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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남북 대치 상황,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나?

by 이윤기 2015.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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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0일 국방부가 북한의 소행이라고 발표한 지뢰 폭발사고로 촉발된 남북한 대치정국이 보름 동안 이어졌습니다. 언론보도를 요약하면 "무박 4일, 43시간 마라톤 협상" 으로 진행된 남북고위당국자간 접촉이 성과를 내면서 대치상황은 일단락되었습니다. 


약 보름 동안 남북 당국간 극한 대치 상황이 이어지면서 언론 보도를 통해 온갖 다양한 보도가 이어졌는데,의외로 국민들은 '전쟁위기'라는 판단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예컨대 흔히 전쟁 위기라고 하면 '마트와 슈퍼로 몰려가 생필품 사재기'를 하는 것이 기본인데, 이번 위기 국면 동안은 그런 모습을 발견하기 어려웠습니다. 




마침 휴가의 끝자락과 연결되었는데, 마치 아무 일 없는 것 처럼 휴가를 다녀오는 등 지극히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였던 것도 전에 볼 수 없었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언론(특히 종편)에서는 마치 일촉즉발의 위기인 듯이 호들갑을 떨었지만, 정작 국민들은 '전쟁위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 주변에도 "야 이러다 전쟁 나는거 아냐?" 하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에이 이러다 말거야" 하고 낙관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번 대치 정국을 '전쟁 위기'라고 보는 사람과 '남북 당국간의 짜고 치는 고스톱' 정도로 보는 사람들 간에는 커다란 인식의 차이가 존재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이런 인식의 차이 때문에 행동에서도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었지만, 오늘은 그 중 몇가지 사례만 골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번 사태가 일단락 되었을 때 나온 눈에 띄는 언론 보도 중에 하나는 남북 대치 정국이 지속되는 동안 'IT 기업인들이 골프'를 쳤다는 뉴스였습니다. 


지뢰정국...골프친 기업인들 뭘 잘못했단 말인가?


기업인들이 골프를 친 이런 일이 뉴스가 될 수 있는 것은 보도하는 기자는 남북대치 상황을 위기 정국으로 보았기(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지만, 실제로 골프를 치러 갔던 기업인들은 위기상황이 아니라고 본 까닭입니다. 위기 상황이 아니라고 본 사람은 골프를 치건 뭘 하고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기업인은 장성급 군인도 아니고 장관이나 국회의원도 아닌데, 왜 일상 활동을 하면 안된다는 것인지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골프를 쳤던 기업인들이 당시 상황을 '일촉즉발의 대치상황'으로 인식하였다거나 전쟁위기로 판단하였다면 한가하게 골프를 치러다니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부와 언론만 '극단적 대치상황'이라고 판단하였지, 기업인과 국민들은 '전쟁위기'라고 판단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언론이 호들갑을 떨든 보름 동안에도 '개성공단'을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개성공단을 마주하고 있던 1사단은 유일하게 '대북방송'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컨대 이번 남북한 대치정국은 그야말로 남북한의 기싸움이었거나 그도 아니면 과거 '총풍사건' 같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지난 한 달여 동안 생긴 여러 사건들과 정황들을 종합하여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었나 하는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전역연기? 동원 예비군 입대해야지...


또 한 가지 납득하기 어려운 뉴스는 '전역을 연기한 장병들이 속출(?)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남북간 대치상황과 전쟁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긴장국면에 전역을 연기하는 장병들이 있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 사건을 '전쟁 위기' 상황으로 보는 것이 적확한가 하는 것입니다. 진짜로 전쟁 위기 상황이었다면 '전역 연기'는 칭찬 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만에 하나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해프닝'이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엔 해프닝에 더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전쟁위기라 하더라도 전역 장병은 법과 원칙대로 행동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이 전역 날짜면 내일 전쟁 날 위험이 있더라도 그냥 전역하면 됩니다. 


제 아들도 군대 생활을 하고 있지만, 사실 평범한 장병들은 외출, 외박이 무기한 중단되고 휴가가 금지 된 것만으로도 '짜증나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지뢰 사건으로 촉발된 남북간 대치정국을 바라보는 평범한 군 장병들이 시선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법과 원칙대로 전역을 해도 진짜로 전쟁이 일어나면 '동원 예비군'으로 소집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동원예비군으로 소집되면 곧장 현역 장병과 마찬가지로 '전쟁 임무'를 수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에 있었던 '전역 연기'는 장병들의 순수한 충정심과 달리 정부와 언론에 의해 의화화 된 측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음모론? 국정원 해킹 사건 덮힌 건 사실아닌가


남북 당국이 짜고 친 고스톱이었다는 주장에 완전이 공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보름 동안의 남북 대치 정국 이후에 <국정원 해킹 사건>이라는 초대형 이슈가 완전히 묻혀 버린 것은 사실입니다. 심지어 남북대치 정국이 끝나자 새정치 민주연합에서 만들었던 '진상조사 기구'도 해산하였다더군요.


한 켠에서는 처음부터 '국정원 해킹 사건'을 덮기 위해서 시작된 일이라며 음모론을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음모론을 100%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일들이 모두 현실이 된 것은 명명백백한 일입니다. 


사과 같지 않은 유감표명을 받아내고도 '희희낙낙'하고 '자화자찬'하는 자들을 보면,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고 주장하는 음모론 쪽으로 점점 기울어지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번 회담의 성과물도 이상한 측면이 있습니다. 


추석계기 이산가족 상봉 추진…내달초 적십자 실무접촉

남북, 당국회담 서울 또는 평양에서 빠른 시일내 개최

북한 준전시상태 해제…남북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교류 활성화

靑 "확성기 중단과 연계해 도발방지 약속…일관된 원칙으로 협상한 결과"


이 같은 회담 성과를 '짜고 치는 고스톱'을 주장에 비춰 보면 고위급 회담의 결과물도 뜬금 없다는 지적이 많이 있습니다. 예컨대 지뢰 사건의 책임을 묻는 회담을 시작해놓고 갑자기 이상가족 상봉을 추진하고, 민간교류를 활성화한다는 뜻 밖의 결론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무박 4일로 잠도 안 자고 회담을 하다가 원래 의제가 무엇인지 까먹은 것일까요? 참으로 희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