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읽기

YS 중 3때 대통령 꿈 사실일까?

by 이윤기 2015. 11. 27.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국가장이 치러졌습니다. 2015년 11월 26일 오후 2시 서울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거행된 고 김영산 전 대통령의 영결식은 정부측 장례위원 2222명을 비롯해 주한외교단과 조문사절 80여명, 유가족 관련 인사 100여명, 각계인사와 시민 등 총 1만여명 규모로 치뤄졌다고 합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 역정을 잠깐 살펴보면, 1954년 국회의원에 당선, 현재 헌정사상 최연소, 최다선(9선)이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1969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40대 기수론'을 주창하며 한국 정치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고 1975년 신민당 총재에 선출되었습니다. 





정치 역정의 과정에서 의원직 제명과 가택연금 그리고 1983년에는 23일간 단식투쟁으로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으며, 87년 민주화 대투쟁 이후 6월 항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쟁취에 앞장 섰습니다. 3당 합당으로 민주화 세력을 배신하였다는 질타를 받았지만, 1992년 14대 대통령에 당선돼 이듬해 문민정부를 출범시켰습니다. 


대통령 당선 이후 하나회 해체, 지방자치 전면 실시,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공직자재산공개, 5·18 특별법 제정과 '역사 바로 세우기' 등의 성과를 남기면서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서태지보다 높은 대통령 지지율로 유명세를 탔습니다. 


퇴임 직후 IMF 사태를 맞이하였고, 삼당 합당의 결과로 오래 동안 야당 강세였던 부산, 경남 지역을 여당(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텃밭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그의 공적을 모두 덮을 만큼 큰 과오라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날, 제가 속한 단체의 어느 정기모임 뒤풀이 자리 모인 회원들과 자연스럽게 그의 공과를 평가하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써 놓고 대통령의 꿈을 키웠다는 전설(?)같은 이야기에 한 사람이 의혹을 제기하였습니다. 


그 회원이 제기한 의혹의 근거는 "요즘처럼 매일 뉴스에서 대통령을 보는 시대도 아닌데, 어떻게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품을 수 있었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아이들이 대통령 꿈을 꾸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이 중학교 3학년에 다니던 시절에는 우리나라에는 대통령 차체가 없을 때"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저희 어린 시절에는 물론이고 지금도 초등학생 중에는 미래의 꿈이 대통령이라는 아이들이 가끔 있습니다만, 대통령이 없던 그 시절에는 평범한 중학생이 대통령의 꿈을 꾸기는 어렵다는 것이 그 주장의 근거였습니다. 


1927년 생이 중3 때면 일제 치하인데...어떻게 대통령을 꿈꾸나?


아울러 그 회원은 김영삼 대통령의 중학교 입학 연도와 대학 입학 연도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27년 도에 태어나서 중학교 3학년(중학교 학제가 5 ~ 6년이었으면) 이면 1942  ~ 43년 무렵인데, 아무리 학교에서 배웠다고 해도 해방도 되기 전에 해방된 나라에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키우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었습니다. 


듣고 보니 충분히 일리있는 지적이고 공감도 되었습니다. 실제로 여러 보도에는 "경남중학교 3학년 때 하숙집 책상머리에 붓글시로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적어 놓았다"고 소개 되어 있었습니다. 사실이 아닐 수도 있고 미화되거나 부풀려진 측면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정도로 그날 뒷담화는 끝났습니다. 

그런데 김영삼 민주센터 홈페이제 나와 있는 공식 연표를 확인해 보니 요즘 중학교 입학과 같은 처음 중학교 입학은 1943년 통영 중학교 입학이었고, 1945년 11월에 부산 경남중학교 3학년으로 편입하였고, 1947년 2월에 졸업한 것으로 되어 이었습니다. 


따라서 그가 하숙집 벽에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써 붙인 때는 1945년 11월 이후 였던 것입니다.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하고 여운형 선생이 인민공화국을 선포하였으며, 정부 수립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을 때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1945년이면 이미 정부 수립에 관한 논의가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을 때였을 것이고, 정치에 관심이 있었던 학생이라면 대통령제가 무엇인지 내각책임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보입니다. 


중학교 3학년이 1945 ~ 46년이라면?


실제로 그는 1945년에 책상머리에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적어 놓고, 불과 9년 후인 1954년에 최연소 국회의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중학교 3학년 때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쓴 것을 지금 중학교 3학년에 비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미 그 당시 나이 18 ~ 19세 때였고, 불과 5~ 6년 후에는 장택상 국무총리의 비서관이 되었고 8 ~9년 후에는 최연소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여러 자료를 살펴보니 그가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붓 글씨를 써 붙인 때가 1942 ~ 43년이 아니라 1945 ~ 46년 무렵이라고 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대통령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는 믿을 만하다는 결론에 이러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