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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북한땅 바라보며 압록강 43km 라이딩

by 이윤기 2015.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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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 기념 백두산 자전거 순례②  압록강 라이딩 그리고 단동에서 통화까지 


이른 아침 단동항에 입항하였습니다. 인천항을 출발하여 하루 밤 내내 배를 타고 이동하여 아침 7시가 조금 넘어 단동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아침 6시부터 일어나 짐을 챙기고 하선 준비를 하였지만 4시간 넘게 기다린 후에 배에서 내릴 수 있었습니다. 


배에서 아침식사부터는 우리나라보다 1시간이 늦은 중국시간이 적용되었습니다. 아침 6시 30분이 조금 넘어 아침 밥을 먹고 다인실로 돌아와 밤새 풀어놓았던 배낭을 다시 꾸렸습니다. 아침 8시부터 안내 방송을 기다렸지만 자전거를 휴대한 우리 일행은 모든 승객들이 다 내릴때까지 대기였습니다. 


8시가 조금 넘어 중국 VIP(?) 승객부터 하선을 시작하더군요. 일반 승객들이 타고 입국심사장까지 이동하는 버스 대신 미니 버스에 한 가족만 태우고 들어갔습니다. 미니버스에 탑승한 가족이 떠나고 중국 승객부터 하선을 시작하였습니다.




자전거를 가지고 하선하는 우리 일행은 아침 10시가 지나서 하선을 할 수 있었습니다만, 하선 후에도 일반 승객들보다는 훨씬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배에서 내린 후에 시멘트와 모래를 운반하는 낡은 트럭에 자전거를 먼저 실었습니다. 


백두산 자전거 여행을 하는 다른 팀과 함께 50여대의 자전거를 3~4톤쯤 되어 보이는 트럭에 차곡차곡 실은 후에 사람들은 배낭과 짐을 들고 버스를 타고 입국 심사장으로 갔습니다. 다행히 입국 심사와 세관 검사는 한국보다 간단하였습니다. 단체 비자와 여권을 보여주었더니 비교적 짧은 시간에 입국 수속이 모두 끝났습니다.




자전거 여행자는 승선, 하선, 입국 심사 맨 꼴찌


입국 심사장을 빠져나오니 백두산 자전거 여행을 맡은 여행사 가이드가 ‘YMCA’라고 쓰인 작은 손팻말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이드 왕선생의 안내를 받아 단동여객선터미널 주차장으로 옮겨갔더니 자전거를 실은 트럭이 도착해 있더군요. 각자 자기 자전거를 내려 55인승 관광버스로 옮겨 실었습니다. 


백두산 자전거 순례를 하는 동안 10번 이상 차에 자전거를 싣고 내렸는데, 여객터미널에서 처음 차에 자전거를 실을 때가 가장 혼란스러웠습니다. 55인승 버스 아래쪽 짐칸에 자전거를 싣는데, 대략 20여대의 자전거가 실리더군요. 


그동안 한국에서는 사람은 관광버스를 타고 자전거는 트럭으로 옮겨다녔는데, 중국에서 버스에 자전거를 싣는 새로운 방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앞바퀴를 빼고 안장을 낮춰 관광버스 짐칸에 지그재그로 자전거를 적재하였더니 대략 20대쯤 되는 자전거를 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모두 29명, 자전거도 29대였는데 나머지 9대의 자전거는 버스 맨 뒤칸에 차례차례 적재하였습니다. 맨 뒤자리에 5대, 그 앞줄에 각각 4대씩 버스 맨뒤칸 세줄에 자전거 9대를 싣고, 29명의 짐까지 실었습니다. 


여객터미널을 빠져 나온 직후부터 일행 중 21명은 자전거와 짐을 실은 관광버스의 앞쪽 자리에 타고, 어른 참가자 8명은 따로 준비된 12인승 승합차에 나눠타고 다녔습니다. 백두산 자전거 순례 첫 일정은 압록강 ‘단교’를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생생한 압록강 단교


단동항 여객선터미널에서 약 40분 정도 이동하여 압록강 단교에 도착하였습니다. 압록강 단교는 일제침략기에 일본이 만들었는데, 1950년에 시작된 한국전쟁 때 미군이 파괴한 다리입니다. 중국 공산군의 한국전쟁 참전을 지연시키기 위하여 다리를 폭파하였는데, 전쟁 후에도 복구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어 지금은 관광 명소가 되었더군요. 




약 1km쯤 되는 압록강 철교를 건너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경도시 신의주로 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중국과 조선에 각각 새 정부가 들어선 최근에는 중국과 조선 정부가 갈등관계에 있어서 교류가 활발하지 않다고 하더군요. 단교와 나란히 있는 조선과 중국을 잇는 다리에는 차량 통행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압록강 단교는 남한 사람들에게는 큰 감흥이 없을수도 있는데, 중국과 조선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품고 있는 다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에게 쫓겨 온 조선 인민군이 압록강까지 밀려나 완전히 수세에 몰렸을 때, 조선을 지원하기 위한 중국 공산군이 압록강을 넘어간 다리이기 때문입니다. 


