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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여행

세계여행, 값싼 세계일주 항공권이 있다는데...

by 이윤기 2010.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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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고은초가 쓴 <3650 하드코어 세계일주>

여름휴가를 앞두고 신간 목록에서 <3650일, 하드코어 세계일주>를 고른 것은 무더위를 잊고 읽기에 딱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책을 펼쳐들면서 마음은 세계일주 여행기을 따라 나섰지만, 정작 몸은 동네 도서관을 떠나지 못하였습니다.

여름 피서지로 하루 종일 에어컨을 틀어주고 노트북만 들고 가면 인터넷을 마음껏 쓸 수 있고, 생수를 비롯한 기본적인 편의 시설이 모두 공짜로 제공되는 곳은 도서관 밖에 없더군요.

여름휴가에 읽으려고 고른 책이 하필 <히말라야 걷기여행>과 <3650, 하드코어 세계일주>였기 때문에 몸은 도서관에 있었지만 마음은 바람과 구름을 따라 히말라야를 넘어 저자의 발길을 따라 남미안데스까지 다녀왔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지만, 도서관에 앉아 책으로 즐기는 세계여행의 재미도 쏠쏠합니다. 원월드 항공권을 사서 세계여행 떠나는 것은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속해 있는 가장으로서 꿈꾸기 어려운 일이 되었지만, 도서관에서 책 속으로 떠나는 세계여행은 아무도 막지 않더군요.

이 책은 21살에 호주로 위킹홀리데이를 떠난 것을 시작으로 10년에 걸쳐 세 차례 세계일주 여행을 다년 온 고은초가 쓴 책입니다.

누구의 여행인들 사연이 없겠습니까만 그녀의 여행도 누구 못지않게 파란만장합니다. 그녀의 첫 출발은 무모하리만치 당돌하고 충동적이기까지 합니다.

“난생처음 긴 여행을 떠나는 길에, 이 비행기가 나를 호주 시드니로 데려다놓으리라는 그 한 가지 말고는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정해진 목적지도, 거처도, 마중 나올 사람도 없었고, 당장 도착해서는 밤을 어디서 보내야 할지도 막막했다. 심지어 숙소를 찾아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1년간 호주로 여행을 떠나는 그녀의 수중에는 달랑 90만 원이 전부였고, 고작 한 달의 숙식도 보장할 수 없는 돈이었다고 합니다. 그나마 호주에 도착 한 후 한 달도 안 되어 처음만난 사기꾼에게 전 재산을 갈취당하고, 호주인 집주인에게 두 번째 사기를 당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꿋꿋하게 오렌지 농장에서 일해 번 돈으로 호주 구석구석을 돌아다닙니다.

주유소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면 오렌지를 먹고 컵라면으로 식사를 해결하면 낡은 포드 승용차를 잠자리 삼아 여행을 다닙니다.

현지에서 만난 친구들과 낡은 도요다를 함께 타고 사막을 여행하고 1000km가 넘는 거리를 한 번의 히치하이커로 여행하기도 합니다.

그녀의 두 번째 여행은 세계일주입니다. 사람들은 그녀의 여행이야기를 듣고 세 번 놀란다고 합니다. 처음엔 세계일주 이야기에, 그 다음엔 여행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부모님은 세계 여행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가족들이 알고 있는 나는 지금 호주 어학연수 중이고, 적어도 며칠에 한 번씩은 전화를 할 의무가 있었다.......나라를 옮겨 다닐 때마다 호주 시드니의 시간을 재계산했고, 내가 있는 나라와 호주와 한국의 시차를 계산하느라 머리가 아픈 나머지 시차계산기를 사버릴 정도였다.”

값싼, 세계 일주 항공권이 있다는데...

세계 여행을 꿈만 꾸고 있던 어느 날, 여행 카페 모임에서 ‘세계 일주 항공권’이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녀의 세계 일주 이야기를 읽어보면 여행준비의 99%는 세계 일주 항공권을 발권하는 받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세계일주 항공권은 정해진 항공요금으로 아무리 먼 거리도 마음껏 이동할 수 있도록 전 세계 항공사들이 제휴를 맺은 프로그램인제, 무엇보다도 치명적인 매력은 그 가격이다. 대륙간 이동을 포함해 총 20회의 비행이 가능한 4대륙 항공권 비용이 370만 원 정도였는데, 우리나라에서 남미의 한 국가만 가려고 해도 비용이 200만 원이 넘게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파격적인 가격인지 알 수 있다.”

문제는 당시만 하여도 여행사 직원들은 ‘듣보잡’이라는 반응이었고, 항공사 직원조차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 아울러 저렴한 항공료 대신 복잡한 규정과 까다로운 제약조건으로 여행 루트를 짜는 것이 아주 어렵다는 것이 문제랍니다.

“여행 준비에 한창이던 어느 날은, 보고 있던 자료 앞을 도저히 뜰 수가 없어서 끼니도 거르고, 화장실도 가지 않고 매달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11시간 만에 일어나 다리를 폈다.”

“똑같은 항공권인데 호주에서 발권하면 200만원 정도에 살 수 있다고 했다. 어떻게 똑같은 항공권을 170만 원이나 싸게 살 수가 있다는 거지.... 그러나 호주에서 항공권을 발권했다는 선례는 한 건도 찾을 수가 없었고, 덕분에 루트를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난투극에 가까웠다.”

항공사 직원이 그녀의 이름과 이메일 주소를 외울 정도가 되었고, 국내에서 얻을 수 없는 정보는 외국항공사에 전화를 해가며 직접 확인을 해야 했다는군요. 사무실 책상에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밤을 새기 일쑤였고, 컴퓨터 모니터를 보느라 늘 눈은 충혈 되어 있었다는 것.

