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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생태, 환경

원자력발전소, 10년마다 폭발한다면?

by 이윤기 2009.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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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대부분은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위험에 대하여 상식이하로 둔감합니다. 우리들뿐만 아니라 20년 전, 옛 소련의 우크라이나 지역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딱 20년인 1986년 4월 26일, 옛 소련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원자력 발전소'라고 믿었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가 폭발 사고를 일으킨 날 입니다.

1945년 8월 6일은 처음으로 인류 전체를 위협하는 핵무기가 히로시마에 투하되어 일본국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그 위험을 알린 날입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40년쯤 지난 1986년에 체르노빌에서는 히로시마 원폭 20배에 해당하체는 대규모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가 일어났고, 무려 13만 명이 강제 이주를 하였고 체르노빌 시가지는 죽음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1차 폭발이 일어난 후에도 창고에는 192톤의 핵연료가 저장된 체로 남아 있었으며 이 어마어마한 핵연료는 철재로 임시 봉합된 채 20여년이 지났다고 합니다. 만약 2차 폭발이 일어난다면 유럽전체가 방사능에 오염될 것으로 예측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예산도 없고 기술도 없어 유럽 국가에 손을 내밀고 있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더군다나 러시아 정부와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 사고로 발생한 사상자 수와 영구 장애인, 신생아 장애인과 재산 피해액을 정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래 죽음 보면서 죽음 기다리던 체르노빌의 어린이들

히로세 다카시가 쓴 <체르노빌의 아이들>은 바로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30분부터 17일째가 되는 5월 13일까지 세로프 가족에게 일어난 일을 소설형식으로 쓴 책입니다. 세로프가족은 원자력 발전소에 간부로 근무하는 안드레이와 아내 타냐, 그리고 아들 이반과 딸 이네사인데, 작가인 히로세 다카시는 마치 이들의 일기장을 들춰보듯이 <체르노빌의 아이들>을 쓴 듯 합니다.

이반과 이네사의 아버지인 안드레이는 기술간부로서 체르노빌 사고 직후 결사대의 일원으로 뽑혀 발전소 뒤처리 작업 중에 사망해 '영웅' 칭호를 받습니다. 폭발사고가 일어난 발전소로 돌아가는 안드레이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고서도 사고 수습을 위해 목숨을 걸고 떠나게 됩니다.

한편, 사고를 축소 은폐하기에만 급급한 당국에 의하여 아무런 보호조치도 받지 못한 채 그의 아들 이반과 딸 이네사는 격리 수용된 채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아이들을 찾아 헤매는 타냐에게도 사방으로부터 죽음의 그림자가 옥죄어 다가옵니다.

핵폭발로 시력을 잃고 핵방사능에 오염된 아이들은 옆 침대의 또래 아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공포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자꾸만 떠오르는 발전소가 폭발하던 모습과 동물들과 사람들에게 일어난 무서운 장면이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실상, 의사나 간호사보다 아이들의 공포심이 백배는 더 컸다. 이 병원으로 오기 전에 어떤 아이는 동물의 시체를 밟았고, 어떤 아이는 눈앞에서 부모가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보았다. 또 농민들이 강제로 피난하는 모습도 보았고, 검문소에서는 잔인하게도 부모와 생이별을 해야 했다. 한꺼번에 이런 끔찍한 일들을 겪게 된 아이들은 이제 마지막으로 감옥 같은 병원 안에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본문 중에서)

아이들 주검은 더욱 참혹합니다.