단교 바로 앞에는 중국 공산군들이 압록강을 건너는 모습을 형상화한 대형 군상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수백 명의 군인들이 조선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었는데, 상당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더군요. 




미국과 남한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북진통일을 완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무산된 계기가 되었지만, 중국과 조선 정부에게는 형제적, 동지적 우호관계를 상징하는 특별한 기념물로 남아 있었습니다. 평일인데도 남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단교’를 보러 왔더군요. 


단교 아래로는 거센 물살을 가르며 압록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단교 건너편으로 멀리 북한 마을이 보이더군요.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단동으로 건너와 압록강 건너 북한 땅을 바라보니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 하겠더군요.


북한땅 바라보며 압록강 라이딩 43km


압록강 단교를 둘러보고 점심이 예약된 식당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압록강변에 있는 장어마당이라는 식당이었는데, 중국 여행 동안 들렀던 여러 식당 중에 가장 맛없는 식당이었습니다. 맛없는 점심을 먹고 압록강 자전거 라이딩을 시작하였습니다. 


장어마당 식당 건너편에 있는 조그만 쌈지공원에서 자전거를 새로 조립하고 라이딩 준비를 하였습니다. 첫날 라이딩 압록강을 따라 약 40km 라이딩을 하였습니다. 국경선인 압록강 건너편으로 북한을 바라보면서 짙푸른 강물을 따라 라이딩을 하였는데, 비교적 힘든 구간 없는 무난한 워밍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압록강 강변 도로를 따라 달렸는데, 노면 상태는 좋았지만 도로 가장자리에는 각종 이물질들이 많이 있어 펑크 위험이 높았습니다. 첫날 40여km 라이딩을 하는 동안만 자전거 2대가 펑크 났습니다.


크고 작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기는 하였지만, 평속 20km 정도를 유지하고 달릴 수 있을 만큼 도로 사정이 좋았습니다. 단동시내에 비하면 도로를 주행하는 차량도 훨씬 적었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한 라이딩을 할 수 있었습니다. 


라이딩 준비와 마무리까지 약 3시간 30이 걸렸습니다. GPS기록을 보니 순수한 자전거 라이딩 시간은 2시간 10분, 약 43km를 평속 20km/h로 달렸더군요. 라이딩을 마치고 버스에 자전거를 모두 실은 후에 작은 도랑에서 땀을 씻어내고 여행사에서 준비해준 복숭아를 간식으로 나눠 먹었습니다. 


짧은 라이딩을 마치고 오후 5시 30분쯤 통화를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라이딩을 마친 곳에서 통화까지는 대략 3시간 ~ 3시간 30분이 걸린다더군요. 배를 타고 단동까지 온 것보다 더 지겨운 버스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압록강 라이딩 마치고...통화까지 4시간


통화로 이동하면서 잠깐 휴게소에 들렀는데, 차도 없고 손님도 없는 텅빈 휴게소가 참 어색하였습니다. 그래도 10여년 전 중국 단동에 왔을 때 들렀던 휴게소 화장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깨끗하여 깜짝 놀랐습니다.


통화에는 밤 9시가 넘어 도착하였습니다. 원래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고구려를 세운 주몽이 만든 ‘오녀산성’(졸본성)을 조망할 예정이었지만, 날이 어두워 볼 수가 없었습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상상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통화에 있는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가 넘었습니다. 차를 타고 오느라 지친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에어컨은 안 나와도 좋다. 와이파이만 빵빵 터지면 된다”고 하더군요. 


가이드 왕선생이 체크인을 하는 동안 우루루 안내데스크로 몰려간 아이들은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인 직원에게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더군요. 비밀 번호를 알아낸 아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켜고 인터넷에 접속하였습니다만, 중국 인터넷은 기대만큼 빠르지 않았습니다. 


에어컨 없어도 좋다, 와이파이만 빵빵터지면 된다


방마다 와이파이가 연결되었지만, 카톡 문자메시지만 주고 받을 수 있었을 뿐 페이스북 접속도 원활하지 않았습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샤워를 마친 아이들은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애나처럼’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곳을 찾아 호텔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누군가로부터 로비에 와이파이가 잘 터진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자정을 넘긴 시간까지 삼삼오오 로비에 모였다고 하더군요. 낮 시간에 자동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워낙 길었기 때문에 꼭 일찍 자라고 재촉할 까닭도 별로없었습니다. 


자정을 넘겨 잠자리에 든 아이들도 새벽 5시 30분이면 일어나서 아침을 챙겨먹고 매일 7시에는 다음 여행지로 이동하는데 무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천을 떠나 단동을 거쳐 압록강 라이딩을 마치고 통화까지 옮겨 온 첫 날은 무지무지하게 길었습니다. 


새벽 6시부터 일어나 단동항 입항 준비를 서둘렀고, 압록강 라이딩을 마치고 통화까지 4시간 넘게 자동차를 타고 밤 9시가 지나서야 저녁을 먹고, 10시가 넘어서 숙소에 들어갔으니 어찌 하루가 길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중국에서의 첫 날밤 참으로 긴 하루가 저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