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읽기-교육

인조잔디 운동장 결정 시민단체 낚였다.

by 이윤기 2009. 11. 24.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지난, 21일(토) 오전 10시 마산월영초등학교에서 학교 운동장 인조 잔디 설치 공사와 관련한 학무모 총회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일하는 단체를 비롯한 시민환경단체에서 월영초등학교 인조잔디 설치 공사를 반대하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발표 한 후 학교측에서 학부모 총회를 개최하여 결정하겠다는 방침을 정하였다고 하여 기대감을 가지고 참석하였습니다. 

▲ 학부모 총회에서 인조잔디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는 교장선생님


학부모 총회를 통해 인조잔디 공사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학교 당국의 전향적인 방침도 신선하였고,  개인적으로 지난 봄부터 학교 운동장 인조잔디 설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블로그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여러번 포스팅하였기 때문에 학부모들 총회를 지켜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월영초등학교는 2000년 초반부터 지역 시민단체와 학교가 협력하여 학교숲가꾸기 운동을 전개하여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학교였다더군요. 그런데, 이번에 학교숲과 어울리지 않는 인조잔디 설치를 위하여  국민체육진흥공단과 마산시로부터 5억원의 예산을 지원 받아 12월부터 공사를 시작한다고 하였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인조잔디를 설치할 것인가, 천연잔디를 설치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하여 오전 10시부터 시작하여 2시간여 진행된 학부모 총회 결과, 인조잔디 찬성 140명, 천연잔디 찬성 25명, 무효 4명으로 압도적인 찬성으로 인조잔디 운동장이 선택되었습니다.

솔직히 학부모 총회를 개최하여도 쉽게 인조잔디 설치에 대한 반대 결정이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짐작을 하고 있었지만, 이런 압도적인 투표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학부모 총회 개최가 환경단체의 반대 의견에 대하여 전체 학부모의 의견을 물어서 결정하겠다고 하는 학교당국의 순수하고 성실한 노력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학부모 총회에 환경단체 대표가 참여하여 20분 동안 인조잔디의 문제점과 천연잔디의 장점을 설명할 수 있는 시간도 할애 하겠다고 하였으니 그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월영초등학교 학부모 총회에 참석해보니 학부모와 지역 환경단체의 여론을 수렴하는 전향적인 노력이 아니라 실상은 환경단체를 들러리로 세워서 반대여론을 무마시키려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교생 994명, 학부모 투표 112명 참여

첫째,
전교생이 990명이 넘는 학교인데 학부모 총회에는 겨우 112명이 참석하였습니다. 당초 학교측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관계자들에게 500여명의 학부모가 참석할 것이라고 이야기하였던 것에 비하면 훨씬 적은 숫자가 참석한 것 입니다.  학교 체육관에는 빈 자리만 가득 하였습니다. 이미 대다수 학부모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없는 상태에서 학부모총회가 개최된 것 입니다.

둘째, 환경단체에 20분간 인조잔디의 문제점과 천연잔디의 장점을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주기는 했지만, 학교측에서는 교장선생님, 환경담당 선생님 그리고 전임교장이면서 현재 인조잔디가 설치된 학교 교장 선생님 3명이 무려 1시간 10여분 동안 인조잔디 시공의 불가피성을 설명하였습니다.

현재 사용중인 맨땅 운동장의 문제점, 인조잔디의 장점, 인조잔디 예산을 마련하는 과정의 어려움, 인조잔디 단점을 과장하고 인조잔디의 장점을 축소하고, 반대로 천연 잔디의 단점을 부각시키고, 천연잔디의 장점을 축소시키는 왜곡된 정보를 홍보하였습니다.

심지어 인조잔디 시공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 일을 추진해 온 교장 선생님이 책임을 지고 사표(?)를 써야할지도 모른다는 협박성 발언까지 나왔습니다.

셋째, 인조잔디에 반대하는 학부모들에게는 반대 발언을 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환경단체 1인, 학교 관계자 3인의 발언이 있은 후에 질의응답이나 찬반토론도 없이 곧바로 참석자들만 투표를 하여 인조잔디 시공을 결정해버렸습니다.

넷째, 이날 학부모 총회는 민주주의의 일반 원칙이나 일반적인 회의진행법을 비롯한 절차상의 원칙들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학교측에서는 학부모 총회를 통해 민주적인 결정을 한 것 처럼 결정하는데,
환경단체를 들러리로 세운 것 입니다.

▲ 학교측에서는 500여명이 참석할 것이라고 하였지만 112명이 투표에 참여하였습니다.


질의응답, 토론도 없는 학부모 총회에 들러리

이런 의도를 간파하지 못하고 학부모 총회에 참석한 환경단체는
첫 번째 발표자로 나와서 인조잔디의 문제점을 여러가지 지적하였습니다. "인조잔디 운동장이 환경오염 물질과 고온으로 문제가 많다는 것"과 "흙운동장이 제일 좋은 방안이지만 차선책으로 천연잔디를 시공하는 것이 좋다는 것"점, "인조잔디의 유해성"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학교 측에서는 환경단체의 발표 후에 "천연잔디와 인조잔디 운동장 비교"라는 발표를 통해 천연잔디의 단점과 인조잔디의 장점을 과장하여 설명하여 학부모들의 인조잔디 찬성 의견을 유도하였습니다.

솔직히, 투표과정과 결과를 봐도 들러리 섰다는 생각을 버리기 어렵습니다. 학부모 총회 당일 투표에 참가한 169명 중에서 112명이 학부모였고 1/3에 가까운 57명이 교직원이었던 것 입니다. 

물론 당일 투표 결과는 교직원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어도 학부모 투표만으로도 압도적인 찬성으로 인조잔디가 결정되었겠지만, 애당초 정족수도 없는 투표, 기명투표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도저히 민주적 절차를 거쳐서 학부모 의견을 수렴하였다고 수긍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정치권을 보고 욕하고 나무라는 우리의 절차적 민주주의 수준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보는 자리였습니다. 민주주의는 국회와 정치권을 향하여 요구만 할 일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생활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뿌리 내리게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 한 번 깨닫는 날이었습니다.

개표가 끝난 뒤에 케이블 방송 기자분이 투표상의 절차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질문을 거듭해서 하자 몇몇 학부모들이 화를 내면서 시민단체를 원망하는 발언을 하더군요. 아마 그 학부모께서는 케이블 방송 기자분이 시민단체 관계자인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환경단체가 왜 이 작은 학교 운동장에 매달리느냐? 마산에도 창원처럼 공원이나 좀 만들어라"

"우리학교 운동장 갖고 왈가왈부하지 말고, 저 바닷가에 고층아파트나 못 짓도록 운동 좀 해라"

"왜 환경단체가 남의 학교 일에 간섭하나, 환경단체가 할 일이 그리없냐 !"

이런, 비난을 쏟아내시더군요. 물론 시민환경단체 실무자들은 이 질문들에 대하여 얼마든지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분들이 여전히 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를 탓하고 싶어 쓴 글은 아닙니다. 시민운동가로서 이것을 지역주민들의 진정한 뜻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왜 옳은 이야기가 시민들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들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해보는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월영초등학교 학부모 총회를 다녀오면서 다음 두 가지 문제에 대하여 생각을 깊이 해 보았습니다.

- 우리에게 생활 속의 민주주의는 얼마나 정착하였는가?
- 학교의 주인은 누구인가?

다음 포스팅에서 월영초등학교 학부모 총회에 비추어 이 문제에 대한 생각을 한 번 정리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