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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일본 천황은 '항복'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by 이윤기 2015.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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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통해 백두산 여행을 다녀오면서 읽은 책입니다. 모두 세 권으로 된 이 책을 중국을 통해 백두산에 가기 전에 절반쯤 읽고 중국을 거쳐 백두산에 다녀온 후에 나머지 절반을 읽었습니다. 이런 저런 복잡하고 바쁜 일들이 많아 책읽기를 미루다가 어제 밤에 책읽기를 마쳤습니다. 


오래 전부터 집에 있었던 책인데 이번에 뒤늦게 아주 즐겁고 흥미롭게 읽은 책입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읽고 재미있다고 추천한 책이지만, 소설 읽기를 즐기는 편이 아니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이번 광복 70주년 기념 청소년 백두산 자전거 순례를 다녀오면서 완독하게 되었습니다. 


조정래 선생이 쓴 <정글만리>인데요. 어제 밤 3권을 읽다가 정신이 확 깨는 정말 놀라운 내용을 읽게 되었습니다. 소설 내용 중에 중국 베이징 대학 사학과 학생들과 난징 대학 사학과 학생들이 '난징다투사' 현장을 탐방하고 세미나를 개최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1945년 8월 15일...일본 천황은 '항복'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 세미나에서 한국인 유학생 송재형이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이 발표한 항복문을 인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정글만리>에서 이 대목을 읽기 전까지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이 항복을 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지, 일본 항복 선언문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는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했으니 아무 조건없이 그냥 항복 한 것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 원자폭탄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폭격하자, 핵무기의 위력에 놀라 '조건 없이 항복'한 것으로만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글만리>에 나오는 일본 천황의 항복문을 읽어보니 이건 암만 봐도 항복선언이 아니더군요. 이 항복 선언문을 읽은 보지 않은 사람이 저 뿐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전문을 옮겨 봅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의 항복(?)선언문>


오늘날 세계의 대세와 우리 제국이 처한 조건을 깊이 숙고한 결과 짐은 비상수단에 의지해 현재의 상황을 해결하기로 결정했노라. 

짐은 우리 정부에 공동선언 조항을 수락하기로 했다는 뜻을 미국, 영국, 중국, 소련 정부에 통고하라고 지시했다.

우리 백성의 안전과 안녕뿐만 아니라 만국의 번영과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우리 황실 대대로 내려오는 엄숙한 의무인바 짐은 그 의무를 마음 깊이 새기고 있노라. 


실로 짐은 일본의 자존과 동아시아의 안정을 확보하려는 진심 어린 바람에서 미국과 영국에 전쟁을 선포했을 뿐 다른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거나 영토를 확장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전쟁은 근 4년을 끌어왔다. 그동안 짐의 육군과 해군은 전쟁터에서 용맹하게 싸웠고, 국가의 종복은 근면을 아끼지 않았으며, 짐의 1억 백성도 섬김에 소홀함이 없었다. 다들 최선을 다해왔으나 세계의 대세 또한 일본의 이익과 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더욱이 적은 잔인하기 짝이 없는 폭탄을 새로이 사용해 무고한 생명을 무시로 빼앗기 시작했으니 그 피해가 실로 어디까지 갈지 헤아릴 수 없구나. 이 이상 교전을 계속한다면 일본 한 나라의 파괴와 소멸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류 문명 전체의 절멸로 이어질 것이니라.

상황이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짐의 1억 백성을 구할 것이며, 또 무슨 낯으로 황실 조상님들의 신위를 뵈옵겠는가? 이것이 짐이 정부에 열강의 공동선언 조항에 응하라고 지시한 연유다. 


짐은 제국과 합심하여 시종 동아시아의 해방에 힘써온 동아시아의 동맹국들에 심심한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에서 다쳤다거나 제 본분을 다하다 죽은 장교와 사병 뿐만 아니라 그 유족을 생각하면 짐의 가슴은 밤이나 낮이나 고통을 가눌 길이 없다.

짐이 가장 염려하는 바는 부상자와 전쟁 피해자, 집과 호구지책을 잃은 사람들의 후생복지다. 금후 제죽에 닥칠 고난과 시련은 분명히 녹록지 않을 것이다. 


짐은 그대들, 짐의 백성들 속내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짐은 시운의 지시를 바다들여 어차피 불가피하다면 아무리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라 해도 인고하고 또 인고해 만세에 태평성대를 위해 길을 닦기로 다짐하였노라. 지금까지도 제국의 근간을 유지해 온 바 그대들의 한결같은 충정을 믿기에 짐은 항시 그대들과 함께 있다.


행여 감정이 격발해 공연히 일을 복잡하게 만들거나 형제끼리 의견이 달라 갑록을박하며 소요를 조성해 정도에서 벗어나 헤매다 끝내 세계의 신의를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하라.


각자 책임이 막중하고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명심하고 신령스러운 땅의 불멸을 항시 믿으며 세세손손 한 가족으로 지내라. 장래를 건설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라. 정직하고 고결한 품성을 도야하며 굳은 의지로 밀고 나가 제국의 영광을 드높이고 진보하는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지어다.


소설에도 나오는 것처럼 우리들이 흔히 <항복선언문>이라고 알고 있는 이 연설에는 '항복'이라는 말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일본 정부의 공동선언 조항을 수락하기로 했다는 뜻을 미국, 영국, 중국, 소련 정부에 통고하라고 지시 했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항복선언이 아니라...종전 선언이었다


전쟁 책임자인 일본 천황은 '항복'을 한 일이 없고, "세계의 대세와 우리(일본)제국이 처한 조건을 깊이 숙고한 결과 짐은 비상수단에 의지해 현재의 상황을 해결"하기로 결정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미국, 영국, 중국, 소련에 "공동선언 조항을 수락"하는 "비상수단"을 강구하였을 뿐 "항복"을 선언한 일은 없다는 것이지요. 오늘날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치인들과 우익들의 왜곡된 역사인식이 어디서 출발하였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본 천황의 연설문(황복문이라 볼 수없는) 읽어보면, 미국과 영국을 뺀 나라들과는 전쟁을 일으킨 일도 없고, 주권을 침해하거나 영토를 확장하려는 생각조차 없었다는 것입니다. 위안부 문제나 난징대학살 같은 사건들을 대하는 일본 정치권의 망언이 바로 일본 천황의 8.15일 연설문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의 왜곡된 역사인식이 바로잡히기 어려운 까닭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을 기해 일본이 전쟁 중단을 선언한 것은 분명하지만, 일본은 누구에게도 '항복'한 일이 없으며,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하겠습니다. 


1945년 8월 15일을 기해 미국, 영국과의 전쟁을 중단한 까닭 역시, '자국 백성들의 안위를 걱정한 조치이고, 고난을 이겨내고 다시 힘을 기르기 위한 후퇴였을 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공식 문서인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의 연설문에 그렇게 씌어 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의 연설문을 읽어보면 결코 '항복선언문'이 아니라 '종전선언문'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