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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맛있는 간편요리

이성계 목을 연상하며 썰었다는 조랭이 떡국

by 이윤기 2011.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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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흰 떡국을 먹는 의미는 경건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으며 장수와 풍요를 기원하는 데 있다고 합니다. 저희는 겨울이면 떡국을 많이 끓여 먹습니다. 집에서 떡국 떡을 만들어야 한다면 아주 번거로운 일이겠지만, 요즘은 생협매장에서 썰어서 포장해놓은 떡국을 팔기때문에 조금도 번거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라면처럼 간단하게 한끼 식사를 해결 할 수 있는 간편식에 속합니다. 손님이라도 오면 계란지단도 부치고 하지만, 평소에 가족끼리는 멸치 육수를 끊인 후에 날계란과 참기름을 발라구운 김 한장(이것도 생협에 팝니다)을 잘라 넣으면 OK입니다. 라면 못지 않게 간단히 끓일 수 있지요.

지난 설에는 흰가래떡을 얇게 썰어놓은 보통 떡국 말고, 난생처음 조랭이 떡국을 먹어보았습니다. 후배에게 '조랭이 떡국' 설 선물로 받았습니다. 마침 설 연휴에 배달된 한겨레 신문에 '예종석의 오늘 점심'이라는 맛 칼럼 코너에 '조랭이 떡국'이 소개되었더군요.


선물로 받은 '조랭이 떡국'이 집에 있었던 탓인지 칼럼 제목이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예종석의 오늘 점심 코너에 나온 조랭이 떡국에 대한 글입니다. 예사롭지 않은 사연입니다.

조랭이 떡국은 흰떡을 대나무 칼로 잘라 동글동글하게 다듬어서 조롱박 같기도 하고 누에고치 같기도 한 모양으로 만든다. 그 이유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 왕조가 들어선 뒤 박해를 받은 개성 사람들이 이성계에 대한 원한을 잊지 못해 그의 목을 연상하며 떡을 썰기 위해서 였단다. 1940년에 나온 홍선표의 <조선요리학>은 그 유래를 "백병을 어석어석 길게 써는 것은 전국적이지만, 개성만은 이조 개국 초에 고려의 신심으로 이조를 이렇게 하는 모양을 떡을 비벼가지고 끝을 비틀어서 경단 모양으로 잘라내어 생떡국처럼 끓여먹는데 조롱떡국이라한다." 했다.

▲ 조랭이 떡국과 재료들

대나무 칼로, 이성계의 목을 연상하며 떡을 썰었다는 조랭이 떡국

이 글에는 그 외에도 몇가지 조랭이떡국의 내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액막이, 길운, 재복에 관한 다른 이야기보다 고려 사람들의 원한이 맺힌 떡국이라는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더군요. '예종석의 오늘 점심'에는 서울 용두동 개성집에서 흔치 않은 조랭이 떡국 맛을 볼 수 있다고 하였더군요.


서울 용두동 개성집에서는 조랭이 떡국을 어떻게 끓이는지 모르지만, 이번 설에 선물로 조랭이 떡국을 받아 난생 처음 조랭이 떡국을 끓여 먹었답니다. 제가 선물 받은 조랭이 떡국은 전통식품을 만드는 '청복'이라는 곳에서 나온 떡입니다.

유기농쌀과 흑미, 쑥가루, 단호박으로 곱게 색을 낸 4색 떡국이더군요. 흰떡, 쑥떡, 흑미떡, 단호박떡 4색 떡이라 끓이는 시간이 다 다른 것이 가장 까다로운 일이더군요. 대신 떡국을 끓여 그릇에 담았을 때 그 색깔이 참 예쁩니다.

▲ 단호박과 흑미 떡국

멸치 육수를 끓이고 조선간장으로 간을 마춘 후에 조랭이 떡국을 넣고 끊였습니다. 설명서에 나온대로 흰 조랭이 떡을 넣고 쌀짝 끓인 후에 쑥조랭이 떡을 넣고 다시 한 번 살짝 끓인 후에 흑미조랭이 떡과 단호박 조랭이 떡을 차례로 넣고 끓이는 것이 요리 포인터입니다.

생협에서 나온 김과 유정란으로 부친 계란 지단, 표고 버섯으로 고명을 얹어 먹었더니 맛이 그만이더군요.  네 가지 자연이 빚은 고운 색들이 잘 어울렸고 떡국에는 쑥향이 연하게 베어나오더군요. 독특한 모양의 조랭이 떡국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마침 설날에 맞춰 신문에 나온 '예종석의 오늘 점심' 조랭이 떡국 칼럼 덕분에 의미와 유래를 알고 먹을 수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조랭이 떡국을 만들어 생협을 통해 공급하는 '청복'에서도 떡국 끓이는 법과 함께 조랭이 떡국의 유래도 함께 소개해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 설날에 국민들이 조랭이 떡국을 썰었다면 누구를 생각하며 어떤 마음으로 썰었을까요? 지금이야 이성계를 생각하며 떡을 써는 국민은 없었을 것이고, 혹시 그 분을 생각하며 떡국을 써는 국민들은 없었을까요? 그 분은 혹시 조랭이 떡국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