성적인 성격까지 책을 좋아할 만한 완벽한 조건을 가지고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무언가를 읽고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에서 닥치는 대로 글을 읽으며 자랐다... 나중에는 국어사전과 전화번호부까지 펴들었다." (본문 중에서)

 

이런 타고난 독서광이었던 저자는 대기업 IT부서에서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출판사와 헌책방을 기웃거리다가 2007년 여름 서울 은평구 응암동 어느 골목길에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열었다고 합니다.

 

물건으로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책 안에 있는 가치도 나누는 곳이라는 기특(?)한 생각으로 책방을 운영하고 있으며, 마을 문화와 골목길 문화를 살리는 데 관심이 많고, 늦은 밤이나 새벽에 책 읽는 것을 즐긴다고 합니다.

 

<침대 밑의 책>은 그가 매일 밤 침대 밑에 넣어 두고 읽던 책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책입니다. 그가 가장 먼저 소개하는 책은 이른바 '서바이벌'에 관한 아주 낯선 책들이었습니다.

 

국어사전, 전화번호부까지 읽은 남자

 

예컨대 바로 <스파이 가이드>, <거의 모든 재난으로부터 살아남는 법>, <재난이 닥쳤을 때 필요한 단 한 권의 책> 같은 책들입니다. 저자는 그 중에서도 이 분야 최고의 책으로 영국공수특전단 생존교본인 <SAS 서바이벌 백과사전>을 꼽습니다.

 

한 번도 이런 책에 관심을 가져 본 일이 없기 때문에 나와 아주 다른 관심을 가진 그의 도서 목록에 더 흥미가 생겼습니다. 두 번째 소개하는 책들 역시 저자의 평범하지 않은 독서이력과 관심을 보여주는 책들입니다.

 

연금술, 점성학, 카발라, 타로, 마녀, 마법사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마법사의 책> 그리고 오컬트 문화의 영향을 다룬 <오컬티즘> 같은 책들입니다. 보통 사람이 보기에 좀 황당한 이 책들에 대하여 저자는 '진지하다', '내용이 알차다'고 평가할 뿐만 아니라 제목만 보고 이 책들을 평가해서는 곤란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좀 더 대중적(주관적 판단)으로 흥미를 일으킬 만한 책은 세 번째 소개하는 책 <집안에 앉아서 세계를 발견한 남자>입니다. 이 책은 최초로 백과사전을 만든 제바스티안 뮌스터의 이야기입니다.

 

대학교수였던 뮌스터가 20여 년 동안 수집한 자료를 모아 만든 책이 바로 1544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제출하였던 <코스모그라피아>라고 하더군요. 600쪽에 달하는 글과 펼침면 지도 24장, 그리고 500쪽 분량이 목판화를 담은 방대한 책이었으니 가히 백과사전의 원조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책이라는 것이 저자의 평가입니다.

 

"1544년에 초판을 낸 책은 1628년까지 총 7만부가 팔렸고 독일어로 나온 책만 해도 27쇄나 찍었을 정도니 그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특히 독일에서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었다고 한다." (본문 중에서)

 

500년 전 유럽에 살았던 사람들이 생각하고 믿었던 세계의 모습을 한 권의 책으로 담아낸 희대의 걸작이 바로 <코스모그라피아>이며, 이 책을 쓴 뮌스터 교수의 삶을 담은 책이 바로 <집안에서 세계를 발견한 남자>라는 것입니다.

 

500년 전에 세계를 한 권에 담은 책

 

기가 막히고 황당한 책의 목록도 있습니다. 책을 좋아하고 글 쓰는 일도 하는 그는 가끔 원고 청탁을 받는데, '가장 이상하고 희한하고 우스운 책'에 대한 글을 부탁받았다고 합니다. 저자가 여러 날을 고민하여 고른 '가장 이상하고 희한하고 우스운 책은 바로 <코 파기의 즐거움>이었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배꼽이 빠질 만큼 우스운 내용을 담은 동시에 깊이를 섣불리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진지해야 한다... 시대를 아우르는 패러디 정신이 들어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갖춰야 할 덕목은 읽는 사람이 한번 시도해 보고 싶은 과제를 던져주는 것이다."(본문 중에서)

 

저자는 이런 조건을 다 갖춘 책이 바로 <코 파기의 즐거움>이라고 추천합니다. 10년 후, 100년 후 어느 때 다시 읽더라도 이런 조건을 만족시킬 만한 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코 파기에 대해서만 쓴 책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인문학적 역량이 있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책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입니다.

 

"책은 코 파기의 역사를 알려주는 내용으로 시작하는데, 이집트의 투탕카멘부터 영국이 여러 왕의 계보를 거쳐 르네상스와 소련, 중국, 미국을 돌아 프랑스 그리고 근대 노동운동의 개념을 알아야 비로소 웃을 수 있는 내용이 많다." (본문 중에서)

 

웃기는 책이지만 깊이를 섣불리 가늠할 수 없는 기준에 딱 들어맞는 책이라는 것이지요. 한편, 이 책과 함께 후보작으로 검토하였던 책으로는 <자기방어술>, <4시간 수면법> 그리고 <1998년 8월 18일 지구 최후의 날>을 꼽았습니다.

 

<침대 밑의 책>은 모두 '세상에 이런 책도 있었나' 싶을 만한 기가 막힌 책들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기책, 좀비에 관하여 심층적으로 연구한 책, 모험을 떠나기 위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 세계에서 가장 멍청한 여행기, 여자를 잘 유혹하기 위해 읽어야 하는 책에 이르기까지 참 별난 주제들을 다룬 책들을 두루 소개하고 있습니다.

 

'편협하고 엉뚱한' 책방 주인이 소개하는 책들

 

물론 이 책에서 시종일관 재미있고 우스운 책들만 소개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공산당 선언>이나 <자본론> 그리고 <파우스트>, <돈키호테>, <호밀밭의 파수꾼> 같은 책들, 그리고 움베르트 에코의 여러 저작들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인터넷 서점에 접속하여 이 책에서 소개하는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당장 한꺼번에 사기에는 부담이 되어 어떤 책들은 나중에 사겠다고 마음먹고 보관함에 담아두기도 하였습니다.

 

저자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사는 동안 책보다 좋은 것은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하는 '편협하고 엉뚱한' 책방 주인이 틀림없습니다. 모든 책 속에는 우주가 담겨있다는 저자의 책 읽기 예찬론을 소개하는 것으로 <침대 밑의 책> 소개를 마무리합니다.

 

"만약 책 한 권을 읽고 지식을 얻었다면 그는 작은 것을 얻은 것이다. 울창한 숲길을 걸으며 자기 발밑만 보는 것과 같다. 책 한 권은 브라질 밀림처럼 수많은 생명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하나의 우주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짚어가며 소리내 읽고 또 다른 어떤 방법으로든 읽을 수가 있다. 그 때마다 책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세상 모든 책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본문 중에서)

 

 

침대 밑의 책 - 10점
윤성근 지음/마카롱

 

 

 

 

728x90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