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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억하며...

문득 10년 전에 끊은 담배 생각이 났습니다.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 "담배 있느냐"는 물음이었다고 하더군요.

너무도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하여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어 봉하마을을 다녀오는 첫날 10년 전에 끊은 담배 생각이 간절하였습니다.

친척 결혼식에 가며 한가롭게 라디오를 듣다가 여자 아나운서가 전하는 날카롭고 다급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오늘 아침 사저 뒤편 봉화산에서 투신하여 자살을 시도하였습니다."


도저히 믿기지 않은 '속보'가 전해지고 한 시간쯤 후에, 문재인 전 비서실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확인하는 공식발표를 하더군요.

한 나라 대통령을 지내신 분이니, 그분에 대한 크고 작은 추억을 간직한 분이 어디 한두 분이겠습니까만, 그를 떠나보내는 이 아침, 저도 제가 만난 서민 대통령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처음 본 것은 1985년 마산지방법원 재판정입니다. 대학 새내기 시절, 선배들이 준 임무(?)를 수행하러 훗날 민주노동당 대표가 된 통일중공업 문성현 위원장 재판에 방청을 갔습니다. 삼엄한 경찰 경비를 뚫고 법정에서 대학 초년생의 인생을 흔들어놓는 최후 변론을 하던 노무현 변호사를 처음 만났습니다.



1985년 마산지방법원에서 만난 '노변'

서울 상대 출신 지식인 청년 문성현이 노동자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과정과 처절하게 짓밟힌 이 땅의 노동 현실과 권력의 시녀가 된 민주주의에 대해 격정적인 최후 변론을 하던 노무현 변호사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눈물을 참을 수 없었던 가슴 울리는 최후 변론은 새내기 대학생을 깊이 '의식화' 시켰고, 훗날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노동운동 언저리에 발을 들여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마창노련이 건설될 무렵 수출자유지역에서 열린 노동자 집회에서 노동형제들을 향해 노동악법철폐를 주장하는 연설을 하던 노무현 변호사를 다시 만났습니다. 노동자의 처지에서 노동악법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연설을 듣던 노동자들이,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을 한목소리로 외치던 그날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때만 하여도 그가 진짜 대통령이 되리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였지만, 십수 년이 지난 2002년 그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마산에서 국민경선이 열리던 날 그리고 대통령 선거를 앞둔 어느 날 밤, 창원에 있는 모 복지관 회의실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대통령 후보 노무현을 만났습니다.

민노당과 노무현 후보 사이에서 고민하던 젊은 활동가들에게 간곡한 도움을 요청하였고 우리는 그의 승리를 기원하였습니다.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그는 당선되었고, 개표 방송이 있었던 그날 밤, 많은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매우 기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격정적인 최후변론 모습 잊을 수 없어

왜 그랬을까요? 바로 그의 승리가 가지는 특별한 의미와 기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DJP 연합과 같은 방식이 아니라 국민 참여 경선을 통해 대통령 후보가 되고, 초기 여론조사 결과를 꾸준히 뒤엎고 온전히 국민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민주 정권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한국정치를 왜곡해왔던 기득권구조인 보수언론, 지역주의, 그리고 재벌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축적한 정치적 자산으로 승리하였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진보 개혁 진영에서 일하던 선배들이 청와대와 정부에 참여하는 것을 보며 적지 않은 기대를 키웠고, 탄핵정국을 거쳐 국회에서 진보개혁진영이 수적 우위를 점하였지만, 개혁에 실패하였을 때는 실망이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은 세상에 당신을 사랑하는 국민을, 당신이 사랑했던 국민을 남겨 놓고 떠나는 날입니다. 제가 세상을 사는 동안 꼭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된, 그 기적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았던 것이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는 저에게 늘 희망의 밑천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안녕히 가십시오.

※ 2009년 5월 29일,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이 열리는 날, 경남도민일보 칼럼 '향기가 있는 글'에 쓴 글 입니다.



