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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억하며...

by 이윤기 2009.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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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10년 전에 끊은 담배 생각이 났습니다.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 "담배 있느냐"는 물음이었다고 하더군요.

너무도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하여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어 봉하마을을 다녀오는 첫날 10년 전에 끊은 담배 생각이 간절하였습니다.

친척 결혼식에 가며 한가롭게 라디오를 듣다가 여자 아나운서가 전하는 날카롭고 다급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오늘 아침 사저 뒤편 봉화산에서 투신하여 자살을 시도하였습니다."


도저히 믿기지 않은 '속보'가 전해지고 한 시간쯤 후에, 문재인 전 비서실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확인하는 공식발표를 하더군요.

한 나라 대통령을 지내신 분이니, 그분에 대한 크고 작은 추억을 간직한 분이 어디 한두 분이겠습니까만, 그를 떠나보내는 이 아침, 저도 제가 만난 서민 대통령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처음 본 것은 1985년 마산지방법원 재판정입니다. 대학 새내기 시절, 선배들이 준 임무(?)를 수행하러 훗날 민주노동당 대표가 된 통일중공업 문성현 위원장 재판에 방청을 갔습니다. 삼엄한 경찰 경비를 뚫고 법정에서 대학 초년생의 인생을 흔들어놓는 최후 변론을 하던 노무현 변호사를 처음 만났습니다.



1985년 마산지방법원에서 만난 '노변'

서울 상대 출신 지식인 청년 문성현이 노동자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과정과 처절하게 짓밟힌 이 땅의 노동 현실과 권력의 시녀가 된 민주주의에 대해 격정적인 최후 변론을 하던 노무현 변호사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눈물을 참을 수 없었던 가슴 울리는 최후 변론은 새내기 대학생을 깊이 '의식화' 시켰고, 훗날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노동운동 언저리에 발을 들여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마창노련이 건설될 무렵 수출자유지역에서 열린 노동자 집회에서 노동형제들을 향해 노동악법철폐를 주장하는 연설을 하던 노무현 변호사를 다시 만났습니다. 노동자의 처지에서 노동악법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연설을 듣던 노동자들이,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을 한목소리로 외치던 그날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때만 하여도 그가 진짜 대통령이 되리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였지만, 십수 년이 지난 2002년 그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마산에서 국민경선이 열리던 날 그리고 대통령 선거를 앞둔 어느 날 밤, 창원에 있는 모 복지관 회의실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대통령 후보 노무현을 만났습니다.

민노당과 노무현 후보 사이에서 고민하던 젊은 활동가들에게 간곡한 도움을 요청하였고 우리는 그의 승리를 기원하였습니다.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그는 당선되었고, 개표 방송이 있었던 그날 밤, 많은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매우 기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격정적인 최후변론 모습 잊을 수 없어

왜 그랬을까요? 바로 그의 승리가 가지는 특별한 의미와 기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DJP 연합과 같은 방식이 아니라 국민 참여 경선을 통해 대통령 후보가 되고, 초기 여론조사 결과를 꾸준히 뒤엎고 온전히 국민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민주 정권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한국정치를 왜곡해왔던 기득권구조인 보수언론, 지역주의, 그리고 재벌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축적한 정치적 자산으로 승리하였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진보 개혁 진영에서 일하던 선배들이 청와대와 정부에 참여하는 것을 보며 적지 않은 기대를 키웠고, 탄핵정국을 거쳐 국회에서 진보개혁진영이 수적 우위를 점하였지만, 개혁에 실패하였을 때는 실망이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은 세상에 당신을 사랑하는 국민을, 당신이 사랑했던 국민을 남겨 놓고 떠나는 날입니다. 제가 세상을 사는 동안 꼭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된, 그 기적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았던 것이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는 저에게 늘 희망의 밑천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안녕히 가십시오.

※ 2009년 5월 29일,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이 열리는 날, 경남도민일보 칼럼 '향기가 있는 글'에 쓴 글 입니다.



윤민석님이 만든 노무현 대통령 추모노래 '바보 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