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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생태, 환경

지구상 어떤 생명체도 선택할 수 없는 단 한가지

by 이윤기 2010.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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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용규가 쓴 <숲에게 길을 묻다>

<숲에게 길을 묻다>는 지난 가을 제가 속한 단체에서 ‘이달의 도서’로 정하여 회원들이 함께 읽은 책입니다. 숲가꾸기 운동을 하시는 회원께서 추천한 책이었는데,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려다가 표지를 보고 실망하여 책을 사지도 않았고 읽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달의 도서’를 읽고 도서 소감나누기를 하는 시간, 도서 소감나누기 진행을 맡은 회원이 “그동안 YMCA에서 이달의 도서로 선정한 책 중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라는 놀라운 평가를 하였습니다.

사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일수록 어떤 책 한 권을 딱 집어서 ‘최고의 책’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날, 이런 평가를 한 회원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난 8년 동안 회원들이 함께 읽는 이달의 도서를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읽은 열성 회원이었기 때문에 더욱 놀아운 일이었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저는 인터넷 서점에서 책 표지를 보면서 ‘인생경영철학’, ‘당신을 위한 생태적 자기영영법’이라는 수식어에 반감이 생겼습니다. ‘경영철학’이니 ‘자기경영’이니 하는 말들 속에 ‘경쟁’, ‘성공’ 이런 단어들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 표지를 보고 느낀 첫 느낌은 ‘아 그렇고 그런 자기개발서가 또 한 권 나왔구나’하는 정도였습니다. 회원들에게 E-mail로 이달의 도서를 알리는 것이 제가 맡은 일인데, 회원들에게는 책을 읽으시라고 Mail을 보내놓고선 정작 저는 책을 읽기 않았던 것입니다.

숲과 나무에게 배우는 삶과 죽음의 지혜

한 달 후에 책 읽은 소감을 나누는 시간에 ‘지난 8년을 통틀어서 최고의 책’이라는 찬사를 듣고서 직접 읽어보지 않을 수 없어 뒤늦게 책을 읽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숲과 나무에서 배우는 인생의 지혜’를 담은 아주 매력 있는 책이었습니다.


몇 달 후에 저자 김용규선생을 직접 만나게 되어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였더니, "안 그래도 출판사에서 제목을 그렇게 뽑아 오해 하는 분들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출판사 입장에서는 ‘인생경영철학’, ‘생태적 자기경영법’ 이런 단어가 포함되는 것은 ‘자기개발서’를 선호하는 독자들을 의식하였던 모양입니다. 이런 수식어들이 더 많은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것이겠지요.

저자 김용규는 삼십대 중반까지 국내 유명금융회사와 이동통신회사에서 인사와 경영전략을 담당하였으며, IMF 직후 벤처회사의 CEO가 되었다고 합니다. 마흔의 길목에서 도시의 삶과 CEO라는 명함을 버리고 숲으로 들어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숲에게 길을 묻다>는 나무와 숲에서 배우는 지혜의 눈으로 사람의 인생살이를 들여다보는 책입니다. 숲과 숲을 이루는 나무의 탄생, 성장, 개발, 사랑, 죽음의 과정을 사람의 인생살이에 비춰보는 것입니다. 숲에서 엿본 삶과 죽음의 지혜를 우리 인간의 지혜로 삼자고 제안하는 책입니다.

직접 책을 읽고 숲과 나무 그리고 사람의 인생을 살이를 들여다보면서 마음에 새긴 키워드는 ‘운명’(運命)과 ‘숙명’(宿命)입니다.

지구상 어떤 생명체도 선택할수 없는 단 한가지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선택할 수 없는 단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가끔 죽음을 답으로 제시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물론 죽음을 선택하는 예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이것은 제한적으로만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 하나의 예외도 허용되지 않는 정답은 오히려 죽음의 반대편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태어나는 것, 즉 탄생입니다.”

김용규는 탄생은 유일한 숙명이라고 말합니다. 숲에는 수많은 나무들이 ‘숙명’을 받아들이며 삶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것이지요. 살면서 태어난 자리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사람들에게 숲을 보라고 말합니다.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숲속의 식물들이 각자 씨앗이 떨어진 자리에서 제 삶을 살아내는 모습을 수도 없이 보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숲은 그 생명체들이 숙명을 대하는 방식을 보여줌으로써 오랫동안 내 가슴을 차지했던 억울함을 씻어주었습니다.”

