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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후쿠시마 사고, 모든 대비책은 무용지물...

by 이윤기 2013.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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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함께 인류 역사상 가장 심각한 원전사고가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현 원전에서 일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TV와 인터넷을 통해 1호기와 3호기가 폭발하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제 그 시간  후쿠시마 사고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일본 정부는 어떻게 대응하였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아울러 사고 당시 후쿠시마 원전 회사인 도쿄전력 간부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사고 수습을 위한 책임은 다하였는지, 현장 책임자와 사고 수습에 투입된 노동자들은 어떤 어려움과 맞섰는지, 일본 수상과 내각은 적절하게 대처하였는지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아사히신문 출신 저널리스트인 오시카 야스아키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전모를 상세히 밝힌 책 <멜트다운>이 국내에 번역되었습니다. <멜트다운>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3월 11일부터 8월 30일간, 나오토 내각이 총사퇴할 때까지 약 6개월 동안 후쿠시마 사고 현장과 도쿄전력 그리고 일본 내각과 정부 내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추적한 책입니다.

 

저자인 오시카 야스아키는 2011년 3월부터 12월까지 9개월 동안 125명의 인물을 만나서 노트와 메모 그리고 비공개 자료들을 주고받으며 오랜 시간 인터뷰를 통해 원전 사고 당시의 상황을 입체적으로 재조명하였습니다. 마치 방송사에서 이원 생방송을 하는 것처럼, 총리관저에서 사고 수습 대책이 논의될 때 후쿠시마 현장에서 어떤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글로 재현했습니다.

 

원인 제공기업인 도쿄 전력의 경영진들, 책임 관청인 경제산업성 관료들, 원자력안전위원회와 보안원의 전문가들, 채권보전에만 필사적이었던 은행가들 그리고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한심한 정치가들의 모습을 바둑을 복기하듯이 숨김없이 그려내고 있습니다.

 

저자는 일본의 엘리트 관료와 대기업의 최고 간부와 중역들 그리고 정치가들의 보신과 책임 전가, 정신의 황폐를 모두 기록으로 남겨두겠다는 결심으로 취재를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실명으로 표기되어 있고, 출신 학교는 물론이고 정재계 유력인사의 경우 그 가족 관계까지 소상히 밝히고 있습니다.

 

쓰나미가 아니라 지진이 사고 원인

 

저자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전모를 생생하게 담은 이 탁월한 기록물로 2012년 제 34회 고단샤 논픽션상을 수상하였다고 합니다. 독자로서 이 책을 통해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대하여 정확하게 확인하게 된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초대형 쓰나미가 시작되기 전에 진도 9.0의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 둘째 도쿄전력과 일본의 원자력 전문가들이 만든 '원전 비상계획'은 그야말로 무용지물이었다는 것입니다.

 

"후쿠시마 제 1원전에 전력을 공급하는 27번 철탑은 지진 때문에 토사가 붕괴되면서 그 충격으로 밑동이 무너졌다. 제 1원전과 연결된 후쿠시마 변전소는 변압기와 차단기가 파손되고 송전선을 떠받치는 철탑이 기울었다. 제 1원전 안에서도 유입 전기 차단기와 회로 차단기, 케이블이 손상돼 외부 전기를 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후쿠시마 원전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전원이 모두 끊겼다. 지진으로 인해 모든 것이 다 파괴되었던 것이다."(본문 중에서)

 

예컨대 지진으로 후쿠시마 제 1원전에 전력 공급이 끊긴 것이 재앙의 직접 원인이고, 대재앙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후쿠시마 원전 주변에는 이미 여러 차례 크고 작은 지진이 잇따랐지만 도쿄 전력은 지진에 대한 추가적인 대책을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지진과 쓰나미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 차가 존재합니다. 지진이 발생한 뒤 40여 분이 지난 후에야 쓰나미가 도쿄 전력의 후쿠시마 제 1원전을 덮쳤으며, 그로부터 8분 뒤에 높이 15미터의 대형 쓰나미가 후쿠시마 원전을 다시 강타하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쓰나미가 지진으로 발생한 원전사고를 더 심각하고 수습하기 어렵게 만든 것은 분명합니다. 쓰나미로 인하여 비상디젤발전기 6대 중에서 5대가 침수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으며, 이 때문에 원자로를 냉각시킬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원전사고 비상계획이나 매뉴얼은 무용지물이었다

