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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장근'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20.10.06 마산엔 100년 된 목욕탕이 있다?
  2. 2011.04.11 동네 계모임 비석도 역사가 된다 (2)
  3. 2010.07.07 웅천도요지서 400년 전 조선 도공의 흔적을 만나다 (8)
  4. 2010.02.25 마산 진동 지역 문화유산과 활용 방안
  5. 2009.11.28 마산의 도시경쟁력은 무엇인가? (5)
  6. 2009.04.01 인문학, 부자들만을 위한 학문 아니다 ! (8)
  7. 2008.11.06 대장정 70년 혁명은 관광으로만? (1)

마산엔 100년 된 목욕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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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토박이보다 더 마산을 사랑하는 역사학자 유장근이 쓴 '마산의 근대사회'

 

태어난 고향은 부여이지만 마산 토박이보다 더 마산을 사랑하는 역사학자가 유장근입니다. <마산의 근대사회>는 그가 지난 2010년 이명박 정부의 졸속적인 행정구역 통합으로 이름마저 사라진 '근대 도시 마산'을 미시적으로 연구한 역사책입니다. 

그는 개항 이전부터 오랜 세월 발전해 온 전통 도시를 원마산이라 부르고, 개항 이후 일제 식민 통치하에서 새롭게 형성된 지역을 신마산(오늘 날도 신마산이라고 부른다)으로 부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두 지역의 형성과 변화 발전 과정을 연구한 도시 역사 그리고 목욕탕 100년사와 같은 사람들의 생활양식, 마산 지역의 근대교육의 발전과 쇠퇴 그리고 창신 학교 연구와 독립운동가 이교재 선생에 대한 연구를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예컨대 이 책은 저자가 관심을 두고 연구했던 여러 주제들을 4부로 나누어 엮어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산의 근대사회> 겉 표지

이 책에 담긴 저자의 연구는 마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조차 대부분 관심을 두지 않는 주제들이 대부분 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선 역사학계에 이름 난 학자가 '마산지역 목욕탕의 1백 년 역사' 같은 연구를 하였다는 것 자체만으로 흥미롭고 놀라운 일입니다. 

실제 저자는 <근대 중국의 지역사회와 국가권력>, <현대 중국의 중화제국 만들기>, <상하이 지역 자선단체의 근대적 성장과 좌절> 같은 연구서를 출간한 중국 근대사를 연구하는 학자입니다. 

실제 대체로 이런 류의 지역사 연구는 이웃 나라 일본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지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은 일본에 비해 이런 지역 연구가 취약한 것을 늘 안타까워 할 뿐이었지요. 

이름도 사라진 도시 마산을 연구한 까닭?

마산, 창원, 진해가 행정구역을 하나로 합칠 때, 통합 도시의 명칭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였지만, 결국 가장 오래 된 이름을 사용하는 것으로 어렵게 합의에 이릅니다. 문헌에 창원이라는 이름이 마산보다 조금 일찍 등장한다는 이유 때문에 통합 도시의 이름은 창원시가 되었습니다. 

아무튼 창원이라는 명칭이 더 오래 되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결정되었지만, 옛 문헌에 고작 몇 십 년 일찍 등장한다는 것으로 260년 근대 역사 도시의 이름을 포기한 것은 그 도시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일이지요.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역사 속 마산이 근대 도시로 발전하는 과정은 흥미롭습니다. 지금 마산에서 골포시대나 삼국시대 혹은 고려시대의 도시모습을 찾아보긴 어렵지만 조선시대 이후는 각 시대별 특징이 도시 공간 속에 잘 남아 있다고 합니다. 

"도시 중심부의 경우, 1760년대의 도시 구조가 1899년대까지 이어졌으며, 개항 이후에는 조계지에, 러일 전쟁 이후부터 일제 시대에 걸쳐 신마산과 중앙마산이 형성되었고, 1960년대 후반기부터 한국사회에 불어 닥친 산업화가 이 지역에 본격적으로 밀려오기 시작하면서 동마산이 탄생되었다."(본문 중에서)

저자는 지난 260여 년 마산의 도시 형성과정을 이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근대기 도시 형성은 지방 행정 관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마산은 창원부 소속의 일개 포구에 지나지 않았지만, 조선 시대 최대의 항구 시설을 중심으로 도시가 성장하였다는 것입니다.

"일창원 이강경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국의 으뜸가는 항구로 발전하였으며, 동해의 원산과 더불어 3대 수산물 교역지로 명성이 높았다. 특히 마산포는 동, 서해의 수산물을 중개하는 교역항으로서 기능하였다."(본문 중에서)

저자는 이 책 제 1부를 통해 근대도시 마산의 성장 과정을 인문학적 관점으로 자세히 기록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현재의 도시 모습을 갖추는 약 260여 년의 변화와 발전 과정을 자세히 정리하고 있습니다.

마산포는 전국 3대 수산물 교역지

사실 4부로 나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마산 지역 목욕탕의 1백 년 역사' 연구 편입니다. 저자는 식민지 위생 시설로 마산에 목욕탕 들어서게 된 배경을 경성의 사례와 비교 설명하면서 오늘날 다양한 기능을 가진 생활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는 목욕탕의 역사를 흥미롭게 증언합니다. 

개화기와 식민시대에는 목욕은 문명 시설의 하나로 받아들여졌다고 하는데, 마산에는 1910년 7월 말 기준으로 8명의 목욕탕 운영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운영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100년 역사의 '앵화탕'은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당시 앵화탕의 구조와 운영 형태(물 공급, 연료 사용) 등에 대한 미시적인 연구를 담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산업화 시대 마산의 목욕탕 현황을 정리한 자료들을 보면서 어린 시절에 다녔던 목욕탕 이름을 찾으며 옛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였습니다. 

3부 마산의 도시 형성과정에 대한 연구에서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1930년대에 이르러 마산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청주 생산량을 기록하게 되는데, 그 단서가 러일전쟁 직후에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청주공장은 조계지와 조계지가 확정된 중앙마산 지역에 주로 설립되었고, 청주공장들이 세워지면서 1930년대에 전국에서 청주 생산을 가장 많이 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해방 후에도 좋은 물을 가지고 좋은 술을 빚는 전통이 이어져 큰 소주 회사와 맥주 공장(최근 소주 공장으로 전환)이 자리 잡게 된 것으로 짐작됩니다. 

1930년대 전국 최대, 최고... 술의 도시

한때 소주회사와 맥주 회사는 모두 "좋은 물로 좋은 술을 만들었다"는 광고로 유명세로를 타기도 하였습니다. 술과 함께 물 좋은 마산에서 생산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던(지금도) 것으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간장 공장도 있었습니다. 