윤민석님이 만든 노무현 대통령 추모노래 '바보 연가'


 







Trackback 0 Comment 9
  1. 김경주 2009.07.21 19:52 address edit & del reply

    안녕하세요. 저는 한 부산시민입니다.이곳에 오니 제가 배울게 많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블로거님이 노무현대통령을 처음 만났을때 저는 5살이였네요.
    사회문제,정치가 어려울거라는 생각으로 외면했던 것이 마음아픕니다.
    선의를 품은 사람은 순수한 열정을 감추기가 어려운가봅니다.
    아직 그분이 마음에 많이 차있어서 무슨희망을 어떻게 꿈꿔야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좋은글 보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윤기 2009.07.22 14:08 신고 address edit & del

      김경주님 고맙습니다. 마음 뿌듯한 격려의 글을 남겨주셔서 정말 힘이 됩니다. 자주 찾아주시고... 댓글도 남겨 주세요.

      정치에 대하여... 프레시안 논객 '막시무스'가 쓴 글을 전해드립니다.

      정치

      좀 괜찮은 사람들은
      정치하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정치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며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좀 괜찮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권력을 내주고
      그들로부터 지배받는 벌을 받는다.

      - 막시무스

  2. 그러세요 2010.06.15 19:07 address edit & del reply

    내가 왜 노무현에게 실망했냐면,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한나라당 후보를 공식석상에서 욕하고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서 그렇다. 물론 이것이 탄핵의 주요 쟁점이 되기도 했지만... 헌법에서는 투표에 있어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택하고 있다. 맘에 드는 정당을 택해서 그 공약을 지지하는 것은 국민의 헌법적인 권리이다. 그 권리를 얻기 위해서 선배들은 얼마나한 피와 땀을 흘렸던가. 독재정권에 대항한 선배들의 넋은 헌법과 민주주의 제도로 남았다.

  3. 그러세요 2010.06.15 19:09 address edit & del reply

    그런데 국민들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그것도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모두를 아우르고 잘못된 점이 있다면 준엄하게 꾸짖는 것이 국가의 수장으로서의 역할이다. 그런데 그의 말에 한나라당을 지지한 지지자들은 상실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울타리 안의 양만 양이라고 말하는 예수처럼, 그의 주장은 자신의 철학에 동조하는 국민들에게만 전해지는 듯한 상실감. 그리고 세종시가 뜻대로 되지 않자 '그놈의 헌법'이라고 소리치며, 헌법을 위해 스러져간 사람들을 무시하는 발언. 지나치게 아집적이다.

  4. 그러세요 2010.06.15 19:12 address edit & del reply

    주인장은 어떤 식으로 세상을 읽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한가지만큼은 이야기 해주고 싶다. 노무현의 마지막 선택은 결단코 잘못되었다. 죄가 없다면 끝까지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죄가 있다면 끝까지 살아남아 죗값을 받는 것이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이다. 조사도중 투신자살을 하여 조사과정의 의혹을 증폭시켜서, 자신의 바통을 이어받은 정권에 심대한 타격을 입히고,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도덕적인 이점을 넘겨준 노무현. 그는 죽을때까지도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라 자신을 지지하는 자들의 대통령이었다. 그 사실이 너무너무 싫다.

  5. 그러세요 2010.06.15 19:15 address edit & del reply

    내가 남긴 수많은 댓글들, 지우지는 못할 것이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검열하고 삭제하는 순간 당신이 세우려는 공동체 사회와 민주주의는 무너지고 말테니까. 대체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자상하고 옆집 할아버지 같은 탈권위만이 최고의 대통령의 덕목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권위적인 모습에서는 탈피해야 겠지만, '권위' 그 자체는 지켜야 하는 것이 지도자이다. 그 차이점은 당신이 더 잘 알것이라 믿는다. 예컨데 법을 무시하고 헌법을 경시하는 발언 같은 것은 금해야 한다.

  6. 최미숙 2011.10.04 05:48 address edit & del reply

    그러세요님, 그것 한가지때문에 노무현님을 싫어하세요? 그럼, 당신이 지지하는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분은 모든것에서 완벽한 분입니까? 누군지 좀 알려주세요.

  7. 최미숙 2011.10.04 05:49 address edit & del reply

    제 생각에 당신을 만족시킬 사람은 이 지구위에는 아무도 없을것 같네요.

  8. Chaussure louboutin hommes 2012.12.18 20:14 address edit & del reply

    가며 한가롭게 라디오를 듣다가 여자 아나운서가 전하는 날카롭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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