저자가 던지는 두 번째 질문입니다. “지구상에 존해하는 모든 것은 변한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딱 하나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재치있는 사람들은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만이 변하지 않는다고 대답하지만 정답은 아니라고 하는군요. 왜냐하면, 변하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김용규는 세상에 변하지 않는 딱 하나는 바로 ‘시간의 흐름’이라고 말합니다. 약 46억 년전에 지구가 탄생하고서, 혹은 그보다 앞서 150억년 전에 우주 대폭발이 있고나서 단 한번도 시간의 흐름이 바뀐적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체가 시간과 공간의 조건이 일치하는 지점에서 태어나 살고 꽃피우고 열매맺고 떠나도록 계획되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지구상에 생명체가 존재한 이후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는 사실입니다.”

생명체가 부여받는 탄생이라는 숙명은 이 시간의 흐름에 올라타는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숙명은 생명체가 스스로 바꿀 수 없는 것이지요. 세상의 흐름이 사람의 삶이 숙명으로만 결정된다면 얼마나 답답할까요?

다행히 숲속의 생명체들은 숙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지 않는다고 합니다.

“태어나는 자리와 그 관계는 거스를 수 없지만 그 자리에서 자기 삶의 방향을 선택하고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자율과 자기통제의 뜻을 담고 있다는 말입니다.”

김용규는 이것을 운명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뜻대로 ‘명’을 운영하는 것, 즉 거스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거스를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명’을 운영하는 것이 운명이다. 참 멋진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을 운영하는 것이 운명이다

그러나 숙명에 먹히지 않고, 오히려 숙명을 다스리며 자기 삶을 살아내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나무들처럼 자신의 가지를 미련없이 쳐내야 하는 아프고 고된 과정을 그치는 것이 운명이라는 것이지요.

“생명체로서 내게 주어진 놀라운 힘을 믿고 끝까지 힘차게 살아내는 것 이것이 생명이 주어진 자들이 할 일입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운명이다’라는 유언을 남긴 떠나간 대통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무들처럼 자신의 가지를 미련없이 쳐내야하는 아프고 고된 과정의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김용규가 쓴 <숲에게 길을 묻다>는 버려야 얻을 수 있는 것, 상처에서 꽃피우는 향기, 노동과 휴식, 버려진 땅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생명의 순환과 죽음 같은 숲과 숲을 이루는 나무와 풀들에게서 배우는 생명의 지혜를 담았습니다.

“거목을 이룬 모든 나무가 그렇게 모색과 버림과 상실의 시간을 살아냈음을 알아야 합니다. 거목을 부러워하는 사람이라면, 그들이 걸었을 수많은 비틀거림의 길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숲의 나무가 그런 것처럼 삶은 모색과 버림과 상실을 통해 이어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홀로 숲을 이루는 나무가 없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도, 사람과 자연도 서로 기대어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숲에게 길을 묻다>는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삶을 꿈꾸는 사람들,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지혜와 감동이 담긴 책입니다. 숲을 이루는 나무와 풀에서 얻은 희망의 에너지를 전하는 책입니다. 삶이 무게에 짓눌리고 지친 영혼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고, 가장 키가 크고, 가장 몸집이 큰 생명은 무엇일까요? 나무입니다. 미국에는 6200년의 세월을 살다가 몇 십 년 전에 떠난 나무가 있습니다. 또 약 120여 미터의 높이까지 키를 키운 나무도 있습니다. 아파트 3층 높이를 넘는 11미터 길이의 지름을 형성하고, 무게가 무려 2000톤에 달하는 3000여 살의 나무도 있습니다. 이렇듯 나무는 명들 중에서 가장 유구하고 높고 커다랗습니다. 이 장대한 나무들도 매일 그 가지 끝까지 물을 끌어올리고 빛을 버무려 밥을 만드는 노동을 하며 살아갑니다.”


“19세기까지 약 3억년간 대략 4년 마다 하나의 종이 소멸했다고 합니다. 100년에 평균 25종이 사라지는 것이 정상적인 소멸 속도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속도가 지난 100년 사이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라졌다는 것입니다. 연구자들은 지난 100년간 지구에서 사라진 종의 숫자가 인류가 지구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 존재했던 종의 25퍼센트에 달한다고 지적합니다. 처음 인류가 만났던 생물 4분의 1이 사라진 것입니다. 우리가 한 살 한 살 나이를 더할 때마다 지구에서는 대략 1만 7000종에서 10만 종의 생명이 사라지는 셈입니다.”

“한 종의 새가 사라졌다는 것은 이미 30여 종의 곤충이 사라졌다는 의미입니다. 소멸은 소멸을 낳고 그 소멸은 다시 더 빠른 소멸을 낳습니다.”

“UN과 세계은행의 지원을 받는 국제농업연구자문단의 분석에 따르면 시계의 초침이 한 바퀴 돌 때마다 약 7만 3000평의 열대우림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이 속도대로라면 내 아이가 살아 있는 동안 지구에서는 더 이상 열대우림을 볼 수 없게 됩니다.”

 

숲에게 길을 묻다 - 10점
김용규 지음/비아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