한편, 저자는 근대 마산 중에서도 상남동이라고 하는 특정 공간을 중심으로 20세기 초반에 이루어진 사회 변화와 근대교육의 성장, 발전, 쇠퇴의 역사를 다룹니다. 또 마산을 대표하는 사학 중 하나인 창신학교 연구와 마산 진전 출신 독립운동가 이교재 선생에 대한 연구도 이 책에 담고 있습니다. 

이교재 선생은 독립장을 추서 받은 창원을 대표하는 독립 운동가이며 상해임시정부가 경상남북도 상주대표로 임명하였던 인물입니다. 임정으로부터 군자금 모집이라는 중요한 사명을 띠고 국내에 드나들었던 분입니다.  

저자는 그간 이교재 선생에 대한 연구가 미흡했던 것을 확인하면서 여러 오류를 걸러내고 당대의 기록을 비교 및 대조하면서 역사적 사실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고향에서의 3.1운동 참여와 체포 수감, 상해 망명 이후 통영 군자금 모금사건, 1931년 입국 때 휴대하였던 9개의 상해 임정 문건에 대하여 상세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독립운동자금 모금에 탁월했던 마산 출신 이교재 선생 

아울러 이교재 선생의 활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지역에서 함께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연구도 함께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역 독립운동사에 대한 연구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교재 선생에 대해서는 해방 이후 백범 선생이 마산에 있는 이교재 선생 묘소를 참배하였을 만큼 중요한 인물이었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저자의 연구를 통해 그의 활동과 그 분이 격은 고초를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독립운동의 방법과 독립운동자금 모금에 관해 능력이 탁월하였고, 국내주재 조직 및 독립운동 자금 모금의 경상남북도 상주대표로서 장관 몇 명이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였다"(본문 중에서)

백범의 술회나 이교재 선생에게 맡겨진 임무를 보면 당시 임시정부가 가장 신뢰하는 독립운동자금 모금 책 중 한 명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자료와 사실 확인에 많은 노력이 들어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되는데 자랑스러운 역사도 과장 되거나 꾸밈없이 당시 시대 상황과 사건 현장을 담담하게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난 2010년 강제적인 행정구역 통합으로 이름마저 사라진 도시 '마산'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각별한 지역사 연구서입니다. 마산 야구가 창원 야구가 되어 버린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 3.15 민주 항쟁과 10.18 부마항쟁이 역사의식 없는 일부 사람들에 의해 창원 3.15와 창원 10.18이 되어가는 현실을 보며 망연자실하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하여 이처럼 애정을 가지고 연구하는 학자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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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계모임 비석도 역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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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오후에 유장근 교수(경남대)의 도시탐방대, 그리고 제가 일하는 단체에서 진행한 '임항선 그린웨이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는 제 16차 탐방이었는데, 이번에는 서원골(서원곡)일대를 탐방하였습니다. 행정 명칭이 서원곡인데도 불구하고 '서원골'이라고 한 것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있기 전까지 관해정 근처에 서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관해정은 남명 조식의 제자인 한강 정구(1543-1620)가 임진왜란 이후 처음엔 초가로 정자를 세웠다가 10여년이 지난 후에 제자 장문재가 와가를 다시 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구가 죽고 난 후, 1634년에 정구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관해정이 있던 부근에 회원서원을 세웠다고 합니다.

회원서원이 들어 선 후에 이곳을 '서원골'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이날 도시탐방대에 참여했던 많은 분들이 자신들이 어렸을 때는 사람들이 다 서원골이라고 불렀다는 증언을 하시더군요. 제가 어렸을 때도 어른들이 '서원골'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도시탐방대의 이번 16차 탐방 주제는 '다종교가 공존하는 현장을 찾다' 였습니다. 아쉽게도 '임항선 그린웨이 답사' 일정과 시간이 겹쳐 전체 탐방 일정을 함께 하지는 못하였습니만, 무학산 서원골 일대에 다종교가 공존하는 현장의 일부는 확인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원골에서 만날재 방향으로 이어지는 들머리에서는 OO교회에서 나와 등산객들에게 나눠주는 차(茶)도 한 잔 얻어 먹었으니 다종교가 공존하는 현장 체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동네 계모임이 비석이라고?
왜, 요즘 라이온스, 로타리도 비석 많이 세우잖아...


'웬 계비? 계비가 무슨 역사 유적이야?' 저도 이렇게 생각하였는데, 유장근 교수가 나눠 준 자료에도 '계비가 뭐야? 이렇게 되어있더군요.

이날 도시탐방대의 주제는 '다종교가 공존하는 현장을 찾다'였는데, 전체 일정을 모두 참가하지 않은 저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는 바로 원각사 아래 '계비'가 있는 장소였습니다.

1918년에 문을 열었다고 하는 원각사 바로 아래 너럭바위에는 모두 세 개의 계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것이 1962년에 세워진 <마산동락계원회유장>비 이고, 바로 옆에 <마산동락계>비 그리고 뒤편에 <병진친목회 기념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습니다.

<마산동락계원회유장>이라고 새겨진 비석과 <마산동락계>비는 같은 모임에서 세운 비석입니다. 전자는 1962년에 새운 비석이고 후자는 10년 후인 1972년에 세운 비석입니다.

27명의 동락계원들이 만든 1962년 비석에는 계원 명단과 함께 멋진 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산 높고/ 물 맑으니/ 산수일색/ 명승지라/ 동락형제/ 우리 정의/ 이 강산과 더불어/ 변치 않으리"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1972년 비석에는 유귀남 이라는 대표 명단과 함께 1962년 명단에 없는 새로운 계원들의 이름이 많이 새겨져 있고, 옛 비석과 이름이 중복되는 사람들도 몇몇이 있습니다. 1972년의 계원 명단이기 때문이겠지요.

나란히 서 있는 두 비석은 오래 된 것이 좀 더 멋스럽습니다. 비석에 새겨진 글자체, 그리고 자연석의 모양을 그대로 살린 비석의 모양, 글씨가 새겨진 부분을 파낸 모양이나 함께 새겨진 싯귀 등이 훨씬 멋스럽게 보입니다. 10년 후에 새겨진 비석에는 풍류의 느낌이 훨씬 덜 합니다.

아무튼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라는 경구를 다시 한 번 떠 올리게 되더군요. 동네 계모임 역사가 기록으로 남아 이렇게 역사학자와 탐방객들의 눈에 뛰어 이젠 다시  디지털 기록으로도 남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인생 뭐 있어? 같이 즐겁게 놀자

서원골계곡에 커다란 너럭 바위가 있는 이곳이 옛날부터 사람들이 모여서 놀기에 좋은 장소였던 모양입니다. 1962년에 세운 비석에 서원골을 회유장이라고 새겨놓으니 말입니다. 원각사 아래 커다란 바위들이 있는 이곳에서 계모임을 하였던 모양입니다. 명칭부터가 유별나게 놀았던 흔적이 가득합니다.

