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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봉하마을에 조문을 다녀왔습니다.

by 이윤기 2009.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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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계실 때 좀 도와주지, 대통령직에 계실 때 좀 도와주지, 왜 그랬습니까?”

오전 9시 40분경 라디오 속보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들은 후 하루 종일 라디오를 듣다가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하여 친구 둘과 함께 봉하 마을을 다녀왔습니다.

조문객들이 몰려들자 봉하마을 들머리부터 차량을 통제하고 있어, 자동차를 세워놓고 약 2km 정도를 걸어서 들어갔습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7시 30분쯤 봉하마을에 도착하였는데, 막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가 쫓겨나고 있더군요.

노무현 대통령 빈소가 마련된  봉화마을 가는


봉하마을이 이렇게 초라하고 작은 마을인지 직접 와 보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 사저도 직접 보니 시내에 있는 웬만한 고급주택 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더군요.

얼마나 작은 마을인지 수 천 명의 조문객이 한꺼번에 몰려들자 음식은 물론이고, 먹을 물도 모자랐습니다. 마을회관에서 나오는 안내방송은 조문객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더군요.

“급작스런 일을 당하고 보니 경황이 없습니다. 식사 준비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급히 준비하고 있지만 매우 부족합니다. 혹시, 조문 오는 친지나 친구 분들에게 전화를 해서 물과 간단한 음식을 준비해오라고 해주세요.”

참배객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제가 마을을 빠져나오는
 밤 10시 30분 경에도 끊임없이 조문객들이 밀려들고 있었습니다.


마을에는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들, 노사모, 참여정부 인사들, 그리고 수많은 취재기자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이었습니다. 촛불을 들고 임시분향소가 설치되는 것을 지켜보며 기다렸습니다. 1시간 넘게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서 시민들은 차분하게 분향소 설치를 지켜보며 기다렸습니다.

8시 20분경, 민주노동당 조문단이 마을회관에 도착하였습니다. 권영길, 강기갑, 천영세, 손석형 의원 등 민노당 대표단이 도착하였는데, 별다른 제지를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문객 중 40대 여성 한 사람이 민노당 대표단을 향하여 원망의 심정을 토로하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민주노동당 여러분 속 시원합니까? 그렇게 힘들게 하고 한나라당이 정권 잡으니, 이런일 생기니 속 시원합니까?”

“살아계실 때 좀 도와주지, 대통령직에 계실 때 좀 도와주지, 왜 그랬습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정이 설치되고, 참여정부 참모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 끊임없이 밀려드는 조문객들 때문에 임시분향소가 설치되는 마을회관 앞은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9시가 조금 못된 시간에 노무현 전 대통령 조문이 시작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습니다.

문재인 전비서실장이 노무현 전대통령의 영정을 들고 나온다는 방송이 나오면서, 비장한 분위기의 ‘님을 위한 행진곡’이 잔잔하게 울려퍼졌습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

마을회관 앞에 앉아 주문을 기다리던 시민들은 ‘님을 위한 행진곡’을 조용한 목소리로 따라 불렀습니다. 노랫소리는 더 커지지도 않고, 더 작아지지도 않은 채 마을회관 앞에 낮게 깔렸습니다.

일반 참배객 조문이 시작된지 20여분 후에 저도 조문을 마쳤습니다.


문재인 비서실장과 참여정부 인사들이 먼저 조문한 후에 일반 조문객들의 조문을 받는다고 양해를 구하더군요. 시민들은 대부분 쉽게 수긍하고 기다렸습니다. 나중에 언론보도를 보니 아들 건호씨와 딸 정연씨가 청와대 참모들에 앞서서 조문을 했었더군요.

참여정부 참모들의 조문이 시작될 무렵에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가 스피커에서 흘러 나왔습니다.

“거센 바람이 불어와서 어머님의 눈물이 가슴속에 사무쳐오는 갈라진 이 세상에... 창 살 아래 내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노래를 따라 부르던 조문객 중에서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 목 놓아 우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일부 시민들은 “대통령님, 노무현 대통령님~”을 외치며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였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유서' 마을 회관 건너편에 내 걸렸습니다.


잠시 후, 일반 참배객을 위한 조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엔 10명씩 한 줄로 서서 절을 하다가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국화 한 송이씩 헌화 한 후에 짧게 묵념하고, 유족들과 인사를 나누도록 간소화시키더군요.

그래도, 천 명이 넘는 조문객들이 몰려들어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저는 조문이 시작되고 20여 분 후에 조문을 마치고 곧 바로 봉하마을을 빠져나왔습니다. 제가 조문을 마치고 나올 무렵, 정동영 전 장관 일행이 마을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쫓겨나고 있더군요.

그 뒤에는 한승수 총리 일행이 타고 온 버스가 노사모 회원들과 조문객들에게 둘러 쌓여 욕을 먹고 있었습니다. 노사모를 비롯한 조문객들은 “노 전 대통령을 죽인 이명박 정권 조문은 필요 없다”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멀리, 한승수 총리 일행이 타고 온 마이크로버스가 시민들에게 가로막혀 있습니다.


또 일부 조문객들은 자동차를 타고 조문 오는 행위 자체에 분노하기도 하였습니다. 모든 국민들이 2~3km를 걸어와서 노 전 대통령을 참배하는데, 정치인들은 뭔데 차를 타고 오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적극적 지지자가 아닌 분들도 정치인들, 고위관료들의 특권 의식을 눈 감아 줄 수 없다는 생각인 듯 하였습니다. 총리께서는 참으로 분위기 파악을 못하더군요. 계란 세례를 당하더라도 걸어서 들어왔었다면 어차피 조문은 못 하더라도 욕을 덜 먹었을지도 모릅니다.

밤 10시 30분, 밤이 깊어 가는데도 수많은 시민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사람들의 행렬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밀려드는 자동차들을 보니, 밤새도록 조문 행렬이 끊이지 않을 듯하였습니다.



조문이 시작되기 전, 분향소 설치를 기다리는 시민들

봉하마을에 추모객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일부 시민들이 옥상에서 이회창 총재가 탄 차량이 쫓겨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