 

아울러 막상 원전사고가 일어났을 때 현장 상황은 '비상계획'이나 '메뉴얼'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합니다. 우선 사고는 '예상할 수 있는 모든 최악의 상황을 훨씬 뛰어넘는 사태'로 전개 되었습니다. 또 지진으로 발생한 원전 사고 직후 비상용 냉각수 주입장치인 복수기를 가동시켰지만 불과 11분 만에 현장의 운전요원이 수동으로 가동을 중단시켜버렸습니다.

 

"이때(사고 직후) 1호기를 운전 조작했던 직원 가운데 누구 하나 비상복수기를 실제로 작동시켜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 고작해야 복수기가 작동하면 증기가 맹렬하게 분출되고 굉음이 울려 퍼진다는 말을 선배들한테서 전해들은 직원이 있는 정도였다."(본문 중에서)

 

뿐만 아니라 비상용 냉각수 주입이 중단되었는데도 현장 책임자인 소장에게는 전달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사실 중 하나는 전기를 만드는 원전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재앙을 불러온다는 것입니다. 원전에 전기 공급이 중단되자 안전을 위해 만든 2중, 3중의 안전장치들도 모두 일거에 멈춰 버렸다는 겁니다.

 

실제로 그날 일본에서는 지진으로 원전과 화력발전소가 가동을 중단하자 전기와 통신 그리고 교통이 모두 끊겼고, 심지어 현장에서 떨어진 도쿄에서도 비상시 소집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조차 소집할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원자력 행정을 담당하는 우두머리들은 그 누구도 모든 전원이 끊어지는 사태를 대비해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편 원전 마피아들은 이미 알려진 위험 경고를 무시하였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줍니다. 예컨대 후쿠시마 원전 사고 4일 전에 도쿄전력에서 경제산업성 원자력안전보안원에 보고한 자료에는 10미터가 넘는 쓰나미가 덮치면 육지에서는 파고가 15미터 이상 몰려올 것이라는 예측이 담겨 있었다는 겁니다.

 

"도쿄 전력이 쓰나미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동일본 대지진 쓰나미 피해를 당하기 3년 전인 2008년이었다. 도쿄전력은 그 해 4월, 규모 8급의 메이지 산리쿠 앞바다 지진(1896년)을 토대로 쓰나미 규모를 다시 계산했다. 그 결과 육지를 덮칠 때 밀려올라가는 파도의 최고 높이가 15.7m가 되는 대형 쓰나미가 덮칠 가능성이 잇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본문 중에서)

 

예컨대 도쿄 전력 주요 임원들은 진도 8.4(죠간 지진) 이상의 대형 지진이나 쓰나미가 덮였을 때 도쿄 전력 원전은 잠시도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도쿄 전력이 대비할 수 있는 최대치는 진도7.9인데, 진도 8.4의 죠간 지진과는 진도 0.5밖에 차이나지 않지만 그 위력은 무려 6배나 더 강력하다는 사실입니다.

 

 

경제산업성 앞 텐트 농성장
경제산업성 앞 텐트 농성장 by 에너지정의행동 (Energy Justice Action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도쿄전력, 위험 예측에도 대비하지 않았다

 

아울러 도쿄 전력에서는 플루토늄 대량 방출의 위험이 있는 플루서멀 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알고 있었던 위험도 외부에 알리지 않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전문가의 경고를 무시하였고 쓰나미 대책을 세우는 일에 태만하였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입니다.

 

한편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도쿄 원전의 방만한 경영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고가 난 시각 도쿄전력 가쓰마타 쓰네히사 회장과 쓰즈미 수석 부사장 등은 베이징에, 시미즈 마사다카 사장은 아내와 함께 사적인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고 합니다.