동락계? 유장근 교수의 해석에 따르면 "인생 뭐 있어? 같이 즐겁게 놀자!!"라는 뜻이 깊이 담긴 이름이라고 합니다. 함께 세워진 다른 두 비석에 비하면 맨 처음 세워진 동락계비는 글자체, 싯귀, 그리고 비석의 새김 등에 매우 정성을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겠더군요.

아울러 지금부터 50년 전, 참 어렵고 힘든 시절에 이곳에서 풍류를 즐길 수 있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하는 궁금증도 자아내더군요. 어쨌든 동네 계모임도 기록으로 남으면 역사가 되고 유물이 된다는 것이 참 흥미롭더군요.

나란히 세워진 <마산동락계>비는 10년 뒤인 1972년에 세운 것으로 같은 계에서 세운 비석인데, 10년 전 비석과 중복되는 이름도 있고 새로운 이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산동락계의 1972년 회원 명단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뒤편에 세원진 <병진친목회기념비>는 1916년 병진생 동갑계원들이 1976년에 세운 비입니다. 태어나서 60년이 되는 해인 환갑년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이었습니다. 1956년에 45명의 용띠 사나이들이 모여서 만든 계모임이라고 합니다. 



비석을 보니 라이온스, 로타리, 와이즈멘 같은 현대적 계모임이 생각나더군요. 시내 곳곳에 가면 이들 클럽에서 세운 비석들이 여러 곳에 있는데, 당시 <마산동락계>나 <병진친목회> 같은 모임이 오늘날 라이온스나 로타리 같은 모임과 비슷한 분들이 모이지 않았을까하는 추측을 해보았지요.

이 비석 뒤편에는 노래가사 끝 구절에 '한조각 푸른 돌에 사연실으니 그 이름 자손만대 길이 빛내리'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자손만대에 길이 빛나지는 못해도 30여년이 훨씬 지난 지금, 누군가 비석을 관심있게 보는 사람들이 있으니 돈들인 값은 하는 것 같습니다.

벚꽃이 활짝 핀 서원골은 경관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아마 지금 같은 계절, 활짝 핀 벚꽃이 바람에 날리는 때,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소리를 들으며, 푸른 바다 마산만이 보이는 서원골에서 이 분들이 '계모임"을 하였겠지요.

이날 탐방 활동의 중간쯤 휴식 시간에 허정도 선생이 중학교 소풍 때, 선생님께 들었던 최치원에 얽힌 야사(?)를 아주 재미나게 들려주었습니다.

옛이야기 책에서 흔히 읽었던 내용과 흡사하기는 하였지만, 워낙 구라(?)가 뛰어나기 때문에 아마 중학시절 선생님께 들었던 이야기보다 훨씬 재미있게 들려주었던 것 같습니다. 참가자들 모두 귀를 기울이고 열심히 들었을 뿐만 아니라 길을 가던 등산객도 멈춰서서 이야기를 함께 들었으니까요.


사실, 이날 도시탐방대가 갔던 곳은 처음 가본 곳이 아닙니다. 서원골을 따라 무학산에 오른 횟수는 수십회가 넘을 것이고, <동락계비>를 비롯한 비석들이 서 있던 자리를 지나친 일도 서너 번은 더 됩니다만 역사의 흔적을 발견한 것은 이날이 처음입니다.

동네 계모임 비석도 기록으로 남기니 역사가 되고, 늘 가던 길도 역사학자와 함께 걸으니 유적지가 되더군요. 다음 도시탐방대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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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드 2011.04.12 10:23 address edit & del reply

    아. 이런 생활속의 인문학 너무 좋아요. '풍류'라고 하고 싶군요. 본문속에 저 계모임 시비 내용도 너무 훌륭합니다. :D

  2. 이윤기 2011.04.14 10:57 address edit & del reply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도시탐방대는 1년 넘게 꾸준히 계속되고 지난 연말에는 보고서도 한권 나왔답니다.

웅천도요지서 400년 전 조선 도공의 흔적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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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6월 19일) 100미리 이상 폭우가 내린다는 일기예보 때문에 친구들과의 등산 계획을 취소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주말이 되니 후덥지근하고 짜증스럽기는 하여도 비는 오지 않더군요.

엉터리 일기예보 덕분에 등산 모임이 취소되어 유장근 교수(
http://blog.naver.com/yufei21)의 도시탐방대(http://cafe.daum.net/masanstory) 제 14차 답사에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진해 지역 2번째 답사인 이번 탐방는 웅천 안골 왜성과 망산도와  유주암 그리고 웅천 도요지(진해시 두동 점골)를 둘러보는 일정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2월 10차 탐방(진동, 진해현 관아, 삼진의거 유적지 등) 이후에 넉달 만에 다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왜성이나 도요지에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도시탐방대 활동 자체에 관심이 있어 계획과 준비없이 답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오후 2시 약속장소에는 20여명이 넘는 분들이 모였습니다. 유장근 교수님이 간단한 답사 오렌테이션을 하신 후에 최종적으로 답사코스를 확정하고 웅천 왜성 주변 지역 답사부터 시작하였습니다.

(블로그 포스팅에 사용한 사진은 모두 류창현님, 유장근님 블로그에서 빌려온 사진과 실비단안개님께서 보내주신 사진 입니다. 저는 현장에 도착하여 카메라를 확인해보니 메모리카드가 없더군요. 그래서 사진은 한 장도 못찍으며 편한 답사를 하였습니다.)



첫 번째 답사지는 진해 안골포 굴강입니다. 굴강은 조선시대에 군선이 정박하여 선체를 수리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하여 만든 군사시설이라고 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방파제나 선착장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시설인데, 우리나라에 굴강의 원형이 남아있는 곳이 몇 군데 뿐인데, 그 중에 안골포 굴강이 가장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더군요. 또한 이곳은 안골포 해전의 유적지이기도 하답니다.

저는 답사 지역에 대한 사전 정보도 없이 이번 답사에 참여하였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전에 한 번 가 본적이 있던 장소였습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분명합니다.  지난 겨울에 실비단안개님이 블로그에 쓴 글(작업 천막에서 먹는 굴구이와 굴국밥)을 보고 이곳에 싱싱하고 맛있는 생굴을 먹으러 갔었는데, 그때는 안골포에 '굴강'이라는 유적지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이번 답사 날에도 처음 굴강이란 말을 들었을 때, 굴이 많이나와서 굴강인가하는 무식하고 우스운 생각을 하였습니다. 나중에 설명을 듣고 보니 '굴'과는 아무 상관도 없더군요.