"그녀가 내민 팔에는 이네사보다 어린 일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안겨 있었다. 드문 드문 남아 있는 머리카락, 얼굴 전체에 뒤덮여 부풀어 오른 검붉은 반점 무늬들이 그 아이의 고통스러운 최루를 말해주고 있었다. 목덜미에서부터 가슴까지 제 손으로 쥐어뜯은 손톱자국이 무수하게 남아 있었다."(본문 중에서)

시인 이상희는 이 책을 읽고 "이런 이야기를 읽고, 알게 된 것이 후회스럽다. 이것이 그저 우리를 놀라게 하고 진저리치게 만들어 보려고 어느 예민한 영혼이 상상해서 빚어낸 이야기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햇빛·공기·물·바람 모두 오염... 죽음의 땅이 된 체르노빌

그러나 정말 이것뿐이었을까요? 실제로 체르노빌에서는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작가인 히로세 다카시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더 큰 피해와 공포로 가득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100㎞가 떨어진 키예프시에 사는 사람들은 큰 사고가 아니다, 안전하다는 당국 발표를 믿었지만, 사고 후 보름이 지나고 나자 당국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키예프로 흘러 들어오는 드네프르 강물이 방사능에 오염되었으며, 매일 머리를 감고, 건물의 먼지를 털어내고, 세척하고, 도로에는 물을 뿌리는 등 필사적으로 거리를 씻어냈습니다. 여자와 아이들은 건물 밖으로 나와서도 안 되고 일광욕을 할 수도 없다는 경고가 이어집니다.

체르노빌 발전소의 폭발이후 결국 햇빛, 공기, 물, 바람 중에서 어느 것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의 땅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외출에서 돌아오면 신발 바닥을 닦고, 코를 풀고, 온몸의 먼지를 털어내고 나서 집으로 들어가는 '법'이 생겼지만,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방법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체르노빌에서 폭발이 일어나던 날, 핵구름은 기세 좋게 성층권까지 올라가 그곳에서 천장에 부딪힌 수증기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갔으며, 핵구름은 성층권을 둘러싼 하나의 막을 형성하였으며, 지구는 이미 '죽음의 재'로 완전히 포위당하였습니다.

"전세계 곳곳에 방목된 소들은 초원에서 풀을 뜯어 먹으면서 이 입자를 몸에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핵구름은 우뚝 솟은 이 산 저 산에 부딪히며 산간지대에 많은 비를 뿌렸다. 그 빗방울은 죽음의 재로 뒤덮인 나무들을 씻기고 다시 땅으로 스며들었다… 물은 논과 밭을 적셔주었고 봄을 맞이한 농토는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처음 지구의 상공을 둘러싸고 떠돌던 괴물들의 그물망이 이제는 지구를 옴짝달싹 못하게 죄고 있는 것이다......인간이 입에 넣고자 하는 모든 것들에 이 괴물이 침투해 있었다."(본문 중에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의 희생자는 이반과 이네사 그리고 프리프야트의 아이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죽음의 재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주변 사람들 대부분은 그 위험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작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방사능 낙진의 위험성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인간의 상상력이 도저히 밀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인간이 신에 의해 창조된 생물이라면, 마땅히 신이 창조한 세계의 현상에 대해서 자연적으로 인식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사고는 신이 창조한 세계의 현상이 아니었다. 바로 가장 신비한 신의 창조물인 원자를 파괴하는, 즉 신이 창조한 세계를 파괴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원자력 발전소가 꼭 있어야 한다고요?

신이 창조한 세계를 파괴하는 방사능의 위험을 제대로 알지 못한 어른들은 지금부터 30년쯤 전, 내가 이 책에 나오는 이반 또래였을 무렵 민방공훈련이 있던 날이면 낡은 교실 책상 아래로 들어가서 눈을 가리고 비닐봉지를 뒤집어쓰고 원자폭탄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도록 가르쳤답니다.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사고 가능성에 대하여 작가는 이런 위험한 예측으로 우리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세계에 건설될 원자력 발전소는 수천 기로, 1기당 사고의 위험성은 2만년에 한 번이라고 나와 있다. 얼핏 읽어보면 2만년에 한 번이 극히 적은 것 같지만, 만약 2천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고 계산한다면 10년에 한 번 사고가 일어나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 의미가 된다."(작가의 말 중에서)

원자력이 가장 안전하고 깨끗하다고 믿고 선전하는 어른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책일 듯 합니다. 그러나 작가의 바람처럼 원자력발전소가 꼭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속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인류의 희망과 미래를 위하여 그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돕는 좋은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체르노빌의 아이들 - 10점
히로세 다카시 지음, 육후연 옮김/프로메테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