 

저자가 사고 당시 회사 최고 경영진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다는 고지식한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도쿄전력의 경영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줄 따름입니다. 실제로 1993년에 원자력보안원에서 '모든 전원이 끊어지는 상황을 검토하는 작업'을 했었지만, 그런 심각한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과 함께 더 이상 검토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원전마피아들의 예상과 달리 외부로부터 전기를 끌어들일 철탑은 무너졌고, 비상발전기는 고장 났으며 자가발전기를 탑재한 전원 차는 도로 파손으로 현장 접근이 안 되는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아울러 사고 이후의 대응도 제도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원자력보안원은 방사능물질의 확산 상황을 예측하였으나 이런 예측 결과 자료는 총리에게도 국민들에게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후쿠시마 제 1원전 사고로 대기 중에 방출된 방사성물질의 양은 반감기가 30년으로 긴 세슘 137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168개에 맞먹는 규모이다. 스트론튬 90으로 환산하더라도 원복 2.4개 규모가 된다. 엄청난 오염을 퍼뜨린 것이다."(본문 중에서)

 

이런 중요한 예측 자료가 제때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후쿠시마 제 1원전 주변의 주민들은 다량의 방사선에 피폭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국민에게 알려지지 않은 피폭 정보... 끝내 폭발한 원전

 

그리고 3월 12일 오후 3시 36분 사고 발생 후 약 25시간이 지나  모두가 TV 화면으로 보았던 것처럼 끝내 1호기가 폭발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훨씬 전부터 1호기는 멜트다운 상태였다고 합니다.

 

"멜트다운은 노심용융이라고 하는데 고열에 노출된 핵연료가 질질 녹아서(멜트, melt) 원자로 바닥에 떨어지는(다운, down) 현상을 말한다. 1호기는 지진 발생 뒤 약 15시간 뒤인 3월 12일 오전 6시 무렵에 연료가 모두 녹았으며 게다가 이 녹은 연료는 압력용기 바닥까지 녹여 격납용기 바닥 콘크리트까지 침식했다"(본문 중에서)

 

1호기의 폭발로 인하여 그동안 진행되던 전원 복구 작업은 모두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고, 엄청난 양의 방사능 오염물질이 쏟아져 나오는 최악의 상황이 되었지요. 하지만 사고 당시에는 수많은 전문가들 주에 누구도 폭발의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였다는 겁니다. 당시 총리 관저에서 이 기막힌 상황을 TV로 지켜보던 시모무라 내각심의관의 탄식에는 학자와 기술자들이 예측하지 못하는 원전의 숨겨진 위험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모두들 학교 다닐 때는 수재였죠.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시험을 낸다고 하면 예고한 범위 안에서 필사적으로 공부하면 100점을 땄겠지요. 하지만 조금이라도 범위를 벗어나면 0점이 되는 겁니다. 예상을 뛰어넘는 상황이 닥치면 전혀 대처할 수 없어요. 마다라메 위원장도, 보안원도, 도쿄전력도."(본문 중에서)

 

결국 예측을 벗어난 상황, 메뉴얼에 없는 상황에서는 어떤 대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학교 시험을 돌이켜보면 사실 범위를 예고해줘도 100점을 따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후쿠시마에서도 예측을 벗어난 상황에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1호기의 폭발 이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던 위험이었지만, 1호기 폭발 이틀 후 3월 14일 오전 11시 1분, 3호기 폭발도 막지 못하였지요.

 

"1호기의 수소폭발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엄청나게 많은 연기가 치솟았다. 흡사 폭탄이 명중해 대폭발을 일으킨 듯했다. 버섯구름 같은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구름 한 점 없이 맑던 푸른 하늘은 순식간에 검게 물들어 갔다. 후쿠시마 원전 주변은 낮인데도 검은 연기로 캄캄했다.(중략) 발전소 안은 공황상태에 빠졌다."(본문 중에서)

 

사고 발생 후 4일째가 되었지만, 그 많은 전문가들 중 누구도 3호기의 추가 폭발을 막을 수 없었고, 겨우 폭발은 막았지만 2호기마저도 이미 멜트다운 상태였다고 합니다. 사고 발생 후 일주일이 지난 3월 17일에야 전력 복구를 시작하여 20일에 전력이 공급되었지만, 원전의 냉각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최악의 위험 상황에서 벗어나기까지는 한 달이나 더 걸렸다고 합니다. 4월 11일이 되어서야 반경 20km 바깥쪽을 계획적 피난 구역과 긴급 시 피난 준비 구역으로 다시 설정하고, 원전 사고 수습 로드맵이 완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원전 통제를 위한 기본 절차가 마무리 되는데 자그마치 한 달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도쿄 전력의 보상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꼼수

 

하지만 이것으로 상황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책임 문제와 사고 수습에 따른 비용 부담을 둘러싼 공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상 초유의 원전 사고를 일으킨 도쿄 전력은 호시탐탐 보상 책임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계속하였고, 원전 마피아와 전력 산업 출신 정치인들이 합세하였습니다.