그날 이후 이번 답사때까지는 안골포에 맛있는 굴구이와 굴국밥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다음에 안골포와 웅천지역 답사를 하면 반드시 굴이 나오는 겨울에 답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굴구이와 굴국밥으로 점심을 든든히 먹고 왜성에 오르면 여름처럼 덥지도 않고, 풀도 우거지지 않아 답사하기에  딱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답사에는 팬저님의 활약이 대단하였습니다. '팬저의 국방여행'(http://panzercho.egloos.com)을 운영하시는 블로거 팬저님은 제목 그대로 무기를 비롯한 국방관련 정보, 전쟁, 그리고 옛 성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축적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자칭 아마추어라고 하였지만, 그의 블로그를 방문해보면 아마추어를 넘어섰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웅천 안골 왜성 답사를 위한 자료 준비를 해오셨는데, 고지도에서부터 구글지도에 이르기까지 여러 자료를 준비해오셔서 '안내판'에서 읽을 수 없는 풍부한 설명을 들려주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쌓은 왜성은 육지와 바다에서 오는 적을 동시에 방어하기 위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정말 조망이 탁월합니다. 안골 왜성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천수각 자리에서는 가까이에 신항과 바다 건너 가덕도가 한 눈에 들어오고 반대편으로는 거제쪽으로 이어지는 뱃길도 시원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 곳에서 유장근 교수님과 펜저님의 설명을 듣는 동안 깜박 졸았습니다. 전날 과음을 한데다가 땀을 흘리며 왜성 정상까지 올라가 시원한 바닷 바람을 맡으며 앉아있으니 어느새 졸음이 몰려오더군요.(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줄 알았는데...실비단안개님 카메라에 포착이 되었더군요.)



왜성에서 바라보는 안골포 풍경입니다. 한가롭게 보이는 어촌입니다만, 옛날에는 군사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1592년(선조 25년)에 이순신, 이억기, 원균이 한산대첩 이후에 안골포에 있는 왜군을 공격하여 함선 대부분을 격파시키는 전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왜군은 조선에 장기주둔하기 위하여 안골포를 비롯한 남해안 여러 곳에 성을 쌓았는데, 안골포 왜성은 이순신에게  패배한 후에 쌓았다고 합니다.


망산도는 수로왕이 사람을 보내 하늘이 정해준 신부감을 기다리도록 한 장소라고 하고, 유주암은 허황후 일행이 타고 온 돌배가 바다에서 뒤집혀 유주암이 되었다고 합니다. 거북 모양을 한 바위와 거북알 형상을 한 독특한 바위들이 있었습니다.

얼마전까지 진해에 속해있었는데, 지금은 행정구역상 부산이 되었다고 합니다. 망산도와 유주암이 있는 육지는 창원시 진해구이고, 앞바다는 부산이기 때문이랍니다. 

진해는 물론이고 웅천지역에도 자주 올 일이 없었는데, 막상와서 보니 마산이나 창원과 통합을 하여 하나의 행정구역이 되는 것이 참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창원도 부산도 아닌 그냥 독립적이고 자족적인 도시기능을 키워나갔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해 시내에서도 한 참 떨어진 곳에서 거대한 아파트 단지와 배후 도심이 형성되고 있었는데, 창원과 통합 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참 억지스럽더군요. 창원과 통합을 주도한 진해 지역 시원들이 줄줄이 낙선한 것은 어찌보면 너무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날 마지막 답사 장소는 웅천 도요지입니다. 진해구 두동 점골에 있는 이곳 웅천 도요지는 복원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서고 있었고, 절개지에는 포크레인이 공사를 하다가 멈춰있었습니다.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에 대해서는 답사에 참가한 여러 건축전문가들이 '안타까운' 마음을 꽤 과격하게 표현하시더군요.

옛 도요지를 복원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인데, 제 눈에는 도요지의 흔적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문가급인 박영주 선생님과 유장근 교수님은 금새 도요지의 흔적을 찾아내고, 많은 종류의 파편들을 모아오셨습니다.

위, 사진은 유장근 교수님 블로그에서 빌려 온 사진인데, 그날 함께 답사에 참여했지만 도자기 파편을 저리 많이(블로그에 가면 확인 가능) 주워 오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깨끗히 정리한 사진을 보니 비닐 주머니에 담아 온 파편들이 어느새 박물관 소장품이 되는 듯한 느낌입니다.

경남대학교 인문학부 이상길 교수가 살펴 본  결과 대부분 분청사기 조각이며, 시기상으로는 15-16세기, 그리고 용도는 사발, 대접, 종재기 등이었다고 합니다. 준비없이 참여한 저는 별 느낌없는 장소였는데, 관심있는 이들은 15세기 도공의 숨결을 느끼는 장소였던 모양입니다.

특히, 진해 1차 답사에 참여하여 400년 조선 도공의 혼을 잇는 최웅택 사기장의 웅천요에 다녀오신 분들은 그 느낌이 많이 달랐을 것 같았습니다. 웅천 도요지는 15 ~ 16세기에 활발하게 운영되었으나 임진왜란 당시에 도공들이 모두 일본으로 끌려간 후 문을 닫은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이곳에서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은 앞서 살펴보았던 안골포에 있는 웅천 왜성으로 잡혀갔다가 일본으로 끌려갔으며, 이후 일본에서 도자기 문화가 꽃피웠다고 합니다.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는 여름방학을 보낸 후 8월 말에 다시 시작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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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07 10:44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이윤기 2010.07.07 11:22 신고 address edit & del

      아이쿠....고맙습니다. 수정하겠습니다. 전날 늦게까지 술 마시고 제가 졸고 있는 사진을 찍어두셨더군요.

    • 2010.07.08 07:40 address edit & del

      비밀댓글입니다

  2. links of london charms 2010.11.29 15:32 address edit & del reply

    hehe입니다. 저것은 좋은, 놀라운, 멋진

  3. ugg boots discount 2010.12.14 15:33 address edit & del reply

    하 하 하, 굴이 많아 굴강이라.... 매력적인 설명입니다.
    함 그리 합시다.
    졸았다면서, 들을건 다 듣고, 쓸건 다 썼군요....^^

  4. pandora beads 2011.03.21 16:11 address edit & del reply

    졸았다면서, 들을건 다 듣고, 쓸건 다 썼군요....^^

  5. the pandora beads 2011.03.21 16:12 address edit & del reply

    hehe입니다. 저것은 좋은, 놀라운, 멋진

  6. the pandora beads 2011.03.21 16:12 address edit & del reply

    노동조합 활동가..

