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읽기

병원에 TV없는 입원실은 왜 없나?

by 이윤기 2010. 10. 22.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단체에서는 1년에 한 번씩 TV-OFF 주간을 정해서 TV 안보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집은 2000년 무렵에 TV  안보기를 시작하여, 약 5년 동안 TV를 안 보고 살았습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지금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주말에만 TV를 볼 수 있도록 약속을 정해놓고 있습니다.


TV가 '바보상자'라는 것은 상식이고, 패스트푸드 광고에 노출되어 비만을 일으키고, 비판적 사고 기능을 사고력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가족을 단절시키는 등 가끔 좋은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것을 제외하면 단점이 훨씬 많은 기계입니다.

TV 중독을 확인하는 설문 검사를 해보면 대한민국 사람 대부분이 TV 중독 증상을 보입니다. TV를 보지 않을 때도 TV를 켜두고, TV를 켜두지 않으면 가족이 한 사람 없는 것 보다 더 허전하게 느낀다던지 하는 증상들입니다.

기본적으로 어릴 때부터 TV에 많이 노출된 아이들은 '기계와 교감'하는 능력이 발달합니다. 설명서가 없어도 휴대전화를 비롯한 복잡한 기계를 척척 다루는 아이들을 보면서 기뻐하는 부모들이 있지만, 대체로 기계와 교감하는 능력이 발달한 아이들은 사람과 교감하는 능력, 자연과 교감하는 능력을 떨어집니다.

공공장소에서 TV를 보지 않을 권리에 대하여 한 번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외국을 많이 다녀보지 않아서 잘 모릅니다만, 다른 선진국에도 우리나라만큼 공공장소에 TV를 많이 설치해두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항, 버스터미널, 기차역, 기차, 병원 대기실 등 사람이 어떤 일을 처리하기 위하여 기다려야 하는 장소에는 어김없이 TV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TV를 보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매우 지루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배려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 예쁘게 꾸며진 소아과 병실입니다. 요즘 소아과 병동은 어린이집같은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TV가 우후죽순 설치되다보니 고속버스, 시외버스, 그리고 환자가 입원한 병실에까지 TV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1인실에서 지내면 TV를 보고 싶을 때보고, 보기 싫을 때는 보지 않을 자유를 누릴 수 있겠지만, 1인실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대부분 호텔 숙박비에 버금가는 병실사용료를 부담해야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웬만큼 형편이 넉넉한 경우가 아니면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다인실 병실을 선호합니다.

사실, 6인실 쯤 되면 간병을 하는 가족들, 병문안을 오는 사람들 때문에 여간 북적거리지 않습니다. 아울러 아주 심각한 경우에는 중환자실로 가지만, 6인실에 입원한 환자들이라고 하여 아픈 정도가 다 비슷하지도 않습니다.

막 입원하여 아주 힘들게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도 있고, 회복기가 되어 퇴원을 앞두고 여유롭게 지내는 환자들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환자들이 한 방에 있을 때 서로 불편한 일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한 밤 중에도 TV를 꺼지 않는 소아과 보호자들

얼마 전 제 조카가 후두염으로 소아과 병동에 입원하였을 때 생긴 일입니다. 제 조카는 처음에 소아과 병실에 자리가 없어 성인 병실에 있다가 입원 사흘 째에 소아과 병실로 옮겼습니다.

6인실 소아과 병실에 입원을 하였는데, 같은 방에 입원한 아이들 대부분이 입원한지 일주일 쯤 지나서 회복기에 있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제 조카가 그 방에 있는 어린이 환자들 중에서 상태가 가장 좋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아이도 아이를 간병하는 엄마도 매우 지치고 힘든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이 소아과 병실에 있는 엄마들이 TV를 끄지 않더라고 합니다. 몸이 아픈 조카 아이는 TV 불빛과 소음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이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칭얼대니 엄마는 더 힘이들었겠지요.

참다못한 제수씨는 남편인 제 동생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한 병실에 입원하고 있으면서 대놓고 말은 못하고, 남편에게 하소연을 하였겠지요. 동생은 병원에 전화를 하였답니다.

"병원 규정에도 10시 이후에는 TV 시청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데, 환자가 휴식과 안정을 취해야 할 시간에 엄마들이 밤 늦게까지 TV를 보고 있는 것은 문제다. 병원측에서 조치를 취해달라."

첫 번째 전화를 하였을 때 병원측에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해주지 않더라는군요. 그래서 한 20분쯤 후에 또 다시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병원 간호사들이 해당 병실에 가서 "이 방에 많이 아픈 아이도 있고, 병원 규정도 있으니 TV를 꺼달라"고 부탁했던 모양입니다.

▲병원에 입원했던 조카입니다.

그런데, 이방에 있던 엄마들이 오히려 큰소리를 치더라는군요.
우리방은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 걱정마라. TV 볼만큼 보고나면 알아서 끈다. 병원에서 그런것까지 통제하려고 하지 마라." 뭐 이런 식이었다고 합니다.


참다못한 제수씨는 한 방에 있던 다른 아이 엄마들에게 "아이도 아프고 쉬고 싶은 보호자도 있다. 너무 한 것 아니냐?"고 싫은 소리를 하였고, 짧은 말다툼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1인실로 옮겼답니다.

TV 거부하는 소수자 위해, TV 없는 병실 딱 1개만 있어도 좋겠다.

TV가 온 나라를 점령한 'TV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TV를 보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장애인이나 동성애자처럼 '소수자'입니다. 아울러, 사회적으로 주목도 받지 못하는 소수자이기 때문에 그냥 '별난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이 고작입니다.

이것 참 난감한 일입니다. 병원 규정을 들이대면 밤 늦게까지 TV를 보고 있었던 엄마들을 나무라자는 것이 아닙니다. 아울러, 병실에서 일어난 일을 해결해달라고 '간호사'를 불러야 하는 것도 바람직한 대처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간호사들도 참 나감한 일입니다.

아무리 병원 규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간호사들이 'TV를 굳이 보겠다'는 보호자들을 설득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또 'TV를 꺼달라'는 요구는 더욱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엔 전체 병실 중에서 딱 1곳만이라도 TV가 없는 병실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TV를 보지 않고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싶은 환자와 보호자는 TV 없는 방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고, TV를 보고 싶은 환자들은 TV가 있는 병실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제 생각엔 평소에 TV를 즐겨보는 사람들 중에서도 병원에 입원하면 TV없이 조용한 휴식을 원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아울러, 병실에서 TV를 집중해서 보는 사람들은 회복기의 환자와 보호자들일 것 입니다. 그렇다면, 병원측에서 환자들을 병실에 배당할 때 회복기 환자들과 막 입원하여 상대적으로 많이 아픈 환자들의 병실을 구분해주는 것도 좋은 배려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TV도 회복기 환자들이 있는 병실에만 설치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한편, 어느 쪽이든 병실이 없을 경우에는 TV가 있는 병이나 혹은 TV가 없는 방을 이용할 수 밖에 없겠지만, 제 조카 병실에서 있었던 그런 충돌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소수자인 TV를 보지 않을 권리도 인정 받을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