 

예컨대 원자력배상법 3조 1항에 명기된 '통상 범위를 벗어난 거대한 천재지변'에 해당된다는 하소연을 통해 거액의 보상 채무에서 벗어나기 위한 꼼수를 부리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민주당 정권 각료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배상책임을 벗어나기 위한 시도는 끊임없이 계속되었습니다.

 

동시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원인이 지진이 아니라 쓰나미가 원인이었다는 주장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진이 원인이라면 일본의 모든 원전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지요. 

 

이 책의 후반부에는 탈 원전으로 정책 전환을 시도하는 간 나오토 총리 진영과 여야를 막론한 원전추진론자들의 대결이 새롭게 펼쳐집니다.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에도 불구하고 원전을 포기하지 않는 핵마피아들의 뻔뻔스러운 작태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웃나라의 사고와 그 수습과정 그리고 이후 정치권의 대응에 주목하는 까닭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3기의 원전을 가동 중인 이 나라에서 후쿠시마와 같은 사고가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의 대응 매뉴얼은 이웃나라보다 더 허술하다고 하지요. 2년 전 후쿠시마원전 사고를 정학하게 알고 싶은 분들은 <멜트다운>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멜트다운 - 10점
오시카 야스아키 지음, 한승동 옮김/양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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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 참교육 2013.11.16 07:49

    정말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기름을 지고 불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답글

  • udemas 2013.11.23 03:55

    한마디로 일본은 저주받은땅이고 한국은 축복받은땅입니다. 일본은 한국의 재앙을 막아주는 방패막 역할도 하고 있음. 아무리 대비를 해도 자연의 힘을 막을 방법은 없죠. 일본은 애당초 원전을 세우면 안됩니다. 하루에만 약진이 수없이 발생하고 언제 어떻게 대지진이 발생할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땅이니까요. 가장 안타까운건 일본 정부와 고위층, 소수의 우익단체가 하는짓을 한국인들은 일본 국민 전체가 그런거처럼 싸잡아서 욕한다는겁니다. 독도 위안부 역사왜곡 다 일본 정부와 고위층 인간들의 잘못을 왜 죄없는 일본 국민들이 욕을 먹어야 하는지.. 정말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대지진때 도쿄전력 일본정부의 대응방식을 보면 얼마나 일본 국민들이 피해보고 사는지 알수 있죠.
    답글

  • 안단테 2013.12.04 18:14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두달도 안되서 일본정부는 도꾜의 서남부 이전을 공표했다가 국민과 여론으로 부터 날벼락을 맞았던거 기억한다 결국 당시부터 일본정부 그리고 일본국가는 동일본을 포기하고 서일본만 유지하겠다는 결정을 이미 내렸던 것이다
    아마 현 상황은 앞으로 수십년간 더 진행될 것이고 일본의 국민들은 서남부로 몰려갈 것이고 동일본은 저주받은 지역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 와중에 대한민국도 엄청난 피해를 볼텐데 축복받았다고 안이한 생각을 할 여지가 있을지 모르겠다 어쨋거나 대비해야 한다 일본 뿐 아니라 대한민국도 그리고 전세계의 모든국가와 인간이 그래야 할 때가 머지 않았다
    답글

  • ㅇㅇ 2013.12.31 22:25

    뭐가 축복 받은 땅이죠?? 저런 웬수 같은 종족이 바로 옆나라인데..

    체르노빌 터지고 한국이랑 일본까지 암 발생률이 확 늘어났다는데,

    후쿠시마는 체르노빌의 최소 10배규모라는데

    한국도 참 안전 하겠네..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