무려 4개월의 삽질 끝에 여행루트를 완성했다고 합니다. 흔히 시작은 반이라고 하는데, 그녀에게 있어 세계 여행은 정말 시작이 반이었던 셈입니다. 이 때 경험한 ‘세계일주 항공권 발권 노하우'는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가장 자세한 설명서’로 불리며 퍼져나갔고, <하드코어 세계 일주>에 부록으로 실려 있습니다.

만약, 세계일주 항공권을 발권 받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부록에 있는 ‘원월드 발권’ 노하우만으로도 충분히 책값은 하고 남는 자료인 듯합니다.

Puesta de sol en el Ahu de Tahai
Puesta de sol en el Ahu de Tahai by Héctor de Pereda 저작자 표시비영리

원월드 발권 노하우는 부록으로...

스물다섯이 되던 2003년, 가족들에게는 호주 어학연수를 떠난다고 핑계를 대고 세계일주 여행길에 오릅니다. 그녀의 세계일주는 호주 - 뉴질랜드 - 이스터 섬과 마추픽추 트레킹, 이과수 폭포가 있는 남미의 페루, 아르헨티나, 브라질, 볼리비아 - 중동의 이집트, 요르단,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시리아 - 영국, 독일로 이어집니다.

4년 후에는 또 다시 미국을 거쳐 - 멕시코 - 과테말라 - 벨리즈 - 쿠바 - 파나마 -베네수엘라 - 에콰도르, 콜롬비아로 이어지는 중남미 여행을 떠납니다. 세 번째 여행에는 콰테말라 안티구아에 머물면서 세계에서 가장 값싼 스페인어 강습을 받는 일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수교 국가인 시리아로 들어가는 과정 참 아슬아슬합니다. 시리아는 미국이 테러국가로 규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북한과 수교를 맺고 있고 남한과는 외교관계가 없기 때문에 비자발급 자체가 불가능한 나라였다고 합니다.

많은 여행자들이 포기하는 시리아를 비자도 없이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가, ‘생떼’를 써서 의외로 쉽게(?)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기도 합니다. 사실은 비자 발급 수수료가 없어서 여권을 압수당하고 은행을 찾아 전전하는 그녀의 볼리비아 입국과정은 훨씬 더 기가 막힙니다.

정말 어렵사리 떠난 여행이었지만 그녀의 여정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위험에 맞닥뜨리기도 하였고, 여러 차례 전 재산(여행경비)를 잃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고, 대서양을 건너던 비행기가 추락할 뻔하고, 안데스 산맥 정상에서는 산소 호흡기를 쓰고, 멕시코에선 강도의 칼에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만성고질병인 발목 때문에 압박 붕대로 발목을 감고 걸었지만 언제나 무사히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내게 비빌 언덕이 딱 하나 있었다면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화상으로 살이 벗겨지고 피고름이 흐르던 미션 비치에서 그랬고, 당장의 한 끼조차 막막했던 아르헨티나에서 그랬고, 마음이 돌처럼 거칠어져 있던 이스라엘에서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성희롱을 당하고 처음 살의라는 것을 느꼈을 때도 그랬다. 멕시코에 이어 콜롬비아에서 나쁜 사람을 만났을 때도 그랬고, 지독한 외로움과 슬럼프가 찾아왔을 때도 그랬다. 위기는 번번이 있었는데, 단 한 번도 여행이 진짜로 끝났던 적은 없다.”

그러나, 그런 위험과 위기 때문에도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힘이 되어줍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여행 기록을 보면서 응원하던 친구들과 네티즌들의 재정적 도움을 받아 여행을 이어가며, 심지어 여행지에서 만난 현지인과 외국인 친구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Machu Picchu, Peru
Machu Picchu, Peru by szeke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간절히 필요할 때 찾아오는 기적 같은 도움의 손길

좌절하지 않는 그녀에게는 번번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곤 하였습니다. 그녀가 간절히 필요할 때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끝내 포기하지 않고 여행을 이어나갔기 때문이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성공하기를 기원하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겠지요.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세 번째 여행을 계획하면서 그녀는 반대하는 아버지를 이렇게 설득합니다. 이렇게 멋진 이야기를 듣고도 설득당하지 않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요.

“금을 얻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은을 버려야 하고 다이아몬드를 얻기 위해서는 어렵게 얻은 금마저도 버려야 한 대요. 버릴 때는 빈손이 불안하지만, 금을 얻고 다이아몬드를 얻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 실제로 인생을 살면서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어렵지요. 젊은 날의 제 모습을 돌아보며 그녀의 선택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구라도 부러워할(그녀가 겪은 일 말고, 그녀의 세계 일주 여행 자체) 세계 일주 여행을 다녀온 그녀는 여행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몸이 아프지 않으면 아픈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고, 사랑을 해보지 않으면 그 무수한 사랑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듯, 여행을 해보지 않으면 여행을 알 수 없다.”

아무도 모르는 길을 아는 유일한 방법은 그 길을 가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여행을 통해 산다는 것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순수하고 절대적인 감정 - 외로움, 고독, 기쁨, 희열, 두려움, 경외, 충만함-을 마주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쓴 글을 보고 많은 이들이 “와 대단하다 이 여자 여행이야기 책 한 권은 되겠다” 하고 말했을지 모릅니다. 결국 책이 되었네요. 바로 <하드코어 세계일주>입니다. 여러분도 이 여자에게서 용기를 얻어 세계여행에 도전해보시기 바랍니다. 삶이 무가치하고 우울하게 여겨진다면 주저하지 말고 떠나보라고 권합니다.



3650일, 하드코어 세계일주 - 10점
고은초 글.사진/예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