마산 진동 지역 문화유산과 활용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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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난 토요일 유장근 교수의 마산도시 탐방대를 따라서 마산진동 지역의 문화유산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마산 진동 지역에 남아있는 옛 문화유산과 그 활용방안에 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마산도시 탐방대를 잠깐 소개하면 역사학자인 유장근 교수와 30여명의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는데요. 지난해 10월부터 월 2회 격주로 마산지역의 문화유산 답사활동을 진행하고 있고, 이번 진동 탐방은 10번째 탐방입니다.

이번 진동 문화유산 탐방은 옛 진해현 관아와 청동시 시대 유적지, 팔의사 창의탑, 이교재 선생 묘역, 근대민족교육의 산실 경행재, 곡안리 양민학살유적지, 여양리 민간학살 유적지를 둘러보는 코스였는데요.

옛 진해현 관아는 현재 진동읍 사무소와 진동중학교 자리입니다. 옛 관아 건물과 사령청, 마방 등 부속건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요. 20 여년 전에 화재로 소실된 객사의 흔적도 그대로입니다.

지역사를 연구하는 분들에 따르면 옛 진해현 관아는 유명한 낙안읍성에 뒤지지 않는 규모라고 합니다. 읍사무소 주변으로 옛 성터가 그대로 남아있어 복원을 할 경우 낙안읍성 못지않게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진해현 관아 터 뒤편으로 청동기 시대 유적지가 발견됐고, 조선시대 유물로는 정약용의 ‘다산어보’ 보다 앞서는 국내 최초의 어보인 ‘우산이어보’가 바로 삼진지역에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따라서 옛 진해현 관아와 성터를 복원하고 청동기 유적을 전시하는 전시관이 건립된다면 낙안읍성 터에 뒤지지 않는 관광 유적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읍사무소와 진동 중학교 운동장에는 수령 수백년이 넘는 거대한 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이것도 모두 옛 진해현 관아에 남겨진 유물들이라고 합니다.

한편 진동 일대에는 1919년 4월 3일 삼진연합대의거와 관련한 역사와 그 유적들도 남아있습니다. 1919년 당시 삼진연합대의거에는 2천여명의 주민들이 만세운동에 참여했고, 일본군의 발포로 8명이 순국했다고 합니다. 진동지역에는 이교재 선생 묘역, 민족학교 경행재, 팔의사묘역, 팔의사 창의비, 팔의사 창의탑들이 모두 삼진만세운동과 관련한 유적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곡안리와 여양리 일대에는 한국전쟁을 전후해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사건과 관련한 유적들도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 활동에 참여한 회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마산에 정말 많은 역사 문화 유적이 남아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해안경관과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다양한 역사와 문화 유적이 산재한 마산은 역사,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휴양, 관광, 문화 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도시입니다.

지금부터라도 공업단지와 대규모 고층 아파트만 지어 소득과 인구를 늘이겠다는 낡은 발전 방식을 버리고, 숲, 길, 이야기, 사람, 역사, 문화가 있는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일에 함께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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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의 도시경쟁력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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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와 문화가 마산의 도시경쟁력이다.

최근 행정구역 통합을 둘러싼 논의와 유장근교수의 도시탐방대 활동을 지켜보면서 근대 도시 마산의 도시경쟁력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난주 토요일 마산 창동을 중심으로 부림시장, 어시장 일대를 답사한 마산도시탐방대활동을 소개하는 신문기사를 보면 “200년 이상 된 골목길이 마산의 숨겨진 보물이다” 라고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 사진출처 :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 카페(http://cafe.daum.net/masanstory)


탐방대 일원이자 도시전문가인 허정도 선생은 “대한민국 어디를 살펴봐도 볼 수 없는 몇백 년 된 골목길이 마산에 남아있다. 마산의 골목길은 보물이 아니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다” 며 조선시대 골목은 역사적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 기사를 보면서 근대 도시 마산의 경쟁력에 관하여 생각해보았습니다. 실제로 마산의 경쟁력을 이야기 할 때 과거 전국 7대 도시에 들어가는 마산의 옛 명성을 회복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십니다.

이런 주장을 하시는 분들은 마산에 공장과 기업을 유치해야만 마산이 살아날 수 있다고 주장하시고, 최근에는 행정구역 통합을 하여 공장과 기업이 많은 창원 같은 도시와 합쳐서라도 옛 명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십니다.


▲ 근대 역사와 문화를 경쟁력으로 만들어 성공한 도시 '유후인'


공장과 기업, 고층아파트만 도시 경쟁력이 아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마산의 도시 경쟁력은 공장과 기업을 유치하는 방법으로만 키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도시의 경쟁력을 말하려면, 그 도시가 가지고 있는 자연적, 역사적, 사회적 조건을 고려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20여 년 동안 경남의 행정 중심도시로서 창원의 급성장과 마산이 쇠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지도자들은 마산의 도시경쟁력을 높이기 위하여 고급아파트를 짓고 공장을 유치해야한다고 믿고 실제로도 그런 정책을 주로 펼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산이 가진 경쟁력은 바로 ‘근대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흔적도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고대역사가 아니라 아직까지 체온이 가시지 않은 많은 근대문화 유적과 건물들이 마산시내 곳곳에 수두록하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임항선 철길을 중심으로 자리 잡은 문신미술관과 환주산일대 문화유적, 창동일대의 마산조창과 유정당, 200년이 넘은 조선시대 골목길, 순종임금의 순행길, 일제시대의 자취가 남은 여러 건물들이 모두 근대문화유산입니다.

21세기는 문화와 역사의 시대라고 합니다. 일본의 관광도시 유후인을 비롯하여 이미 세계적으로 성공한 도시 중에는 역사와 문화를 기반으로 성공한 도시가 많이 있습니다.

창원이 아무리 마산보다 재정자립도가 높고 돈이 많아도 결코 돈 주고는 살 수 없는 것이 바로 근대역사입니다. 마산이 가진 근대 역사 그것이 바로 마산의 도시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11월 24일 창원 KBS 라디오 생방송 경남 방송 원고를 조금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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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르다 2009.11.29 19:20 address edit & del reply

    지금 마산의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마산의 근대유산은 개 발에 편자라고 봅니다.
    성장중심의 사고를 바꾸면 금방 찾을 수 있는 보석인데 말이죠.

    • 이윤기 2009.12.01 10:07 신고 address edit & del

      리더가 바뀌면 많은 것이 바뀔 수 있겠지요? 이명박 대통령이 세상을 확~ 바꿔놓는 것 보면...그럴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됩니다.

  2. 수원사람 2009.11.30 13:17 address edit & del reply

    골목이 경쟁력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군요.
    여하튼 살기 좋은 마산을 기원합니다.

