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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그 찢겨진 희망

[서평] 발레리 제나티가 쓴 <가자(GAZA)에 띄운 편지>

이스라엘이 건국된 1948년 이후 최악의 상황이다. 가자는 감옥으로 변했다. 우린 여기 갇힌 채 빵과 남은 토마토, 오이만으로 견디려 애쓰고 있다."

2006년 9월 8일 영국 일간신문 <인디펜던트>에 실린 아부 라마단 가지시티 시장 인터뷰 기사입니다. 6월 말부터 시작된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수백 명이 숨지고 수천 명이 다친 이후 지난 11월 26일 휴전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이 이스라엘 병사 한 명을 납치한 데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군은 "2006년 6월 '여름비 작전'이란 이름으로 가자지구와 레바논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을 감행하였다. 363㎢의 좁은 땅에 130만명 인구가 북적대며 살아가는 가자는 외부세계의 무관심 속에서 지상 최대의 감옥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저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관심은 2006년에 이루어진 이스라엘의 침공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계속되고 있는 두 민족 간의 분쟁, 아니 이스라엘의 점령정책과 팔레스타인의 저항에 관하여 미국 작가 '조 사코'(팔레스타인)의 시선을 빌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팔레스타인 현지 작가들의 최근 작품을 모아놓은 <팔레스타인의 눈물>을 읽으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가슴 아픈 역사와 현실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팔레스타인에 대한 저의 관심은 <가자에 띄운 편지>라는 제목만으로도 발레리 제나티의 소설을 선뜻 선택하게 하였습니다. 이 책은 평화운동을 하는 엄마, 아빠를 둔 이스라엘 소녀 탈과 팔레스타인 청년 나임이 주고받는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은 순전히 '상상력의 산물'만은 아닙니다. 이 소설은 거의 매일 텔레비전 뉴스를 장식하다시피 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배경으로 쓰였습니다.

예루살렘, 어느 카페에서 일어난 자살폭탄 테러, 6명의 사망…. 공포는 일상이 되어버렸고, 탈은 그런 일상에 익숙해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탈은 가슴에 품고 있는 것들을 글로 쓰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평화조약에 서명했던 날 부모님이 환희로 울었던 기억뿐만 아니라, 환멸, 반항, 공포, 그리고 희망에 대해서 씁니다.

탈은 그녀가 쓴 편지를 저쪽의 누군가가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탈은 미지의 팔레스타인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마음먹고 가자지구에 군 복무 중인 오빠 '에탄'에게 자기가 쓴 글을 유리병에 넣어 맡기게 됩니다.

분쟁과 증오의 땅에 띄운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

유리병 속에는 '이름 모를 너에게'하고 시작되는 다소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자살폭탄테러로 숨진 결혼을 앞둔 여자의 죽음을 떠올리며 쓰인 진솔한 마음이 담긴 편지가 담겨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청년 나임은 가자해변 모래밭에서 우연히(사실 전적으로 우연은 아니었지만) 이 유리병 속의 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유리병 속 편지를 받은 나임의 첫 번째 답장은 마음이 열리지 않은 비아냥 섞인 호기심으로 채워져 있지만, 사실 그들 이스라엘 사람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 사이에는 더 큰 '일상의 증오'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 사촌동생 야신이 작년에 그런(평화를 위한 아이들) 경진대회에 참여했다가 초콜릿 한 통을 받아서 무척 기뻐했지. 그런데 그 행사를 주최한 NGO가 이스라엘산 초콜릿을 주는 바람에 걔네 아빠가 쓰레기통에다 그대로 처넣어버렸어." (본문 중에서)

"이 땅은 젊은이들이 자기가 아주 빨리 늙는다고 느끼고, 수명대로 산다는 게 그의 기적이나 다름없는 곳, 증오와 복수심은 비싸지도 않을 뿐 아니라 도처에 있다 보니 여기선 유일하게 넘쳐나는 품목이다. 절망과 더불어 말이다." (본문 중에서)


탈과 나임은 옛날 동화에 나오는 유리병 편지와는 달리 이메일로 각자의 생각과 일상을 주고받으며 애틋한 마음을 키워갑니다. 여러 번 이메일을 주고받은 후에는 채팅도 하게 됩니다. 소설이라는 이야기 형식 덕분에 독자들은 일기 형식으로 쓰인 글을 통해 탈과 나임의 진심을 먼저 알 수 있게 됩니다.

작가인 발레리 제나티는 나임과 탈을 통해 개인은 없고 집단으로만 존재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의 삶에 대하여 물음표를 던지고 있습니다. 개인과 개인이 만나지 않는 개인과 개인으로 소통하지 않는 늘 집단으로 만나는 두 민족은 복수와 증오만이 마주치게 됩니다.

