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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꿈꾸던 또 한 친구가 떠났습니다.

by 이윤기 2009.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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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간격으로 나란히 세상을 떠난 두 친구

젊은 시절 혁명가를 꿈꾸던 친구를 뺑소니 교통사고로 떠나 보낸지 일주일만에 간암으로 투병중이던 또 다른 친구가 그를 따라 떠나갔습니다.

▲ 친구들이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있습니다.


두 친구는 대학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였습니다. 둘이 그냥 친하게 지내는 것 만으로 모자랐는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는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한 친구의 여동생과 결혼을 하여 두 친구는 처남매부지간이 되었습니다.

친구집을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자연스럽게 혼기가 된 친구 여동생과 사귀다가 결혼으로 이어진것 입니다. 친구 동생과 결혼한다는 소설 같은 뉴스가 한 동안 주변 친구들 사이에 즐거운 화젯거리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불과 일주일 간격으로 뺑소니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친구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는 학창시절부터 절친한 친구이자 동지였습니다.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는 고만고만한 친구들 중에서는 집안 형편이 가장나았습니다. 늘 넉넉한 용돈을 지니고 다니면서 친구와 후배들에게 술과 밥을 제공하던 '물주'였습니다. 

학생운동에 바친 젊은 청춘

뺑소니 사고를 당한 친구가 학생운동 비합조직인 삼민투 위원장을 맡고 있을 때, 이른바 투쟁기금 마련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 몫이었습니다. 집에는 뭐라고 거짓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여러 차례에 걸쳐 적지 않은 투쟁기금이 그의 집에서 조달되었습니다. 

그가 마련해온 자금은 노태우정권을 비판하는 유인물이 되어 뿌려졌고, 독재정권의 사주를 받아 잔인한 폭력을 휘두르는 경찰에 맞서는 화염병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우리들에게 그 친구는 군자금을 마련해오던 독립투사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  엄혹한 시절을 이렇게 가열차게 살았던 사람들이 그 친구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적지 않은 청춘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며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지요. 그땐 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지금부터 10여년쯤 전에 두 친구는 처남매부지간이 되었습니다. 뺑소니 사고를 당한 친구의 어머니는 일주일 사이에 아들과 사위를 모두 떠나보내는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을 당한 것입니다. 일주일 사이에 두 번의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자식 둘을 앞서 보낸 그 어머니를 뵙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간암으로 죽은 친구는 지난 2월에 간암판정을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너무  피곤해서 안되겠다면 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는 이미 암세포가 간을 완전히 점령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뺑소니 사고로 세상을 떠난 친구는 병원 원무과에서 근무하였기 때문에 이 친구가 간암판정을 받고 서울에 있는 큰 병원을 오가는 동안 늘 곁에 있었습니다. 

뺑소니 사고가 있었던 바로 그 날도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서 간암으로 투병중이던 친구를 엠블란스로 창원으로 이송해왔던 날 입니다. 간암 투병 중이던 친구를 창원에 있는 병원에 옮겨놓고 늦은 밤에 뺑소니 교통사고로 뇌를 크게 다쳐 응급 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깨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버린 것입니다.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 역시 대학시절 학생운동에 열심히 참여하였습니다. 모양 빛날만한 직책을 맡은 적은 없지만 적지 않은 돈을 반합법 조직의 투쟁자금으로 지원하였고, 크고 작은 집회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투사'였습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적당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여 1~2년 동안 이곳저곳을 전전하였습니다. 그후 가족들이 경영하는 유통업체에서 함께 일하게 되었고, 건실한 생활인으로 살아왔습니다.  근무시간이 길었지만 늘 밝고 씩씩하게 일하였고, 자신의 수입중 일부를 떼어 이런저런 시민단체를 후원하였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기부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였습니다.
 
일이 힘들어 피곤하다더니, 간암 말기...

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던 그 친구가 한 2년쯤 전부터는 모임 참석이 조금 뜸하였습니다. 직장 일이 바쁘고 힘들어서 피곤하다며 모임에 빠지거나 모임에 참석하더라도 일찍 자리는 뜨는 일이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늘 피곤하다고 하던 그 무렵 이미 친구 몸속에서는 암세포가 자라기 시작하였던것 같습니다.

마흔을 갓넘긴 아직 젊은 아내와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을 이 세상에 남겨놓고 떠났습니다. 의사는 암세포가 뇌까지 전이되어 소생이 어렵다고 말했지만, 그는 끝까지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세상을 떠나기 전날 밤에도 아내에게 "서울에 치료 받으러 다시 가자"는 이야기를 하였을 만큼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하였습니다. 그러나, 죽고 사는 일이 의지만으로 되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간밤에 밝은 모습으로 나이든 노모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마지막 밤을 보낸 다음날 새벽, 급격히 상태가 나빠져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결국 머지않아 세상을 떠나게 되리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날 줄은 가까이 있는 가족들도 몰랐다고 하더군요. 추석은 넘길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놓지 않았었다고 하더군요.

불과 1주일 사이에 소중한 친구 둘을 떠나보냈습니다. 두 친구를 떠나 보내는 장례식장에서 함께 밤을 새우며 삶과 죽음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참 많이 나누게 되었습니다. 40 중반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이제 너무 빡세게 살지 말자", "즐거운 일, 재미난 일 많이 하면서 살자"고 이야기하더군요.

그를 마지막으로 보내는 지난 토요일은 참 하늘이 맑고 푸르렀습니다. 그런데도 화장장에서 친구와 마지막 이별을 하는 동안 김광석이 남기고 간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라는 노래가 하루 종일 입안에서 맴돌았습니다. "잊혀져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 파"하는 그 구절이 종일 맴돌았습니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비가 내리면 음-
나를 둘러싸는 시간의 숨결이 떨쳐질까
비가 내리면 음-
내가 간직하는 서글픈 상념이 잊혀질까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난 잊혀져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바람이 불면 음-
나를 유혹하는 안일한 만족이 떨쳐질까
바람이 불면 음-
내가 알고있는 허위의 길들이 잊혀질까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잊혀져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잊혀져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