  3. 진해사람.. 2009.12.09 15:54 address edit & del reply

    맞습니다. 몇년 전에 두산중공업에서 한국주재 외국 대사와 가족들을 수십명 초청했는데 잠은 창원에서 잤지만 관광일정은 문신미술관과 돝섬을 둘러보고 가더군요.. 창원에선 공장만구경하고 갔다지요.. 통합이 되면..마산은 어시장과 근대유산, 문화 중심지역으로... 진해 구도심은 벚꽃과 어우러진 해양군사관광지로..진해신항은 물류중심으로.. 창원은 생산중심으로..나눠 발전전략을 짜야 할 것입니다.

인문학, 부자들만을 위한 학문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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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에 번역되어 꾸준히 사회교육과 사회운동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희망의 인문학>이라는 책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서울시를 비롯한 수도권 여러 자치단체와 대학, 사회교유기관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강좌를 개최하고 있는데, <희망의 인문학>에서 소개하고 있는 '클레멘트 코스'가 그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미국 학자 '얼 쇼리스' 교수이고, '클레멘트 코스'란 10여년 전 미국에서 시작된 일종의 '사회교육 실험'으로 빈민과 노숙자들에게 인문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그들이 세상을 바꾸는 일에 나서도록 하는 프로젝트이다.

2007년에 이 책데 대한 서평을 <녹색평론>에서 읽으면서, 인문학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는데, 마침 그 해에 <희망의 인문학>을 번역한 고병헌 교수(성공회대)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어, 국내에서도 노숙자를 위한 인문학강좌가 진행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얼 쇼리스는 학교 교육이 지금처럼 비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전부터 인문학은 부자들을 위한 학문이었다고 한다.교육을 하는 곳에서 취업을 준비시키는 곳으로 전락하였기 때문에 인문학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고 한다. 원래부터  인문학은 록펠러 가문을 비롯한 부자 가문 자손들이 공부하는 '학문'이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기존의 방법은 '훈련'이라는 것이다. 직업이 없는 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무료로 직업훈련을 해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얼 쇼리스는 빈민들을 동원해 훈련시키는 대신 그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성찰하도록 돕는 클레멘트 코스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것과 입을것을 단순히 제공하는 것으로는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문학강좌는 공공근로나 사회적 일자리 그리고 빈민을 위한 소액대출 같은 제도처럼 경제적인 측면에서 직접 도움을 주지는 않지만, 그들로 하여금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갖게 함으로써 궁극적인 직업 훈련의 효과를 준다는 것이다.

아울러 자신을 돌아보는 힘을 밑천으로 자존감을 얻고,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며 더 나아가 ‘행동하는 삶’을 살도록 함으로써 한 사회의 시민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한다는 것. 이 책은, 인문학이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능력을 갖게 하는데 이것야말로 진정한 부(富)이며, 이 '진정한 부'를 갖게 될 때 정치적 권력을 제대로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가난한 자, 소외된 자를 위한 인문학

소설가, 사회비평가, 언론인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진 얼 쇼리스는 미국의 한 중범죄자 여자교도소에서 한 여성수감자를 면담하면서 인문학강좌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8년 넘게 복역중인 여인을 만난 자리에서 얼 쇼리스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 왜 가난한 것 같나요 ?" 
"시내 중심가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정신적 삶이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이지이죠. 극장과 연주회, 박물관, 강연회 같은 것 말 입니다."


가난한 거리의 아이들에게 시내 중심가 사람들(부유한자들)이 누리는 정신적 삶을 가르쳐야 한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얼 쇼리스는 클레멘트코스에 대한 영감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를 배우는 인문학강좌를 들은 가난한 젊은이들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얼 쇼리스가 시카고 대학 근처의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첫 번째 크레멘트 코스를 17명이 이수하였는데, 그 가운데 16명이 일자리를 구하거나 진학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일자리가 없는 한 명은 맥도날드에 취직하였다가 2주 만에 쫓겨났다고 한다.

"왜 쫓겨났죠?"
"노조를 만들려고 했거든요"


인문학강좌는 단순히 교양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자각시키는 학문이었던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을 떨치고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공안정권이 만들어낸 한국적 표현을 사용하면, 인문학 강좌는 '의식화'교육이었던 셈이다.

한국에서는 인문학적 소양을 가지려면 국방부 금서목록을 읽고 공부하면 되는 것이 지금도 현실인 것이 안타깝다.

아무튼, 민주주의의 시계 바늘이 거꾸로 돌아가는 요즘, 진정한 부(富)를 추구하는 인문학 강좌가 지역에서 개설된다. 필자가 일 하는 단체에서 아래와 같은 일정으로 개최하는 수요인문학이 바로 그 강좌다.

[장소 : 마산YMCA, 문의 : 252-9878, 9898, 담당 : 김막달 부장]


이 강좌는 가난한 사람, 노숙자만을 위한 강좌는 아니다. 그렇다고 부자들을 위한 강좌는 더 더욱 아니다.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능력을 갖고자 하는 모든 생활인들에게 열린 강좌이다. 이제 개강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

 

희망의 인문학 - 10점
얼 쇼리스 지음, 이병곤.고병헌.임정아 옮김/이매진
행복한 인문학 - 10점
고영직 외 지음/이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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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이없는 인문학 2009.04.01 13:40 address edit & del reply

    노조를 만들다 쫓겨났다는 말에 방점.
    인문학이란 결국 길들이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인가?? 후훗
    살아있는 인문학이란 삶과 결코 유리될 수 없는 것이며
    사이비 인문학자들이 온갖 사기술로 대중의식을 교란시킬 때
    인문학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사회자체를 바꾸었고,
    이게 바로 살아있는 인문학이다.

    • 이윤기 2009.04.01 15:05 신고 address edit & del

      노조를 만들라고 종용하지 않았어요. 철학과 문학, 역사를 배운 젊은이가 노조를 만드는 길을 찾아갔을 뿐이지요. 소외된 사람들에게 인문학이 단순한 부자 흉내내기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봅니다.

  2. 어찌하여 2009.04.01 13:50 address edit & del reply

    어찌하여 17명 중에서 쫓겨난 1명에게 관심이 쏠리고,
    어쩌면 쫓겨난 1명이야말로 인문학을 제대로 배운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보는 것일까??