"나, 너, 그 하는 식의 단수는 존재하지도 않고, 그냥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라는 복수만 있는 거지. 불쌍한 팔레스타인 사람들, 아니면 나쁜 팔레스타인 사람들 하는 식으로…. 우리는 절대로 하나+하나+하나가 아니라 늘 400만인거야. 그러니 사람들은 민족을 통째로 등에 지고 살아가는 것이고. 무거워. 무거워. 무거워 등이 뭉개질 것만 같아서 차라리 눈을 감고 싶어져 버리지." (본문 중에서)

작가는 정치적인 의도와 매스미디어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다루는 과정에서 마구 잘린 특정한 이미지로 고착된 정보들이 놓쳐버린 인간, 개체로서의 인간에 초점을 맞춥니다. 작가는 번역자와의 만남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 모두가 아니라 '나임'이라는 청년에게로, 이스라엘 사람들 모두가 아니라 '탈'이라는 소녀 한 사람에게 다가가는데 초점을 맞추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누군가가 안부를 걱정해주는 유일한 팔레스타인 사람

작품 속에서 개인과 개인으로 만나는 탈과 나임은 서로 아픔을 훨씬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집단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테러가 일어난 후, 승리감에 도취하고 있을 때에도 서로 안부를 걱정하게 됩니다.

"나는 이스라엘 쪽의 누군가가 안부를 걱정해주는 유일한 팔레스타인 사람일 것이다. 유네스코는 나를 세계유산으로 분류해야 할 것이다."

"나 정말 걱정하고 있어. 가자에 또 다른 부상자와 사망자들이 생겼다고 라디오에서 들었어. 네가 굳이 날 안심시키기 위해 컴퓨터로 달려들지는 않을 거라는 거 알아."

"네가 무사한지 알려줘. 답장을 해줄 수 있다면 말이야. 걱정하고 있어. 답장이 없으니. 벌써 이틀이나 됐는데." (본문 중에서)


작가는 텔레비전 뉴스 속에 묻혀버린 자살폭탄테러 뒤에 숨어 있는 작은 개인 이야기에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테러의 가까이에서 일상을 살다 죽음을 만나는 개인의 마음을 놓치지 않는다. 만약 내가 그날 그 카페에 있었다면, 만약 내가 카메라에 담고 있던 그 버스에 타고 있었다면….

기성세대의 약속이 수없이 어긋나버린 현실에서 그들은 운명에 발이 묶인 삶이 아니라 꿈과 희망을 가꾸어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로 바꾸어 갑니다.

라임은 팔레스타인에서 활동하는 NGO '자유로운 발언'의 활동가들을 만나 자신의 삶을 내장까지 뒤흔들어 버리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분쟁을 멎게 할 수도 없고, 모두에게 돈을 나눠 줄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그들 속에 있는 상처를 발견하도록 돕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작품에서 팔레스타인 청년 '라임' 역시 공통된 운명에 처해 있다고 해서 모두가 닮은꼴인 익명의 존재가 아니라 둘도 없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그들을 만나서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민족의 운명과 함께 절망으로 가득 채웠던 자신의 삶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소설보다 참혹한 현실, 2006년 팔레스타인

그러나 참 안타깝게도 현실은 평화와 희망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2003년 이 책이 쓰인 후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는 평화가 깃들지 않았고, 2006년에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재점령과 레바논 침공으로 오히려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경제봉쇄와 이스라엘의 폭격이라는 이중 굴레에 꽁꽁 묶인 가자지구에 사는 사람들에게 발레리 제나티가 제안하는 집단으로만 존재하지 않는 둘도 없는 유일한 존재로서 '라임'과 같은 청년으로 살아가기는 참으로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니 제3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나로서도 오히려 2006년 여름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바라보면 라임과 같은 청년의 삶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지금 그들에게는 공동운명이라는 삶의 무게가 너무도 무거워 보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로 주요 수입원이던 카네이션과 딸기는 버려진 채 밭에서 썩어 가고, 사람도 물건도 밖으로 나갈 수도 안으로 들어올 수도 없는 곳이 됐다고 합니다. 오렌지 농장의 70%가 파괴되고, 어부들은 바다로 나갈 수도 없으며, 공습으로 발전소가 파괴되어 전기 공급도 식수공급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난 6월 이스라엘 신문 <하레츠>는 "이스라엘군은 가자 전역에서 미친 듯 날뛰고 있다. 다른 표현은 쓸 수 없다. 무차별적인 살인과 파괴, 폭격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썼습니다.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38년 동안 이스라엘 점령 치하에 있다가 1년 전 이스라엘의 정착촌 철수로 잠시 희망을 품었다가 다시 더욱 악화한 재점령 치하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설보다 더 참혹한 팔레스타인의 현실 앞에서 발레리 제나티가 보여주는 '희망'을 발견하기는 참 힘든 일입니다. 희망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기에 팔레스타인의 현실은 너무나 참담합니다.

<가자(GAZA)에 띄운 편지> 발레리 제나티 지음, 이선주 옮김/ 낭기열라 - 207쪽, 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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