    • 이윤기 2009.04.01 15:06 신고 address edit & del

      노조를 만들다 쫓겨난 1명도, 그렇지않고 직장과 학업을 선택한 사람도 모두다 인문학을 제대로 공부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3. 룸프 2009.04.01 22:55 address edit & del reply

    인문학이라;;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을 추천하고 싶군요..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소외와 가난은 쉽게말해서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해도 없어지지 않고 더욱 심화되는 인종,지역,대륙간의
    심화되는 모순을 지적해야되지 않을까요?오히려 인문학수준에서 접근이라면
    대한민국에서 존재하는 가난의 세습과 숙명에 대하여 낭만적인 소재로
    미화시키기 보다는 사회에 대한 세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학문을 초월하여
    인문학적인 언어로 엮어내는 작업이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추천하는 상호부조론은 초반 딱딱한 진화론의 발전전개만 제외하면
    무난할정도로 학문적(사상적)이론에 인간의 정서가 잘 조화된 훌륭한 역작입니다. 무한경쟁을 모토로 삼는 현대사회에서 과연 우리가 사는 현실이 옳바르게
    가고 있는것인가? 이런 질문을 한번쯤 진지하게 들게만드는 책입니다.

    • 이윤기 2009.04.02 13:33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알라딘 검색해보니 번역본도 있고, 하승우씨가 쓴 해설서도 있더군요.

  4. 나비부인 2009.04.02 09:23 address edit & del reply

    얼마전에 시사매거진 2580에서 노숙자와 철학자 인가 하는 주제를 다루었지요. 같은 맥락이 아닌가 싶네요. 인문학이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는 찬밥취급 받고 있지만, 저도 힘들때는 지루한 인문학 서적이 한번 더 보고 싶고, 저의 정신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걸요.

    • 이윤기 2009.04.02 13:34 신고 address edit & del

      고맙습니다. 2580 다시 보기로 한 번 봐야겠네요.

대장정 70년 혁명은 관광으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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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며 중화제국을 탐색하다.

매년 200만명 이상의 한국인이 중국을 방문하고, 외국에 나가는 한국인 세 명 가운데 한 명이 중국을 다녀온다고 한다. 거꾸로 한국에 입국하는 중국인 숫자도 일본과 1, 2위를 다툰다고 한다.


타이완이나 홍콩 입국자까지 포함시키면 매년 한국에 입국하는 외국인 중 중국인이 가장 많을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두 나라 사람들의 왕래는 역사 이래 가장 활발한 상황이라고 한다.

서점가에는 중국여행 경험을 엮어 낸 책 역시 수두룩하다. 여행지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는 이 책들은 대부분 눈으로 보는 여행을 위한 정보들이 빼곡히 담겨있거나 여행을 통해서 보고, 듣고, 느낀 지은이의 감흥을 적은 기록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유장근이 쓴 <여행하며 중화제국을 탐색하다>는 그동안 많이 출간된 중국여행 관련 책과는 다르다. 유장근은 중국근현대사를 전공한 역사학과 교수다.

따라서, 중국변방을 여행하는 그의 발걸음도, 상해시내를 한가하게 산책하는 걸음도, 동네 사람들과 떠난 뱃놀이 여행도 늘 역사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삶과 문화와 마주친다.

유장근은 이 책이 "30여 년 동안 매달려온 중국 역사 연구를 기반 삼아, 최근 몇 해 동안 중국 현지를 직접 관찰하면서 얻은 성과를 대중과 교감하기 위해 쓴 글"이라고 밝히고 있다.

책에 실린 글들은 2004년 사천, 귀주 지방 여행과 2006년 상해 사범대학 방문교수로 지내는 동안 상해를 중심으로 곤명, 대리, 여강에 이르는 남방여행과 서안, 연안을 거쳐 거얼무, 돈황, 우루무치에 이르는 서북방 여행에 대한 기록이다.

아울러, 여행지이면서도 1년 동안 머물렀던 생활터전으로서 상해를 중심으로 살펴본 중국인들의 일상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 바둑, 대장금, 축구, 한류를 통해 살펴보는 양국 교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붉은 수수밭, 홍등, 집으로 가는 길 등 장예모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영화로 본 중국사회에 대한 이야기로 엮어져 있다.

상해 사범대학에 교환 교수로 있는 동안 쓴 글들은 대부분 경남도민일보에 '지금 중국에선'이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연재되었던 글들이다. 당시 그는 신문사로부터 '읽기 쉽고, 유익하고 재미있게'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가급적 그 기준에 맞추어 쓰려고 노력한 결과라고 한다.

지은이는 멜라민 파동과 같은 경험을 통해 한국인들에게 가난하거나 혹은 싸구려 나라로만 인식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몇 년 사이 중국은 단순한 이웃이 아니라, 모순을 일으키고 충돌하면서도 상생을 추구해야 할 국가로 우리들에게 다가왔다. 중국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나 이해의 수준도 이에 부응할 때가 된 것이다."(본문 중에서)

한국과 중국을 오고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에 맞추어 중국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나 이해수준도 높아져야 하는데, 역사학자의 눈으로 탐색한 중화제국에 대한 관찰도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고 있다.

중국은 '중화제국'인가?

유장근 책 제목을 왜 '중화제국'이라고 지었는지를 설명하면서 "중국에서 변방은 내부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자치권 확대를 주장하는 티벳이나 분리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이 일어났던 신강지역 뿐만 아니라 서북방지역으로 갈수록 식민지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상해, 북경을 중심으로하는 중심지역과 변방의 관계가 제국이 식민지를 지배하는 방식으로 통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가 하나의 국가를 이루고 있지만, 결국 정치, 경제적 관계에 있어서는 국가를 너머 이루어지는 제국의 지배와 다를 바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청나라 말기 중국이 일시적으로는 패전국, 식민지 지배를 받았지만, 기본적으로 '제국'의 속성을 가진 나라라는 것이다.

"중국인 친구들과 서북부 지역의 여행담을 중심으로 동부와 서부의 경제적 격차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얼굴이 금방 어두워진다. 이 격차는 바로 한족과 소수민족이라고 하는 민족적 차별까지 내포하고 있으며, 나아가 두 개의 중국으로 분열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본문 중에서)

이러한 모순을 상징하는 사건이 2007년 연초에 신강에서 중국공안당국이 동투르키스탄 독립운동단체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여 18명을 사살하고 비슷한 인원을 체포한 일이다. 이 단체는 지난 2세기 동안 신강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였다고 한다.

그는 실제로 동북 변방 우루무치를 갔을 때 그동안 갖고 있던 '중국'이란 개념에 혼란이 일어났었다고 한다. "그곳은 역사와 민족, 문화, 종교, 일상생활, 그리고 생태적 조건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우리가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중국과는 별도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내 소수민족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피력하면서, "근대기 한족에 의해 강제된 식민지성에 주목"하여야 함을 강조한다. 그는 여행을 통해 비한족 세계에 대한 한족의 지배력이 예전보다 더 강화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모택동이 이국으로 보았던 티베트 동부 사회도 거의 완벽할 정도로 중국의 일부가 되어 있다. 중국은 이 점에서 더 강해질 수 없을 만큼 동아시아에서 초강대국이 되어있다. 거기에 개혁 개방을 통해 종래보다 더 강력한 국가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본문 중에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민족 문제는 좀 더 극적인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오늘날 대부분 사람들은 중국에 55개의 소수민족이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정부의 '민족 만들기' 작업 결과였다고 한다.

1950년대 해당 민족 자체의 기준에 따라 스스로 독립된 민족이라고 규정한 민족수는 400여개였는데, 빈틈없는 통일국가의 유지와 민족 보호라는 전략에 따라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소수민족을 중화민족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하여 한족과 소수민족이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고 하는 이른바 민족동원론(民族同源論)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여행하며 중화제국을 탐색하다>를 쓴 유장근의 중화제국 탐색에는 늘 중국과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교차한다. 그는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중국인과 문화에 대하여 '바로 보기', '다시 보기'를 시도할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눈으로 중국을 바라보는 오류, 한국 중심으로 중국을 이해하는 오류를 경계하고 있다.

그는 중국과 한국의 시선을 교차시키면서 중국을 바라보려고 할 뿐만 아니라 중국을 통해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노력 역시 진득하다. 역사학자로서 역사적 경험을 비교해보는 노력도 잊지 않는다.

이런 지은이의 생각이 반영된 탓인지, 책에 포함된 중국 여행 지도에는 중국만 나와있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 한반도는 물론이고, 자신의 생활 터전인 마산이 다른 중국내 여행지처럼 붉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유장근은 중국 여행을 통해 새로운 것, 특별한 것,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한국과 비교하고, 유익한 것, 도움 되는 것을 볼 때마다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하는 고민을 잊지 않는다.

그중 특별히, 관심을 두고 소개하는 것은 구체구 황룡 같은 빼어난 관광지에 설치된 '잔도(棧道)' 이야기다. 잔도는 "시멘트나 나무기둥을 다리 삼고, 그 위에 두껍고 넓은 송판을 깔아 인도를 만든 단순한 형태"인데, 자연 경관이 빼어난 곳에 '잔도'를 설치하여 산을 훼손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장근의 일행들은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 '산자락을 휘돌아 감는 잔도를 둔다면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숲속을 거닐 수 있을 것'이라는 것과 정상을 향해 위 아래로 오르내리는 길만 있는데, 좌우로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는 산책개념의 산길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고민을 하고 있다.

유장근과 일행들은 관광자원을 활용하는 중국시스템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동인을 사회주의에서 찾고 있다.

"자연경관에 대한 철저한 국가 관리나 대규모 개발은 사회주의였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특히 토지가 국유인 까닭에 보호지구로 묶거나 개발을 한다고 하여도 국가에서 지불하는 비용은 우리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적게 든다는 것이다."(본문 중에서)

티베트인들의 거주지 구채구, 종교 공간이던 황룡고사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재탄생되는 과정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적 목적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근대국가가 문화국가의 성격을 강조하는 수단으로써 문화재를 '창조'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국가의 문화재 '창조' 과정은 '혁명'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다고 한다. 대장정 7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벌어지고 장정 루트를 따라가는 홍색 여행도 인기 있는 유행상품이었다고 한다.



대장정 70주년, 혁명은 관광으로 남는가?

유장근은 중국의 혁명 유적들을 둘러보면서 '혁명은 관광으로 남게 되는가' 하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다.

"성공한 자들은 이곳을 떠나 북경으로 갔고, 이후 혁명의 열정은 변색되어 갔다. 반면 그들의 성공을 도왔던 이곳의 노백성들은 여전히 어려운 자연 조건 아래서 예전처럼 곤궁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오늘날 연안사람들에게 혁명은 무엇일까."(본문 중에서)

이런 회의 끝에 그의 상념은 연안에서 혁명을 꿈꾸던 조선인 혁명가들고, 님 웨일즈의 아리랑으로 유명한 김산에게까지 이어진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에서 소멸된 연안파와 김산의 꿈은 어디에 있으며, 오늘날 그들이 연안에 남긴 흔적은 관광객들의 주목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떨치지 못한다.

여기까지는 주로 중국 변방여행기에 관한 소개다. 유장근이 쓴 <여행하며 중화제국을 탐색하다>는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주로 변방을 둘러보는 중국 여행기, 2부는 상해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중국사람들의 일상이야기, 3부는 한중 문화 비교와 영화를 통해보는 중국역사 이야기로 되어있다.

제 2부에는 한국과 다른 중국 대학 풍경, 중국의 과열된 월드컵 열기, 잘 갖춰진 중국의 학교 체육시설, 부활하는 귀뚜라미싸움, 상해에서 본 북한 식당, 상해의 역사기록관 '당안관' 등을 소개하는 글로 중국인들의 일상을 지켜보고, 평범한 중국인들과 교류하면서 느낀 이야기 그리고 세계최대도시 상해에 거주하면서 본 중국의 변화를 소개하고 있다.

제 3부에는 상호교류의 시선으로 한국과 중국을 비교하는 글들이 실려 있는데, 특히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박지성에 대한 중국인들과 중국 언론의 평가를 소개하는 글이 눈에 띈다. 유럽 축구의 전체적인 구도 속에서 박지성을 소개하고 있을 분만 아니라 역사적 관점에서 한국축구를 분석하는 것은 배울 점이라고 한다.

"요컨대 중국축구계의 정보 획득 노력과 그에 따른 분석은 우리가 경중(敬中)하면서 학중(學中)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 소개된 영화를 통해보는 중국사회에 소개된 13편의 영화이야기 역시 꾸며진 이야기라는 본질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근현대 중국 역사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될 만한 글들이다. 독자들은 부산국제영화제를 즐겨찾는 아마추어 평론가의 수준을 넘어서는 역사학자의 영화평론을 만날 수 있다.

<여행하며 중화제국을 탐색하다>를 쓴 유장근은 연구대상 중국과 실제 중국은 많이 달랐다고 한다. 그는 여행가이드의 말만 믿고 끌려 다니지 않으며, 책을 읽어보면 역사학자인 그가 지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여행자이기 때문에 관광지, 재래시장, 열차에서 만나는 중국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기록 인프라 구축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저자의 꼼꼼한 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의 장점이다.

역사학자가 탐색한 중화제국을 진지하면서도 재미있게 소개한 탁월한 여행기이지만, 교과서 같은 느낌을 주는 편집과 빼어난 비경을 흑백사진으로만 보아야 하는 것은 작은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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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웅진 2009.07.07 22:19 address edit & del reply

    http://opencast.naver.com/SP260/86 에 소개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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